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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공간, 기억, 시간의 삼위일체, <노스탤지어>와 <희생>
타르코프스키의 마지막 작품인 <희생>의 첫 장면은 죽은 나무에서 시작된다. 데뷔작 <이반의 어린 시절>에서 타르코프스키는 염소와 나비 사이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를 수직 트래킹으로 상승하면서 이반의 꿈속으로 살그머니 잠입했었다. <안드레이 루블로프>에서 역시 나무는 하늘과 땅을 이어준다. 아버지의 비법을 아는 척하던 소
글: 심영섭 │
2005-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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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감독과 원작자가 말하는 <스파이더>
랠프 파인즈가 어린 시절의 음울한 동네로 풀려난, 더 음울하고 몽롱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가진 정신병 환자를 연기한 <스파이더>는 패트릭 맥그래스의 각색 불가능한 소설을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영화화한 최신작이다. 패트릭 맥그래스의 소설 <스파이더>는 어머니가 스파이더라고 부른 정신분열증 환자에 대한 일인칭 소설로, 원작자인 자신이
정리: 짐호버먼 │
200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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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어른이 되지 못한 소년들, <에비에이터> <네버랜드를 찾아서>
“사람들이 내면의 가장 어두운 곳에 숨겨두는 기억들이 있다. 그 기억들은 거기에 머물면서 기다린다, 언젠가 어떤 우연한 말이 갑자기 그들을 불러내기를, 그리하여 대단히 다양한 환경 중 하나에 직면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마틴 스코시즈의 <에비에이터>와 마크 포스터의 <네버랜드를 찾아서
글: 김용언 │
200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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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미친채 살아남은 자의 슬픔, <스파이더>
탁월하고 심란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새 영화 <스파이더>는 마치 뤼미에르의 생명력과 가능성 넘쳤던 객관적인 다큐멘터리처럼 시작한다. 런던역으로 들어오는 기차. 카메라는 한 무리의 승객을 무심히 떠나보낸다. 유령 같은 데니스 클레그(랠프 파인즈)가 마지막으로 등장할 땐 이미 한 광인의 세상에서 유령들과 얽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글: 짐호버먼 │
200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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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잊을 수 없는 인물들, <사이드 웨이>
올챙이배에 머리가 벗겨져 짜증도 잘 내고 짜증스럽기도 한 폴 지아매티는 괴로워하는 모습을 인간적으로 잘 소화해내서 그만의 장르를 만들어내고 있다. (알랑거리는 독립영화 감독으로 나온) <스토리텔링>이 있고 (그의 ‘하비 피카’가 실재 피카보다 더 실감난) <아메리칸 스플렌더>가 있는데 이제 거기에 알렉산더 페인이 탁월하게 감독한
글: 짐호버먼 │
2005-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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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무방비 상태의 순수한 영혼, <레이>
앉아서 노래하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통은 물론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 버금가는 고통은 공간적 제한으로부터 온다. 그들은 나다니기를 포기하고 제자리에 앉는다. 그들이 가는 대신 세상의 움직임이 그들에게로 온다. 그들의 촉수는 앉은자리에서 세상을 다시 쓴다. 장님들은 나무가 된다.
레이 찰스는 앉아서 로큰롤을 한다.
글: 성기완 │
2005-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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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전성기 할리우드를 탐하다, <에비에이터>
모든 전기영화가 논픽션인 건 아니다. 여러분이 사료들을 모으고 증인들을 인터뷰해서 존 F. 케네디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면 그건 논픽션이 될 수 있다. 그게 꼭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진리를 대변하는 건 아니지만 논픽션이 그래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다. 하여간 어떤 전기영화가 논픽션이 되려면 필수적으로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글: 듀나 │
2005-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