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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과 원작자가 말하는 <스파이더>

“프로이트를 반박할 수 있어서 기뻤다”

랠프 파인즈가 어린 시절의 음울한 동네로 풀려난, 더 음울하고 몽롱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가진 정신병 환자를 연기한 <스파이더>는 패트릭 맥그래스의 각색 불가능한 소설을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영화화한 최신작이다. 패트릭 맥그래스의 소설 <스파이더>는 어머니가 스파이더라고 부른 정신분열증 환자에 대한 일인칭 소설로, 원작자인 자신이 직접 시나리오를 각색했다.

성공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2003년 1월 이 단정한 영화감독이 <판고리아>(공포물을 다루는 잡지-역주)의 평생공로상을 수상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했을 때 친절한 작가의 로어 맨해튼에 위치한 집을 방문해 훈제연어와 베이글을 먹으며 박제된 박쥐의 눈총 아래서 이 점을 논의했다.

크로넨버그 | 완벽한 조합이었지. 자네가 뭘 했는지 내가 뭘 했는지 기억도 안 나. 다 내 덕이라고 할 뿐이지.

맥그래스 | 시나리오는 여러 감독들이 읽었잖아.

크로넨버그 | 사실 토론토의 몇명이 그랬지. 나에게 보내기 전에 아톰 에고이얀에게 보냈다가 그 사람이 돈 멕켈러에게 보냈어. 이 사람들하고 파티에 함께 있었는데, 내가 <스파이더>를 할 거 같다고 했더니 다들 읽었다데. 형편없다고 여겼고.

맥그래스 | 그땐 형편없었어.

크로넨버그 | 아톰 에고이얀이 <스파이더>를 토론토영화제에서 보고 그러데, “시나리오는 읽었었는데 영화로는 상상이 안 가다가 이제야 보인다”고. 스파이더가 자신의 기억들 사이로 방황하는 장치가 너무 연극적이고 영화로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호버먼 | 패트릭, 영화가 충격적이었나요?

맥그래스 | 제 책들 중 두권이 영화화됐는데(다른 하나는 테레사 러셀과 스팅이 나오는 1995년작 <그로테스크>였다), 첫째로 놀란 건 등장인물들의 신체조건이 어떠할 것이다 하는 생각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다가 실제 배우들을 보고 너무 다르게 느끼는 거죠.

크로넨버그 | 정신분열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신체조건들이 다르다고?

맥그래스 | 사실이야. 난 스파이더가 이스트 런던의 마일 엔드 로드를 걸어내려오는 걸 실제로 보곤 했어. 사뮈엘 베케트처럼 생겨서 마르고 큰 키에 너무 길어 멀쭉한 다리를 가졌어. 하지만 첫날 아침 파인즈가 그 거리를 내려오는 걸 보니 내 머릿속의 마른 스파이더가 아니더라고.

크로넨버그 | 정말 사뮈엘 베케트를 생각했단 말야?

맥그래스 | 그랬지.

크로넨버그 | 당신 소설엔 나오질 않잖아, 그러니 그랬지. 더구나 베케트가 우리에겐 일종의 기준이 되었는데. 당신이 그를 염두에 두었다는 건 몰랐는데.

맥그래스 | 순전히 육체적 조건에서. 그를 읽은 건 아냐, 그때까지.

관객이 1인칭 정신병자에게 몰입하도록

호버먼 | 데이비드, 당신은 소설을 어떻게 느꼈지요?

크로넨버그 | 그 책에 대한 내 문학적 소견은 그 책이 일기라는 거였어요. <스파이더>라는 책은 사실 스파이더가 쓴 거다 하는, 그래서 그가 패트릭만한 작가라는 거죠. 그렇게 이야기를 끌 수는 없다는 걸 알았지만. 하지만 그가 뭔가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과 범죄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했기에 일기라는 착상을 좋아했어요. 그때만 해도 내가 일종의 예술가, 야릇하게 으스스한 실패한 예술가를 만들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죠.

맥그래스 | 내가 소설을 처음 시작했을 땐 스파이더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거든. 그런데 이야기가 발전하면서 이 고통스런 기간을 기억하는 성인이 될 아이의 시각에서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되더군. 그러니까 더 재미있게 되었어.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로 생각하기 시작했지. 그 점을 당신은 별로 상관 안 했지만.

크로넨버그 | 안 하기는. 그 느낌, 그 스파이더 느낌을 좋아했는데. 굉장히 풍부하게 다가왔어.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증후화해버리면 좀더 일반적일 수 있는 암시를 좁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등장인물을 정신분열증 환자다 해버리면 관객은 가만히 앉아서 미친놈이군 해버릴 거란 말이지. 난 그렇겐 못하지. 관객이 스파이더처럼 느끼길 바랐던 거야.

맥그래스 | 스파이더는 만약 내가 브로드무어 주변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생각해낼 수 없는 인물이야. 아버지가 거기서 수석 정신과 의사로 계시다가 나중에 캐나다의 정신병원에서 일하셨지.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고 그 질병으로 삶이 완전히 망가진 사람들을 만난 게 중요한 경험이었어.

크로넨버그 | 패트릭, 당신은 내가 보이스 오버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결정하자 걱정했었잖아.

맥그래스 | 인물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광적인 일들, 그 뇌에서 요동하는 아비규환을 놓고 볼 때 오직 그의 관점만이 중요하다는 신념으로 스파이더라는 인물을 창조했기 때문일 거야.

크로넨버그 | 파인즈의 머리 모양으로 그걸 표현했지 않아. 요동하는 아비규환의 머리 모양 말야.

맥그래스 | (본래) 시나리오에 스파이더의 부모가 침대에서 실제로 성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나?

크로넨버그 | 없었을걸.

맥그래스 | 없었어?

크로넨버그 | 어, 웃기는 건 일본인 배급자가 부모가 성교하는 모습을 소년이 보고 있는 장면이 얼마나 훌륭한 장면인가 계속 떠들어댔어. 혼자서 속으로 그런 장면이 없는데 이 여자에게 그 장면이 안 나온다고 말하지 말아야겠다 했지, 가장 좋아할 장면이니까. 마침내 영화를 보여주니 “그 장면 어디 있냐”라는 말 한마디도 들리지 않데. 사실 원초적인(primal) 장면이란 자체가 존재하질 않아. 게다가 프로이트식 패러다임을 반박할 수 있어서 기뻤지. 리처드 웹스터가 학구적으로 명쾌하게 쓴 <왜 프로이트가 틀렸나>를 읽은 뒤에 더이상 그 패러다임을 따를 순 없었거든.

맥그래스 | 도식적이고 오이디푸스적인 전제를 깔지 않은 건 좋다고 생각해. 결국 영화는 그런 것에 관한 게 아니니까. 오히려 억압(repression) 과정과 그 과정의 붕괴에 대한 거지. 스파이더는 왜 그런지어떻게 어머니가 죽었는가에 대한 완벽한 대체기억을 고안해내니까.

크로넨버그 | 글쎄, 물론, 난 <왜 프로이트가 틀렸나>를 읽었으니까 억압에 대해서도 믿지 않아.

맥그래스 | 아직도 고수하는 사람들이 있어.

크로넨버그 | 알아. 절망적일 정도지, 특히 뉴욕에서는. (머리를 쳐들다가) 아, 박쥐가 있네!

맥그래스 | 어.

<뷰티풀 마인드>와는 전혀 다른

크로넨버그 | 난 나비들과 나방은 있지만 박쥐는 없어.

맥그래스 | 박쥐가 없어? <판고리아>가 하나 주려고 할걸.

호버먼 | 스파이더의 “나쁜” 어머니, 이본느가 저녁으로 요리하는 장어를 기념해서….

크로넨버그 | 장어라, 장어. 그렇지.

맥그래스 | 그가 피흘리는 감자를 꺼내지.

크로넨버그 | 패트릭의 본래 시나리오에는 공포영화 요소들이 좀 들어 있어요. 특히 이 피흘리는 감자가 있는데 완벽한 환각적 느낌을 만들어내죠. 특수효과팀이 피흘리는 감자를 만드는데 대개 툭 터져버려요. 항상 생기는 일인데. 특수효과를 보러갈 땐 좋은 옷은 입지 말아야 해. 굉장히 자부심을 가지고 만들었는데 내가 사용을 안 했어. 그땐 영화가 좀더 달라졌거든. 이본느가 주요 환각의 대상이었지.

맥그래스 | 촬영 초기에 당신이 물었잖아, 모든 장면들이 어떤 현실에 속해 있는지 구분해달라고. 현재의 스파이더, 믿을 수 있는 기억 속의 스파이더, 우리가 “오염된 기억”이라고 부르던 곳에 속한 스파이더.

크로넨버그 | 영화를 두 번째 볼 때 재미있는 점은, 처음 봤을 때와 전혀 다른 게 보인다는 거야. 기억 속으로 들어가게 되거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당신의 인생 나중에 밝혀지는 당신이 어렸을 때 부모가 말해주지 않던 사실들이 있잖아. 다시 생각해보고 기억해보고 그러다보면 아버지가 당신이 썼던 보호소에 있던 그 여자와 관계를 갖고 있었고.

맥그래스 | 아니야, 내 아버지가 아니야.

크로넨버그 | 바로 그거야. 다들 남의 아버지지 자기 아버지는 아니라고 해.

호버먼 | 칸영화제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파이더>를 <뷰티풀 마인드>에 비교했어요.

크로넨버그 | 그 영화를 보면 다들 야, 나도 정신분열증 환자가 돼봐야겠다고들 하지.

맥그래스 | 그렇지. 맞아! 인생의 반은 프린스턴에서 노닥거리고.

크로넨버그 |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곁을 떠나지 않을 이 아름다운 여자에, 지루하면 에드 해리스하고 놀고, 노벨상도 받고 그 다음엔 나에 대한 영화에 러셀 크로가 나와 오스카 상도 받고. 정신분열증 환자나 돼버리자.

(2003. 2. 26. 짐 호버먼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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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이담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