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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이매진]
[진중권의 이매진] 영원한 소년이 꾸는 꿈
동네에서 무당이 굿을 한다. 무릎 아래가 잘린 채 피를 흘리며 장단에 맞춰 미친 듯 춤을 춘다. 다리가 잘려나간 무릎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흰자위를 드러낸 채 두눈은 이미 다른 세계를 우러른다. 뒷마당에는 화덕에 양은솥이 올려져 있고, 그 안에는 잘려나간 무당의 두 다리가 들어 있었다. 아직까지 머릿속에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영상이다.
현실에
글: 진중권 │
2007-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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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이매진]
[진중권의 이매진] 시간의 퍼즐
“케오스의 시모니데스, 레오프레페스의 아들, 기억술의 발명자….” 17세기에 발견된 어느 고대의 석판에 적혀 있는 말이다. 기억술(mnemotechnik)은 문자문화 이전, 그러니까 사람들이 아직 구술문화에 살던 시절의 테크닉이다. 그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석판에 적힌 대로 시인 시모니데스(BC 557~467)를 기억술의
글: 진중권 │
2007-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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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이매진]
[진중권의 이매진] 게임이론과 합리성
“형태(shape)를 하나 꼽아봐요.” “예?” “동물이든 뭐든, 아무거나.” “좋아요. 우산이오.” 잠시 눈으로 밤하늘의 별밭을 더듬더니, 내시는 알리샤의 등 뒤로 돌아가 그녀의 손을 잡아 밤하늘의 한쪽 구석으로 이끈다. 그의 손이 이끄는 대로 시선을 따라 옮기니, 별밭의 혼돈 속에 문득 우산 모양의 별자리가 나타난다. 경외에 가득 눈으로 파트너를 바라
글: 진중권 │
2007-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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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이매진]
[진중권의 이매진] 영원히 바다를 떠도는 망자의 배
<캐리비안의 해적>. 전편들을 안 본 상태에서 3편을 보는 것은 피곤한 일. 그래도 3시간에 가까운 지루한 상영 시간 동안 눈뜨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간간이 나오는 인상적 장면들 덕분이었다. 물고기떼처럼 죽은 자들의 사체가 물의 표면 바로 아래로 미끄러지듯이 배 옆을 스치고, 죽은 자들의 보트가 저마다 등불을 밝히고 고요한 밤바다를 별밭으로
글: 진중권 │
2007-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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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이매진]
[진중권의 이매진] 영상의 스티그마타
예수 수난의 장면은 길지 않아 네 복음서 속에서 기껏해야 두어개 장(章), 서너쪽 분량일 뿐이다. 그나마도 모두 AD 60년 이후에 기록된 것들. 물론 추종자들에게는 분명 잊지 못할 체험이었겠지만, 복음서가 쓰였을 때쯤에 예수의 수난은 이미 30여년 전의 희미한 기억일 뿐이었다. 그나마 그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텍스트로 된 기억. 그리하여 글자를 모르는 민
글: 진중권 │
2007-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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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이매진]
[진중권의 이매진] 신체의 현상학
1944년 6월6일. 세계에서 가장 길었던 날. 노르망디의 오마하 해변. 기관총탄이 쏟아진다. 수송선 안에 웅크린 몸들은 그 안에서 그대로 시체가 되고, 탄환은 바다 속까지 뚫고 들어가 허우적대는 유기체의 신체를 관통한다. 상륙을 해도 엄폐물 없는 해변에서 신체들은 유린의 대상일 뿐. 총탄이 철모의 외피를 관통하여 내피 속을 회전하고, 그것을 벗어드는 순
글: 진중권 │
2007-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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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이매진]
[진중권의 이매진] 기계의 반란
주지사 일로 바쁜지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터미네이터> 4편에는 출연하지 않기로 했단다. 듣자하니 4편에서는 존 코너가 저항군을 이끌고 기계부대와 일전을 벌인단다. 근육질 배우가 빠진 영화의 미래가 적이 걱정되지만, 할리우드영화의 문법상 어차피 최후의 승리는 인간의 것으로 끝날 터이니 인류의 미래에 대해선 안심해도 될 것 같다. 영화 <터미
글: 진중권 │
2007-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