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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
[이창] 트래블 안의 트러블
타이에 처음 왔을 때 개가 되고 싶었다. 타이의 개들은 도로를 침대 삼아 잠을 잔다. 마치 앞으로 세 시간은 푹 잘 테니 깨우지 마시오, 하는 포즈로. 공항 버스는 개들을 멀찍이 피해 오염 가득한 방콕의 공기를 뚫고 달려서 마침내 카오산 로드에 날 내려주었다. 카오산 로드는 한마디로 미친 거리다. 그곳엔 낮과 밤의 개념이 없다. 사람들은 밤낮으로 술을 마시
글: 권리 │
200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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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
[이창] 무쓸모 질문
귀가 얇아서일까, 심사가 꼬여서일까. 남들이 ‘별로’라고 한 영화를 보면 ‘괜찮네’ 하면서 극장을 나서고, 남들이 ‘괜찮다’고 한 영화를 보면 ‘별로네’ 하면서 극장을 나서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아마도 귀가 얇아서 ‘만빵’으로 기대했다가 적이 실망하고, 심사가 꼬여서 남들이 별로라고 하면 만족도가 자극되나보다. 최근엔 <다세포 소녀>는 ‘별로’
글: 신윤동욱 │
200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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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
[이창] 나약함을 견디는 법
100만년 만에 치과에 갔다. ‘파로돈탁스’까진 아니더라도 이에 처방을 하고 싶단 생각은 애초부터 있었지만, ‘치과의사는 도둑놈’ 설 때문에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와중 새로 생긴 치과가 있어 충동적으로 방문해보았다. 충동적이라 함은 양치질을 하지 않았단 뜻이었다. 당연히 재앙이 일어났다. 요새 의사 자격시험을 얼굴로 뽑는다는 얘기는 못 들어본 것 같은데
글: 권리 │
200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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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
[이창] 기자라서 죄송함다
저에게 기자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늘 빚지는 직업”이라고 답하겠다. 신윤동욱 기자의 일상은 이렇다. 우선 절친하지도 않은 취재원에게 절친한 척 전화를 걸어서 취재 아이템을 구하고, 대개는 생면부지의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인터뷰 기회를 얻어야 한다. 기자란 변변한 보상도 없이 누군가의 시간을 뺏어야 하는 정말로 죄송한 직업인 것이다. 게다가 이른바 전문가의
글: 신윤동욱 │
200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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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
[이창] 태풍맨과 블루맨
지나친 의미 부여는 정신 건강에 해롭다(써놓고 보니 담뱃갑의 경고문구 같다). 의미 부여가 착각의 늪으로 가는 최단거리란 건 수학적 증명을 거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건만, 난 자주 아무것도 아닌 일에 의미 부여하는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하나만 더 실수를 저질러볼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진다면, 난 내 동생과 함께 있을 때마다 이상한 일을 자주 겪는다는
글: 권리 │
200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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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
[이창] 어둠의 광명 혹은 비명
##어둠1. 게이(여기서는 남성 동성애자)는 서울쥐다. 도시의 공기는, 익명의 공간은 그들에게 자유를 허한다. 혹시나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순간에 익명은 그들을 감싼다. 게이바에 들어가는 순간, 게이바 옆 가게 주인이 그들을 본다고 해도 주인은 그들이 누군지 모른다. 그들에게는 정말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엄마의 친구가 가게 주인인 동네의 게이
글: 신윤동욱 │
200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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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
[이창] 사랑과 이별의 그래프
사랑이 떠나갔다. 영원할 것만 같았고 사랑한다 말해주었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좋다던 그 사람은 말했다. “콩깍지가 벗겨졌어.”
오호!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에 대해 이만큼 적절한 답변을 들은 적이 없다.
행복했던 일들이 다 오랜 기억처럼 느껴진다. 유치환 시인의 ‘행복’의 한 구절처럼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보이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글: 권리 │
2006-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