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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오디세이]
[걸작 오디세이] 멜로드라마와 미국 선전의 사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카사블랑카>(1942)에 대한 추억이 하나쯤 없는 이가 있을까. 릭(험프리 보가트)이 자신의 카페에서 혼자 술을 마실 때, 일자(잉그리드 버그만)가 남편 라즐로(폴 헨레이드)와 함께 그 카페에 들어설 때, <As Times Go By>가 연주될 때, 무엇보다도 공항에서 일자가 릭에게 매달릴 때 혹은 릭이 그
글: 한창호 │
2008-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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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오디세이]
[걸작 오디세이] 정치적 선전 혹은 웨스턴의 신전
백인이 아닌 관객으로서 웨스턴을 본다는 게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특히 웨스턴 장르의 공식이 다듬어져가던 30, 40년대의 작품들을 보면 끝까지 참고 있기가 고문일 때도 있다. 존 포드의 <역마차>(1939)를 기억해보자. 이른바 ‘인디언’은 아무 이유없이 폭력을 일삼는 타자이고, 그래서 백인 영웅에 의해 파리 목숨보다 더 하찮게 죽임을 당한다
글: 한창호 │
2008-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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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오디세이]
[걸작 오디세이] 게리 쿠퍼의 불안한 얼굴, 심리 웨스턴의 출발
게리 쿠퍼(1901~61)의 최고작은 무엇일까? 그는 폰 슈테른버그의 <모로코>(1930)부터만 따져도 무려 30여년간 최고의 스타에 머물렀다. <존 도를 만나요>(프랭크 카프라, 1941),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샘 우드, 1943) 같은 작품들이 발표될 때, 그는 클라크 게이블과 더불어 누가 봐도 할리우드에서
글: 한창호 │
2008-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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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오디세이]
[걸작 오디세이] 종교적 배금주의에 대한 비판의 전범
‘피를 부를 것’이라는 묵시록적인 제목의 <데어 윌 비 블러드>(2007)에 나왔던 세속적인 성직자(폴 다노)를 기억할 것이다. 종교를 팔아 부와 명예를 챙기려는 파렴치한 소인배다. 신심과 순결을 강조하며, 달리 말해 죄의식을 부추기는 선동을 통해 그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뒤에서는 돈을 탐닉했다. 그의 영화적 선배를 찾자면 로버트 미첨이 연
글: 한창호 │
2008-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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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오디세이]
[걸작 오디세이] 소비주의를 비판하는 알레고리극의 전범
리안 감독의 <음식남녀>(1994)를 보면 요리한다는 행위 자체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딸들을 위해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드는 아버지의 헌신적인 마음이 화면 가득히 느껴진다. 음식이 사람 사이의 관계를 흐뭇하게 만드는 마술 같은 소재로 제시된 것이다. 그런데 이탈리아의 마르코 페레리 감독의 <그랜드 부프>(1973)를 보면 사
글: 한창호 │
2008-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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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오디세이]
[걸작 오디세이] 11번의 플래시백이 낳은 포스트모던의 맹아
1941년 오슨 웰스가 <시민 케인>을 발표한 뒤,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서의 플래시백은 아주 빈번하게 영화제작에 사용된다. 웰스는 모두 6번의 플래시백을 등장시켜, ‘시민 케인’의 ‘진실된’ 모습을 그려내고자 했다. 그런데 플래시백이 얼마나 위험한 장치인가 하면, 당시의 관객은 물론이고 현대의 관객도 이야기 구성의 복잡함에 그만 집중력을 잃
글: 한창호 │
2008-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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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오디세이]
[걸작 오디세이] 코미디로 풀어낸 메타시네마의 효시
할리우드가 세계영화 시장을 석권한 것은 1차대전 때부터다. 유럽영화가 전쟁으로 침체기에 빠졌을 때, 유럽과 세계의 극장에선 미국영화가 넘쳐났다. 전쟁이라는 변수가 컸지만, 무엇보다도 영화 자체가 대중의 요구를 크게 만족시켰다. 유럽의 관객은 특히 그리피스 같은 멜로드라마 감독들이 보여주는 눈물 나는 이야기에, 또 맥 세네트 같은 코미디 감독이 펼치는 포복
글: 한창호 │
2008-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