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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오디세이]
[걸작 오디세이] 일상에서 건져 낸 거대 서사
로베르토 로셀리니(1906∼77)는 로마의 대단한 부잣집 아들이었다. 건설업을 하는 부친은 로마 최초의 영화관 소유자 중 한명이었다. 로셀리니는 어릴 때부터 이곳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영화를 보았다. 그의 부모는 집에서는 프랑스어만 쓰게 했다. 집안은 무솔리니 정권과도 비교적 친하여 로셀리니는 일찍이 파시즘 시절 최고의 감독들 아래서 연출을 배웠다. 그는
글: 한창호 │
2008-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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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오디세이]
[걸작 오디세이] 무심한 기록, 새로운 물결
1959년 프랑수아 트뤼포가 장편 데뷔작 <400번의 구타>를 들고 칸영화제에 참가했을 때, 이 영화제의 명예심사위원장은 로베르토 로셀리니였다. 트뤼포에게는 두명의 영화적 아버지가 있는데, 영화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한 앙드레 바쟁과 영화 만들기의 열정을 전수한 로셀리니가 그들이다. 로셀리니는 불과 28살의 나이로 문제작을 들고 나온 트뤼포를
글: 한창호 │
2008-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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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오디세이]
[걸작 오디세이] 영화가 영화를 이야기하다
TV의 등장에 자극받은 영화는 자기 자신을 다른 매체와 비교하기 시작한다. 자기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TV의 활약으로, 영화는 스스로를 거울에 비추어보는 성찰의 순간을 맞는다. 다시 말해 영화는 자의식을 가진 것이다. 이런 변화를 반영한 중요한 작품이 바로 1950년 같은 해에 발표된 <이브의 모든 것>과 <선셋대로>다. <이브의
글: 한창호 │
2008-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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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오디세이]
[걸작 오디세이] 스타의 모든 것 혹은 영화의 모든 것
예술은 살아 있는 사람과 닮아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순간을 맞는다. 바야흐로 어른이 되어 성숙한 시각을 갖는 것이다. 이를테면 문학에서 미구엘 데 세르반테스의 <동키호테>(1605)가, 미술에서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1657)가 전환의 순간을 가져온 뒤 문학은, 그리고 미술은 늘 자기 자신을
글: 한창호 │
2008-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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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오디세이]
[걸작 오디세이] 웨스턴은 존 포드의 동의어
“나는 존 포드요. 웨스턴을 만듭니다. 미국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 방에서 세실 B. 드밀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어떻게 보여주는지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세실 B. 드밀을 바라보며) 그러나 나는 당신이 싫소. 당신이 지지하는 것도 싫소. 오늘밤 여기서 당신이 말한 것도 싫소.”
매카시즘이 불어닥칠 때 감
글: 한창호 │
2008-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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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오디세이]
[걸작 오디세이] 누아르의 귀환, 천재의 귀향
<시민 케인>(1941)은 오슨 웰스에게 운명적인 작품이었다. 분명 명예도 누렸지만, 웰스는 이 작품 때문에 적지 않은 고생도 해야 했다. 바로 <시민 케인>에서 간접적으로 거론했던 언론재벌 허스트 집안과의 불화 때문이었다. 2차대전이 끝난 뒤 미국에 보수바람이 거세게 불 때, 허스트 집안은 웰스를 끊임없이 공산주의자라고 비판했다.
글: 한창호 │
2008-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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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오디세이]
[걸작 오디세이] 디아스포라의 불안과 죽음 같은 차별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영화에는 차별에 대한 특별한 시선이 들어 있다. 제도화된 차별, 또는 제도화된 폭력에 대한 파스빈더의 비판은 우리가 묵시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관습의 허위를 드러낸다. 이런 주제가 절정을 맞은 것은 이른바 ‘독일 멜로드라마’라고 불리는 작품들이 연이어 나올 때다. 곧 <사계절의 상인>(1972)부터 <중국식 룰렛&g
글: 한창호 │
2008-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