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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표현물]
[이적표현물] 두려워, 좀비보다 내일이
태일이 전화를 걸어왔다.
“다음주 금요일에 우리 밴드 홍대 클럽 공연이 있다.”
“오랜만에 하네. 새 노래라도 썼어? 다들 바쁘다면서.”
“와줄래?”
이 녀석이 이런 부탁을 하는 건 처음이다.
“쪽팔리지만 이번엔 꼭 와줬으면 좋겠다.”
심상치 않은 느낌에 다음날 영화를 핑계 삼아 만났다. 극장 앞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우겨넣으며 태일이 말했다.
“혜원이가
글: 이적 │
사진: 아방 │
2013-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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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표현물]
[이적표현물] 소녀들의 판타지
태일과 연락 않고 2주를 보냈다. 불편한 점이라곤 없었다. 물론 전혀 신경을 안 쓴 건 아니지만. 그날, 우리의 20년 지기 은아와 셋이 <비포 미드나잇>을 본 날, 은아가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 태일이 내게 노출했던 공격성은, 마치 육식동물이 자기 영역을 침범한 다른 수컷에게 드러내는 송곳니처럼 사나웠다. 무례한 독설엔 이골이 나 있다고 생각했
글: 이적 │
일러스트레이션: 아방 │
201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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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표현물]
[이적표현물] 사랑이 뭐길래
그랬다. 태일이 얘기하기 전까진 잊고 있었다.
무심코 <비포 미드나잇>을 봐야 하지 않겠냐고 태일에게 말했다. <비포 선라이즈>도 <비포 선셋>도 함께 봤으니 마무리까지 같이 해야 하지 않겠냐고. 그러자 태일이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은아도 불러야겠네.”
어떻게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글: 이적 │
일러스트레이션: 아방 │
2013-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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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표현물]
[이적표현물] 남자는 왜?
새로 산 기타에 줄을 갈아 끼우고 있는데 태일의 ‘애기’이자 ‘애인’인 혜원이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날 즐거웠어요. 우리 좀 많이 마셨죠?^^ 내일 영화 한 편 같이 보실래요?’
누가 보면 어쩌나 싶어 얼른 삭제한다. 오해를 막기 위해 얘기하겠다. 태일이 혜원과 있는 자리에 나를 처음 부른 그날, 내가 <씨네21>에 태일과의 이야기를 쓰고
글: 이적 │
사진: 아방 │
201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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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표현물]
[이적표현물] 목마르요, 술 좀 주소
화요일 오후 태일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적, 그때 얘기했던 내 애인이랑 있는데, 나와라. 같이 영화나 보자.”
그때 얘기했던 애인이라면, 태일이 ‘애기’라고 부르며 자랑하던 여대생일 것이다. 둘이 노는 자리에 왜 나를 부르는지는 대충 감이 온다. 자기가 전화만 하면 가수도 튀어나온다는 것을 은근히 과시하며 덤으로 계산까지 시키려는 속셈이겠지. 그
글: 이적 │
일러스트레이션: 아방 │
2013-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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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표현물]
[이적표현물] 욕정 없인 못 살아
“감독의 나이를 계속 염두에 두고 영화를 보는 게 정당한 감상법일까?”
극장에서 우디 앨런의 <로마 위드 러브>를 보며 옆자리의 태일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물론. 특히 그 감독이 직접 영화에 등장할 때는 더욱.”
용산역과 연결된 쇼핑몰 안의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밖으로 나오자 오후의 햇살 아래 광활한 공사현장들이 보인다. 이곳에 미래
글: 이적 │
일러스트레이션: 아방 │
2013-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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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표현물]
[이적표현물] 섹스엔 포르노, 인생엔 영화라니까
어쩌다보니 요즘 태일과 자주 영화를 보게 된다. 평일 낮에 극장을 어슬렁거릴 수 있는 한심한 친구가 드물기 때문이다. 태일은 아직도 인디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하는 동갑내기다. 당연히 음악으로 먹고살기는 불가능해 틈틈이 인맥을 동원해 작은 행사- 예를 들면 지방 도시의 소규모 축제 무대- 같은 것을 기획하기도 하는데, 역시 넉넉한 벌이가 되진 못한다. 하여
글: 이적 │
일러스트레이션: 아방 │
2013-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