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비평]
[비평] ‘더 웨일’, 숭고함이 침묵하는 공간
<더 웨일>은 가족에 관한 이야기인가? 그렇다. 다만 그것은 <모비딕>이 고래에 관한 이야기라는 의미에서만 그렇다. 스스로 <모비딕>을 인용하고 있는 <더 웨일>은 <모비딕>과의 관계를 통찰할 때 다양한 상징들을 발견할 수 있으며, <모비딕>이 그러했듯이 <더 웨일>을 미국, 그리
글: 박지훈 │
2023-03-29
-
[영화비평]
[비평] ‘더 글로리’의 복수는 가해자의 성별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나
필자소개
사과집 방송국 시사 PD이자 에세이스트. <딸은 애도하지 않는다> <싫존주의자 선언> <공채형 인간> 저자.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송혜교)이 학교 폭력의 복수를 결심한 가해자는 다섯명이다. 생사 여부로 복수를 결산해보자. 두명의 남자 가해자는 모두 목숨을 잃은 반면, 세명의 여자 가해자는 살아남았다.
글: 사과집 │
2023-03-23
-
[영화비평]
[비평] ‘더 글로리’ 속 뭉뚱그려진 피해자들과 해결되지 않은 폭력의 잔재들
<더 글로리>가 끝난 시점에 되묻고 싶다. <더 글로리>는 학교 폭력에 어떤 화두를 던졌나. 동은(송혜교)을 괴롭힌 가해자들은 저마다 저주의 신탁이라도 받은 양 과시적인 형벌을 보여주지만 나는 냉동된 소희(이소이)의 시신이, 재준의 옷가게에서 숙식하다가 간신히 고시원으로 도망친 경란(안소요)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예상할 수 없었다.
글: 김소미 │
2023-03-23
-
[영화비평]
[비평] ‘더 글로리’, 그 복수는 진짜 통쾌한가
적절한 복수란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측정 불가능한 광기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복수를 할 땐 두개의 무덤을 파라’는 말처럼 복수는 근본적으로 자기 파괴적이고 소모적이다. 그만큼 제대로 된 복수를 달성하기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상 복수를 통해 보상되거나 회복되는 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최소한 두 가지 효용에 눈이 멀어 복수를 갈망한다. 하나
글: 송경원 │
2023-03-23
-
[영화비평]
[비평]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와 ‘서치2’, 카메라를 맡겼을 뿐인데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나미(천우희)는 사건에 휘말린다.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이하 <스마트폰>)의 후반부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범죄자 준영(임시완)을 대면한 나미는 준영에게 묻는다.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내가 뭘 잘못했는데?” 억울하게 피해자가 된 나미의 입장에선 생략할 수 없는 질문일 테지만
글: 김철홍 │
2023-03-15
-
[영화비평]
[비평] ‘TAR 타르’, 불편해야 했던 질문들
예술가와 예술을 구분하여 생각할 수 있는가? 세계적인 지휘자 리디아 타르(케이트 블란쳇)에게 물어보자.
<뉴요커>의 애덤 고프닉과 함께하는 대담에서 리디아는 두 사상을 소개한다. 첫째는 음악을 연구하다 만난 시피보 코나보 부족의 가르침이다. 그들은 노래를 만든 영혼과 같은 편에 있는 사람만이 노래를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둘째는 스승 번스타
글: 김도헌 │
2023-03-15
-
[영화비평]
[비평] ‘바빌론’, 결국, 구원은 없다
<바빌론>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여러 요인 중 하나는 영화의 말미에 등장하는 몽타주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이질적인 이미지들을 모아 몽타주한 것은 의외였다. 그의 영화의 특징은 연속성에 있었다. 원테이크로 찍은 듯한 <라라랜드>의 오프닝 신이 그 예다. 그에게 편집술은 숏과 숏의 경계를 지우고 하나의 연속적인 시공간을 만들
글: 오진우 │
2023-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