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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1]
세 번째 이야기 <고잉 홈>의 진가신
만날 듯 스쳐 지나며 세월의 먼길을 돌아 마주하는 남녀의 인연을 섬세하게 그려냈던 손길로 빚은 공포는 어떤 빛깔일까. <금지옥엽> 1, 2편과 <첨밀밀> <러브레터> 등 멜로드라마의 고운 감수성으로 알려진 진가신 감독이 공포를 키워드로 불러낸 <고잉 홈>은 결코 노골적인 공포영화가 아니다. 다들 떠나갈 뿐 더이상
200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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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1]
마릴린 먼로가 지상에서 보낸 서른여섯해 (2)
9개월 만에 막내린 결혼생활, 무너진 먼로먼로가 남긴 짧은 말들은 대부분 슬픔에 차 있다. 먼로는 “만일 내가 만인의 스타라면 그건 재능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다. 나는 어느 곳에도 어느 누구에게도 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외로움에 시달렸다.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전설적인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는 그런 먼로를 찾아온 기적 같은 연인이었다.디
200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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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1]
소란스런 B급 드랙퀸 쇼가 `영화 <헤드윅>`으로 태어나기까지(1)
1994년 7월29일 밤, 미국 뉴욕 소호의 유명한 드랙퀸 클럽 ‘스퀴즈박스’는 일순 조용해졌다. 스스로를 야시시한 여성 모습으로 치장한 남성, 즉 드랙퀸들이 록음악을 고래고래 불러댔던 이 클럽 무대에 자신을 미군 병사와 결혼한 독일인 여성인 헤드윅이라고 소개하는 한 드랙퀸이 등장했던 것.
그저 목청이 터져라 꽥꽥거리며 좌중의 흥을 돋웠던 다른 드랙퀸들
글: 문석 │
200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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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1]
소란스런 B급 드랙퀸 쇼가 `영화 <헤드윅>`으로 태어나기까지(2)
1963년 텍사스에서 태어난 존 카메론 미첼은 군 장성인 아버지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 아래서 유년기를 보냈다. 군인 집안의 아들답게 그는 오클라호마, 캔자스, 콜로라도, 펜실베이니아, 스코틀랜드 등지를 20차례도 넘게 옮겨 다니며 어린 나날을 보냈다. 당연하게도 그는 언제나 친구 하나 없는 아웃사이더였다. 10살 무렵 스코틀랜드의 가톨릭계 기숙학
글: 문석 │
200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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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1]
소란스런 B급 드랙퀸 쇼가 `영화 <헤드윅>`으로 태어나기까지(3)
선댄스를 미치게 하다
각종 신문과 잡지의 리뷰난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이 뮤지컬을 영화계가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뉴라인시네마, 저지필름스, 그리고 온갖 영화사의 직원들은 객석 또는 백스테이지에서 공연을 지켜봤다. 뉴라인시네마의 회장 로버트 셰인도 오리지널 캐스팅 공연을 관람했다. 그는 <오리진 오브 러브>가 흘러나오는 도중 옆자리에 앉은 관계
글: 문석 │
200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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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1]
원작자 · 각색자 · 감독 · 주연배우 존 카메론 미첼 인터뷰
서면으로 질문을 보내고 답을 기다리기 며칠. 아뿔싸, 존 카메론 미첼이 ‘떠나버렸다’는 전갈이 왔다. 인터뷰에 답을 쓰고서? 아니다. 그는 모든 인터뷰를 거부하고(좀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얼마나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그냥 그거 보고 쓰라고 그래!”라는 엄청난 말을 남기고) 얼마 동안이 될지 모를 여행을 떠났다는 거다.존 카메론 미첼은 2001년 <
200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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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1]
에로영화계의 스타감독에서 데뷔작 준비하는 봉만대 감독 스토리(1)
Q:처음 섹스한 게 언제죠?A:고등학교 졸업한 뒤 여자친구하고 했는데요. 사실 마스터베이션을 알게 된 것도 얼마 안 된 상태였어요. 주위 친구들에 비해 굉장히 발육이 늦었죠. 뒤늦게 눈떠서 그런지 욕심이 과하게 생기더라구요. 군대가기 전까지 정말 많이 했어요. 나이트클럽에서 통성명하고 나면 곧장 자러 가곤 했으니까. 그렇게 1년 정도 보냈더니, ‘만나서 하
2002-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