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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한 편에 한 장면만 기억하는 병, <이웃집 토토로>
광고를 만드는 15초 인생이라 그런 것일까? 전체보다는 부분에 잘 흥분하는 소인배라 그런 것일까? 어쨌든 나는 영화의 전체보다는 한컷, 한 장면에 마음을 빼앗긴다. 2∼3시간짜리 영화를 보더라도 기억나는 건 오직 한두신뿐이다. 마치 첫사랑과의 긴 사랑을 기억하기보다는 그녀를 보낼 때의 한 장면만을 기억하는 것처럼, 나를 사로잡은 한두 장면이 가슴속에 남
2003-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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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그 미국 할머니, 한국말도 잘하네”, <집으로…>
돌이켜보면 나의 외할머니는 무식했으나 나름대로 당당했고 사랑스러운 분이셨다. 맞은편 동네의 따뜻한 백열전구 불빛들이 하나둘씩 켜져 어슬어슬 건너다 보이고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면 ‘저 집도 오늘 저녁 끼니는 거르지 않는구나’라고 서로를 안심하던 달동네. 그 달동네 외가댁에서의 기억은 곧 외할머니와의 추억이다.
나의 수호천사 외할머니
2003-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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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어딘지 낯익은 이 화두는 인문학자로서의 내 자신에게 결코 끊이지 않는 자아성찰의 의문 중 하나이다. 요즘처럼 첨단 기계문명이 인간의 하루하루를 좌우하는 시대에도 이 화두는 여전히 그 무게감을 떨구지 않는다. 과연 과학과 인간은 우리 세계의 서로 다른, 대립적인 축인가?
1년 전 주말이었다. 여느 때처럼 비디오 앞에 둘러앉은 나
2003-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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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나를 괴롭힐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개같은 내 인생>
맨 먼저 떠오른 것은 <개같은 내 인생>이었다. ‘인생’이라는 단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찬찬히 다시 생각해봐도 내가 본 영화 중에 대사든 장면이든 가장 많이 떠올랐던 것 역시 <개같은 내 인생>이다. 동네 비디오 가게 주인이 검색을 해보더니, “없어요. <개같은 날의 오후>는 있는데요…. 제목이 참 특이하네요”.
어
2003-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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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위로가 필요해,<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중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였다. 시험이 끝나면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관람을 가던 시절이었다. 일종의 위문공연이랄까. 중간고사가 끝나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고 온 다음날, 교실은 비비안 리의 가는 허리와 클라크 게이블의 콧수염의 매력을 상기하는 아이들로 여느 때보다 부쩍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영화평론가를 꿈꾸던 나는, 아이들의 반응이
2003-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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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어느 눈물의 추억,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1987년 여름 즈음에 나는 서강대학교 본관의 한 작은 방에서 진행하던 영화상영회를 찾곤 했었다. 어느 날 막 시작하던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첫 장면을 보면서 나는 그대로 울어버린 기억이 있다.
십여년의 세월이 지난 뒤 한분이 내게 물으신다. “자네가 영화를 하게 만드는 원형이 있나?” 누가 그렇게 물어주기를 기다리고나 있
2003-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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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글쎄, 사랑도 변하더라니까, <봄날은 간다>
사실 그날 밤 우리가 왜 다퉜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대개의 부부싸움이 그렇듯이 싸우다보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말다툼을 시작했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각자의 공간에서 마음속에 높은 담을 쌓은 채 누군가가 먼저 말 걸어주기를 애타게 바라고 있다. 화풀이 상대로 고른 텔레비전만 뚫어지게 보다가 혹시 그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촉각을 곤두세워봐도
2003-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