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전영객잔]
[신 전영객잔] 윤리와 폭력과 연민의 이상한 동거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이래, <한공주>에 대한 국내외적인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다수의 국제 영화제들에서의 수상소식이 들려오고 있으며, 국내에서 개봉한 지 20여일 만에 20만명 이상의 관객이 이 영화를 보았다. 분명 이 영화는 더 많은 관객의 주목을 끌며 더 많이 회자될 것이다. 평단의 반응도 대체로 호의적이다. 다만 이들이 호평을
글: 남다은 │
2014-05-29
-
[신,전영객잔]
[신 전영객잔] 창의적 자극과 잉여의 이미지 사이
1.
<한공주>는 지극히 양가적 감정을 일으키는 영화다. 모두에게 그러한 건 아닐 테고 내게 그러하다. 게다가 그 양가의 감정은 당황스럽게도 비율조차 동등하다. 한쪽에 있는 건 영화에 대한 찬사의 마음이다. 이 영화는 찬사를 받을 만한 탁월한 면모들을 많이 지녔으므로 그건 조금도 아까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 있는 건 어떤 소수의
글: 정한석 │
2014-05-22
-
[신,전영객잔]
[신 전영객잔] 배우의 얼굴이 우리에게 말을 걸 때
<방황하는 칼날>의 정재영과 <한공주>의 천우희는 전혀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정재영은 <방황하는 칼날>에서 성폭행당하고 죽은 딸의 아버지 이상현으로 나온다. 천우희는 <한공주>에서 본인도 성폭행을 당하고 함께 폭행당한 절친한 친구가 자살한 사건으로 고통받는 한공주로 나온다. 그들의 표정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글: 김영진 │
2014-05-01
-
[신,전영객잔]
[신 전영객잔] 패턴화된 폭력이 지워버린 현실의 얼굴들
“나에게 폭력이라는 문제는 사실 생소한 화두였다. … 나에게는 그 폭력을 비주얼로 표현할 수 있는 영화적 언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개의 이야기 속 폭력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다루면 좋을지 그 마법의 언어를 찾지 못해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고전 무협영화 한편, 즉 <협녀>가 생각났다. … 호금전은 영화에서 사회적
글: 남다은 │
2014-04-10
-
[신,전영객잔]
[신 전영객잔] 세상을 멸하라고 누가 명했는가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노아>를 일반적인 재난블록버스터 혹은 종말론적 SF 범주의 코드로만 한정지어 말하는 건 어딘지 부족해 보인다. 이 영화의 매력을 거론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예사롭지 않은 특수효과가 돋보이는 장면이 많아서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지만 그것이 이 영화의 더 특별한 매력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차라리 <노아>는 전반적
글: 정한석 │
2014-04-03
-
[신,전영객잔]
[신 전영객잔] 진실이 고통 이미지를 만났을 때
<노예 12년>은 평판이 좋다. 올해 오스카 작품상을 받았으며, 김영진과 김혜리도 지난호(945호) <씨네21>에 호의적인 글을 썼다. 나는 그들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견해를 반박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노예 12년>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형편없는 영화라고 생각하지
글: 허문영 │
2014-03-27
-
[신,전영객잔]
[신 전영객잔] 아프다, 방관자의 이 무기력함이
<노예 12년>에는 두 차례의 인상적인 린치 장면이 나온다. 영화 중반, 원래 자유인이었으나 강제로 납치당해 솔로몬이란 이름 대신 플랫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 주인공은 다소 온정적인 주인 포드의 호의를 사면서 그의 마음에 들어 언젠가는 자기 신분을 되찾을 희망을 은근히 품는데, 그의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산산이 찢어놓는 사건이 발생한다. 자기를
글: 김영진 │
2014-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