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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삶의 무게를 조용히 내려놓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그때 난 박사 논문을 쓴답시고 허덕대고 있었다. 한편의 논문에 그 무엇인가를 걸고 어느어느 대학교수가 될 수 있다는 기대에 내 인생을 팔려고 하고 있었다. 숨이 턱에 차오를 정도로 가빠하면서도 아이 키우는 것과 시집살이하는 것과 공부하는 것이 모두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나를 단련시키고 강화해주는 예방주사와 같은 것이라고 위안하며 살았다.
그러다 그 영
2003-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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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세상의 비밀을 잠깐 엿봤나봐, <파란대문>
얼마 전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우연히 김기덕 감독님을 ‘구경’할 수 있었다. 친구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재빨리 사진도 한장 찍었다. 영화제 일정을 매일 디카로 찍어 친구들에게 보내주고 있었는데, 배우나 유명인사의 사진이 없으니까 재미가 없다고 나를 압박하던 차였다. 감독님은 선선히 포즈를 취해주셨고, 그러는 와중에 잊고 있던 한편의 영화가 생각났다.
2003-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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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남자에 속지 말자는 다짐 무너지다, <로미오와 줄리엣>
내내 비가 내렸던 지난 여름엔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종로거리를 쏘다니곤 했던 나의 십대가 유난히 생각났다. 장대비 속에 우산을 꽉 잡고 길바닥에 원을 그리며 튕기는 빗방울을 보기만 해도, 그땐 그냥 가슴이 벅차올랐다. 유난히 종로 언저리에 추억이 많았던, 모범생의 일탈을 즐겼던 나의 십대는 허리우드극장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러 갔던 중학교
200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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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로맨스에 눈뜰 때, <트루 로맨스>
여전히 무덥지만 마음속에 이미 여름이 끝나버린 지금, 변변히 휴가 여행 한번 가보지 못하고 떠올려 보는 ‘내 인생의 영화’라니…. 이 얼마나 고독한 풍경이란 말이냐!
돌이켜보니 영화라는 존재가 로맨틱한 무엇으로 자리잡은 때는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올라간다. 고등학교 때 특별활동으로 불어반에 가입했던 나는 프랑스 문화에 대해 각자 조사하고 발표하는 시간
2003-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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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나는 재니스 조플린의 화신이다, <서머 타임>
나는 재니스 조플린의 화신이다. 1970년 10월4일 새벽, 약물과다로 인해 그녀의 영혼이 서서히 사그라들고 있던 바로 그 시각에, 나는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차가운 주검이 되어 마룻바닥을 뒹굴던 시각에 나는 태어났다. 전생을 지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한동안은 그녀의 존재조차 모른 채 지내야만 했다. 처음 그녀가
2003-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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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추운 보관소에서 떨고 있는 까닭은, <나이아가라>
내가 제일 싫어하는 영화에 대한 질문은 당신이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이냐 또는 어떤 영화감독을 좋아하는 가이다. 심한 건망증에 당시 왜 그 영화에 열광했는가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기도 하지만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좋아하는 것들이 달라지는데 어떻게 잣대를 딱 그어, 이 영화요 이 감독이요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지만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영화는
200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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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당신은 자신의 죽음을 봤어? <폭주 기관차>
나는 대학생활 전반부의 대부분을 ‘그분’과의 처절한 투쟁에 쏟아부었다. 친구들이 ‘그분’의 존재유무로 고민하고 있을 때, 나의 고민은 ‘그분’을 따를 것인가에 맞추어져 있었다. 즉 ‘그분’의 존재를 알고 있음에도, 그분의 품에 안기는 순간 영원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감히 ‘그분’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것이다. 연못 속의 물고기가 물
글: 조성효 │
2003-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