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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우울한 초상, <더 에이트 쇼>
미리 결론부터 말한다면, <더 에이트 쇼>는 ‘자본주의적 리얼리즘’이 지금의 한국 사회를 장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각 시대에는 나름의 지배적 패러다임이 있다. 우리의 인식이나 생각이 만들어지는 틀로서의 패러다임 말이다. 우리는 그 틀 덕분에 특정한 생각이나 개념을, 심지어는 ‘나’라는 자아를 구성할 수 있지만, 또한 바로 그 틀
글: 안시환 │
20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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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근본적인 불안의 정체에 관하여, <인사이드 아웃2>
<인사이드 아웃2>는 몇몇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전편의 맥을 잇는 준수한 여운을 남겼다고 평가된다. 나도 이 평가에 동의하지만 지면의 한계상 아쉬움을 상쇄했다고 거론되는 종막에 관해서는 논하지 않을 계획이다. 여기서는 속편의 상상력이 전편보다 부족하게 느껴진 이유를 말하고자 한다. 그 아쉬움은 제작진의 역량 부족이라는 단순한 이유보다는, 이
글: 김신 │
202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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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지루함, 따분함, 무의미함, <존 오브 인터레스트>
20세기 유럽의 시각을 결정지은 두 가지 질서는 영화와 강제수용소에 있다. 영화가 눈에 보이는 것을 기록하는 필름 카메라를 매개로 삼는 특권적인 재현 체계라면, 절멸의 수용소는 눈에 보이는 모든 기록을 은폐하고 소각한 체계적 기관이다. 한쪽에선 이미지를 구현하고, 다른 한쪽에선 이미지를 말살한다. 영화가 역사를 창조한다면, 강제수용소는 역사에 구멍을 낸다
글: 김병규 │
202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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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부재하는 것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프렌치 수프>와 <원더랜드>
유령은 볼 수 있어도 향기는 맡을 수 없다. 피부에 닿는 감촉과 존재의 무게 역시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시각으로 받아들인 정보를 뇌로 전달해 인지와 수용을 거쳐 감정과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지각 과정이다. 움직이는 영상과 음향으로 이루어진 영화를 받아들일 때 그래서 가장 먼저 강조되는 감각 체계는 시각과 청각이다. 영화에서 타인의 꿈이 펼쳐
글: 유선아 │
202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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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고지라’의 타임 패러독스, <고질라 마이너스 원>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한 8개 부문을 수상했고, 오스카 시각효과상까지 거머쥔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결국 국내 극장에 걸리지 못했다. 물론 이는 괴수물이 꾸준히 국내 관객의 선택을 받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몬스터버스의 다섯 번째 영화 <고질라X콩: 뉴 엠파이어>는 북미에서의 성공과 달리 국내에선 51만 관객을 모으
글: 박동수 │
2024-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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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전기 바깥의 전기, <차이콥스키의 아내>
이따금 도시의 발생 이전에 살았던 이들이 경험했을 소리의 세계를 상상해본다. 기계의 소음보다 자연의 음향이 친숙했을 세계. 거리를 거닐면 물론 그때도 사람들은 떠들고 장난치고 싸웠겠지만, 철도가 발명되고 공장이 세워지면서 도시가 갖게 된 음역과는 차원이 달랐을 터다. 이 추측은 활자와 사진을 통해 짐작할 따름이라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대자연이라는 원
글: 이보라 │
2024-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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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암실, 영화, 그리고 몸에 남는 것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생존이 곧 무기가 되는 삶. 누군가가 여기 존재한다는 단순한 현실이 세상을 불편하게 만든다면, 그 현실을 적나라하게 노출하는 이미지는 저항의 수단이 된다. 르포르타주는 사회적인 현실에 대해 보고자의 주관을 섞지 않은 객관적 서술과 그 자료들을 가리키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의 어두운 이면을 탐사하는 이미지는 결코 객관적인 상황만을 보여주도록 길들여지지 않는다
글: 김예솔비 │
2024-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