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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의 피카추]
[김정원의 피카추] 서바이벌 게임!
1980년대 후반,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몇달 동안 토요일마다 강시영화를 한편씩 봤다. 강시영화가 그토록 재미있었던가 하면, 아니다. 내가 다니던 보습학원 원장이 강시영화 마니아였을 뿐이다. 다른 학원이 쉬는 토요일에 ‘특별 시청각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한 그는 아이들이 강시처럼 콩콩 뛰어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곤 했다. 중국어 학원도 아니었
글: 김정원 │
2013-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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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의 피카추]
[김정원의 피카추] 영화보다 얼굴
평일 저녁, 어스름을 틈타 슬리퍼를 끌고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집 앞 극장에 갔다. 극장은 한산했지만 그래도 부끄러워서 광고가 시작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몰래 들어가려는데, 어디선가 한명씩 여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30대에서 50대를 망라하는 우리의 목적지는 하나, 김수현이 나오는 <은밀하게 위대하게> 상영관이었다. 우리는 서로 외면했지만
글: 김정원 │
2013-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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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의 피카추]
[김정원의 피카추] 으악 몬스터다
<극장판 포켓몬스터: 뮤츠의 역습> 시사회장에 들어간 기자들은 겁에 질렸다. 꼬마들 수백명(…은 아니었겠지만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이 빽빽 소리를 지르며 극장을 뛰어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정체는 관객 시사단으로, 영화사가 관객 반응을 보겠다며 초대한 전문가 집단이었지만 기자들이 보기에는 그냥 몬스터다. 나는 입구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글: 김정원 │
201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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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의 피카추]
[김정원의 피카추] 자신감 핏!
사소한 사기를 하나 친 적이 있다. 대학에 다니고 있을 때 집 근처 개량한복 가게에서 몇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개량한복이란 꽤 비싼 물건이어서 가게 수입은 대부분 함께 팔던 자질구레한 소품과 언제 들여놓았는지 모를 허름한 티셔츠 등에서 나왔다. 저녁 타임 아르바이트였던 나의 임무는 그 물건들을 오다가다 들른 술 취한 고시생들에게 팔아치우는 것이었다.
글: 김정원 │
201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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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의 피카추]
[김정원의 피카추] 브라보 실버 라이프
70대인 우디 앨런은 말했다. “일흔넷 먹은 영감이 여자한테 수작 거는 걸 누가 보고 싶겠는가(그래서 60대에 수작 걸어 양녀하고 살림 차렸나). 노인들이 나오는 영화는 나한테도 지루해서 만들고 싶지 않다.” 아니,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최소한 한국에서는. 노인들이 나오는 영화는 노인들이 보고 싶어 한다. 손에 손을 잡고 극장으로 놀러가서 마음껏 자식
글: 김정원 │
201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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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의 피카추]
[김정원의 피카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지인이 자기 후배를 소개하며 말했다. “얘 남자친구가 진짜 좋은 회사 다녀요.” “어딘데요?” “아빠 회사.” 세상에서 제일 좋은 회사, 아빠 회사. 나는 슈퍼히어로가 엄청 비싼 슈트들을 때려부수며 돈지랄하는 영화 <아이언맨3>를 보면서 생각했다. 아이언맨은 좋겠구나, 아빠 회사가 있어서. 시골 구석에서 농사 짓다 상경한 슈퍼맨은 투잡을 뛰느라
글: 김정원 │
2013-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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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의 피카추]
[김정원의 피카추] 염불보단 젯밥
내가 로마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키가 크고 피부가 거무스름한 이탈리아 미남… 사기꾼이었다. 공항에서 사냥감을 물색하던 그는 내게 다가와 기차가 끊겼다며 괜히 밖에 나가서 바가지 쓰지 말고 자기 택시를 타라고 말했다. 내일이 노동절이어서 직원들이 일찍 퇴근했다는 것이었다. 아, 이탈리아는 휴일 전날부터 쉬는구나, 좋은 나라구나… 는 개뿔, 하마터면 설득당할
글: 김정원 │
2013-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