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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몰입이라는 이름의 카타르시스, <에이리언2>
영화에 빠져서 현실을 잊는 사람들, 비디오 테이프 10개를 대여해서 밤을 새면서 보는 사람들, 소파에 누워서 케이블TV의 영화를 하염없이 보는 사람들, 대체로 특별히 이야기할 만한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다. 영화는 심심함을 잊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영화에 빠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심심한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조금은 한
2001-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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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나? 광폭미감이야! <졸업>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졸업>을 본 것이 중학교 3학년 때다. 종로 뒷골목에 있던 아카데미 극장에서였다. 그 극장은 재개봉관, 그때 말로 2류 극장이었다. 매표구 위에는 ‘미성년자 입장 불가’가 선명했는데, 아무튼 나는 입장했다. 규율은 늘 위반으로 마무리되니까. 내가 할리우드 영화를 즐기는 건 그것들이 대체로 해피엔딩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2001-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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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지금은, 슬픈 귀를 닫을 때, <닥터 지바고>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면 슬픈 귀가 열린다, 라고 내가 좋아하는 시인 김정환은 자신의 책 첫머리에 썼다. <닥터 지바고>, 라는 영화제목을 떠올리면 나는 내 흑백 사진이 든 앨범의 첫장을 여는 듯하다, 라고 내가 쓴다면 아마도 과장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만큼 내게 다층적인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영화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닥터 지바
2001-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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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프랑스 영화처럼, <남과 여>
“… 가을날 비올롱의 긴 흐느낌 소리 스며들어, 마음 설레이고 쓸쓸하여라….” 까까머리 중학교 시절, 시를 좋아했는데 어느 날 세계의 명시를 펼치다가 울컥 했던 베를렌의 ‘가을의 노래’라는 시의 앞부분이다. 비올롱이 뭔지는 몰랐어도 가을날과 긴 흐느낌이란 단어가 가슴을 휑하게 할 만큼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울컥 했다. 나중에 비올롱이 바이올린의 불어식
2001-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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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분홍색 공짜 극장표 2장, <아름다운 시절>
1998년 어느날 시내 한 극장에서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영화를 봤다. 내용 중 시골 천막학교에서 수업을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단발 머리를 한 여자 아이가 칠판에 적힌 산수 문제를 못 풀어 꿇어 앉아 벌받는 장면이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자 누군가 그 여자아이가 지저분한 거 하며, 띨빵한 거, 또 얼굴 작은 것 등이 영락없이
2001-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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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비겁한 남자들만 봐라, <스네이크 아이>
화면 밝아지면. 안락한 중산층의 단란한 가족의 저녁 식사시간. 부인은 맛없는 자신의 요리를 너무도 맛있게 먹어주는 남편을 바라보며 감동된 듯, 행복에 겨운 눈빛으로 말한다. “당신은 신사예요.” 부인의 칭찬에 보답을 하려는 듯 격렬한 피스톤 운동의 호흡을 멈추며, 아내의 젖가슴에 머리를 박는 남편. 그의 뒤통수 옆으로 희열에 찬 아내의 행복한 만족스런
2001-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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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여소군 동지! 우린 어떡해?, <첨밀밀>
1986년부터 96년까지 10년 동안, 두 남녀의 우연한 만남과 필연적 사랑을 그려가는 영화 <첨밀밀>의 시간은, 중국 본토에서는 등소평의 이른바 `흑묘 백묘론'이 부활해 판을 친 때이고, 홍콩은 본토 반환을 1년 앞둔 시점이다. 공산주의의 대해를 넘어 자본주의의 섬을 선택한 남녀의 연애담이랄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점은
2001-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