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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2]
[기획] 그 많은 작품은 왜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할까, <메이드 인 코리아>와 1970년대에 중독된 콘텐츠 진단
몇년 사이 1970년대를 다룬 영화와 시리즈가 쏟아지고 있다. 많은 창작자들이 1970년대에 특별히 집중하는 까닭은, 그 시기에 정치적으로 가장 어두웠고 드라마틱한 일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1971년에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내려져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해졌고, 장발과 미니스커트 등 청년문화는 단속의 대상이 되었다. 이듬해
글: 배동미 │
2026-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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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2]
[특집] 작별 인사, 귀한 줄도 모르고 누리기만 했던 우리가 보내는 애도 - 정성일 평론가·감독이 기억하는 안성기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작별의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저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당황한 나머지 황급하게 쓰고 있는 이 문장들이 예의 바르지 않은 것은 아닌지 그저 조바심이 날 따름입니다. 제가 지금 쓰고 있는 이 말들은 누구를 위해서, 누구를 향해서, 그렇게 누구에게 하는 걸까요. 이미 우리 곁에 없는 분을 위한 말. 그러
글: 정성일 │
202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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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2]
[인터뷰] 배우이자 동료 영화인, 그리고 형이었던 - <꼬방동네 사람들>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기쁜 우리 젊은 날> 배창호 감독이 말하는 안성기 배우
안성기 배우는 영정 사진마저 포근했다. 눈을 따뜻하게 맞춰오며 입꼬리를 부드럽게 올려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이 사진은 안성기 배우가 배창호 감독과 함께한 9번째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의 스틸로, 포스터 제작을 위해 찍은 것이다. “아내인 오소영 여사가 그 사진을 떠올렸던 모양이에요. 구본창 작가에게 부탁해서
글: 배동미 │
202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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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2]
[특집] 낮달도 함께 - 고 안성기 배우 명동성당 추모 미사와 영결식 현장
2026년 1월9일 이른 아침, 서울 중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는 배우 안성기의 추모 미사와 영결식이 진행되었다. 세례명 사도 요한의 이름으로 영면에 든 그를 배웅하기 위해 명동대성당에는 유가족, 영화·예술계 인사와 관계자 600여명이 참석했다. 우직하게 한국영화를 지켜온 그의 빈자리를 슬퍼하는 이들은 그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며 기도의 목소리를
글: 이자연 │
사진: 백종헌 │
202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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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2]
[특집] 국민배우와 함께한 70년 - 사진과 함께 돌아보는 배우 안성기의 타임라인
안성기의 데뷔 연도는 1957년이다. 그해에 나온 영화로는 시드니 루멧의 <12명의 성난 사람들>, 구로사와 아키라의 <거미집의 성>, 잉마르 베리만의 <제7의 봉인>등이 있다. 그만큼 안성기는 오랜 기간 관객의 곁에서 소년이자 청년으로, 아들이자 아버지로, 거지이자 대통령으로 함께했다. 한국영상자료원과 <씨네21>
글: 정재현 │
사진: 씨네21 사진팀 │
202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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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2]
[특집] 한 시대를 떠나보내며 - 70년의 연기 생애, 170편이 훌쩍 넘는 필모그래피 너머 배우 안성기가 특별했던 이유
배우 안성기를 수식할 때 종종 끌려나오는 말이 있다. 그가 무채색의 배우라는 묘사다. 대개 배우를 도화지에 비유하면서 어느 색이든 타고난 것처럼 소화한다고 말할 때의 그 무채색이기도 하지만, 특유의 과시 없는 점잖음을 일컫는 수사였다. 혹은 그의 미소에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약간의 고독을 향한 알아차림이기도 했다. 임권택, 배창호, 이장호 감독을 비롯해
글: 김소미 │
202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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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2]
[특집] 안성기, 한국영화의 시간 - 묵묵하게 유일했던 배우 안성기의 70년을 돌아보다
2026년 1월5일 오전, 안성기 배우가 우리 곁을 떠났다. 그를 애도하는 시간은 한국영화가 통과한 계절들을 함께 기억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영화의 상징적 얼굴이자 성실한 직업인, 그리고 대중의 친절한 스타로 이바지한 배우의 궤적을 특집기사로 옮긴다. <기쁜 우리 젊은 날> 촬영 당시의 모습(사진작가 구본창)을 영정 사진으로 택한 유족의 뜻
글: 김소미 │
사진: 씨네21 사진팀 │
2026-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