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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애프터썬’, 액체적 슬픔
어른이 된 소피가 스크린에 불쑥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영화는 넘실대는 기억의 주인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애프터썬>은 기억에 대한 메타포로 가득 차 있지만 회상을 드러내는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식인 플래시백의 관습적 표기만큼은 숨긴다. 물론 곳곳에 힌트가 산재해 있다. 영화는 서사의 주도적 인물이 11살 소피(프랭키 코리오)이며, 또
글: 김예솔비 │
202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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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더 글로리’와 ‘사랑의 이해’가 그리는 격차 사회의 상처
한국의 복수극과 로맨스에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서사의 주요 동력이 대개는 불평등한 계급 관계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가장 사랑받는 복수극 유형은 가진 것 없는 약자가 부패한 거대 자본 권력을 응징하는 이야기이고, 제일 흔한 로맨스 서사는 가난한 여성이 부유한 남성과의 연애로 신분 상승을 실현하는 신데렐라 이야기다. 요컨대 두 장르에는 사회적 약자의 계
글: 김선영 │
2023-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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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유령’, 한국영화의 밀실
작정하고 오해하려 들지 않는 한, <유령>이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말은 농담으로 넘겨들을 일이다. 몇몇 실증적 역사의 지표들, 조선총독부 건물, 남산의 신사, 황군 군복과 일본어, 영화가 배경으로 삼은 1933년과 비슷한 시기에 (하지만 정확하게는 1932년에) 조선에서 개봉했던, <상하이 익스프레스>를 홍보하는 영화관의 대형 간판
글: 소은성 │
2023-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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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정이’, 너무 오래된 퍼즐
일단 영화는 도입부부터 실수를 저지른다. 설정 자막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설정 자막이나 내레이션 자체가 절대악인 건 아니다. 하지만 여기엔 최소한의 문장으로 의미 있는 정보를 전달하면서 관객을 새롭고 낯선 곳에 던질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오리지널 <스타워즈> 3부작의 도입부 자막은 얼마나 효과적인가. 하지만 그 설정이 지루하고 진부하
글: 듀나 │
202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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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교섭’, 실패의 윤리
결국 성공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두고 실패를 운운하는 게 의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인질 두명의 목숨이 희생되긴 했지만 <교섭>은 우여곡절 끝에 나머지 21명을 구출한 성공 이야기 아닌가. 국정원 요원 대식(현빈)만 본다면 영화는 이제껏 봐온 유사 영화의 공식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교섭에 준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중요 인물이 한때 실패한
글: 김성찬 │
202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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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3000년의 기다림’, 홈통의 시간
<3000년의 기다림>은 이야기의 매혹에 대해 떠드는 적당한 범작으로 취급받다 잊히고 있는 것 같다. 내게는 이런 평가를 움직일 만한 힘도, 의욕도 없다. 다만 이상하게도 영화를 본 뒤부터 자꾸만 떠오르는 장면이 있어 그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호흡하듯 이야기하는 정령의 마음으로. 그 장면은 최고의 장면 뒤에 나온다. 지니(이드리스 엘바)의
글: 홍수정 │
202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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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화이트 노이즈’, 비극이지만 희극에 가까운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일까? 영화를 보고서 그간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고수하던 노아 바움백 감독이 돈 드릴로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이유가 궁금했다. 팬데믹을 통과하면서, 건강을 위협하는 재난을 배경으로 하고 공황에 빠진 군중의 좌충우돌을 담은 원작이 떠올랐을 수 있다. 또 유사한 시기 발달한 인터넷 기술에 따른 소셜 미디어의 확장과 함께 극단적인 우경화와
글: 김성찬 │
2023-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