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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클래식]
이장호 [37] - 한국영화가 담지 못하는 현실, <바람불어 좋은날>
농촌 출신의 세 청년이 무작정 상경했다.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다가 마침내 자리잡은 곳은 서울 변두리, 새로운 개발 지역. 중국음식점, 여관, 이발소에서, 기술이랄 것도 없는 하찮은 일거리로 삶을 유지해야 하는 세 청년은 각기 고향은 다르지만 우연히 객지에서 만나 동병상련의 우정을 나눈다. 그들이 공통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은 농촌에서 태어나 농촌에서 자
1999-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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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클래식]
이장호 [38] - 순자는 부르지 못한다, <바람 불어 좋은 날>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의 각색은 시인이자 소설가인 송기원씨가 결국 완성했다. 그는 쫓기는 사람처럼 부지런히 대학노트에 시나리오를 썼다. 어느 날 예고없이 돌연 염곡동에 있던 내 집에 나타나 훌쩍 그 대학노트를 던져놓고는 사라졌다. 그리고 곧 그가 수사기관을 피해 도망다닌다는 소식이 간접적으로 들려왔다. 그는 각색에 자기 이름을 사용하지
2000-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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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클래식]
이장호 [39] - 이장호 사단이 형성되다, <바람불어 좋은 날>
영화 <바람불어 좋은 날>은 내 주변에 새로운 영화 패거리들을 끌어 모으는 또 하나의 좋은 바람잡이가 되었다.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명보극장엔 의욕에 찬 젊은이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는데 조감독이었던 배창호와 신승수는 물론 당연했고 재야 운동권의 장선우(본명 장만철)가 <바람불어 좋은 날>을 보고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결심으로 나를
2000-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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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클래식]
이장호 [40] - <어둠의 자식들>과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광화문에 국제극장이라는 우리 영화 역사에 꽤 중요한 영화관이 있었다.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해 영화인들이 광화문에서 집회를 할 때 자주 사용했던 감리회관 앞 넒은 공간이 바로 국제극장 앞이어서 아직도 영화인과 인연을 맺고 있다. 이 극장은 당시에 동아흥행이라는 영화사가 관리하고 있었는데 소유주가 재일동포였다. 지금 낙원동의 허리우드극
2000-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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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클래식]
이장호 [41] - 나의 신인중독증, <어둠의 자식들>
영화에서 캐스팅이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별들의 고향>도 그랬고, <어제 내린 비>도 그랬고 <너 또한 별이 되어> <그래 그래 오늘은 안녕> <바람 불어 좋은 날>, 그리고 <어둠의 자식들>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럴 때마다 현실 도피처럼
2000-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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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클래식]
이장호 [42] - 꿈에 그리던 대작 영화, <어우동>
중도시각장애자 안요한 목사의 이야기를 다룬 이청준의 실명소설 <낮은 데로 임하소서>를 영화로 만들자는 생각은 화천공사의 박종찬 사장이 먼저 해냈다. 나는 허병섭 목사의 달동네 교회를 다니긴 했으나 아직 예수에 대해 잘 모르고 있을 때였다. 그러면서도 일요일이면 교회를 두 군데나 나가기 시작했다. 하월곡동의 돌산에 있는 동월교회는 가난한 주민들과
200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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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클래식]
이장호 [43] - 아, 끔직한 대작영화여, <어우동>
<어우동>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만큼 김원두 사장의 간섭 또한 지나쳤다. 각색에서 특히 심했는데 많이 다투기도 했지만 우선은 그가 원하는 대로 끌려갔다. 그 대신 나는 과거의 사극과 달리 근래에 들어와 복식사 연구가 활발해진 만큼 소도구와 의상에 대해선 새로운 고증을 하고 싶었다. 전통복식 연구가인 석주선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 단국대학교
2000-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