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은 창간 첫해인 1995년부터 ‘<씨네21> 영화상’을 뽑았다. 저널리즘이 전통적으로 한해를 마감하는 의미 있는 방식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98년 ‘올해의 영화, 올해의 영화인’으로 개편되기 이전부터 시작해왔으니 사실상 창간과 함께 매해 베스트영화를 선정해온 셈이다. 그중 95년과 96년 두해 동안의 선정은 평론가와 기자로 대표되는 전문가 집단이 아닌 정기독자들에게 선택을 맡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1회 영화상 선정의 변을 빌리자면 “<씨네21> 정기독자들이야말로 우리 영화의 한해 수확에 대한 정확하고도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집단이라는 믿음”에 근거를 둔 방식이었다.
1995년 첫 번째 <씨네21> 영화상의 주인공은 박광수 감독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었다. 61.8%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2위 이민용 감독의 <개 같은 날의 오후>는 9.1% 득표) 이 영화는 단지 영화에 그치지 않고 사회•문화적인 사건으로 번져가며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 지금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획기적이었던 국민모금 등의 제작과정은 ‘죽은 전태일이 일으킨 작은 혁명’으로 불릴 만하다. 박광수 감독, 배우 홍경인, 문성근 등은 물론 스틸과 홍보, 심지어 경리까지, ‘1995년 올해의 영화’를 일궈낸 스탭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짧게라도 담아낸 구성만 봐도 이 영화를 향한 애정과 진심이 느껴진다. 당시 박광수 감독에게 영화에 젊은 층이 몰린 이유에 대해 묻자 “요즘 젊은 세대들은 시각적인 것에 훈련이 잘되어 있어 새로운 영화에 금방 반응한다”고 답했다. 지금에 와서 보니 새삼 흥미로운 지적이다.
1996년 제2회 <씨네21> 영화상의 주인공은 <은행나무 침대>였다. 66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과 작품성을 동시에 성취한 이 영화에 독자들은 흔쾌히 손을 들어주었다. 강제규 감독은 “몇몇 전문가가 아닌 관객이 준 상이라 아주 기분이 좋다. 관객에게 소감을 물을 기회가 드물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19.8%의 지지를 얻어 2위를 차지했고, 장선우 감독의 <꽃잎>이 17%의 투표율로 그 뒤를 이었다.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가 4위, 임권택 감독의 <축제>가 5위에 올랐다. 1996년 올해의 감독에 뽑힌 임권택 감독은 다소 아쉬웠던 흥행에 대해 묻자 “그렇다고 유행을 따라서 영화를 만들 수는 없고, 영화는 내 나이가 배긴 만큼 나온다”는 현답을 들려줬다.
1997년 제3회 <씨네21> 영화상부터는 전문성을 더하고자 선정방식을 변경해 지금처럼 <씨네21> 필진이 선정위원을 맡았다. 그 결과 1997년 올해의 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에 돌아갔다. 흥행 성적은 2위를 차지한 <접속>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고른 부문에서 지지를 얻으며 이뤄낸 결과였다. “형식, 주제, 기획의 삼위일체로 한국영화의 고질병인 불완전성, 상업적 대중추수주의 등을 극복했다”(이용관)는 논평에 귀기울일 만하다. 이후 1998년부터는 지금의 방식인 ‘올해의 영화, 올해의 영화인’ 코너로 자리잡았지만 3회까지의 <씨네21> 영화상은 한국영화의 한해를 정리하고 독자와 일반 관객까지 포용하며 유의미한 기록을 남겼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씨네21>이 한국영화와 함께 성장해온 키재기판 같다고 할까. 그 흔적 속에서 영화를 향한 애정과 존경을 발견할 때마다 일말의 책임감을 되새겨본다.
1998
1위 <아름다운 시절> 2위 <강원도의 힘> 3위 <8월의 크리스마스> 4위 <여고괴담> 5위 <조용한 가족>
1998년 “최고의 영화로 선정된 <아름다운 시절>의 성공담은 예술로서의 영화가 오늘날 얼마나 살아남기 힘든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광모 감독 본인마저 어차피 장사가 되지 않을 것이라 말했을 만큼 작가주의영화는 상업적 실패를 전제로 하는 시기였다(그 점은 지금도 그리 개선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영화적 영토를 확장하길 바라는 이들이 있고, 그들은 작가영화가 끈질기게 살아남기를 기원하며 <아름다운 시절>에 박수와 찬사를 보냈다. 2위에 오른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도 비슷한 이유로 지지가 이어졌다. 데뷔작에 이어 일관된 스타일과 단단한 세계를 선보인 ‘작가’에게 평단은 “나는 홍상수를 믿는다. 명백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작가임이 분명하다”(이상용)며 애정고백을 시작했다.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는 흥행과 비평 양쪽을 만족시킨 드문 경우다. 서울관객 44만명 동원과 함께 51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선정되었다. 일부 학교에서 관람 금지령이 내릴 만큼 신드롬을 일으킨 박기형 감독의 <여고괴담>이 4위, 김지운 감독의 기발한 데뷔작 <조용한 가족>이 “관성으로 굳어진 한국영화계에 장르적 상상력으로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증명한 이야기꾼”(김영진)이란 평과 함께 5위에 뽑혔다.
1998년의 감독 <아름다운 시절> 이광모 (감독, 영화사 대표, 교수 세 역할을 어떻게 해내는지에 대해 묻자) “상황이 개선될 때까지 세 가지를 다 할 수밖에 없다. 바라는 게 있다면 작품 고민만 하고 영화만 만들면 좋겠다.” 남자배우 <8월의 크리스마스> <쉬리> 한석규 여자배우 <8월의 크리스마스> <미술관 옆 동물원> 심은하
1999
1위 <인정사정 볼 것 없다> 2위 <해피엔드> 3위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4위 <간첩 리철진> 5위 <태양은 없다>
제작편수 50편, 관객점유율 36.7%. 흥행 면에서는 <쉬리>의 폭발력에 힘입은 한국영화 빅뱅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작품성 측면에서는 아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 와중에도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영화가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다. “스타일을 밀어붙인 치열함”(이상용)으로 갈채를 받은 작품이다. 흥행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마저 깨고 이명세 감독이 암표를 사서 영화를 관람했다는 에피소드까지 남겼다. “차분한 치정극이자 피투성이 가족영화”라는 <해피엔드>에 대한 지지도 이어졌다. “스타일 유행에서 벗어나 영화의 냉철함을 보여준 용기. 그 가상함”(김의찬)이란 평가처럼 기존의 치정극과는 온도도 결말도 달리하는 영화였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는 두 젊은 신인감독이 단편 시절의 문제의식과 작업 시스템을 심화, 확장한 수작으로 주목받았다. 마찬가지로 기존 공포영화의 공식을 답습하지 않는 새로운 목소리를 들려줬다는 평이다. 장진 감독의 <간첩 리철진>은 한국 코미디영화의 새 영역을 열었다는 지지가 있었다. 모두 기존 장르를 반복하지 않고 감독의 개성을 녹여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김성수 감독의 <태양은 없다>는 평단에서는 의견이 갈렸지만 관객의 높은 지지와 더불어 작가적 균형감을 갖췄다는 일부 지지를 이끌어냈다.
1999년의 감독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명세 “특별히 다르게 찍은 영화도 아니거니와 어떤 점이 특별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얘기하는 ‘내 식으로 영화찍기’에 대한 격려 차원이 아닐까.” 남자배우 <해피엔드> 최민식 여자배우 <해피엔드> 전도연
2000
1위 <박하사탕> 2위 <오! 수정> 3위 <반칙왕> 4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5위 <공동경비구역 JSA> 5위 <춘향뎐>
“내게 최고라는 느낌을 준 영화는 <박하사탕>뿐이었다.”(박평식) 2000년 한국영화 1위는 이 한마디면 충분하다. 2000년은 99년 <쉬리>의 흥행을 이어받은 양적인 성장은 물론 질적으로도 괄목할 만한 영화들이 쏟아진 한해였다. 80년대 리얼리즘의 유산을 면면히 이어받을 영화로 평가된 <박하사탕>은 “문학과 영화와 역사, 이 세변의 꼭짓점이 이뤄낸 팽팽한 긴장감”(정지연)으로 스타배우가 없음에도(설경구, 문소리라는 스타를 배출하며) 서울관객 30만명을 넘기며 장기 흥행하는 이변을 낳았다. <카이에 뒤 시네마> 편집장 샤를 테송으로부터 “판도라 상자를 열어보는 것처럼 반복된 장면을 통해 인간의 복합성과 의식의 복합성이 영화라는 매체에 묻어나온다”고 극찬받은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이 2위, 서울에서만 81만 관객을 동원한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이 3위로 선정됐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된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21세기 독립영화의 모범사례”로 꼽히며 4위에 기록됐다. 박찬욱 감독을 일약 흥행감독의 반열에 올린 <공동경비구역 JSA>와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5위였다. 그 밖에 배창호 감독의 <정>,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 김기덕 감독의 <섬>,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가 근소한 차로 이름을 올렸다.
2000년의 감독 <박하사탕> 이창동 “새 천년 첫 순간 보여진 <박하사탕>을 통해 나는 ‘서로 수줍어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던진 것 같다.” 남자배우 <반칙왕> 송강호, <박하사탕> 설경구 여자배우 <주노명 베이커리> <물고기자리> 이미연
2001
1위 <소름> 2위 <고양이를 부탁해> 3위 <봄날은 간다> 4위 <파이란> 5위 <수취인불명> 5위 <와이키키 브라더스>
2001년은 신인감독의 약진이 두드러진 한해였다. 1위에 오른 <소름>을 연출한 윤종찬 감독과 2위의 <고양이를 부탁해> 정재은 감독 둘 다 놀라운 데뷔작으로 평단의 지지를 받았다. 심리스릴러, 공포, 필름누아르 등 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평을 받은 <소름>은 “시간이 갈수록 그 평가가 높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영화”(심영섭)라던 당시의 예측을 끝내 사실로 만들었다. <고양이를 부탁해> 역시 “스무살의 공기를 만지게 해주는” 기념할 만한 데뷔작이었다. 3위에 오른 영화는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였다. “멜로의 지평 확장”이란 수식어에 어울리게 아직도 많은 이들의 인생 영화로 기억되고 있다. 송해성 감독의 <파이란>은 “<길>의 앤서니 퀸이 백치 젤소미나의 죽음 앞에 오열을 터트릴 때만큼 아픈 비애감을 피할 수 없다”(허문영)는 평과 함께 다음 순위를 차지했다. 5위는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 “노래 한 소절, 장면 하나에 애절함이 배어나오는”(홍성남) 이 영화는 감히 함부로 현실의 아픔 운운하는 자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불명>은 항상 논쟁을 몰고 왔던 김기덕 영화 중 드물게 고른 호평을 받으며 공동 5위에 이름을 올렸다.
2001년의 감독 <봄날은 간다> 허진호 “작은 이야기인데, 평가해줘서 고맙다.” 평소처런 나직한 반응만을 보였던 허진호 감독. 남자배우 <파이란> 최민식 여자배우 <봄날은 간다> 이영애
2002
1위 <생활의 발견> 2위 <오아시스> 3위 <복수는 나의 것> 4위 <죽어도 좋아!> 5위 <취화선>
믿고 보는 거장들의 신작들이 한해를 풍성하게 장식했다. 무엇보다 권위나 관습에 기대지 않고 새로운 지점으로 과감히 나아간다는 점이 놀랍다. 이제는 ‘홍상수식’이라는 보통명사가 되어버린 특유의 스타일은 “멈춰 있는 듯하면서도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홍상수 감독의 ‘새’ 영화” (홍성남)를 통해 이후로도 멈추지 않을 긴 여행을 시작했다.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는 “이기적인 휴머니즘”(정성일)이란 비판적인 견해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그조차 이 영화의 풍성함을 되새기는 소중한 일면이었다.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치열하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증거들이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심지어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도 마찬가지였다. 하드보일드를 표방한 <복수는 나의 것>은 “오해되거나 무시될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이조차 신경 쓰지 않겠다는 태도로 완성한, 올해 꼭 봐야 할 걸작 가운데 하나”(유운성)란 극찬을 받았다. 제 55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취화선>은 국내에선 오히려 거장의 작품이란 이유로 저평가됐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창동 감독은 이를 두고 “미학적으로나 영화문법으로 굉장히 탁월한 점이 있지만 한국 관객에겐 매우 익숙한 것으로 타성화되어 무덤덤한 게 아닌지”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2002년의 감독 <오아시스> 이창동 “생각했던 것보다 관객이 더 쉽게 받아들여 예상 밖이었다. 감동받았다, 좋은 영화다, 그런 분위기가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선 덜 철저했나, 반성도 좀 되고….” 남자배우 <공공의 적> <오아시스> 설경구 여자배우 <오아시스> 문소리
2003
1위 <지구를 지켜라!> 2위 <살인의 추억> 3위 <질투는 나의 힘> 4위 <바람난 가족> 5위 <올드보이>
새로운 영화의 등장이 우리를 자극한 한해였다. 아마도 한국영화 최고의 데뷔작으로 기록될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는 여러 기념비적인 영화들을 제치고 평단의 관심과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한국영화의 한계를 돌파하는 비약의 순간”으로 기억되는 이 영화는 “상상력의 규모 면에서 기존 한국영화들을 압도”해버렸다. 연출, 연기, 미술, 음악, 촬영 어느 하나 처지는 구석이 없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2위로 만들 만큼 말이다. <살인의 추억>은 그 탁월한 조화에 평론가들이 박수를 쳤고 관객의 열광에 힘입어 2003년 최고 흥행작의 반열에 올랐다. “출연하는 모든 배우의 연기가 이처럼 좋은 영화를 또 만날 수 있을까.”(이동진) 3위는 박찬옥 감독의 <질투는 나의 힘>이었다. “70년대 <바보들의 행진>, 80년대 <고래사냥>, 90년대 <비트>가 차지했던 그 자리를 대신하는” 이 영화는 청춘영화의 관습에 기대지 않은 채 고통스럽고 쓸쓸한 젊은 날을 정밀하게 그려냈다. “바람난 아내나 남편의 이야기가 더이상 쿨하지 않은 반면, 가족이 집단적으로 바람이 날 때 그것은 영화가 된다”는 평을 받은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은 4위였다. 깐느 박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5위였으니 2003년의 한국영화가 얼마나 풍성하고 새로웠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2003년의 감독 <지구를 지켜라!> 장준환 (아쉬운 흥행 성적에 대해) “내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 고민도 했다. 그래도 이 영화를 사랑해준 적지만 소중한 관객 덕분에 많은 것을 얻었다.” 남자배우 <살인의 추억> 송강호 여자배우 <바람난 가족> 문소리
2004
1위 <송환> 2위 <빈 집> 3위 <귀여워> 4위 <마이 제너레이션> 5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작지만 기억되어야 할 영화들로 장식된 한해였다. 온라인 독자들이 뽑은 1위 영화 <범죄의 재구성>, 2위 <태극기 휘날리며>와 비교하면 차이는 확연하다. 평단과 기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영화는 김동원 감독의 <송환>이었다. “어디에 어떤 내용의 인터뷰를 확인하는 데만 반년이 걸린” 이 역작을 두고 박찬욱 감독은 “보는 사람의 감정을 쥐었다 놨다 하면서 감정과 이성을 한꺼번에 움직이는 영화”라며 존경의 박수를 보냈다. 한편 항상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김기덕 영화는 2004년 <빈 집>을 통해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적지 않은 평자들이 저예산 제작 방식의 효용성을 입증하고 내밀한 영화적 구성방식에서도 한발 더 나아간 것에 대해 지지를 보냈다. 장선우 감독의 <귀여워>는 도발적인 면모와 여전한 창작의 생기에 호평을 받아 3위를 차지했다. 디지털 장편영화의 가능성을 입증한 노동석 감독의 <마이 제너레이션>은 한국영화가 새로운 물결 앞에서도 자기만의 화술을 가질 수 있음을 입증하며 주목받았다. 항상 상찬 일색이던 홍상수 감독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처음으로 찬반 담론을 맞이하며 5위에 머물렀다.
2004년의 감독 <송환> 김동원 (차기작을 묻는 질문에) “해야 할 것 같고, 꼭 하고 싶다. 근데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송환2>는 여전히 제작 중이다.) 남자배우 <범죄의 재구성> 백윤식 여자배우 <인어공주> 전도연
2005
1위 <극장전> 2위 <그때 그사람들> 3위 <사랑니> 4위 <용서받지 못한 자> 5위 <혈의 누>
2005년은 두 상수가 우리를 즐겁게 했다. 홍상수 영화가 매너리즘에 빠져들고 있는 게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즈음 <극장전>이 나왔다. 그리고 이견의 여지없이 2005년의 영화 1위로 선정됐다. “무시무시한 영화다. 아무리 우스꽝스럽다 할지라도 이 영화는 죽음을 말하고, 홍상수는 죽음 대신 존재를 선택한다.”(정성일) 말하자면 이 영화는 영화미학이 가볼 수 있는 끝점까지 밀고 간 진귀한 사례다. 2005년 가장 독한 고난을 치른 영화는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이었다. “야만의 심장을 꿰뚫은 야수의 심정! 풍자를 넘어 증언”(박평식), “아주 화끈하게 정치적이고 아주 화끈하게 대중적” (남재일)이란 평가처럼 근대사에 대한 영화적 화답인 동시에 대중적 재미도 확보했다. 한편 <사랑니>는 조용하게 완성됐지만 일부에서 크게 환호받은 영화다. 흔한 연상연하 커플의 연애담이 아니라 “삶의 복잡한 감흥을 노래하는 인생예찬”(김혜리)으로 극찬을 이끌어냈다. 4위의 <용서받지 못한 자>는 무서운 신인감독의 등장을 알린 작품이다. 만약 <씨네21> 설문조사에 ‘올해의 신인감독’란이 있었다면 그 자리는 윤종빈의 이름이 올랐을 것이다(2006년에 신설됐다). 5위의 <혈의 누>는 장르적 요소를 역사 안에 어떻게 녹여낼 수 있는지를 선보인 리트머스지 같은 작품이었다.
2005년의 감독 <극장전> 홍상수 (처음으로 올해의 감독에 뽑히고 난 뒤) “이상하다… 뜻밖이고… 너무 고맙다… 뭐라 그래야 하나. (웃음)… 배우는 누가 됐나?” 남자배우 <너는 내 운명> 황정민 여자배우 <너는 내 운명> 전도연
2006
1위 <해변의 여인> 2위 <가족의 탄생> 3위 <괴물> 4위 <망종> 5위 <시간>
“<극장전>은 동시대 영화미학이 해낼 수 있는 어떤 최선인 듯했는데, <해변의 여인>은 그 예상을 깨고 또 한발 나갔다.” 당시 선정의 변을 보면 놀람과 경탄 사이 또 한번 홍상수 영화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던 고민이 엿보인다. 쉼 없이 변화, 확장하는 동시대의 위대한 작가 앞에 다시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놀랍다’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영화는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이었다. 2006년 가장 결이 고운 영화라는 만장일치의 찬사 아래 “한국영화사에 새로운 가족을 탄생”(이현경)시킨 김태용 감독에 대한 기대감이 이어졌다. 4위에 오른 장률의 <망종>, 5위 김기덕의 <시간>처럼 언제나 주목의 대상인 감독들은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며 우리를 만족시켰다. 이처럼 좋은 영화가 풍성한 한해였지만 누가 뭐라 해도 2006년의 영화는 봉준호의 <괴물>이었다. 비평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성공적으로 잡은 이 놀라운 기획영화는 대중성과 작품성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지 입증한 중요한 사례로 기억된다. “풍성하고 날카롭고 영리하다. 괴력!”(박평식), “밉지 않은 유머와 위트, 소수적인 것에 대한 깊은 애정, 유연하지만 깊이 있는 정치적 감수성과 세계관” (변성찬)이란 평가 그대로 한국식, 아니 봉준호식의 상상력으로 장르영화의 지평을 넓혔다.
2006년의 감독 <괴물> 봉준호 (차기작에 관한 질문에 답하길) “… 그냥 정하면 보세요. (웃음) 거창하게 말한다면 미학적인 면에만 집중하는 영화가 될 거예요.” (그 영화가 바로 <마더>였다.) 남자배우 <괴물> 송강호 여자배우 <타짜> 김혜수
2007
1위 <밀양> 2위 <천년학> 3위 <경계> 3위 <우리학교> 5위 <숨>
“모두가 쉽게 반응할 영화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많이 좋아해줬고, 그게 고맙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영화를 받아들이는 관객의 감각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밀양>으로 돌아온 이창동 감독의 소감을 들으면 기시감이 든다. 그의 고민은 2000년이나 2007년이나 한결같다. 관객은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다행스럽게도 덕분에 우리는 “영화라는 매체가 도달할 수 있는 깊이”(이동진)를 보여주는 <밀양>을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이 100번째 영화라는 기념비적인 지점에 도달한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보다 이 영화가 앞에 올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임권택 영화의 우아함이 이룬 절경”(남동철)을 넘어 세 번째로 많은 지지를 받은 영화는 장률 감독의 <경계>였다. 2006년 베스트 4위 안에 든 “<망종>에 이어 여전히, 아니 더 굳건하게 형식의 윤리를 사유하게 하는 영화”(남다은)다. 같은 3위에 오른 김명준 감독의 <우리학교>는 독립영화가 대중과 성공적으로 만날 수 있는 지점을 제시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고르고 강력한 지지를 받은 김기덕 감독의 신작 <숨>이 5위를 차지했다. “김기덕 영화의 한 정점”(변성찬)이란 평가는 그의 독창성에 여전한 기대를 갖게 한다.
2007년의 감독 <천년학> 임권택 “기왕에 해온 100편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지요. 내 영화 만들기에 대한 각성이라고나 할까요?”(아쉬운 흥행성적에 대해) 남자배우 <우아한 세계> <밀양> 송강호 여자배우 <밀양> 전도연
2008
1위 <밤과낮> 2위 <멋진 하루> 3위 <추격자> 4위 <나의 친구, 그의 아내> 5위 <중경>
의외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씨네21>이 홍상수의 모든 영화에 열정적인 지지를 보낸 건 아니었다. 부침도 있고 이견도 많았다. 하지만 <밤과낮>만큼은 압도적이라 해도 좋을 부동의 1위였다. <밤과낮>은 “홍상수 영화가 멈춰 있지 않다는 사실을, 게다가 많은 이들이 그걸 알고 지지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작품이라 해도 좋다. “품위 없이 구질거리는 이별을 품위 있게 보듬어 안으려는 영화의 공기가 쓸쓸하고 애처롭고 아름다운”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가 그다음을 이었다. 전도연과 하정우의 역량, 최상호 촬영감독과의 조화가 어우러진 보물창고 같은 영화라는 평이 인상적이다. 단지 한편의 영화, 작가영화 이상의 족적을 남긴 영화도 있었다.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는 “한국영화의 어떤 장르적, 상업적 기준을 제공한 롤모델”로서 “한국형 장르영화의 모범답안을 제시”(김봉석)했다. 장르적 완성도, 기술적 숙련도는 물론 사회학적으로도 흥미로운 텍스트이자 뜨거운 영화로 기억된다. 2008년 리스트에서 “가장 예기치 못한 영화”는 신동일 감독의 <나의 친구, 그의 아내>였다. “80년대 학번 감독들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문득 들어와 깃발을 흔들고 있는” 뚝심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중경>의 장률 감독에 대한 지지도 여전했다.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장률은 우리 마음의 폐허를 돌아보게 한다” (남동철).
2008년 감독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김지운 “이제는 장르에 대한 집착은 웬만큼 해소됐으니 어떤 이야기를 할지 생각해볼 때다. 단단하고 알찬 걸 한번 해보고 싶다.” (그의 차기작은 2010년 <악마를 보았다>였다.) 남자배우 <멋진 하루> 하정우 여자배우 <미쓰 홍당무> 공효진
2009
1위 <마더> 2위 <잘 알지도 못하면서> 3위 <파주> 4위 <박쥐> 5위 <똥파리>
놀라운 건 <마더>가 1위라는 사실이 아니다. 그건 당연하다. 봉준호가 처음으로 1위에 올랐다는 게 놀랍고, 일방적인 찬사가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와 견해를 이끌어낸 영화였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올해 가장 시네마틱한 흥분을 준다”(김영진), “예정된 실패를 향해 전진하는 봉준호 영화의 진수”(장병원), “영화 속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은 곧 매혹임을 알려주는 훌륭한 실례” 등 각기 다른 관점들이 흥미롭다. 반면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홍상수는 자기 틀을 부수고 나아간다”(허문영)는 이 한줄로 요약될 것 같다. 평자들은 “단지 한편의 영화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영화적 차원이 된” 홍상수에게 여전한 지지를 보냈다. 박찬옥 감독의 <파주>는 과대평가와 과소평가된 영화에 동시에 오르내리며 첨예한 반응을 낳았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보고 또 말하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는” <파주>는 2009년 가장 쟁점적인 영화라는 사실만으로도 기억될 만하다. 뒤이어 박찬욱 감독의 <박쥐>는 흡혈영화를 만들고 싶다던 감독의 필사의 도전, 그리고 그 성취에 많은 평자들이 기꺼워했다. “독창적이고 강렬한 걸작. 이제 기다리는 것은 이 영화의 가치를 입증해줄 세월”(이동진)이란 평처럼 지금 와서 다시금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볼 필요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힘은 독립영화에 뿌리를 두고 기술은 충무로식으로 걸어온”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는 5위에 뽑혔다.
2009년의 감독 <마더> 봉준호 “만든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멀리할수록 좋은, 보면 마음이 어두워지고 심란한 영화인데… 살다보니 별일이 다 있네.” (2009의 올해의 감독 선정 제목은 ‘심란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였다.) 남자배우 <박쥐> 송강호 여자배우 <마더> 김혜자
2010
1위 <시> 2위 <옥희의 영화> 3위 <하하하> 4위 <경계도시2> 5위 <부당거래>
<씨네21> 올해의 영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와 <하하하>가 동시에 베스트5에 든 것이다. 아마도 <씨네21>의 홍상수 사랑에 대한 오해(?)는 2010년에 정점을 찍었을 터.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난 14년간 그는 항상 흥미진진했지만 <옥희의 영화>를 내놓은 지금이 가장 흥미진진”(이동진)하기 때문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놓인 두 영화를 따로 떼어 순위를 매기는 것 자체가 난제였던 한해다. “<씨네21>이 홍상수 영화를 사랑하는 것은 좋은 전통이라 믿는다. A부터 Z까지 홍상수만 만들 수 있는 영화. 그리고 이전의 홍상수와 또 다른 홍상수의 영화들”(남동철)이란 평가에서 당시 평자들의 심정을 읽을 수 있다. 그럼에도 1위는 이창동 감독의 <시>에 돌아갔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균열을 감수하면서까지 <시>의 도덕을 버티고 서는 것, 그것이 바로 이창동의 도덕”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때도 지금도, “단단하고, 단호하고, 아프고, 아름다운” 영화다. 홍형숙 감독의 <경계도시2>는 “영화가 담고 있는 문제가 더도 덜도 아닌 동시대적 문제라는 사실을 참혹하게 깨닫게 해줬다”. 아마도 그건 2016년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는 점에서 한층 더 섬뜩하다.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는 평단과 관객의 환호 속에 5위에 올랐다. 2010년을 흥분시킨 “류승완의 위엄이 당당하게 빛나는 영화”(김영진)였다.
2010년의 감독 <하하하> <옥희의 영화> 홍상수 (제작방식에 공감하는 의견을 듣고 고무된 목소리로) “영화에서 돈이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정말 더 노력해야겠다.” 남자배우 <아저씨> 원빈 여자배우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서영희
2011
1위 <북촌방향> 2위 <두만강> 3위 <무산일기> 4위 <파수꾼> 5위 <황해>
이쯤 되면 인정해야겠다. <씨네21>은 홍상수를 사랑한다. <북촌방향>은 당시 3분의 2에 가까운 필진으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다만 이 사랑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 “패턴에 대한 강박과 패턴화로부터 탈주하려는 해체의 에너지가 한몸을 이룬 기묘한 텍스트”(장병원), “언어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진정 ‘영화’라는 세계의 유혹”(남다은) 등 이 영화가 남긴 기이하고 아름다운 감흥이 눈처럼 쌓인 한해였다. 이름이 거론되는 횟수로는 홍상수 감독에 뒤지지 않는 장률 감독의 <두만강>이 그 뒤를 이었다. “장률 영화의 ‘현재까지’의 최고작”(김지미)이라는 말처럼 그의 영화는 언제나 영화적 진실함으로 관객을 뒤흔들고 다음 작업에 기대를 걸게 만든다. 세계영화제를 휩쓸며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거듭난 무서운 신인 박정범 감독의 <무산일기>는 “사실적이고 신랄한 데다 슬픈 정서까지 놓치지 않으며”(이화정) 국내에서도 지지를 받았다. 놀라운 신인감독의 등장을 이야기할 때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도 빼놓을 수 없다. 훌륭한 이야기꾼의 등장이자 2011년 가장 중요한 발견이었다. 반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장렬한 실패의 스펙터클”(김영진)도 있다. 나홍진 감독의 <황해>는 “납득할 수 없는 광기를 공공연하게 드러낸 마지막 한국영화”(주성철)로서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었다. 다만 단점조차 끌어안게 만드는 이 영화의 강렬함만큼은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2011년의 감독 <북촌방향> 홍상수 “<북촌방향>은 매일매일이 다 기억에 남아 있다. 현장에서 때맞춰 눈이 내렸던 것도 그렇고, 그 분위기가 전부 좋았고 재미있었다.” 남자배우 <황해> <완득이> 김윤석 여자배우 <만추> 탕웨이
2012
1위 <다른나라에서> 2위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3위 <남영동1985> 4위 <피에타> 5위 <두 개의 문>
감독의 이름을 앞에 내세울 영화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좋은 의미로는 장르영화 안에서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고, 나쁜 의미로는 감독의 개성을 발휘할 여지가 줄어들고 있음을 방증하는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홍상수의 <다른나라에서>가 2위와 거의 세배에 달하는 표차로, 또 한번 1위를 차지한 것은 여느 해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결과지만 그 의미가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물론 그와 별개로 홍상수가 이자벨 위페르와 함께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었다. 적어도 아직까진 “홍상수만큼 우리의 미감에 기여하고 있는 예술가는 없다”(김혜리). 2012년 대중장르영화로서 첫손에 꼽을 영화는 단연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였다. 갱스터 장르의 창의적인 번안, 힘 있는 캐릭터의 호소력, 당대 한국 사회를 꿰뚫는 단상까지, 한마디로 재미있는데 의미까지 있는 영화였다. 2012년에 두드러지는 또 하나의 특징은 시대상을 비춘 영화들이 각광받았다는 점이다.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1985>, 김일란•홍지유 감독의 <두 개의 문>, 심지어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까지 넓은 의미에서 사회 부조리에 카메라를 비추고 도려내려는 시도들이다. 역사는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란 말을 실감할 수 있었던 한해였다.
2012년의 감독 <남영동1985> 정지영 “<남영동1985>를 할 때가 <남부군> 할 때보다 개인적으로는 더 힘들었다. 하지만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는 데 대해 어떤 자부심 같은 것도 있다.” 남자배우 <광해, 왕이 된 남자> 이병헌 여자배우 <피에타> 조민수
2013
1위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2위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 3위 <우리 선희> 4위 <설국열차> 5위 <풍경>
2010년에 이어 다시 한번 홍상수 감독의 영화 두편이 베스트5 안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꾸준한 작가정신 때문이기도 하지만 홍상수가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며 일종의 지표가 되는 사이 한국영화계는 많이 변했음을 방증한다. 흥행영화들은 많아졌지만 개성이 뚜렷해 보이는 영화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작가들의 이름이 반복되는 2013년의 리스트는 그 결과물이다. “홍상수가 냉소주의자가 아니라 인간을 딱하고 예쁜 존재로 바라보는 작가라는 사실을 어떤 전작보다 분명하게 깨닫게 해주는”(김혜리)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우리 선희>와 거울처럼 마주 서 있는 영화다. “여전히 정력적이고, 여전히 창의적이고, 여전히 급진적인”(장병원) 홍상수 감독의 존재가 소중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오멸 감독의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새로운 영화”(남동철)다. 연기도, 화법도, 제작방식도 새롭다는 점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역사의 상처 속에서 삶의 생생한 아이러니를 껴안은”(김효선) 수작이다. 마침내 찾아온 봉준호 감독의 숙원 같은 프로젝트 <설국열차>는 4위에 올랐다. 평가는 분분했지만 완성 자체가 하나의 중대한 사건으로 인식되었다. 진정한 (이방인) 시네아스트 장률은 <풍경>으로 다시금 이름을 올렸다.
2013년의 감독 <설국열차> 봉준호 “<설국열차>는 벌써 오래전 일 같다. 이제는 많이 잊었고 그리고 빨리 잊어야지.” (당시 봉준호 감독은 <해무> 제작자로 거제도 촬영현장에 머물던 중이었다.) 남자배우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 송강호 여자배우 <우리 선희> 정유미
2014
1위 <자유의 언덕> 2위 <경주> 3위 <한공주> 4위 <끝까지 간다> 5위 <도희야>
홍상수는 적어도 지난 몇년간 한번도 우리의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다. 어쩌면 그게 문제라면 문제다. 굳이 따지면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소품에 가깝다고 해도 무방한 <자유의 언덕>에서조차 홍상수는 홍상수다. “결핍과 실망 안에서 자유로워지는 법을 따뜻하게 조언하는 영화”(김혜리)는 해마다 하향평준화되는 한국영화 안에서 작은 위안을 안긴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장률 감독 역시 우리의 고마운 지표다. <경주>는 “여성과 어린이의 시선으로 그들이 부딪치는 경계와 벽에 대한 질문을 꾸준히 던져온”(변성찬) 장률의 또 다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야기보다, 인물보다, 공간이 좋았다”(송효정)는 평처럼 “죽음과 삶을 관통하는 욕망의 흐름을 고도 경주의 능선과 아우라 안에 탁월하게 포착해낸” 영화에 호평이 이어졌다. 2014년 한국영화 최대의 수확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수진 감독의 <한공주>는 “엄청난 집요함과 밀도”로 한국 사회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정주리 감독의 <도희야>는 여성의 목소리로 여성을 이야기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지지를 받았고, 김성훈 감독의 <끝까지 간다>는 “스릴러 장르가 추구해야 할 모든 쾌감과 서사적 모티브를 살린”(이현경) 순도 높은 상업영화로서 한국 장르영화의 활력을 새삼 증명한 반가운 신호였다.
2014년의 감독 <경주> 장률 “이제야 한국영화 안에 들어오지 않았는가 싶다. 물론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이게 뭔가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웃음)” 남자배우 <자유의 언덕> 가세 료 여자배우 <한공주> <카트> 천우희
2015
1위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2위 <한여름의 판타지아> 3위 <베테랑> 4위 <무뢰한> 5위 <위로공단>
<암살> <베테랑> 등 상업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영화도 있었다. 하지만 <씨네21>의 몫은 작가의 목소리에 좀더 귀기울이는 것이라 믿는다. 2010년 무렵부터 유독 홍상수 영화가 눈에 자주 띄는 건 그가 특별히 나아지거나 도약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이동진)기 때문이다. “이미 아는 것들과 다시 만나 기적처럼 새로운 경험을 하는 여행”(김혜리)은 2015년에도 계속됐다. 장건재 감독의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영화적 여행을 선물했다. “최근 한국영화를 지배하는 분노와 무력, 폭력과 죽음의 과잉된 이미지에 피로를 느낄 때 도착한 드물게 담백하고 청량한 영화”(박소미)다. 2015년의 감독으로 뽑힌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은 하나의 신드롬이자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온 감독의 반가운 화답이다. “액션 키드 류승완이 액션 마스터가 되어 돌아왔”(김성훈)으니 흥행과 평단의 호감은 당연한 결과다. 반가운 귀환으로는 오승욱 감독의 <무뢰한>도 만만치 않다. “요즘 젊은 신인감독들에겐 없는 무언가가 이 투박한 영화 안에 있다.”(우혜경) “2015년 한국영화계에서 이런 영화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작은 기적”(이동진)인 셈이다. 앞으로 주목할 작가 명단에 빠지지 않을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은 5위에 올랐다.
2015년의 감독 <베테랑> 류승완 “비평적으로도 환대받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언제나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두려웠는데 또 한 고비 넘기고 탄력이 붙었다는 게 가장 큰 기쁨이다.” 남자배우 <베테랑> 유아인 여자배우 <무뢰한> 전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