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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라이프 오브 파이>의 결말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3D 안경을 써도 서사가 앞으로 튀어나오지는 않는다. 2차원 영상이 3차원이 되면서 입체감을 갖게 되는 것과 서사의 차원이 늘어나서 이야기가 깊어지는 것 사이에는 필연적인 관계가 없다. 서사의 차원 수는 그것대로 따로 따져봐야 될 사항이며 이 글이 관심을 가져볼 만한 것도 그쪽일 것이다. 예컨대 어떤 영화가 ‘한 소년이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다 구조된 이야기’라고 규정될 때 그것은 1차원의 서사다. 그런데 모든 이야기는 그것을 들려주는 사람에 의해 가공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근거해 이 이야기를 ‘한 소년이 자신의 표류 체험을 사후에 재가공한 이야기’로 다시 규정할 경우 이 서사는 2차원이 된다. 뿐인가. 이야기는 그것을 듣는 사람의 해석에 의해서 비로소 완성된다. 그래서 이 서사가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믿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하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한 것으로 규정되면 이것은 3차원의
[신형철의 스토리-텔링] 어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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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독의 영화노트] <심플 라이프> 쓸모없고 아름다운 것들
[올드독의 영화노트] <심플 라이프> 쓸모없고 아름다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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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나라> かぞくのくに
감독 양영희 / 출연 아라타, 안도 사쿠라, 양익준 / 수입배급 (주)미로비젼 / 개봉예정 3월7일
<가족의 나라>는 재일동포 2세인 양영희 감독의 첫 번째 극영화다. 전작인 다큐멘터리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에 이어 <가족의 나라>도 양영희 감독의 가족사를 토대로 한다. 재일조선인 귀국사업으로 북한에 건너간 성호(아라타)가 25년 만에 일본으로 돌아온다. 뇌종양 치료를 목적으로 한 일본 방문기간은 단지 3개월. 성호와 동생 리에(안도 사쿠라)가 서로의 삶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짧은 시간이다. 게다가 북한 감시원(양익준)은 성호의 주위를 맴돌며 성호와 가족의 생활을 지켜본다. 그리고 예정된 이별의 시간이 다가온다. 지난해 일본에서 개봉한 <가족의 나라>는 <키네마준보>가 선정한 2012년 베스트영화에서 1위로 뽑혔다.
[Coming Soon] 예정된 이별의 시간 <가족의 나라> かぞくのく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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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경찰 마르코(이광수)는 소심하지만 정의감 넘치는 열혈 경찰이다. 첫사랑 룰루(송지효)와 재회한 행복한 시간도 잠시, 평화로운 해변에 애니팡팡월드의 주인 카를로가 찾아온다. 마르코는 해변을 장악하려는 능력자 카를로의 음모를 눈치채지만 카를로의 계략으로 도리어 해변에서 쫓겨난다. 마르코가 없는 틈을 타 파괴로봇으로 시민들을 협박하고 모두를 게임세상에 집어넣는 카를로. 친구들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마르코가 돌아온다.
북유럽은 아동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나름의 성취와 안정된 완성도를 보여왔다. <해양경찰 마르코>는 그 꾸준함의 결과물 중 하나다. 다만 이번에는 북유럽 특유의 정서를 진하게 드러내기보다는 보편타당한 흥행 공식을 따르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덴마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나이스 닌자’를 비롯하여 프랑스 TV채널 <카날플러스>와 키즈엔터테인먼트의 강자 ‘조디악 키즈’까지 제작에 참여한 만큼 규모는 커지고 이야기는 평범해졌다.
우선
소심한 경찰, 영웅이 되다 <해양경찰 마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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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각기동대> <인랑>으로 잘 알려진 오시이 마모루가 주도한 ‘블러드’ 프로젝트는 불가사의한 능력을 가진 소녀 사야 캐릭터를 중심에 놓고 애니메이션, 영화, 소설, 게임 등으로 시리즈를 확장하고자 했던 거대 프로젝트였다. 2000년 프로덕션IG에서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 <블러드+>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고, 그 설정을 클램프가 가져와 <블러드-C>라는 제목으로 TV시리즈로 제작했다. 그리고 극장판 <블러드-C: 더 라스트 다크>는 <블러드-C>의 완결편이자 ‘블러드’ 시리즈를 끝맺는 에피소드다.
밤 9시 이후엔 청소년 통행이 금지된 도쿄 시내. 전철에서 괴물이 나타나 승객을 죽이고 한 소녀를 납치한다. 괴물의 뒤를 쫓아 단칼에 처단한 이는 소녀 사야(미즈키 나나)다. 사야가 구한 소녀는 해커집단 써로트의 멤버인 마나(하시모토 아이)였고, 써로트는 ‘옛것’이라 불리는 이 괴물들을 만들어낸 토우 집
고어애니메이션의 명성 <블러드-C: 더 라스트 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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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라이닝. 구름의 빛나는 부분을 뜻하는 말이다. 아무리 안 좋은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언젠가 좋은 날이 오리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하고 싶을 때 미국인들은 이 단어를 쓴다. 구름의 빛나는 한 줄기 빛을 제목에 품고 있는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다만 그걸 풀어내는 <파이터>의 감독 데이비드 O. 러셀의 방식은, 으레 하는 위로처럼 결코 진부하지 않다.
팻(브래들리 쿠퍼)의 인생에는 먹구름이 잔뜩 꼈다. 그는 정신병원에서 막 퇴원한 참이다. 아내의 불륜 현장을 목격한 충격에 조울증을 앓게 됐기 때문이다. 팻은 아내와의 재결합을 꿈꾸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부부의 집에 초대받은 자리에서 그는 티파니(제니퍼 로렌스)를 만난다. 남편을 잃고 성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그녀는 소원해진 아내와의 사이를 이어주겠다며 팻에게 접근한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
시한폭탄 로맨틱코미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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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링은 고향인 ‘신기별’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호빵맨의 마을을 찾아온다. 신기별의 생명인 신기 에너지가 점점 고갈되어 사람들이 굶주림에 처한 것이다. 우연히 마주한 어린 히어로 크림판다를 슈퍼 영웅으로 오해한 코코링은 그를 고향별로 데려가지만 허탕만 치고 돌아온다. 대신 크림판다는 호빵맨과 잼 아저씨에게 빵 굽는 기술을 배워 사람들을 구하라고 제의한다. 한편 호빵맨에게 쫓겨 신기별까지 날아간 세균맨은 얼마 남지 않은 신기 에너지를 이용해 호빵맨을 물리칠 계획을 세운다.
어려운 이에게 자신의 얼굴을 떼어주는 어린이들의 친구 호빵맨 극장판이 국내 관객을 찾아왔다. 1973년에 탄생하여 벌써 25살이 된 이 유명 슈퍼 히어로는 그간 400편이 넘는 TV시리즈와 24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지만 국내 관객과 만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47분의 다소 짧은 상영시간이지만 이야기의 충실함은 여느 어린이애니메이션보다 밀도가 높다. 여기에 20분가량의 동시상영작 <호빵맨과 숲속
용감한 어린이의 친구 <날아라! 호빵맨 극장판: 구하라! 코코링과 기적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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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여왕(최수민)의 저주로 끝없는 겨울이 계속되는 세상, 눈의 여왕에게 부모와 남동생 카이를 잃은 어린 소녀 겔다(박보영)는 고아원에서 손장갑을 만들며 살아간다. 카이 역시 같은 고아원 보일러실에서 일하며 살아가지만 너무 어릴 때 헤어진 둘은 서로가 가족인지 알아보지 못한다. 한편 눈의 여왕은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마법거울’을 없애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녀는 겔다의 부모가 겔다에게 유품으로 남긴 마법거울을 없애기 위해 자신의 하수인 트롤(이수근)을 고아원으로 보낸다. 하지만 트롤은 거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겔다가 아닌 카이라고 착각해 겔다 대신 카이를 눈의 여왕에게 보낸다. 우연한 계기에 의해 카이가 자신의 남동생인 걸 알게 된 겔다는 트롤 그리고 자신이 키우는 족제비와 함께 눈의 여왕이 있는 얼음 궁전으로 모험을 떠난다.
<눈의 여왕>은 안데르센의 동명 동화를 원작으로 삼은 애니메이션이다. 겔다가 눈의 여왕에게 잡혀간 카이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는
얼음 궁전으로의 모험 <눈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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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욕조섬을 떠나실 거예요?” 또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뒤, 6살 소녀 허쉬파피(쿠벤자네 왈리스)가 묻는다. 아저씨도, 아버지도 대답은 똑같다. “아무도 안 떠날 거야.” <비스트>는 루이지애나 남부 어느 어귀에 있을 법한 수몰 직전의 마을에서 끝까지 자신의 운명과 맞서 싸우는 저 강인한 사람들을 뒤쫓는다. 그들은 피난 대신 축제를, 울음 대신 발악을, 낙담 대신 낙천을 택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이 얄팍한 지붕 한장으로 천둥, 번개를 가릴 수 있다 믿어도, 물에 잠긴 욕조섬을 구하기 위해 도시 사람들이 쌓아놓은 제방을 폭파시켜도, 매번 다 죽어가는 몸을 이끌고 보호소를 뛰쳐나와 집으로 돌아가도, 온전히 그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존중 정도가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는 삶에 대한 그들의 무모한 열정을 무조건 긍정하게 된다. 그렇게 그들 ‘위’가 아닌 ‘옆’에 관객을 앉힌 것이, 몇년 전부터 아예 뉴올리언스에 살며 영화를 만들고 있는 벤 제틀린 감독과 그가 속
저 땅에 사는 저 사람들의 삶 <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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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가 꽃피기 시작하던 19세기 전반에도 유럽의 한편에서는 여전히 야만적인 노예무역이 성행하고 있었다. 당시 아프리카는 유럽인들에겐 낯선 땅이었다. 1825년, 오스만 제국의 이집트 총독 무하마드 알리는 프랑스 샤를 10세의 즉위를 축하하는 의미로 아기 기린 ‘자라파’를 선물했다. 자라파는 프랑스 땅을 밟은 최초의 기린이었다. <아기 기린 자라파>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다.
커다란 나무 아래서 한 노인이 마을 아이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래전 아프리카의 어느 마을, 프랑스인 노예 판매상은 수단의 아이들을 노예로 팔기 위해 붙잡아두고, 소년 마키(맥스 레나우딘)는 야음을 틈타 도망치다가 기린 무리와 만난다. 마키는 아기 기린 자라파와 친구가 되고, 마키를 뒤쫓은 노예 판매상의 총을 맞고 엄마 기린이 목숨을 잃는다. 지나가던 아랍인 핫산(시몬 압카리언)은 위기에 몰린 마키를 구해주고 오갈 데 없는 마키를 돌본다. 핫산은 터키 군
아프리카의 희망, 그리고 자유의 상징 <아기 기린 자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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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과 한국의 현대사는 겹치는 부분이 꽤 많다. 오랜 기간 일제 강점기를 거친 뒤에 분단의 상처를 지니고 있다는 점,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 민주화의 과정 이후 극단적 성공의 시기를 달렸다는 점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역사가 주축이 되는 대만영화들은 굳이 시대사를 몰라도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측면이 있다. 영화 <여친남친>도 그런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세명의 고등학생 메이바오(계륜미), 리암(장효전), 아론(봉소악)은 언뜻 보기에는 엇나간 삼각관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명확히 감지되진 않지만 엇나간 감정의 갈퀴들이 그들을 감싸고 돈다. 모든 사랑이 그렇듯 확실하지 않은 마음 때문에 누군가는 상처받고 또 혼자서 상처를 삭인다. 훗날 그 아픔은 다른 상처를 끌어낼지 모르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영화 <여친남친>은 시대와 순행하며 인물의 성장기를 따라간다.
이러한 인물과 시대간의 관계를 다소 도식적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아론
엇나간 감정의 갈퀴 <여친남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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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없이 살 수도 있어. 꿈만 꾸며 살 수도 있어.” 영화에 수록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노래 <너클볼 콤플렉스>의 첫 소절이다. 이 짤막한 두 마디의 노랫말에 오늘날 대한민국에 사는 청년들이 처한 가장 큰 딜레마가 숨어 있다. 요컨대 선택은 두 가지다. ‘꿈을 놓고 철저한 생활인으로 살거나, 아니면 꿈만 꾸면서 쫄쫄 굶거나.’ 이런 무자비한 이분법에 시달리는 것은 대부분 마찬가지겠지만, 유독 이 딜레마의 칼날을 서늘하게 느껴야만 하는 청춘들이 있다.
이정호 감독의 다큐멘터리 <굿바이 홈런>의 주인공들은 ‘야구의 불모지’라 불리는 강원도 지역의 만년꼴찌팀인 원주고등학교의 야구부 선수들이다. 영화는 2009년, 이 꼴찌들이 일으킨 반란을 줄기 삼아 진행된다. 황금사자기와 청룡기에서 1차전 탈락의 고배를 마신 원주고 야구부는 같은 해 화랑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제주고, 광주 진흥고, 제물포고를 파죽지세로 격파하며 전국대회 첫승과 최초의 4강 진출을 단번에
꼴찌들의 반란 <굿바이 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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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들렌(뤼디빈 사니에르, 카트린 드뇌브)은 자신이 일하던 직장에서 빨간 구두를 훔쳐 신는다. 그리고 그 구두 때문에 자신이 창녀인 줄 알고 접근한 남자와 돈을 받고 섹스를 한다. 이후 그녀는 그 장소에서 다시 남자들을 기다리고, 친구한테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자호밀(라디보제 부크빅, 밀로스 포먼)과 역시 돈을 받고 잠자리를 한다. 자호밀은 체코에서 온 의사였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둘은 프라하로 가서 결혼하고 딸 베라(키아라 마스트로이안니)를 낳는다. 소련이 프라하로 침공할 때 자호밀은 외도를 하고 마들렌은 베라와 함께 다시 파리로 돌아와 재혼한다. 어른이 된 베라의 곁에는 베라를 좋아하는 클레멩(루이스 가렐)이 있지만 둘의 관계는 친구 사이 이상으로 발전되지 않는다. 베라는 우연히 클럽에서 본 밴드의 드러머 헨더슨(폴 슈나이더)에게 반해 사랑에 빠지지만 헨더슨은 동성연애자이다.
크리스토프 오노레 감독이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화두 중 하나는 사랑이다. <비러브드>에
수없이 많은 사랑의 모양 <비러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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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했다던데, 이런 말이 있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남자고,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다.” 그렇다면 삼단논법에 따라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여자’일까? 이원석 감독의 첫 장편영화 <남자사용설명서>는 이에 대해 삐딱한 대답을 내놓는다.
최보나(이시영)는 ‘광고계의 아방가르드’ 육봉아 감독(이원종) 밑에서 5년째 잡일을 도맡아 하는 만년 조감독이다. 남자 스탭들은 질끈 당겨쓴 후드와 그 아래로 삐져나온 지저분한 파마머리의 일벌레 최보나를 본체만체, 예쁘고 가슴 큰 여직원에게 지분거리기 바쁘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존재감 제로’에 도전하던 최보나는 급기야 깜빡 잠이 든 사이에 철수해버린 촬영팀 덕분에 어느 외딴 해변가에 홀로 남겨진다. 그러나 그날 밤, 정체불명의 인생박사 Dr. 스왈스키(박영규)를 만나 ‘남자사용설명서’라는 제목의 비디오테이프를 구매하면서 최보나의 인생은 달라진다. 게다가 위층에 사는 내리막길 한류스타 이승재(오정세)와 묘한 애증관계로 엮이게
한편의 가볍고 유쾌한 처세서 <남자사용설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