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외국 감독만 만나면 육체적으로 고생할 팔자인가보다. 아미르 나데리 감독의 <컷>(2011)에서 연기한 슈지는 ‘인간 샌드백’이 되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주먹을 맞아야했다. 김성수 감독의 신작 <무명인>에서 맡은 이시가미 역시 쉴 새 없이 뛰어다니고, 땅바닥을 굴러야했다. 그것은 일본영화나 드라마에서 그가 보여준 반듯한 모습과 거리가 멀다. “스스로 신체를 많이 활용하는 배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일본 감독보다 외국 감독들이 폭력성 같은 나의 숨겨진 면모를 많이 끄집어내준 것 같다.” 물론 한일 합작영화 <무명인>에 출연하게 된 건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김성수 감독이 만나고 싶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작품에 대한 열정과 배우로서 나에 대한 깊은 신뢰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스펜스를 조금씩 구축하는 시나리오도 마음에 들었다.”
그의 말대로 <무명인>은 미스터리 스릴러물이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온 이시가미는 아내의 시신을 발견한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한 여자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그때 한 무리의 일당이 집안에 들이닥치고 혼란스러운 이시가미는 영문도 모른 채 쫓기는 신세가 된다. “평범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아내의 죽음의 전말을 밝히려는 이유는 하나다.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내용상 자세하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시가미는 자신 내부의 두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한다. “어떨 때는 인텔리하게 보여야 하고, 또 어떨 때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을 드러내야 했다. 그 사이를 세심하게 오가기 위해 신마다 감정을 일일이 체크하느라 애를 먹었다.” 감정신과 액션신으로 빼곡하게 채워진 까닭에 체력적으로 힘들진 않았을까. “전혀. 전 세계에서 고통을 가장 잘 견디는 배우라 생각한다. 그러나 청개구리 같은 면모가 있어 센 역할을 맡다가도 금방 나이브한 역할로 넘어가기도 하지만 말이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