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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새로운 트렌드는 이렇다. 언젠가부터 다녀온 사람 찾기가 드물지 않은 카우치 서핑은 타인의 살림집에서 말 그대로 카우치(소파) 신세를 지거나 방 한칸을 얻어 쓰는 여행 방식이다. 인도부터 유럽, 미국까지 카우치 서퍼들의 집으로 찾아가 며칠씩 지내고, 마찬가지로 내 집을 해외의 여행객들에게 오픈할 수도 있는 방식이라서 배낭여행족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일주일부터 수개월까지 집을 렌트하는 장기 체류 여행도 인기인데, 서울 월세살이를 하는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서울에서 한달 집 얻을 돈이면 피렌체, 베를린, 파리에서도 한달 집 얻기는 힘들지 않다. 그리고 국내 여행에서는 이른바 게스트하우스 여행이 인기다. 특히 혼자 떠나는 사람에게 인기가 좋은데, 하루 숙박비 2만원이면 침대 하나와 아침식사를 주는 정도가 일반적이다. 침대 하나를 빌린다는 것은 거실과 욕실 등을 함께 써야 한다는 의미인데, 그러다보니 혼자 떠난 사람들은 그 공용 공간에서 술벗, 말벗을 찾기도 한다. 서울 북촌에도, 지
[도서] 그곳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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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3월17일까지
장소: 갤러리로얄
문의: art.royaltoto.co.kr
화가 황세준의 그림은 피로하다. 불안하고 음하다. 그가 담고 있는 풍경 속 사람들의 행색이 그렇고 그들이 서 있는 풍경 또한 그렇다. 그림에선 활달하게 움직이는 상태가 아니라, 피로하여 잠시 잠적할 곳을 찾는 느낌이 묻어난다. 환한 빛은 없지만 그림자를 뿜어내는 흐린 공기는 회색과 푸른색으로 온도를 만들어낸다. 황세준의 그림에서는 자유가 느껴진다. 콕 집어 무어라 명명하기 힘든 대상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까. 그러고 보니 화가가 그린 풍경은 모두 길 위에 있다. <정처>라는 그림 속의 사람도 길에 있고, <오후의 나무>도 뒤꽁무니를 뺀 버스 옆의 길 가운데의 나무를 비춘다. <귀대 터미널 풍경>에서는 버스를 기다리는 군인들이 있고, <버스, 벗>에서는 버스를 기다리는 도로가 있다.
황세준은 그림만큼이나 울림이 있는 글을 쓰는 작가로 잘 알려졌다. 전시 때
[전시] 길 위에서 만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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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5월19일까지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문의: www.artacrossamerica2013.com
미술 앞에 국가의 이름을 붙여 쓰는 일. 그러니까 ‘미국미술’. ‘한국미술’, ‘일본미술’이라는 단어로 미술을 범주화하는 일은 낯선 일이 아니다. 하지만 국가와 미술의 만남은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다. 범위를 어떤 기준으로 삼을지부터 논쟁적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미술 300년전>은 ‘이것이 미국미술이다’라는 선언 못지않게 제목부터 부담스럽다. 아니 고집스럽다고 해야 하나. 전시는 18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300여년 동안 제작된 미국미술을 총망라한다. 공평한 백과사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미술이 미국이라는 국가와 관계맺어온 각고의 여정을 드러내는 작업을 선별하여 보여준다.
전시구성의 1부인 ‘아메리카의 사람들’에선 유럽에서 건너온 18세기 탐험가, 개척자들의 초상화를 볼 수 있다. 아직 여기 미국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른다 하더라도 자신감과
[전시] 신대륙 발견부터 오늘날의 미국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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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음악웹진 ‘보다’ 편집장 ★★☆
나카시마 미카의 새 앨범에는 영화/드라마 삽입곡이 절반 가까이 들어있다. 이건 각 영화/드라마의 분위기에 맞춘 상이한 노래들이 한장의 앨범에 자리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신선함은 찾아볼 수 없고 대신 각 장르의 클리셰들이 한데 모여 있다. 난 아직 ‘앨범’이 가진 가치를 믿는다. 그냥 이 노래 저 노래 모아 앨범을 낸다면 그게 ‘멜론 차트 100’과 다를 게 무엇인가.
이민희/ 음악웹진 ‘백비트’ 편집인 ★★
도입부는 좋았다. 한국 발라드의 매력과 비슷하다. 전개에 있어 미국식 팝과 일치되는 부분이 많지만 무작정 따라가진 않는다. 특화된 국가적 이미지가 있고 고유한 자기표현이 있다. 세계를 설득하기 전에, 가지고 태어난 유전자와 습득한 방식으로 특별한 노래에 다가간다. 그러나 감성 충만한 가수도 가끔은 솔 충만을 원한다. 의욕은 이해되지만 결과에는 정돈이 없다. 중후반 과하게 경쾌한 노래가 흐를 때면 초반부의 아련한 인상이 그리워진다.
[MUSIC] 추억 한움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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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촬영이 아니라 무슨 1인극을 보는 듯했다. 배수빈은 사진기자의 주문에 맞춰 뚝딱 광대 하선이 됐다가 금세 광해가 됐다. 턱을 아래로 쭉 당겨 호탕하게 웃을 땐 영락없는 하선이었고, 두눈에서 장난기가 싹 걷히면 영락없는 광해였다. 그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그 모든 표정을 만들어냈다. 턱 전체를 덮은 무성한 검은 수염도 썩 잘 어울렸다. 사실 이날 배수빈은 인터뷰에 두 시간 넘게 늦었다. 인터뷰 전달 과정에서 착오가 생겼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스튜디오로 달려온 그는 충분히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그는 자신이 놓쳐버린 두 시간을 어떻게든 만회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인터뷰 내내 배수빈은 집중력과 진정성으로 무장한 채 앞에 앉은 상대를 대했다. 어쩌면 배수빈이라는 사람이 원래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
2월23일 첫선을 보이는 연극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에서 배수빈은 김도현과 함께 광해/하선 역에 더블캐스팅됐다. 연극 연습 기간 동안 매일 오후
[배수빈] 고루하게 늙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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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독의 영화노트] <원 데이> 엠마의 마음
[올드독의 영화노트] <원 데이> 엠마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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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카케를 꿈꾸는 나뭇잎마을의 열혈닌자 나루토(다케우치 준코). 죽은 줄 알았던 멤버까지 합세한 아카즈키가 마을을 습격하자 친구들과 함께 이를 격퇴하지만 마을 한복판에 나타난 마다라에 의해 ‘한정 츠쿠요미’의 술법에 걸리고 만다. 그곳은 현실세계와 똑같아 보이지만 모두의 성격이 정반대인 거울의 세계. 심지어 부모까지 살아 있는 그 세계는 외로움에 지친 나루토에게 안식을 안겨주지만 의문의 가면 남자로 인해 다시 한번 위기에 빠진다.
긴 설명이 필요없다. <드래곤볼>과 <슬램덩크> 이후 일본 코믹스 최대의 히트작으로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나루토’의 아홉 번째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란 것만으로도 알 만한 사람은 알 것이다. 특히 <극장판 나루토 질풍전: 로드 투 닌자>(이하 <로드 투 닌자>)는 나루토 탄생 10주년을 기념해 특별히 원작자 기시모토 마사시가 직접 기획, 각본, 작화를 담당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이미 일본 개봉 당시 125만 관객을
나루토 탄생 10주년 <극장판 나루토 질풍전: 로드 투 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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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테러를 다룬 <다이하드 4.0>(2007)은 <다이하드> 시리즈의 부활을 멋지게 알린 신호탄이었다. 존 맥클레인 형사는 ‘살아 있네’ 소리를 듣기에 충분했다. 6년 만에 개봉하는 시리즈 5편 <다이하드: 굿 데이 투 다이>(이하 <다이하드5>)에 대한 기대가 큰 이유다. 5편은 러시아를 무대로 핵무기라는 소재를 끌어들인다.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은 아들 잭 맥클레인(제이 코트니)이 러시아에서 중대한 범죄사건에 휘말렸다는 소식을 듣는다. 무작정 휴가를 내고 모스크바로 날아간 존 맥클레인은 우연히 테러 현장을 목격하고, 그곳에서 아들 잭을 만난다. 잭은 정치범 코마로브(세바스티안 코치)를 안전하게 빼돌리는 임무를 수행 중인 CIA 요원이다. 물론 존 맥클레인은 그제야 아들이 CIA 요원임을 알게 된다. 얼떨결에 한배를 타게 된 맥클레인 부자는 코마로브를 둘러싼 음모에 휩쓸리고, 맥클레인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적과 결전을 벌인다.
영
맥클레인만의 방식 <다이하드: 굿 데이 투 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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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영화화하려는 감독들의 머릿속에는 크게 두 가지 생각이 들어앉아 있을 것이다. 원작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잘 풀어낼 재간이 있거나, 혹은 평소 관심을 두고 있던 어떤 영화적 요소들을 원작에서 발견했거나. 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영화화한 노르웨이 감독 토미 위르콜라는 후자인 것 같다. 그의 전작 <데드 스노우>가 그랬듯, 기묘하게 비틀린 유머와 신체 훼손이 난무하는 혈투 연출이 장기인 위르콜라는 <헨젤과 그레텔>의 가련한 두 남매로부터 그가 찾고 있던 액션활극 전사의 얼굴을 본 듯하다. <헨젤과 그레텔: 마녀사냥꾼>에서 우리가 목도할 수 있는 건 장총을 든 근육질의 오빠 헨젤(제레미 레너)과 가죽 코르셋을 질끈 동여매고 날카로운 칼로 마녀를 난자하는 동생 그레텔(제마 아터턴)이다. 다시 말해 마녀와의 나쁜 추억이 있다는 것 이외에 이들과 원작 캐릭터의 공통점은 거의 없다. 원작의 인기를 등에 업으려는 생각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이 영화의
붉은 달이 뜨는 날 <헨젤과 그레텔: 마녀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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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상원(심희섭)은 재수하는 승준(안재홍)과 함께 군에 입대한 민욱(김창환)을 면회하러 떠난다. 셋은 한때 죽고 못사는 친구였으나 고등학교 졸업 뒤 만난 적이 없다. 강원도 철원으로 향하던 중 상원은 승준이 민욱의 여자친구가 전해달라는 이별편지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되고, 이 때문에 둘은 심하게 다툰다. 상원과 승준이 자신을 찾아온 진짜 이유를 모르는 민욱은 식당에서 술에 취해 호기를 부리다 고참에게 꼬투리를 잡혀 수모를 당한다. 풀이 죽은 민욱을 달래준답시고 상원은 다방 종업원 미연(김꽃비)을 따라나서고, 세 친구의 하룻밤은 복잡하게 꼬여만 간다.
<독>에 이은, 김태곤 감독의 두 번째 장편 <1999, 면회>에선 겉도는 대화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세 친구는 제각기 비밀을 갖고 있다. 속내를 숨기려고 거짓말도 한다. 지금의 세 친구는 1년 전의 세 친구가 아니다. 가진 것이 없다고 친구를 힐난하고, 가진 것이 없어도 친구를 조롱한다. “일병인데 왜 작대
세 친구의 비밀 <1999, 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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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의 어지러운 싸움을 라마 신이 끝장낸 지 3천년이 흘렀다. 절대악의 화신이던 토사칸(김준현)과 그에 맞서 싸우던 라마 신의 충직한 부하 하누만(정범균)은 사막에서 가까스로 깨어나지만 기억을 모두 잃은 상태다. 하누만을 무무라 부르는 토사칸과 토사칸을 빅그린이라 부르는 하누만은 자신들을 한데 묶어놓은 거대한 쇠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도시에 들어가 갖가지 소란을 피우는데 공교롭게도 난장을 부릴수록 그들은 영웅 대접을 받는다. 도시의 수호자로 거듭난 빅그린과 무무 사이에 묘한 유대감이 싹틀 무렵, 신의 전령이 강림해 무무에게 전생의 임무를 일러준다.
<더 자이언트>는 타이의 고대신화인 <라마키안>을 원작으로 삼은 애니메이션이다. 로봇으로 변형되긴 했으나 <라마키안>에 묘사되어 있는 신들의 형상이 애니메이션에도 충실하게 반영되어 있다. 신화 속의 토사칸처럼 <더 자이언트>의 토사칸 역시 수많은 머리와 팔다리를 지닌 괴물의 모습을 지녔다.
신의 가혹한 시험 <더 자이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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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에게 웨스턴 무비는 어색한 장르가 아니다. 감독의 2008년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웨스턴 장르를 제대로 갖고 논 영화였다. 그가 하드코어(<악마를 보았다>(2010))를 돌아 다시 웨스턴(<라스트 스탠드>)으로 돌아왔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라스트 스탠드>의 차이라면, 전자가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인간들을 다뤘다면 후자는 자신의 울타리를 지키기 위한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라스트 스탠드>는 하워드 혹스로 대변되는 전형적인 서부극의 계보도를 잇는 액션영화다.
레이(아놀드 슈워제너거)는 멕시코와 인접한 미국 국경의 한 작은 마을을 지키는 보안관이다. 국경 지역이라고는 하지만 사건사고는커녕 평화롭기만 한 마을이다. 어느 날 거대 마약범죄조직의 ‘큰손’ 가브리엘 코르테즈(에두아르도 노리에가)가 형무소로 이송되던 중 부하들의 도움을 받으며 탈출한다. 헬기보
서부극의 전형적인 영웅의 모습 <라스트 스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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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0년차 부부 영우(윤동환)와 지영(최원정)은 특별할 것 없는 권태로운 생활을 이어간다. 출판사 사장인 영우는 소속작가(신예안)와 지속적으로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 데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지영 역시 그런 영우를 모른 척한다. 어느 날 우연한 사고로 아랍 청년 케림(놀래그 윌쉬)을 만난 지영은 그에게서 알 수 없는 인연을 느낀다. 하지만 엄격한 이슬람교도인 케림은 그녀와의 만남을 뒤로한 채 바라나시로 떠나버리고 지영은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그를 쫓아간다. 한마디 말도 없이 사라진 지영을 찾던 영우는 바라나시의 테러현장을 중계하던 TV 뉴스에서 그녀를 발견하고 사건의 전말을 알기 위해 바라나시로 떠난다.
‘타운’ 삼부작으로 국내외에 이름을 알리며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한 전규환 감독의 신작 <불륜의 시대>(원제 <바라나시>)는 본격 격정멜로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장르영화의 관습에서 이 영화를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다. 2011년 부산영화제에서 공개될
불륜을 둘러싼 네 남녀의 인간관계 <불륜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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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대생이 자신의 집에서 목졸라 살해된다. 경찰은 여대생과 불륜 관계였던 대학교수 수택(곽도원)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해 잡아들인다. 죽은 여대생의 옆집에 사는 교통경찰 정훈(이제훈)은 살인범이 수택이 아니라 여대생의 전 남자친구인 현수(김태훈)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곧바로 신고하지 못한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몰래 카메라로 훔쳐봐왔기 때문이다. 수택이 검찰로 송치되어 조사를 받는 동안 현수는 죗값을 치르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정훈이 설치한 마이크를 발견하고, 정훈은 자신이 설치한 몰래카메라를 빼내려다 여대생을 괴롭혀온 사채업자 명록(조진웅)에게 붙잡히면서, 여대생의 죽음을 둘러싼 공방은 미궁 속으로 흘러간다.
<분노의 윤리학>은 살인자를 끝까지 뒤쫓는 스릴러가 아니다. 현수가 여대생을 죽였음을 일찌감치 보여준다. 관객에게 부여된 역할은 수사관이 아닌 판관이다. 여대생의 죽음에 연루되어 있는 네명의 남자들 중 ‘누가 가장 나쁜 놈인가’를 지목하는 판결은
여대생의 죽음을 둘러싼 공방 <분노의 윤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