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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의 <베를린>에 대한 반응을 지켜보면서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감독이나 관객이나 모두 예상했던 지점에서 충돌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 주변의 보통 관객은, 이를테면 한달에 영화 한두편 정도 관람하는 내 동생들 가족은 <베를린>이 무척 재미있는 영화라고 했다. 그러나 보다 전문적인 관객은, 포털에 영화평을 올리는 부지런한 관객까지 포함하여 <베를린>의 내러티브와 액션의 밀도와 독창성에 의문부호를 달았다. 개봉 전 류승완 감독을 만났을 때 그도 이런 반응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는 야심이 많은 감독이고 그만큼 자기 자신에 회의가 많으며 박찬욱, 봉준호 등의 선배들에 대해 자격지심 비슷한 것이 있다. 지금까지 그가 만들었던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된 <베를린>을 찍으면서 그는 제작기간 내내 시간과 불안감에 쫓겨 영화 한편, 책 한권 읽을 수 없었다고, 다른 사람에 비해 밑천이 부족해서 늘 뭔가를 충전
[신 전영객잔] 액션에 정서를 장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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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채는 영화 속 해원과 비슷한 옷차림을 한 채로 스튜디오에 들어왔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코트를 걸치고, 청바지를 입은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해원이었다.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앉아 난로를 쬐며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낯선 공간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듯 곧장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날 촬영은 정은채의 <씨네21> 첫 표지 촬영이다. 데뷔작 <초능력자>(2010)로 ‘후아유’ 지면에 처음 소개된 뒤 두 번째 출연작 <플레이>(2011)로 ‘액터 앤 액트리스’에 나와 자신의 배우론을 이야기하더니, 네 번째 출연작인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으로 표지까지 점령한 것이다. 표지 촬영이 훌륭한 배우를 가늠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데뷔한 뒤 이토록 짧은 시간 안에 표지를 찍은 건 최근에 그 말고 또 없을 것이다. “첫 표지인 거 알고 왔어요. 사실 예상도 못했던 일이죠.”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서 해원 역을 맡은 정은채에게 홍상수 감
[정은채] 나를 연기하고 얻은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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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재밌는 멘션을 하나 봤다. 최근 흥행한 영화 중 대표적인 게 <레미제라블> <7번방의 선물> <남쪽으로 튀어>인데, 이 영화들이 흥행한 이유가 대선에서 패배를 맛본 48%가 영화관만 찾아서 돌아다니기 때문이라는 내용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한 내용이지만 문득, 다음과 같은 해석을 해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영화의 내용을 보면 (<7번방의 선물>은 보지 못했기에 나머지 두 영화만 놓고 보면) 현실의 벽 앞에서 처절하게 부서지고 깨지는 내용이다. 물론 그 안에는 처절한 몸부림도 있고, 미래에 대한 약간의 희망도 있지만 어쨌거나 결말은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위로’가 된다면, 바로 영화 속 현실이 개박살이 났기 때문이라고밖엔 해석이 안된다. 어려운 현실을 초인적으로 극복해내는 내용을 봐도 시원찮을 판에 영화 속 개박살을 보며 “와, 나랑 똑같아! 너무 공감돼!” 하며 위로를 받는다? 가히 무
[김진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공감쟁이 vs 권위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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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정 감독은 <신세계> 개봉을 앞두고 잠을 설쳤다. 개봉이 코앞인 어느 감독이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신세계>에 대한 박훈정 감독의 마음은 각별하다. 그의 첫 연출작 <혈투>가 저예산영화의 한계를 실감하게 한 작품이라면, 충무로 A급 배우와 스탭들의 수혈을 받은 <신세계>야말로 상업영화계에 출사표를 던진 감독 박훈정의 진정한 면모를 가늠할 작품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집필한 시나리오 <악마를 보았다> <부당거래>를 김지운, 류승완 감독이 연출했듯 <신세계> 역시 “다른 감독이 더 잘 만들 수도 있을” 작품이라 고민도 했건만, 박훈정 감독은 결국 “다 함께 만든다는 생각으로” 잠시 펜대를 내려놓고 비정한 남자들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신세계> 개봉(2월21일)이 일주일도 안 남았다.
=잠을 설치고 있다. 죽겠다.
-어떤 점이 그렇게 힘드나.
=개봉 스트레스겠지 뭐. 어쨌든 본격적인 상업영화는
[박훈정] 갱스터 누아르의 적통 잇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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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레너와 제마 아터턴 주연의 <헨젤과 그레텔: 마녀사냥꾼>은 눈치 없는 참새들이 아이들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에 대한 영화다. 만약 그 당시 오누이가 숲에서 길을 잃지 않고 무사히 집까지 찾아갔다면? 훨씬 순탄한 삶을 살았을 테고, 어쩌면 토미 위르콜라가 만든 것보다 좋은 영화가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망고 디자인의 네이비미는 <헨젤과 그레텔: 마녀사냥꾼> 같은 재앙을 막아줄 제품이다. 손목시계처럼 보이지만 실은 GPS를 이용한 디지털 나침반이다. 한 지점(예를 들면 집)을 설정해두면 현 위치에서 그곳까지의 방향 및 거리가 액정에 보기 쉽게 표시된다. 본래 노인과 어린이들의 안전을 염두에 두고 출발한 디자인이지만 그외의 길치들에게도 요긴하게 쓰일 것 같다는 느낌. 7가지의 다양한 컬러로 출시되어 액세서리로도 손색이 없다.
[gadget]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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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1. 하이엔드 헤드폰의 성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해주는 휴대용 앰프. 일반 CD 이상의 음질을 경험하게 해준다.
2. 스마트폰, PC, MP3 플레이어와 연결하면 디지털 음원을 아날로그 사운드로 변환해주는 컨버터 역할을 한다. 아이폰으로도 원음에 가까운 음질을 즐길 수 있다는 뜻.
3. 휴대용 기기지만 휴대폰과 연결할 경우, 휴대하기 부담스러운 무게와 크기가 된다. 거의 모든 휴대 기기 액세서리가 공유하는 딜레마.
100% 쇼핑이란 완벽한 결혼과 비슷하다. 애초부터 불가능한 목표라는 뜻이다. 나는 한때 그렇게나 뜨겁게 지냈던 스마트폰과 얼마 전부터 느슨한 권태기를 겪는 중이다. 가상 키보드를 띄우고 하는 타이핑에는 여전히 적응이 안되고, 앱스토어를 드나드는 것도 더이상은 재미가 없다. 전화통화, SNS, 그리고 음악감상 정도가 이 똑똑하다는 기계를 가지고 하는 일의 전부이다. 그래서 더이상 쓰지도 않는 앱들은 다 걷어가도 좋으니 음질 개선이나 확실히 이루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gadget] 최상의 음질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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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카메라가 클로즈업을 할 때, 감독이 “여길 봐”라는 듯 내 얼굴을 잡아 돌리는 느낌을 받곤 한다. 순간 감독의 무의식이 작용한다는 느낌 혹은 그(녀)가 내 무의식을 건드리고 싶어 한다는 인상 말이다. 이내 묻고 싶어진다. 저 표정인가요? 저 몸짓인가요? 영화 속 그런 클로즈업의 순간을 소설 속에서 찾으라면 아주 긴 묘사가 등장할 때가 아닐까. 마치 그 공간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이 운명지워진 사람처럼 작가가 물건 하나하나를 그려갈 때, 무엇을 보라는 것인지 묻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이걸 보라고요? 저걸 보라고요? 왜죠?
“처음 갔이 잤을 때 그는 내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려 못 움직이게 했다”라고 시작하는 <나인 하프 위크>에서 정말 인상적인 것은 사실 ‘그’의 공간을 묘사하는 그녀의 집요함이었다. 영화를 보고 남은 인상이 킴 베이싱어와 미키 루크가 서로를 알아가는 9와 1/2주일간의 정사 신에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알 수 없었던 두 사람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낭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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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남편도 아이도 없다. 글을 쓰는 여자 친구들이 아이를 낳은 뒤 입을 꾹 다물고 술과 담배와 놀이의 가장 먼 곳으로 가 숨은 다음 몇달이 지나 그 어떤 마감 때도 지은 적이 없는 소외된 얼굴을 하고 눈앞에 등장할 때마다 보는 쪽도 몹시 괴롭다고 생각하는 게 전부다. 게다가 방 안에 아이가 있으면 자동적으로 ‘방 안의 코끼리’를 연상하는데, 그 표현의 뜻과 정반대로 아이 이야기 말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사실,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갓난아이는 심하게 울어댄다. 시인 김경주는 아내가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기까지의 40주를 글로 써 <자고 있어, 곁이니까>라는 책으로 묶었다.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이를테면, 당신이 아이의 부모거나 부모인 사람들과 아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수없이 말하고 들은 바로 그 이야기다. “오늘은 처음으로 네 심장 소리를 들은 날이란다”로 시작한다는 뜻이다. 24주차 일기의 제목 ‘네가 내 삶을 변화시킬 거라 믿어’
[도서] 아빠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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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4월11일까지
장소: 샤롯데씨어터
문의: 070-4488-8522
뮤지컬 <요셉 어메이징>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구약성서의 요셉이 주인공이다. 야곱의 12명의 아들 중 11번째 아들이었던 요셉은 영특함 때문에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그 때문에 형제들에게 미움을 샀던 인물이다. 그래서 요셉은 형제들에 의해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가지만 타고난 해몽 실력으로 출세하게 되는 파란만장한 운명을 가졌다.
요셉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 이는 <캣츠> <오페라의 유령> 등의 작곡가로 이름을 알린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작사가 팀 라이스다. 이미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로 호흡을 맞춰본 이들은 파란만장한 요셉의 삶을 판타지가 가득한 아름다운 동화로 그려낸다. 여기에 소소한 유머가 더해지면서 무겁고 웅장하기보다 가볍게 재치 넘치는 무대가 완성됐다. 특히 엘비스 프레슬리를 패러디한 이집트의 왕 파라오 캐릭터는 이 극의 에너지원이라
[공연] 종교적? 아니 대중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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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3월10일까지
장소: 명동예술극장
문의: 1644-2003
연극 <에이미>는 딸을 가운데 둔 장모와 사위의 갈등이란 가족사를 통해 영국 현대사의 다양한 대립을 첨예한 문제의식으로 풀어나가는 작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을 일관되게 이끌어나가는 것은 에이미의 엄마 에스메와 에이미의 남편 도미닉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지만, 실제로 공연을 보다 보면 이 작품의 두 가지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먼저 이 작품은 연극의 종말을 이야기하면서 역설적으로 연극의 본질적인 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연극에 종사하는, 혹은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강력한 힘으로 다가온다. <에이미>는 그 자체로 배우에 관한, 나아가 연극의 존재 가치에 대한 메타 연극이면서 동시에 연극과 미디어, 창작과 비평, 예술과 대중성, 고전과 현대에 대한 진지한 논쟁을 내포하고 있다.
극중 연극배우인 에스메와 연극을 혐오하는 영화평론가 도미닉은 ‘연극’에 대해 첨예하게 대립하는
[공연] 연극, 정말 죽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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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음악웹진 ‘보다’ 편집장 ★★★☆
트웬티 원 파일러츠는 자신들의 음악을 스스로 ‘정신분열 팝’(Schizoid Pop)이라 부르고 있지만 결국 끝에 남는 건 ‘팝’이다. 무대 위에서 관객을 ‘미치게’ 만드는 에너지와 다양한 스타일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안에 품고 있는 팝 멜로디로 그 이질적인 요소들을 부드럽게 연결시킨다. 라이브 퍼포먼스만큼이나 좋은 노래를 만들 수 있는 재능과 매력이 있다.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
파티용 록 음악. 트랙들을 채운 사운드는 모두 재미있는 지점들을 선사한다. 90년대 말에 처음 레드 핫 칠리 페퍼스를 듣던 기억도 살아나는데, 일렉트로니카와 힙합, 훵크(funk)와 록 사운드를 적절하게 뒤섞으며 매 순간 특징적인 인상을 제시한다. 특히 곡의 초반부와 중반부, 후반부로 진행되는 3분에서 5분 남짓 동안 예상을 벗어나는 소리와 코드 진행이 등장할 때의 쾌감이 만만치 않다. <Holding On To You> <Guns
[MUSIC] 놀기 좋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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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 인사까지 끝내고 오정세가 스튜디오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몇분이나 흘렀을까. 그가 다시 스튜디오로 걸어들어왔다. 무언가 빠뜨리고 갔나보다 싶었는데 대뜸 휴대폰 카메라를 셀카 모드로 전환한 뒤 기자에게 다가왔다. 함께 사진을 찍자는 거였다. 서로 훈훈하게 인증숏을 찍고 헤어진 뒤 생각했다. ‘나 지금 마성의 남자에게 홀린 건가?’ <남자사용설명서>를 보기 전까진 오정세를 평범한 배우라고 생각했다. 오정세는 자주 눈에 띄었지만 크게 돋보이지 않았다. 그의 기복 없는 꾸준함이 그런 인상을 공고히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엔 조금 다르다. <남자사용설명서>에서 오정세는 날고뛴다. 소름 돋는 발연기로 하루아침에 무명배우에서 거만한 톱스타가 된 이승재. 그런 말도 안되는 캐릭터를 오정세는 뻔뻔하게 연기한다. 발군의 코미디 연기다. 정작 본인은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배우가 되기 싫다고 했지만 <남자사용설명서>를 본 관객이라면 오정세를 각인하게 될 것
[오정세] 사람들이 몰라봐주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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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독의 영화노트] <로봇 앤 프랭크> 어떤 아날로그적인 영역
[올드독의 영화노트] <로봇 앤 프랭크> 어떤 아날로그적인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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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리테일: 봉황의 무녀>는 만화에서 TV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많은 사랑을 받아온 <페어리테일>의 첫 번째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다. 불, 영혼, 얼음, 바람을 다루는 마법을 사용하여 의뢰인의 사건을 해결하는 마법 길드 페어리테일은 이번 작품에서 세계를 파멸로 몰아넣을 봉황의 부활을 막는다. 사건은 페어리테일의 멤버 루시(서유리)가 신비의 돌 봉황석을 손에 쥔 채 떠도는 소녀 에클레어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한때 봉황석을 지키는 무녀였지만 모든 기억을 잃은 에클레어는 봉황석을 노리는 어둠의 길드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준 페어리테일과 가까워진다. 어느 날 어둠의 길드의 급습에 의해 에클레어가 납치되고 에클레어가 지니고 있던 봉황석을 통해 봉황이 부활하면 세계가 멸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페어리테일은 에클레어와 세계를 구하기 위해 어둠의 길드와 맞서게 된다.
<페어리테일: 봉황의 무녀>는 캐릭터의 개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는 각각의 캐릭터가
두 소녀의 연민과 우정 <페어리테일: 봉황의 무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