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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전성시대? 빛 좋은 개살구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오성윤 감독은 단호하게 말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관객 220만명을 극장으로 불러모으면서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오성윤 감독은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이 여전히 험난하다고 말한다. 다른 애니메이션 감독들도 애니메이션 수입/배급업체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호황이 자신들과는 별개의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생각해보자. 겨울방학 시즌을 맞아 일주일에 한두편씩 꾸준히 애니메이션이 개봉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애니메이션은 <뽀로로 극장판: 슈퍼썰매 대모험>이 유일하다. 애니메이션 ‘범람’ 시대에 한국에서 극장용 창작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감독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들은 또 현재 어떤 작업을 진행 중인지 제작 상황을 살펴봤다.
오성윤 감독은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오성윤 감독의 차기작은 많은 영화인들의
이제야 날갯짓 ‘파닥파닥’ 5년 뒤를 기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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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연예인들의 애니메이션 더빙 참여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전문성우는 아니지만 목소리 연기에 비교적 익숙한 유명 배우들은 물론이고 인기 가수와 개그맨들까지 수입애니메이션의 더빙 작업에 캐스팅되는 추세다. 이제 극장가에서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과 함께 엄연한 ‘주인공’으로서 포스터에 실린 연예인들의 얼굴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글 더빙 대본에도 많은 수정이 가해져 예능 및 코미디 프로그램 속 유행어나 독특한 말버릇들을 그대로 집어넣는 경우가 많아졌고, 원작 그대로의 느낌을 선호하는 관객을 위한 자막 버전 상영 역시 요즘의 극장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연예인 더빙이 작품의 질을 훼손하는 것 아닌가
2006년 국내 최초로 자막판 없이 100% 더빙판으로 상영된 <빨간모자의 진실>을 시작으로 연예인 더빙의 비중은 해외 애니메이션의 한글 더빙과 더불어 나란히 증가했다. 2012년 10개이상 상영관에서 개봉한 애니메이션은 모두
작품보다는 마케팅적인 판단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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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멀티플렉스 체인이자 제작과 배급을 맡고 있는 티조이가 씨너스와 공동배급 계약을 체결했다. 올 상반기 애니메이션 네 작품을 시작으로 한국시장에 진출하는 티조이의 기이 무네유키 본부장에게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의 전망과 방향을 물어봤다.
-한국 진출을 축하한다.
=아직 진출이라 하기는 애매하다. 한국에 법인이 있는 건 아니고 씨너스와 제휴를 맺고 책임 배급을 하려 한다. 과거에는 일본, 한국이 별도의 시장이었지만 요즘에는 국가간 경계에 관계없이 동시간대로 정보를 접하고 시장이 연결되는 것 같다. 예전처럼 판권을 팔고 끝나는 걸 넘어선 사업모델을 만들고 싶다.
-티조이는 국내 관객에게는 생소하다.
=도에이 그룹 계열로 2000년에 설립했다. 일본 내 배급과 상영을 담당하고 있으며 현재 일본 내 최대 극장 중 한곳인 신주쿠 발트나인을 운영 중이다.
-한국 진출의 계기는 무엇인가.
=진출을 쭉 생각해오고 있었다. 다만 배급사로서 이야기할 상대는 극장이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지
한국-일본 시장의 장벽을 낮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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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리버드 픽쳐스는 최근 속속 생겨나고 있는 애니메이션 전문 수입/배급업체 중에서도 독자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들불같이 일어나는 해외 애니메이션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입장을 통해 현재 수입 애니메이션시장 분위기의 명암을 살펴봤다.
-지난해에 <늑대아이>가 매우 잘됐다.
=김대창_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전작 <썸머워즈>(2009)보다 조금 더 잘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솔직히 이 정도까지 될지는 몰랐다. 기본적인 팬층도 있었을 테고 가족관객에게도 유효했던 것 같다. 사실 어떤 방향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의지로 가져온 작품인데 반응이 좋아서 힘이 됐다.
-어떤 방향 말인가.
=김대창_애니메이션이 어린이들의 전유물은 아닌데 장르에 대한 시장의 장벽과 편견이 높은 편이다. <늑대아이>는 20, 30대를 메인 관객으로 상정했었다. 제일 어려운 건 스크린 확보였는데 오전밖에 시간을 내주지 않더라. 우리도 <호빵맨>처럼 저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작품도
현재의 애니 붐, 시장확대 아닌 일종의 거품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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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16일까지만 해도 벌써 18편이다. 2009년 한해 동안 극장 개봉한 애니메이션이 총 28편에 불과했던 걸 생각해보면 확실히 애니메이션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하지만 예전과 확연히 달라진 건 제작비 규모가 크지 않은 해외 애니메이션이 개봉작의 대다수라는 점이다. 늘어나는 외국 애니메이션 덕분에 수입/배급업체만큼 바쁜 곳이 홍보전문회사다. 얼마 전부터 애니메이션 홍보에 주력하고 있는 이노기획에 업계 전반의 분위기를 물어봤다.
-최근 극장판 애니메이션 홍보를 거의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 정도는 아니다. (웃음) 지난해 개봉작 44편 중 15편을 홍보했으니 많이 한 편이긴 하다. 2008년 <벼랑 위의 포뇨>를 처음 했었는데 평도 좋았고 흥행도 제법 잘됐었다. 그 일을 계기로 많이들 찾아주시는 것 같다.
-2012년을 기점으로 부쩍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늘어났다.
=지난해 겨울부터 눈에 띄게 늘었지만 사실 징조는 일찌감치 감지됐다. 지난해 초부터 초등
극장용 애니메이션 관객층이 점점 어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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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편만 본 사람은 없다. 올해 극장가를 찾는 애니메이션 관객의 말이다. 올해 31살인 주부 A씨는 이번 1월에만 벌써 4번째 극장을 찾는다. 겨울방학을 보내는 아이들과 함께 갈 만한 곳으로 극장만 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은 매주 새로운 애니메이션이 극장에 걸려 볼 것도 많다. 지난주에는 아이들이 졸라서 <명탐정 코난>을 보러갔고 이번주엔 SBS 예능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런닝맨>의 이광수가 목소리 연기를 했다는 <해양경찰 마르코>를 보러 갈 예정이다. 얼마 전부터는 엄마들끼리 좋은 작품을 추천한다는 커뮤니티에도 가입하여 적극적으로 작품을 골라 본다. 학기가 시작되고 개봉하는 작품들도 있지만 주5일제 수업으로 주말 관람도 그리 어렵지 않다. 한편 평소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직장인 B씨는 얼마 전 개봉한 <부도리의 꿈>을 보러 극장을 찾았다가 낭패를 봤다. 거장 스기이 기사부로 감독의 신작이라는 소문에
풍요 속의 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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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부터 극장가의 일각을 애니메이션들이 점령했다. 그간 열악한 환경에서 신음하고 있던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의 사정이나 애니메이션 시장의 좁은 저변을 떠올려볼 때 기현상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그 속살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사뭇 다르다. 국내 창작장편애니메이션은 여전히 <마당을 나온 암탉> 이후 정체되어 있으며 최근 극장가를 점령한 애니메이션들은 대부분 해외 작품들, 그것도 디즈니 같은 큰 규모의 영화들이 아니라 다소 생소한 중/저예산 애니메이션들이다. 연예인 더빙으로 무장한 이 작품들의 공습으로 극장가는 일견 애니메이션 전성시대를 연 듯 화려해 보인다. 하지만 정작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팬들은 찾아볼 수 없는 이상한 열기의 현장, 그 속으로 들어가보았다.
중/저예산 애니메이션들의 박스오피스 대공습, 호황인가 거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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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미국산 대중문화에서 가장 인기있는 노스탤지어는 두 부류다. 하나는 케네디 대통령 시절인 1960년대고 다른 하나는 금주법과 대공황이 연타로 터지던 1910∼30년대다. 둘 다 개인과 집단, 근대와 현대, 야만과 교양이 교차하는 애매하고도 매력적인 접점이 있다. <로우리스: 나쁜 영웅들>도 그 노스탤지어(물론 이것은 백인 중산층의 것이다)로 작동된다. 하지만 비슷한 때에 등장한 드라마 <보드웍 엠파이어>가 알 카포네, ‘럭키’ 루치아노 같은 갱스터 이미지를 재생산한 것과 달리 영화는 금주법 시대에 갱스터와 부패한 관료 사이에 낀 ‘개인’을 주목한다(그즈음에 ‘개인’이란 개념이 등장했다는 걸 상기해도 재밌다).
이 영화의 각본과 음악은 닉 케이브가 맡았다. 20세기에 14세기 낭만주의로 포장된 금기들, 살인과 죽음과 쾌락을 다룬 음악으로 유명해진 그는(물론 그 낭만주의는 다분히 남근적 욕망으로, 그에 대해선 할 얘기가 참 많다) 최근 몇년 동안엔 컨트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숨겨진 욕망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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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아나토미>가 방송을 탄 지 햇수로 9년째다. 아직도 첫 에피소드의 생생함을 잊지 못한다. 하룻밤을 함께 보낸 귀여운 곱슬머리 남자가 새 직장의 보스라니, 이 얼마나 귀엽고 짜릿한 설정인지, 나중에야 <그레이 아나토미>는 모든 출연진의 사랑놀음을 의학드라마로 포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건 시즌이 한참 지난 뒤의 깨달음이었고, 그만 보려고 했을 땐 그 막장에 이미 중독되어 있었다. <그레이 아나토미>의 스핀오프이자 얼마 전 종영한 <프라이빗 프랙티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개업병원 의사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인데, 병원에서 제일 멋진 남자 의사 둘과 여의사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는 설정에 이르러서야(그래서 그 여의사는 신혼부부의 신부에게 잘 생긴다는 성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레이 아나토미>와 이 드라마가 자매지간이라는 걸 재확인했다. 이처럼 다른 장르의 외피를 두르고 뒤에서는 시청자의 길티플
[안현진의 미드 크리에이터 열전] 그녀를 끊을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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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마침내 그날이 왔다. 세면대 앞 걸레 빤 물통에 휴대폰이 수직낙하하고 만 것이다. 다행히 물에서 건져낸 휴대폰은 켜진 채였고, 그 상태로 포털 앱을 열어 검색을 시작했다. ‘휴대전화 물에 빠졌을 때’는 자동완성 검색어였다. 절대 전원을 켜지 말고 수리센터로 가져가라는 정석적 조언과 함께 ‘드라이어로 말리기, 쌀자루에 넣어두기’ 같은 초동 대처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곧바로 트위터 앱을 켜서 사태를 보고했다. “일단 분해해서 말리세요”부터 “TV 뒤에 하룻밤 두는 게 최고입니다” 같은 신기한 솔루션까지, 5분 만에 십수개의 조언이 쏟아졌다. 결국 티슈로 물기를 제거하고 드라이어로 대충 말린 뒤 쌀통 깊숙이 휴대전화를 파묻어두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휴대폰이 없는 밤은 어쩐지 낯설고 불안했다. 눈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캄캄한 방에 누운 채로 게임, 트위터, 웹서핑을 하는 데 중독된 탓이었다. 지난해 겨울 KBS <인간의 조건> ‘휴대폰
[최지은의 TVIEW] ‘없이’ 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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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시절 일요일마다 열리는 벼룩시장을 구경하는 것은 각별한 즐거움이었다. 아직 쓸 만한 물건을 헐값에 건지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호기심을 자극하는 진기한 물건을 발견하기도 한다. 원래 그것들도 한때는 아주 평범했으나, 그것이 사용되던 시절과의 시간적 거리가 그것들을 ‘진기한’ 것으로 만들어준 것이리라. 현역에서 은퇴한 고물들은 때 묻고 흠집 난 표면을 통해 시간의 ‘아우라’를 뿜어낸다. 도대체 용도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물건들의 형태를 보면, 왜 수많은 예술가들이 벼룩시장을 찾았는지 저절로 이해가 된다.
물신으로서 조각
내가 아는 한, 벼룩시장에서 창작의 영감을 얻은 최초의 화가 중 하나는 마티스다. 피카소에게 아프리카 조각의 두상을 보여준 것이 그였기 때문이다. 그 조각상은 물론 파리의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것이다. 피카소의 회고에 따르면, 마티스는 그 조각상을 피카소에게 보여주며 ‘이집트의 조각’에 대해 얘기했다고 한다. 그것으로 보아, 마티스는 그 조각상을 그저 비(非)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벼룩시장에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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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가 오래간다. 벌써 4주째다(곳곳에서 ‘나도요, 나도요’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이번 감기는 집세 밀린 주제에 매일 시끄럽게 파티를 벌이는 눈치 없는 세입자처럼 뻔뻔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나갈 듯 나갈 듯 나가지 않는다. 나을 듯 나을 듯 낫지 않는다. 푹 자고 일어나서 다 나았나 싶으면 슬금슬금 다시 기어들어온다.
4주 동안 감기와 함께 지냈더니 이제는 감기 걸린 몸에 익숙해졌다. 코는 맹맹하고 목은 살짝 따끔거리고, 전반적으로 온몸에 힘이 없으며 가끔 머리가 아프다. 가래도 끓고, 눈알도 아프고, 잠이 자주 오(는 건 원래 그랬던 건지도 모르)고. 버스나 기차의 히터 옆에만 가면 건조함 때문에 입술이 바짝 마른다(4주 동안 엄살도 발전해서 감기 증세로만 이 지면을 가득 채우고 싶지만, 참겠다).
독감에 걸려 심하게 앓고 있는 분들에겐 미안한 소리지만, 때로는 감기 걸린 나른한 몸이 좋기도 하다. ‘자, 힘차게 시작해보는 거야’라고 마음을 먹는 건 아무래도 벅차기
[김중혁의 최신가요인가요] 겨울 한잔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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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후배에게서 문자가 왔다. ‘일에 빠져 완전 허우적거리며 책도 못 보고 숨도 못 쉬고 살고 있다’고. ‘팀장이 간부 워크숍에 가서 겨우 문자할 정신이 났다’며. 요지는 이런 거였다. 선배는 회사를 그렇게 오래 다니며 어떻게 견뎠냐, 나는 죽겠다, 우얄꼬? 그때는 밥줄이 불안한 프리랜서 라이터로서의 마감이 한창이어서 대충 이렇게 달랬던 기억이 난다.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마, 시키는 거 다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가끔 농땡이도 부리고 선배나 상사에게 징징거리며 앓는 소리도 하고. 자존심 따위 개나 주고.”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속에 먼저 회사를 그만둔 선배로서 내가 후배에게 해주고 싶은 거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 속에서 잠정적 실업자들을 위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언을 정리하게 됐다.
첫 번째, 일단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에 아직 해고되지 않은 사람들도 일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한 가능성이라고 여기지 않는 게 좋다.
[SO WHAT] 농땡이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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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배우가 목을 길게 빼고 뚱한 표정으로 나란히 서 있는 <스토커>의 포스터는 상업영화 광고 이미지치고 대담하다. 그랜트 우드의 그림 <아메리칸 고딕>(1930, 위) 속 부녀처럼 그들은 “우리집에 웬만하면 오지 마세요”라는 신호를 쏘아보내 호기심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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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액션영화에 흔히 발급되는 처방으로 “먼저 관객이 연연할 만한 인물을 제시해라. 그래야 관객이 그가 다치거나 죽을까봐 염려하게 되어 스릴이 커진다”라는 항목이 있다. 그러나 인물의 성격을 미처 파악할 겨를 없이 도입부부터 쓰나미가 스크린을 덮치는 <더 임파서블>은 좀 다른 경우였다.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은, 재난에 휩쓸린 사람이 어떤 조건과 성격을 가진 인물이건 막대한 자연재해가 인간이라는 미력한 존재에게 일으키는 보편적인 감정에 관심을 보인다. 주인공 마리아(나오미 왓츠)와 헨리(이완 맥그리거) 부부에 관해 특정한 판단을 내리기 전이었는데도, 나는 가차없이 만물을 쓸어가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물의 나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