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소에서 사진 기자의 플래시 세례를 받고 있는 엘레나 코타를 본다. 깊은 눈매와 위풍당당한 제스처. 그녀는 누가 봐도 천생 배우다.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팔레르모의 결투>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 전, 엘레나 코타는 영화팬들에겐 다소 생소한 이름이었으나 이탈리아 내에선 연극 무대에서 여성 최초로 햄릿 역을 맡을 정도로 그 역량을 인정받은 베테랑이다. 그러므로 그녀를 설명하는 데 있어 ‘혜성처럼 나타났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이탈리아가 품고 있던 보석을, 세계 영화계가 다소 늦게 발견했을 뿐이다.
<팔레르모의 결투>에는 엘레나 코타가 연기하는 노년의 여인 사미라에 대한 수많은 말들이 오간다. 누군가는 그녀가 “지옥을 경험했다”고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주인 잃은 동물”같다고 한다. 여하간 그 말들을 종합해보면 사미라는 딸을 잃은 상실감에 빠져있으며 깊은 마음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건 정작 사미라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이 90분의 러닝타임 중 10분도 채 안 된다는 점이다. 엘레나 코타는 자신에게 주어진 80분가량의 침묵을 눈빛과 표정, 제스처로 풍성하게 채운다. “연극을 오래 하다 보니 몸짓이나 걸음걸이만으로도 내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데 도가 텄다”는 게 그녀의 말이다.
제목에 걸맞게 팔레르모의 골목길에서 대치중인 두 여자가 벌이는 기 싸움이 이 영화의 압권이자 엘레나 코타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각자의 차를 타고 가다 막다른 골목에서 마주친 로사와 사미라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마냥 물러서는 기색이 없다. 이윽고 어두워진 밤거리의 달빛 아래서 빛나는 사미라의 파란 눈동자는 먹이를 노려보는 맹수의 눈빛을 닮았다. “그 장면이 꼭 <오케이 목장의 결투> 같지 않았나? 여자들만의 웨스턴영화를 찍는다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대답을 마치자마자 엘레나 코타가 손가락 총을 발사한다. 팡야! 과연 전 세계를 휘어잡은 이탈리아 여장부다운 기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