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출신의 감독 리티 판의 마스터클래스가 7일 CGV센텀시티에서 열렸다. 리티 판은 캄보디아의 영화 유산 보존에 힘써 온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을 수상하게 됐다. 리티 판은 이 자리가 강연이 아닌 대화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작품의 여운을 간직한 관객들도 작품과 정치상황에 대한 열띤 질문들로 화답했다. 이날 자리에서는 한국어, 불어, 영어 등 다양한 언어들이 공존했으며 유럽, 아시아, 미국 등 다양한 국적의 관객이 리티 판 감독의 시각을 거울삼아 자신의 자리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카메라는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찍는 사람과의 거리와 관계된 것이기도 합니다. 멀리서 줌으로 찍기보다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그들이 내가 찍는 것이 맘에 안 들면 나를 때릴 수도 있도록 말이죠.(웃음) 찍히는 사람들이 더러운 곳에 가면, 더러운 곳으로 함께 가야 합니다. 물속으로 가면, 함께 물속으로 가야 합니다. 등장인물이 젖은 상태인데 찍는 이가 젖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미지는 들어야 합니다. 가끔 젊은 감독들에게 직접 촬영하라고 가르칩니다. 이미지가 주는 것을 느끼고 뭔가를 잡아내는 감정적인 작업을 직접해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미지를 듣는다고 할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고요한 순간을 포함합니다.
<잃어버린 사진>을 만들면서 1975년 이후 처음으로 어린 시절 살던 집을 찾아 갔습니다. 그러나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신 모형을 만들고 작은 오브제들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찰흙인형을 보면서는 ‘이것이 많은 것을 할 수 있겠구나’ 직감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대량학살 같은 주제를 다룬 극영화를 볼 때 마음이 불편합니다.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1993)에서 가스실에 카메라가 직접 들어가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마치 연기자처럼 연기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내게 있어 다큐멘터리는 극영화보다 더 많은 재현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잃어버린 사진>은 기억을 어떻게 재현해낼 수 있을까 생각하고 방법을 찾은 결과입니다. 대량학살 같은 중요한 주제를 다루는 영화를 만들 때는 새로운 형식이 필요합니다. 기록 영상만 가지고 작업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감독은 매체의 제한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다큐멘터리의 주제는 내가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큐 감독은 주제 자체를 존중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는 그것을 지켜봐야 합니다. 이것은 진실에 대한 나의 비전일 수 있습니다. 내가 다루고자하는 주제를 조금 더 가까이서 관찰하고 진실에 조금 더 근접하도록 하는 것이 나의 의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학살이 진행된 바로 다음에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일단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리고는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합니다. 사랑하는 방법을,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음 세대에 태어날 사람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세대 간의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하기 힘든 작업이지만 이를 하지 않고 역사의 페이지를 넘길 순 없습니다.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 기록해야 합니다. 기록하지 않고 페이지를 넘길 순 없습니다.
크메르루즈 정권 당시 거의 대부분의 지식인이 학살됐습니다. 살아남은 지식인과 역사가들조차 너무 무서웠기에 숨죽여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에 관한 작업이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프놈펜에 시청각센터를 지으려 했던 이유도 역사를 배우게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공동의 기억에 관해 작업하는 것은 중요합니다.역사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없다면 민주화를 이루기 힘듭니다. 그래서 역사를 다룬 영화를 최대한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