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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고종 황제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던 아관파천 시기인 1896년부터 대한제국을 선포한 1897년 사이를 시대적 배경으로 '커피'와 '고종'을 둘러싼 음모와 비밀을 그린 영화 '가비'는 오는 3월 15일 개봉 예정이다.
[박희순]"선배왕 김수현에게 내가 배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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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있다. 사실 별것 아닌 것에 반하는, 가령 삐져나온 머리칼이라든지 멀쩡한 도보에서 발을 헛딛는 때나 이상한 웃음소리 혹은 사람들 앞에서 졸지 않고 프레젠테이션을 해내거나 노래하는 순간. <치코와 리타>에서는 <Besame Mucho>가 흐르는 때다. 그런데 그 사람과 첫 섹스를 예감하는 순간은 다르다. 사랑에 빠지는 게 우연이라면 첫 섹스는 필연이다. 거기엔 서로의 육체와 영혼에 대한 갈망이 있다. 술자리에서든 댄스홀에서든 관능은 찾아오고 무엇보다 그건 둘만 아는 순간, 요컨대 마법이다. 그래서 <치코와 리타>의 강렬한 순간은 <Besame Mucho>가 아니라 <Cellia>가 흐르는 때다.
텅 빈 바에서 치코가 피아노를, 바텐더가 술병을 두드리는 중에 리타가 춤을 추는 이 장면은 둘의 첫밤을 위한 전희다. 관능적 에너지가 넘친다. 마치 긴 뮤직비디오 같은 고전적 신파를 굳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이유도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관능이 넘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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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이를 샀다. 엔지니어드 가먼츠라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미국 의류회사의 넥타이다. 질 좋은 울로 제작된 니트 넥타이고 색깔도 차분하다. 가격은 그리 차분하진 않다. 그래도 이 넥타이는 관혼상제용으로 어쩔 수 없이 샀던 첫 넥타이와는 의미가 다르다. 내가 구입하고 싶어서 구입한 첫 번째 넥타이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다니는 글공장에는 넥타이 따위 필요없다. 만약 내가 슈트를 쫙 빼입고 출근한다면 사람들은 분명 “누가 돌아가셨니?”라거나 “어떤 말도 안되는 인간이 오늘 같은 날 결혼해?”라고 물을 거다. 그런데도 넥타이를 구입했다. 어른의 아이템을 하나쯤 갖고 싶어서다.
서른다섯살 남자가 어른의 아이템 운운하는 게 좀 웃기게 들리리란 건 잘 안다. 하지만 이 직장에서 일하다보면 점점 어른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씨네21>에 대해 폭로하자면 이 직장의 많은 30~40대들은 결혼은 했으나 아이는 갖지 않거나, 결혼도 하지 않거나, 심지어 연애도 하지 않고 영화와 글과 취미에
[타인의 취향] 넥타이, 서른다섯살 남자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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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잊지 못하는 공연이 있다. 꿈에서 그리던 아티스트의 공연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공연을 함께 본 사람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고, 너무 힘든 공연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모두들 그렇게, 인생을 따라다니는 공연이 하나씩은 있게 마련이다. 나에게는 런던에서 본 시우르 로스(Sigur Ros)의 공연이 그랬다. 주변에 시우르 로스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 “런던에서 시우르 로스 공연을 본 적이 있어요”라는 말을 하면, 모두 한결같은 반응을 보인다. 일단 “우와, 너무 좋았겠네요”라고 부러워한 뒤, “그래서 재미있었어요?”라고 궁금해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무 좋긴 했는데, 재미있지는 않았다.
시우르 로스를 많이 좋아하지는 않았다. 자주 듣는 몇곡이 있긴 했지만 앨범 전체를 좋아한 적은 없었던 것 같고, 한없이 아래로 가라앉거나 우주를 배회하는 사운드 스케이프가 버겁게 느껴진 적이 많았다. 시우르 로스의 음악을 들을 때면 언제나 내가 한없이 작게 느껴지고 티끌로 변하는 것 같은
[김중혁의 No Music No Life] 부유하는 사운드의 티끌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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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못한 지각변동이 발생하고 있다.
왕조시대 유럽 왕을 위로하던 어릿광대를 승계한 오늘날 예능인이 격상된 지위로 킹메이커의 역할까지 수행하는 시대다. 한 시절 광대 재롱의 관전 권한은 권문세가의 독점이었지만, 공화정의 등장이 광대의 예능을 만인이 공유하도록 배분했으며, 시민으로 성장한 백성도 뒤통수에 준엄한 광배를 단 위정자에 주눅 드느니 연예인이 선사하는 감성적 위안과 농담을 선호하고 신뢰했다. 하지만 현대라고 사정이 크게 달라질 리 없다. 정치와 예능은 엄연히 다른 급으로 취급됐고, 서열도 달랐다. 그렇지만 이변이 일어나 고 있다. 킹메이커의 타고난 재능을 지닌 광대가 ‘스스로를 돕기’ 시작했다. 탄탄한 인지도와 연출된 캐릭터에서 영웅의 시뮬라크르를 착시하는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팬덤은 어느덧 정치적 지지층으로 둔갑했다. 급기야 스스로 왕좌에 오르는 사태까지 발생한다. 영화배우 로널드 레이건은 주지사를 거쳐 40대 미합중국 대통령 자리에 앉았다.
예능 프로그램의 마력은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예능 프로의 정치 멘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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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5일 폐막한 로테르담영화제는 세명의 신인감독- <달걀과 돌멩이>의 황지, <클립>의 마야 밀로스, <서스데이 틸 선데이>의 도밍가 소토메이어- 에게 타이거어워드(대상)를 안겨주었다. 수상작들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여성감독의 데뷔작이라는 것, 로테르담에서 월드프리미어되었다는 것 그리고 수상의 영예를 안기엔 수준이 못 미치는 작품들이었다는 것이다(다만 <클립>은 포르노를 방불케 하는 몇몇 장면 때문에 영화제 기간 내내 입에 오르내리긴 했다).
사실 올해 로테르담의 하이라이트는 경쟁부문이 아니라 각종 특별전과 회고전쪽이었다고 여겨진다. 가령 감독, 평론가 그리고 영화제 디렉터인 피터 폰 바흐의 세계를 집중조명한 회고전에서는 미코 니스카넨의 자연주의적 걸작 <여덟발의 총성>(1972)이 (폰 바흐의 다큐멘터리 <미코 니스카넨 이야기>(2010)와 함께) 특별상영되었는데 핀란드 바깥에 이 영화가 소개된 건 이번이 처음
[유운성의 시네마나우] 걸작을 다시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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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그냥 영화로 보라’고 권했더니 반발이 심하다. 영화에서 허구 이상을 기대하는 모양이다. 외국에 있어 영화를 볼 형편이 안돼 공판기록의 주요 내용을 요약할 테니, 텍스트(공판녹취록)와 이미지(부러진 화살)가 서로 얼마나 일치하는지 알아서들 판단하시라. 내 요약의 객관성을 의심하는 분들은 김명호 교수의 홈페이지(www.seokgung.org)에 들어가, 그가 올려놓은 기록들을 직접 읽어보기를 권한다.
“판사, 법대로 하세요! 이게 재판이냐 개판이지.” 이 외침이 아마 영화의 주요한 메시지일 거다. 하지만 공판기록에 따르면, “법대로”를 외치면서 재판을 개판으로 만들어놓은 것은 정작 김명호 교수다. 사법부, 문제 많다. 하지만 감독이 그 말을 하기 위해 이 소재를 택했다면, 그건 완전히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공판기록 속의 김 교수는 로빈후드보다는 현실에서 망상의 세계로 철수해버린 돈키호테에 가깝다.
수학문제 출제의 오류를 지적한 것 때문에 해고됐다는 김 교수의 주장
[진중권의 아이콘] 재판이냐 개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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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보다 시트콤을 더 좋아한다. 로맨스보다 코미디가, 그중에서도 블랙코미디가 좋다. 사랑에 목숨 거느니 사소한 데 목숨 거는 인간들에 더 감정이입하고, 주인공들이 운명의 거대한 파도와 맞서 싸우는 것보다 일상의 찌질한 순간들에 맞부딪히는 이야기에 끌린다. 물론 이렇게 ‘안 팔리는’ 이야기나 ‘못 나가는’ 사람들을 TV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김병욱 감독의 <하이킥> 시리즈나 tvN <막돼먹은 영애씨> 정도가 드물게 맥을 이을 뿐이었던 국산 페이소스의 공급자로 얼마 전, 또 하나의 ‘진짜’가 나타났다.
MBC에브리원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2010년 인터넷을 통해 동명의 인디 시트콤을 공개했던 윤성호 감독의 새 버전 시트콤이다. 번뜩이는 재기와 홀롤로한 감성을 동반한 <은하해방전선>이나 <도약선생> 같은 그의 영화를 미처 예습하지 못했더라도 괜찮다. 윤성호 감독이 직접 밝힌 “위대한 미드 <오피스>가
[최지은의 TVIEW] 완전 제 스타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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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크코트>의 신아가, 이상철 감독을 개봉 즈음하여 두번 만났다.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서인데 첫 번째와 두 번째 만남의 분위기가 달랐다. 개봉 직전 만났을 때 기운차 보였던 그들이 두 번째 만남에선 좀 풀이 죽어 있었다. 완성도가 좋다는 독립영화계의 일반적인 평판과 별개로 이 영화는 관객을 많이 불러모으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연을 맡은 황정민씨의 상반신을 크게 잡은 포스터만 봐도 <밍크코트>가 대중을 상대로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진 않는다. 가족문제를 정직하게, 색다르게 다뤘다는 결기 같은 게 풍기지만 이 포스터만 봐서는 재미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기 어렵다. 하니, 이 영화의 흥행이 실망스러운 것은 마케팅의 요인도 없지 않을 것이다.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수상작으로서 프리미엄을 기대한 것치곤 극장에서 대접이 소홀했으나 신아가, 이상철 감독의 재능이 그렇게 흘려보낼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이 장편 데뷔작으로 보여준 것보다 앞으로 보여줄 것이 더 많은
[김영진의 인디라마] 가슴이 이끄는 대로 끝내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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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빈은 전작 <용서받지 못한 자>와 <비스티 보이즈>에서 조직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반쯤만 어정쩡하게 걸친 인물을 통해 한국사회의 단면을 이야기했다. 윤종빈은 부분을 미세하게 관찰할 때 역설적으로 넓게 조망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 역시 건달도 민간인도 아닌 신분으로 1980년대를 버텼던 최익현(최민식)의 삶을 두텁게 묘사함으로써 아버지 세대 전체를 조망하고자 한다. 특히 최익현이 기존 장르에서 단순 복제된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특성을 인물의 개성으로 삼투해 창조됐다는 점은 무엇보다 흥미롭다. 그러니까 ‘짧고 굵게’를 표방해야 할 장르적 인물은 ‘가늘더라도 길게’를 지향하는 한국적 인물로 변주된다. <범죄와의 전쟁>은 이러한 인물이 깡패보다 못한 방식으로 권력을 찬탈했던 군사정권의 지배와 무관하지 않으며, 그런 시대에는 오직 두 종류의 사람만 존재한다고
[전영객잔] 순응주의의 기원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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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알렉산더 페인과 조지 클루니의 첫 만남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사이드웨이> 출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두 사람은 긴 점심식사를 나누었다. 하지만 이들의 도킹은 불발로 끝이 났다. 알렉산더 페인은 “내가 지금 뭘 하는 건지 모르겠군”이라고 말하며 자리를 떴고, 조지 클루니는 “(당시에 알렉산더 페인을) 저주(하는) 인형을 만들어서 핀을 꽂아놨다”고 했다. 조지 클루니의 말이 진담인지 농담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호감을 확인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사이드웨이>에서 이루지 못한 감독과 배우의 인연을 <디센던트>에서 맺었으니 말이다.
-캐스팅은 어떻게 이뤄졌나.
=조지 클루니_알렉산더 페인이 다시 만나자고 했다. 약 2년 전이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그가 대본을 보내겠다고 했다. 난 대본을 읽기도 전에 하겠다고 했다. 그때 아마 <아메리칸>을 촬영 중이었을 거다. 최상
주인공은 ‘루저’가 아닌 나와 닮은 누군가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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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던트>를 하라!’고 신들이 마치 명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알렉산더 페인으로선 <디센던트>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중도 승선했지만, 굳이 그의 오랜 단짝인 시나리오작가 짐 테일러를 투입해 이야기를 새로 고칠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냇 팩슨과 짐 라시가 각색한 시나리오는 주인이 바뀐 프로젝트의 운명을 미리 점치기라도 한 것처럼 쓰여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와이 출신 소설가의 원작 자체가 알렉산더 페인의 관심을 끌 만한 요소를 상당 부분 지니고 있었다. 아내가 보트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지고, 딸에게서 아내의 부정 사실을 뒤늦게 전해 듣고, 결국 아내의 정부(情夫)를 찾아가는 중년 남자의 해프닝은 알렉산더 페인이 그동안 즐겨 다뤄왔던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면, <어바웃 슈미트>의 잭 니콜슨이 오랜 친구의 면상에 주먹을 먹인 이유를 더듬어볼 필요가 있다. 아니면, <사이드웨이>의 폴 지아매티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비극도 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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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장편영화 <디센던트>를 들고 7년 만에 돌아온 알렉산더 페인을 향한 구애가 뜨겁다. ‘로튼토마토’의 ‘톱 크리틱’ 41명 중 ‘글쎄올시다’라고 의견을 표명한 이는 4명에 불과하다. 관객 만족도 또한 82%에 달한다. 올해 골든글로브에서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디센던트>는 그 기세를 몰아 오스카에서도 5개 부문(작품상, 남우주연상, 감독상, 각색상, 편집상)에 노미네이트되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고향 오마하(<시민 루스> <일렉션> <어바웃 슈미트>)를 떠나 캘리포니아(<사이드웨이>)를 거쳐 하와이(<디센던트>)로 날아간 알렉산더 페인은 이번 여행에서 어떤 군상을 우리 앞에 내놓았을까. <디센던트>의 캐릭터와 얼개를 살펴보고, 알렉산더 페인과 조지 클루니의 짧은 대화를 덧붙였다.
1990년대 말, ‘뉴 뉴웨이브’(new new wave)라 불리는 일군의 감독들이 있었다. 워쇼스
졌다고 인정해, 남자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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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의 감성을 최신 제품에 표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그것이 대기업 제품이었을 경우엔 더욱 그렇다. LG는 금성사 시절에 최초로 한국에 라디오를 출시한 자부심이 있었다고 한다. 그 라디오를 떠울리게 하는 레트로 오디오기기 RA26가 출시됐다. 딱 봐도 옛날 오디오 같은 이 제품은 나무 무늬의 캐비닛 스타일로 아날로그식 튜너 다이얼과 은은한 캔들 라이팅이 약간은 작위적이지만 추억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CD플레이어에 USB단자를 갖추어 다양한 디지털 기기와 연결이 가능하며 20W의 출력으로 소리도 나쁘지 않다. LG가 다시 오디오 제품을 내놓은 것도 신기하지만 얼마 전 LG클래식 TV에 이어 두 번째 아날로그의 감성이 가득한 제품을 출시한 실험적 시도에 제조사나 제품이나 박수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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