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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허락없이 내 눈앞에서 멀어지지 말거라!”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에서 왕 이훤(김수현)의 월(한가인)을 향한 명령은 고스란히 20, 30대 여성 시청자를 향해 전이된다. 시종 ‘감히!’를 언급하며 뭇 여인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이훤은 백성의 안위와 정국의 안정을 꾀하는 기존 사극 속 왕과는 엄연히 다른 존재다. 조정 정사를 논하던 왕은 이제 그의 권위를 온전히 월을 향해 열어둔다. 이른바 로맨틱코미디물에서 최고 위치를 점하는 남자주인공 캐릭터로서 정의해야 할 왕의 표본의 새로운 정립이다. 현대극으로 따지면 실장 혹은 본부장으로 통칭되는 부류로, <파리의 연인>에서 한기주가 유학생 강태영에게 재량껏 베풀었던 아량과 <발리에서 생긴 일>의 정재민이 빈털터리 이수정에게 과시적으로 퍼부었던 물량공세,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이 액션배우 길라임에게 보여주었던 복지부동의 자신감을 똑같이 나눠 가진 캐릭터다.
이 경우 사극의
실장보다는 왕이 절대적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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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口 亡 己. 죽은 이가 남긴 글자는 뚫을 곤, 입 구, 망할 망, 몸 기다. 집현전 학자와 반촌 사람들이 저마다 해석을 내놓는다. 입을 뚫어 몸을 없앤다. 몸을 뚫어 입을 없앤다. 입을 없애 몸을 뚫는다. 곤의 1획은 전하요, 구의 3획은 3정승, 망과 기의 획을 합쳐 6은 6조를 뜻한다. 4개의 한자음이 사실 훈민정음을 뜻했고, 결국 ‘밀본’을 지칭했다는 결과보다 수많은 해석을 낳는 과정이 더 흥미로웠던 <뿌리 깊은 나무>의 한 챕터다. 연쇄살인의 음모를 파헤치는 가운데 해석에 참여한 등장인물과 시청자도 탐정이 됐다. 정확히는 <장미의 이름>의 윌리엄 수사나 <다빈치 코드>의 랭던 교수 같은 기호학자가 된 셈이다. 돌이켜보면 최근 사극에서 탐정이 아닌 주인공이 없었다. <허준>의 허준이 무술실력까지 뽐내며 갖가지 미스터리를 돌파한 이후, <대장금>의 장금은 의술로 부모의 죽음에 얽힌 음모를 풀어냈고, <성균관 스캔들&g
조선시대에도 탐정이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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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먼저가 아니라 분노가 먼저입니다.”
<선덕여왕> 속 유신랑의 말이 아찔했다. “그럼 나중에는 궁궐로 쳐들어가는 거예요?” <추노>의 초복이가 순진무구한 얼굴로 던진 질문에, 업복이는 사색이 됐고 보는 이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선덕여왕>과 <추노>는 각각 2009년과 2010년에 방영된 사극이다.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굳이 돌이킬 필요는 없다. 그저 당시의 정치 현실이 국민에게 안긴 아픔이 있었고, 할 수 있는 게 촛불을 켜는 것뿐이었다는 것만 떠올려보자. 심간(心間)의 고통이 있었으나, 정치와 이성의 논리 때문에 차마 구중(口中)에 올리기는 어려웠던 역심(逆心)의 말들이 많았다. 그것을 당대의 사극이 먼저 내뱉어준 것이다. 배설의 쾌감과 다를 게 없었다.
사극의 전성과 쇠락이 현실정치의 국면을 따른다는 건 가설이 아닌 정설이다. 1980년대에는 <조선왕조 오백년>이 금기의 영역을 건드린 반면, 문민정부가 출범
정조와 세종은 왜 자꾸 등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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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이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있다. 광해군의 숨겨진 비밀을 소재로 한 팩션사극이자, 이병헌의 첫 사극 출연으로 화제가 된 <나는 조선의 왕이다>(가제)를 비롯해 조선시대 얼음저장고를 둘러싼 코믹사극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세종이 임금이 되기 전 거지와 자리를 바꿔 겪는 사회상을 그린 코믹사극 <나는 왕이로소이다>, 한 여자를 둘러싼 왕과 내시의 사랑과 욕망을 그린 <후궁: 제왕의 첩> 등이 촬영 중이거나 촬영준비 중이다. 조선시대 관상쟁이를 통해 어두운 시대상을 조명한 한재림 감독의 <관상>, 전령과 그에 맞서는 세력간의 대결을 그린 권종관 감독의 <전령>, 사도세자의 미스터리한 죽음을 다룬 김한민 감독의 스릴러 <충신>, 조선의 옥쇄를 삼킨 귀신 고래를 둘러싼 산적과 해적의 대결을 그린 천성일 작가의 <해적> 등도 현재 제작준비 단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면 위에 떠오른 작품이 줄잡아
역사 속에서 답을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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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품은 달>이 38.4%의 시청률을 올리며 고공행진 중이다. 이른바 퓨전사극의 등장과 함께 사극을 소비하는 층에도 일대 변화가 오고 있다. 중장년층의 고정 관객을 유치하는 데 중점을 두었던 사극은 이제 20~30대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다양한 소재와 장르로 승부수를 둔다. 지난해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과 <최종병기 활>로 관객 동원에 성공한 충무로도 새로운 사극과의 조우를 서두르고 있다. 사극이 가진 과거라는 판타지가 소재의 고갈로 허덕이는 충무로에 멜로와 코믹, 액션과 스릴러라는 다양한 장르를 배양할 토양 역할을 하고 있다. 정통사극과 결별한 새로운 사극영화는 어떤 모습일까? 2012년 한국영화의 키워드가 된 사극. 충무로는 왜 사극에 열광하는지, 또 사극의 유형별 강점은 어떤 것인지 조목조목 살펴본다.
이리 오너라, 사극이 납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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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작교 형제들' 후속으로 방영될 KBS 새 주말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은 능력 있는 고아'를 이상형으로 꼽아온 커리어우먼 차윤희(김남주)가 완벽한 조건의 외과 의사 방귀남(유준상)을 만나 결혼에 골인하지만, 상상하지도 못했던 '시댁 등장'으로 생기는 파란만장 사건들을 담은 드라마로 오는 2월 25일 첫 방송 된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 강민혁,"김남주 유일하게 무서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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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독의 영화노트] <워 호스> 자신이 존엄한 존재라는 위안
[올드독의 영화노트] <워 호스> 자신이 존엄한 존재라는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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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락선(37) 촬영감독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1990년대 중반 조명 스탭으로 일찌감치 영화 일을 시작했고, <바람난 가족>(2003)으로 남들보다 빨리 조명감독 타이틀도 얻었다. 그랬던 그가 <비스티 보이즈>(2008) 때부터는 직접 카메라를 들고 있다. 윤종빈 감독은 <비스티 보이즈>에 이어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에서도 그에게 촬영을 맡겼다. “조명감독 출신이라 빛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다. 촬영으로 멋을 부리려고 하지 않는다. 내 영화를 찍어서가 아니다. 김광식 감독의 <내 깡패 같은 애인>을 보면 알겠지만 그는 찍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배우의 눈을 겨냥한 그의 카메라는 투박하고 동시에 묵직한데, 그런 시선은 요즘 찾아보기 힘들다.” 윤종빈 감독은 다른 촬영감독들과 다른 그의 이력이야말로 그의 카메라가 갖는 장점이라면서 “다음 작품도 무조건 같이할 것
[고락선] 클래식하게, 정석대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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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적으로 계승되기만 한다면 전통은 시너지를 낸다. 3년 전 발매됐던 올림푸스 PEN은 필름카메라 PEN의 간편함과 고화질을 이어받아 큰 인기를 모았다. 올림푸스 OM-D 역시 필름카메라 OM 시리즈의 전통을 잇고 있다. 필름카메라 OM은 1973년 출시 당시 무겁고 크고 시끄러웠던 SLR 카메라들의 단점을 보완해 탄생했던, 시대를 대표할 만한 카메라였다. OM-D는 전작에 누가 되지 않을 성능을 갖췄다. 클래식한 디자인은 여전하고, 전자식 뷰파인더, 세계 최초 5축 손떨림 보정 기능 등 최고급 사양이 적용됐다. 가장 큰 특징은 고화질 ‘전자식 뷰파인더’의 장착. 본체에 내장된 뷰파인더는 144만 화소의 고해상과 광학 설계가 적용돼 어떤 환경에서도 안정된 시야를 확보한다. 가볍고 내구성이 강한 마그네슘 보디와 방진, 방적 기능도 인상적이다. 보디 각 부분에는 실드(shield)를 적용해 모래바람이 있는 환경에서나 비가 오는 등 악조건에서도 촬영이 가능하다. 3월부터 예약 판매에 들어
[gadget] 전통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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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
1. 크기: 182.0 x 18.6 x 83.5mm(W x H x D)
2. 무게: 279g
특징
1. 깜짝 놀랄 만큼 가볍고 뛰어난 조작감.
2. 다양하고 깊이있는 전용 게임, 발매될 게임들.
3. 아, 배터리. 3시간은 너무했다.
소니가 내놓은 포터블 게임기 PS VITA(이하 비타)를 두고 누군가가 말했다. “너무 시대착오적인 것 아닌가.” 틀린 말은 아니다. 스마트폰이 게임시장의 주인공이 된 지금, 굳이 휴대용 게임기를 만들 이유가 있었을까.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게임 왕국 닌텐도가 얼마 전 누적된 적자로 주주들에게 고개를 숙였던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론이다. 포터블 게임의 절대 강자였던 닌텐도 DS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지금, 소니는 바로 이 비타를 내놨다.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직접 만져본 비타는 깜짝 놀랄 만큼 가볍다. 비슷한 크기의 스마트폰들과 비교해도 인상적일 만큼 가볍다. 손과 혼연일체가 된 것 같은 그립감도 훌륭하다. 시간이 흘
[gadget] 아, 비운의 컬트 게임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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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 하이니스> Your Highness (2011)
감독 데이비드 고든 그린
상영시간 102분 / 화면포맷 2.40:1 아나모픽
음성포맷 DD 5.1 영어
자막 한글 자막
출시사 유이케이
화질 ★★★ 음질 ★★★★ 부록 ★★
로저 에버트는 미국에서 근래 개봉한 <더 시터>에 별 하나를 부여했다. 리뷰에서 그는 “이 영화의 감독이 데이비드 고든 그린임을 말하는 게 고통스럽다. 위대한 미국 영화감독이 될 운명이었던 그는 지금 그렇고 그런 영화들의 황무지에서 방황하고 있다”라고 썼다. 그린의 초기작 세편 모두에 만점을 준 그는 <유어 하이니스>와 <더 시터>를 보고 심각한 충격을 받은 것 같다. 몇년 전만 하더라도 그린은 미국 작가영화의 미래로 평가받은 감독이다. 한국의 한 영화제를 찾았던 그린을 만난 평론가 홍성남은, 데뷔 당시 주목할 만한 작품을 내놓은 건 인정하지만 아직까지는 “불안정하게 구축된 세계”라고 평가했다
[DVD] 완전히 개판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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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2>로 <해리 포터> 시리즈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과연 막을 내린 것일까? 영화는 주인공들이 자기들끼리 결혼을 해서 그 자식들을 다시 호그와트로 보내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작가는 이렇게 동창회를 학부형회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리즈를 확실하게 마무리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모리아티 교수와 얼음 계곡에 몸을 던진 셜록 홈스를 다시 살릴 수는 있어도, ‘해리 포터: 육성회비의 비밀’ 같은 것을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마법학교 호그와트의 드라마틱한 비주얼 없이 이 영화가 설립되기는 힘들다. 지구상엔 수많은 건축양식이 있지만 이런 마법 이야기의 배경으로 가장 인기있는 것은 역시 고딕이다. 카프카의 <성>에서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에 이르기까지 그 명단은 길다. 건축적으로 보자면 고딕은 어둡고 감춰진 구석을 많이 갖고 있는 건축 양식이다. 마치 침엽수림처럼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수많은
[architecture+] 첨탑 아래 비밀의 방은 이제 지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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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이 아니라 ‘뮤신’이라 불러보면 어떨까. 주목받는 개그맨으로 출발했던 정성화는 긴 세월을 지나 이제는 뮤지컬 배우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2010년에는 <영웅>으로 국내 뮤지컬 시상식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한국 뮤지컬 대상’과 ‘더 뮤지컬 어워즈’의 남우주연상을 모두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영화는 새로운 도전 무대다. <황산벌>(2003)로 ‘첫삽’을 뜬 이후 지난해에는 <히트>에서 불법 이종 격투기장을 찾은 까칠하고 변덕스런 고객, <위험한 상견례>에서 경상도 여자 다홍(이시영)의 오빠이자 순정만화 마니아로 출연해 뮤지컬로 바쁜 가운데 의미있는 ‘다작’을 했다.
최근 350만 관객을 돌파하며 그의 영화 출연작들 중 최고 흥행작으로 기록될 <댄싱퀸>은 그 흥행 결과뿐만 아니라, 영화배우로서의 정성화를 새롭게 발견하게 해준 작품이라는 점에서 각별하다. 젊
[정성화] 이 배우가 짓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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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 음악웹진 ‘보다’ 편집장 ★★★★
앨범의 첫곡 <Born To Die>는 이 앨범의 성격을 규정짓기에 충분하다. 전주에 이어 라다 델 레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순간 노래는 우리를 어느 흑백영화 안으로 데려간다. 환상과 낭만과 신비로움이 한자리에 엉켜서 듣는 이를 잡아끈다. 이를 가리켜 우리는 흔히 ‘홀린다’는 표현을 쓴다.
이민희 / 음악웹진 ‘백비트’ 편집인 ★★★★
메이저 소속사로 옮겼더니 바로 대박. 1월 말 나왔는데 벌써 세계시장에서 80만장을 해치웠다. 고전적이면서도 음산한 사운드, 나이답지 않게 차분하고 고혹적인 목소리, 재즈와 일렉트로니카를 두루 다루는 폭 모두가 대견하고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덕분이다. 플로렌스, 니콜 앳킨스, 블랙 박스 레코더 등 다양한 뮤지션이 스쳐지나는 와중에 그들만큼 믿음직하고 그들 이상으로 신비롭다. 흐뭇한 마음으로 인정한다. 2012년을 여는 첫 번째 우수 앨범.
최민우 / 음악웹진 ‘웨이브’ 편집장 ★★
‘짝퉁
[hottracks] 흑백영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