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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만난 사람] 남포동에서 해운대까지 쏜다!

제레미 아이언스

선글라스? 노!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린 1997년 10월, 분명 그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무슨 큰일이 일어났던 것으로 짐작하고 있으리라. 스치는 사람들의 눈살이 찌푸려들 정도로 경광등은 미친 듯이 울었고 전조등은 물론이고 비상깜빡이까지도 정신없이 깜빡거렸다. 거기에 더해 ‘한겨레신문’이라는 로고가 양쪽 문짝에 선명한 언론사 차량이었으니 무슨 사건이 나도 크게 난 것으로 짐작했을 것이다. 심지어 조수석에 탄 후배는 몸의 반을 창문 밖으로 내밀고 앞에 가던 차량에게 바쁜 손짓하며 비켜달라고 소리까지 꽥꽥 지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운전을 하는 나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른 동료가 어디선가 신호등을 조작해서 모두 녹색불로 바뀌길 기대하고 아예 바퀴를 접고 SF영화의 한 장면처럼 날개를 펴고 날고 싶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비 오듯 땀을 쏟고 있었다. 남포동을 출발한 승용차는 해운대 파라다이스 호텔에 도착하고서야 그와 같은 소음과 행동, 그리고 상상을 멈출 수 있었다. 그 모든 소란은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와의 인터뷰와 촬영시간을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별것도 아닐 수 있지만 외국의 유명배우를 표지로 촬영한다는 것은 나에겐 당시에 무척이나 큰일이었다. 초기의 부산영화제는 남포동을 중심으로 열리고 있었기에 해운대까지는 꽤 먼 거리였고 아마도 지금의 도로사정이라면 거의 시간 맞추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턱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짙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그는 선글라스 벗기를 웃으면서 정중히 거절했고 어떻게든 눈동자를 보고 싶은 나는 약간의 조명을 수정하여 눈동자가 또렷한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123호 <씨네21>의 표지는 이렇게 완성되었다. 쉰 살의 그를 촬영했던 내가 이제 그의 나이가 되었다. 왕성한 그를 내가 응원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