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BIFF Daily > 17회(2012) > 추천영화
[cine choice] <애프터 루시아> After Lucia
이화정 2012-10-09

<애프터 루시아> After Lucia 미셸 프랑코 | 멕시코 | 2012년 | 102분 | 월드 시네마 OCT09 소극장 13:00 OCT10 CGV5 20:00

차마 지켜보기가 힘들다. <애프터 루시아>가 전개하는 ‘왕따’의 문제는 말할 수 없이 심각하다.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로베르토와 그의 딸 알레한드라. 멕시코시티로 이사 온 뒤, 로베르토는 레스토랑의 셰프로, 알레한드라는 새 학교에서의 적응으로 각자 바쁜 듯 보인다. 그러나 알레한드라가 파티에서 남학생과 찍은 섹스 동영상이 휴대폰으로 전송되면서 그녀의 일상은 생지옥이 된다. 십대들이 가하는 잔혹함의 수위는 상상을 넘나든다. 학교 안에서 그녀에게 친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화장실까지 알레한드라를 따라와 그녀의 벗은 모습을 강제로 찍어가는 남학생들이나, ‘창녀’라는 표현을 쓰며 집단 폭행을 가하는 여학생들이나 폭력적이기는 매한가지다 생일축하라는 명목으로 그녀에게 자행된 폭력은 공포영화를 볼 때의 충격에 버금갈 지경이다.

알레한드라는 거친 학교생활과 엄마를 잃고 아버지와 헤쳐 나가야 할 집안 문제를 동시에 떠안고 있는 가여운 소녀다. 아내가 남긴 세간을 보며 눈물 훔치는 로베르토와 달리 소녀는 시종일관 무표정함으로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감내해나간다. 사건의 파고가 이토록 높은 데 반해 좀처럼 법석을 떨거나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셸 프랑코 감독의 화법은 도드라진다. 알레한드라를 좇는 카메라는 놀랍도록 절제되어 있으며, 아버지와 딸은 침묵에 가까운 대화를 나눌 뿐이다. 이사 온 집의 휑한 가구는 슬픔을 안으로 삭이는 이 부녀의 감정 상태를 고스란히 반영한 결과물이다. 영화가 이렇게 침묵할수록, 냉정한 시선을 유지할수록, 관객에게 전달되는 반향은 되레 커진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 끔찍한 그물망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건 어쩌면 알레한드라의 유일한 지킴이인 아버지뿐일 것이다. 딸을 위한 그의 마지막 행동은 선택이 아니라 어쩌면 이 지독한 악행의 고리를 끊어줄 유일한 해결책일지 모른다. 두 번째 장편 만에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 수상을 한 미셸 프랑코 감독의 재능을 유감없이 증명해주는 작품이다.

Tip. 왕따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작품. 이 영화의 극단적 결정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