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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는 블레이크에게만 달라붙는다
블레이크는 집에 들어가는 대신 온실에 들어가서 삽을 가지고 나온다. 그리고 집 바깥 언덕길을 내려오다가 미끄러진다. 이 장면이 시종일관 반복되는 이 언덕길이 나오는 첫 번째 숏이다. 이 장면은 같은 구도, 같은 위치에서 반복된다. 그러므로 잘 기억할 것. 이 언덕이 나올 때마다 시간은 기묘해진다. 말하자면 시간의 언덕. 그 언덕에서 미끄러져 넘어지기. 이 장면까지 앰비언트 사운드가 단 한번도 빠진 숏이 없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게 되는 것은 다음 장면에서 아시아와 스캇이 서로 껴안고 자고 있는 이층 방(그런데 이층이 맞을까? 혹시 삼층이었던 것은 아닐까? 이 영화에는 계단의 트릭이 있다)을 보여줄 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이 10번째 숏은 이 영화에서 첫 번째 현실적인 디제시스의 장면이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화면과 사운드가 일치한다는 의미에서만 그렇다. 그 이층 방에 누워 있는 그들 옆에는 소리를 ‘죽인
그의 죽음 뒤 시작된 ‘마지막 날들’, <라스트 데이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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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전에, 그러니까 제프 버클리가 자살했을 때, (음악에 관한 글을 쓰는) 성문영씨와 이야기를 하다가 커트 코베인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자 성문영씨는 분을 참다못해 급기야 흥분하면서 단호하게 선언처럼 말했다. “그런 놈들은 다 지옥에 가야 돼요, 아니, 당연히 지옥에 갔을 게 틀림없어요. 이렇게 소녀의 애간장에 불을 질러놓고는 그냥 그렇게 자살해버리면 살아남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에요!”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수작인가. 그런 놈들은 다 지옥에 가야 한다. 거의 좋아 죽을 지경이 되도록 유혹한 다음 그렇게 자살해버리면 살아남은 나는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살아남은 자의 그리움, 죽은 자의 침묵. 말하자면 어처구니없는 사모곡.
<라스트 데이즈>의 죽음, ‘자살’
그런 다음 한참 뒤에 구스 반 산트가 커트 코베인의 마지막 나날을 영화로 찍는다는 말을 그에게서 직접 들었다(그는 처음부터 커트 코베인에 관한 전기영화가 아니라 ‘마지
그의 죽음 뒤 시작된 ‘마지막 날들’, <라스트 데이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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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크루즈 주연의 <미션 임파서블3>가 2주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배급사인 UIP의 집계에 따르면, 개봉 2주차를 맞은 <미션 임파서블3>은 5월13, 14일 주말 이틀간 서울관객 24만5천명을 추가하며 전국 누계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는 개봉 3주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했던 <킹콩> 보다도 빠른 성적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통계에 따르면 <미션 임파서블3>는 관객 점유율에서도 지난주보다 4.3% 높은 50.3%를 기록했다. 2위와 3위는 지난 주와 동일하다. 지난주 2위를 차지했던 <맨발의 기봉이>는 주말 이틀간 서울관객 7만6천명을 추가하며 전국 누계 200만 관객을 돌파했고, 3위의 <사생결단>은 전국누계 관객 190만명을 기록했다.
한편 이번주에 개봉했던 영화 중에서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의 선전이 돋보인다. 서울 40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서울 관객
<미션 임파서블3>, 전국 300만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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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영, 수애 주연의 <나의 결혼원정기>가 제8회 타이페이영화제 ‘국제 청년감독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이 부문은 30세 미만 감독의 데뷔작을 대상으로 하는 섹션. 올해는 <나의 결혼원정기>를 포함 총 12편이 초청됐다. <나의 결혼원정기>는 황병국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결혼을 위해 우즈베키스탄으로 원정을 떠나는 농촌 총각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제8회 타이페이영화제는 6월24일 개막한다.
<나의 결혼원정기>, 타이페이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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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별 보아가 칸 영화제에 참석한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헷지>의 성우로 참여한 보아는 제59회 칸 국제영화제에 참석해 공식 프리미어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헷지>는 올해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 진출작. 보아는 5월21일 오후 2시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2틀동안 각종 인터뷰를 진행한다. 한편 CJ엔터테인먼트 쪽은 “보아는 이번 애니메이션에서 한국어뿐 아니라 일본어로도 ‘주머니 쥐’ 캐릭터를 연기했다”고 밝혔다. 59회 칸 영화제는 5월17일 개막한다.
보아, 칸 영화제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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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유람선 포세이돈호의 침몰을 그린 영화 <포세이돈>이 5월15일 서울극장에서 언론시사를 통해 첫선을 보였다. <트로이>의 볼프강 페터슨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1972년에 만들어진 <포세이돈 어드벤처>를 리메이크 한 작품. 대형 유람선과 자연재앙을 소재로 했다는 점 때문에 제작단계부터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과 자주 비교 언급되곤 했다.
영화의 본격적인 시작은 47미터가 넘는 거대한 파도 ‘로그 웨이브’가 등장하면서 부터다. 연말을 맞아 파티를 즐기던 승객들은 갑작스런 재난에 당황하고, 배는 파도의 엄청난 위력을 견디다 못해 뒤집힌다. 배의 구조물들은 차례로 파괴되고 가스 폭발은 화재를 일으킨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포세이돈호, 축제의 공간이었던 그 곳은 죽음의 장으로 변한다.
볼프강 페터슨 감독은 재난영화의 공식을 충실히 따라간다. 약혼을 앞둔 제니퍼(에미 로섬)와 그의 아버지 로버트(커트 러셀), 프로 도박사 존
<포세이돈> 언론에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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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가족><역전에 산다><몽정기2> 등에 출연한 탤런트 고호경이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5월15일 자택에서 긴급 체포됐다. 서대문경찰서는 “고호경이 지난 10월부터 최근까지 수차례에 거쳐 동료 가수의 집에서 대마초를 피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찰은 그 동료의 집에서 증거물로 대마 3g과 페트병으로 만든 파이프 등을 압수했다. 한편 고호경의 소속사 트윈클링스타즈 김권종 대표는 “(고호경이) 호기심으로 대마초를 1회 흡연한 사실이 있다.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고 진술한 상태. 경찰은 고호경과 동료 연예인 2인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고호경,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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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축구를 응원하는 마음과 같다"
4월26일 K&J 사무실에서 만난 강우석 감독은 2개월 전 현장에서와 달리 평화로운 표정이었다. 여전히 후반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홀가분한 듯한 인상이 역력했다. 막바지까지 결말 부분의 시나리오를 완성하지 못한 채 고통스럽게 촬영을 진행하고 있었기에 이 과정을 끝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한 모양이었다.
-<한반도>는 어느 정도 완성됐나.
=이제 편집을 다 마치고 녹음실로 넘어갔다. 문제는 CG인데, 분량은 많지 않은데 고난이도 작업이 많아서 6월 말에나 끝날 것 같다.
-고난이도 CG라면 어떤 것인가.
=해상 전투신 CG다. 해군의 협조를 받아서 구축함을 띄워 찍긴 했는데, 대수를 늘리는 작업이 쉽지 않은 것이더라.
-<한반도>에 담은 내용이 현실과 유사하다. 한·일관계가 긴장국면을 맞고 있다.
=그러게 말이다. 애초엔 가상드라마였는데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겠다. 애초 구상은 가상이지만 영화적
강우석의 <한반도> 촬영현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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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차지 않는 연기, 갈데까지 몰고간다
2월20일 밤에 찾은 영종도 인근의 건재업체에서는 야간 촬영이 얼추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날 촬영분은 국새를 찾아낸 민재와 유식을 상현이 납치해오는 대목. 상현과 민재의 폭발적인 감정 대립이 가장 중요한 내용이 될 것이다. 이 밤 안에 60컷을 모두 찍어야 한다는 강우석 감독의 표정은 더욱 긴장돼 있었다.
야간 촬영인 탓에 조명세팅에 넉넉한 시간이 필요한 상황. 하지만 강우석 감독은 연신 채찍을 휘둘렀다. 그는 조명팀 스탭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빤히 보면서도 “자, 슛 테스트!”라고 외쳤다. 의자 앞쪽 끝에 엉덩이만 간신히 걸치고 언제든 벌떡 일어날 준비를 한 채 앉아 있는 모습이나 의자까지 가는 몇초가 아까워 걸어가면서 “자, 슛 가자!”라고 외치는 모습만 봐도 그의 성질이 꽤나 급하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성마르기로서니 뭐 빠져라 조명기를 들고 뛰는 스탭들을 보면서 닦달을 하다니. 그럴 필요까지
강우석의 <한반도> 촬영현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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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강우석 감독은 <한반도>의 편집을 마쳤다. 그는 예의 습관대로 가까운 이들을 불러 이 거친 편집본을 보여줬고, 이런저런 반응을 접수했다. 그렇게 편집본을 본 이들 중에는 “역시 강우석 영화답게 호쾌하다”며 칭찬하는 쪽이 있는 반면, “너무 국수주의적 냄새가 난다”고 우려하는 쪽도 있지만, 10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대작이란 점과 최근 일본의 독도 탐사계획으로 갈등이 불거지고 있는 한·일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사실 등으로 미뤄볼 때, 7월 이 영화가 개봉되면 뜨거운 화제를 몰고 올 것이란 예측은 충분히 가능하다. 사실, <한반도>는 지난 2월 중순 영화주간지 3곳에만 은밀히 현장을 공개했다. 강우석 감독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이 두 차례의 현장공개는 불행히도 영화 자체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시나리오를 본 적도, 편집본 ‘시사회’에 참여하지도 못한 터, 잠깐의 방문으로 어찌 <한반도>의 실체를 말할 수 있
강우석의 <한반도> 촬영현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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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정보를 현실에 활용하기로 한 K
그렇게 중독증세는 심화되어갔지만 K는 일말의 자존심을 버리지 못했다. 그녀는 할리우드 배우를 직접 취재하지 못한다면 정보라도 풍부하게 알아야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다고 주장했고, 가끔은 그 정보들을 현실에 투영했다. 그녀가 몸담고 있는 회사가 ‘아름다운 영화인’이라는 제목의 기부 캠페인을 벌일 무렵이었다. 스타들이 돈쓰는 법에 관한 프로그램인 <스타들이 사는 법> 등에 푹 빠져 있던 K는 한국의 배우들도 기부문화에 익숙해져야 한다며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프로강사를 초빙하여 빈민가 아이들에게 춤과 노래를 가르쳤다는 이야기와 피어스 브로스넌이 암과 동물보호 재단에 정기적으로 기부를 한다는 미담을 늘어놓았다. 르네 젤위거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입은 카나리아색 드레스를 칭찬하는 <스타 스타일>을 인용하며 다른 형식의 아카데미 기사를 시도해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가 그런 정보를 이용하여 좋은 기사를 쓴 적이 없다는 사
셀러브리티 프로그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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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십과 스캔들까지 사랑해”
코미디언 데브라 윌슨이 TV 프로그램에 나와 “바비는 정말 최고의 남편이에요. 아, 그런데, 내 약이 어디있죠?”라며 약물중독에 빠진 휘트니 휴스턴을 비웃는다. 한국이었다면 그 프로그램은 다음 에피소드 앞에 사과자막을 내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방송사 E엔터테인먼트와 윌슨은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명사와 스타를 비웃으며 꿋꿋하게 방송을 계속했다. 요즈음 케이블TV 프로그램에서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셀러브리티 프로그램들은 이처럼 한국 연예프로와는 다른 재미로 시선을 끌고 있다. 그 프로그램들엔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셀러브리티’라 불리는 상류사회의 존재와 스캔들에 너그러운 개방적인 태도, 재치있게 풍자하고 공격하는 화술이 있기 때문이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든 셀러브리티 프로그램들. 그 중독자의 고백 수기가 여기에 있다.
많은 이들이 연예기자와 영화기자를 구분하지 못한다. 최소한 영화기자 K의 친구들은 그러하여 몇달 만에 그녀를 만나면 영화
셀러브리티 프로그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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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 코에상)와 프랑소와(미셸 봄포일) 부부가 2살 난 아들과 함께 한적한 공원으로 소풍 나온 풍경은 ‘가정의 달’ 공익광고로 이용해도 손색없을 만큼 정겹고 평화롭다. 초록빛 나무와 풀 위에 어우러진 부부의 키스는 달콤하기보다 아름답고, 그 곁에서 혼자 노니는 아이의 모습은 눈이 시리도록 예쁘다. 안정된 행복의 순간을 숲속의 차분한 속도감으로 즐기는 자태가 다른 무엇보다 돋보인다. 마리가 프랑소와를 깊이 사랑하고 신뢰한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마리가 외간남자 빌(토니 토드)의 감각을 사랑하게 된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유럽적 혹은 프랑스적 소풍의 풍광이 드러내지 못하는 진실의 대비를 관객은 오래도록 보고 있어야 한다.
‘비밀’이란 원제를 가진 이 작품은 보이지 않는 대비와 보이는 대비를 고요히 병렬시키며 드라마를 돋워 나간다. 마리의 몸은 유난히 하얗고 빌의 몸은 투박하게 거무튀튀하다. 흑백의 뒤엉킨 몸뚱이를 대비시킨 까닭이 있을 것이다. 마리는 백과사전 영업
지나치게 낯익은 테마를 나직하게 다루는 야심, <세일즈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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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제목 <레밍>은 스칸디나비아 지역에만 서식한다는 쥐의 종을 가리키는 말에서 빌려왔다. 그 쥐가 프랑스 남부 어느 중산층의 집안에서 발견되면서 한 부부의 일상적 삶이 환상의 구역으로 들어선다. 첨단전자기업체 직원 알랭(로랑 뤼카스)은 아내 베네딕트(샤를로트 갱스부르)와 평안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사장 내외를 초대하여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부터 불안의 조짐이 보인다. 갑자기 사장 앙드레(앙드레 뒤솔리에)와 부인 알리스(샤를로트 램플링)가 식탁 앞에 앉아 부부싸움을 벌이며 초대자인 알랭 부부를 난처하게 만든다. 그즈음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알 길 없는 레밍의 시체가 집에서 발견되고, 사장의 부인 알리스는 이제 알랭을 유혹하려 한다. 그리고는 난데없이 알랭의 집을 찾아와 자살한다. 인물들의 정체는 애매해지고, 마치 서로 영혼이 뒤바뀐 양 그 관계가 복잡해진다.
<레밍>은 <당신의 영원한 친구, 해리>에 이은 도미니크 몰의 최근작이다. 2005
도미니크 몰의 최근작, <레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