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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참 싸가지 없이 쓰시네요.” 벌써 지난달의 일이던가? KBS <추적 60분>의 어느 PD가 어느 날 내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이렇게 말한다. “전화, 참 싸가지 없이 하시네요.” 일단 이렇게 대꾸해놓고 무슨 일인지 물었다. 듣자하니 황우석 관련 KBS <추적 60분>과 MBC <PD 수첩>을 비교하며 ‘많이 차이가 난다’고 했던 내 말이 무척 기분 나빴단다.
“그 방송 보고서 하는 말입니까?” KBS 자체 내에서 방영불가 결정을 내렸는데 그걸 무슨 수로 보나. 게다가 문형렬 PD가 올린 시놉시스를 보니 인터넷 바닥에 굴러다니는 허접한 얘기 그러모은 것. 설사 방영을 했어도 봤을 것 같지도 않다. 나는 흥분한 그에게 이렇게 대꾸해주었다. “저는요. 계란이 곯았는지 안 곯았는지 알기 위해 곯은 계란을 다 먹어보지는 않거든요.”
그러더니 왜 <추적 60분> 전체를 모독했냐고 한다. 비교를 하려면 <추적 60분>이나 &l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두 시간 반 감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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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시대>는 오랜만에 몰입해서 보는 드라마다. 심지어 방영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오후 10시 전에 술자리를 파하고 집에 들어간 경우도 두번이나 있었다. 이것은 축구중계를 제외하면 내 일상에서는 일종의 사건이다. 감우성(동진)과 손예진(은호)의 무르익은 연기, 공형진(준표)의 넓은 오지랖과 능청스러움, <미술관 옆 동물원>의 춘희를 연상시키는 신인 이하나(지호), ‘한국의 다코타 패닝’ 진지희(은솔)의 무표정 덕분에 매주 브라운관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연애시대>는 이혼한 두 남녀의 미련과 망설임을 다룬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상황이 두 사람은 반갑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하다. 이정석의 노랫말처럼 두 사람은 ‘사랑하기에 떠나신다는 그 말 나는 믿을 수 없어’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주위를 맴돌고 카페에서 마주치고 단골 술집을 공유하며, 핫라인을 살려둔 채 근본적인 이별을 고민한다는 설정 자체가 모순이다. 하지만 이해
[오픈칼럼] <연애시대>, 끄덕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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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이상한 사랑이 많다. 때로는 범죄와 다름없는 사랑도 있다. <완전한 사육> 1편의 이와조노는 영혼과 육체가 일치하는 완전한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납치’를 한다. 그건 명백한 범죄이고, 다른 인격체에 대한 폭력이다.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기는 힘들다. 그건 폭력을 수반한 진심이고, 이와조노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적어도 그에게는 진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명백한 폭력이기 때문에.
얼마 전 개봉한 <달빛 속삭임>의 타쿠야는 이와조노와 다르다. 그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걸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타쿠야는 동급생인 사츠키를 짝사랑한다. 순조롭게 두 사람은 ‘연인’ 관계가 되었지만, 난관이 있다. 타쿠야는 그동안 사츠키를 훔쳐보면서 사진을 찍었고, 지금은 화장실 소리까지 녹음해두었다. 그 사실을 안 사츠키는 타쿠야를 변태라고 부르며 떠나간다. <달빛 속삭임>의 진짜 이야기, 사랑은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청
[B딱하게 보기] 이런 사랑도 있다, <달빛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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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사라졌던 ‘월가의 전설의 사나이’라고 불리던 남자가 일본에 돌아와, 일본의 재생을 외치며 원대한 계획을 시작한다. 정말 만화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주인공이 거의 슈퍼히어로급의 경제 동물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DAWN>은 대단히 리얼한 경제 전쟁의 실상을 그리고 있다.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이면에서 어떤 더러운 짓들이 태연히 벌어지는지도 폭로한다.
야하기 타츠히코는 강력하게 외친다. 미국에 복수하겠다고.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미국의 호경기는 아시아 경제를 날려버린 돈이 흘러들어간 덕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요하며 모든 국가를 같은 무대에 올린 채 금융전쟁이 시작되었고, 아시아 국가 대부분이 금융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익을 위하여 모든 것이 결정되었지만, 일본의 정치가들은 거기에 동조했다. 하지만 일본인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아야 하고, 반드시 일본의 형태를 바꾸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농업회사를 세우고, 미
경제를 움직이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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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동식물을 실제에 가깝게 묘사했다는 세밀화 작품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세련되거나 훌륭하게 가공된 이미지를 즐기는 것에 너무도 익숙해진 탓이다. 세밀화 작품을 1차적으로 접했을 때, 그저 그림이 묘사하고 있는 대상과 거의 완벽하게 똑같다는 감탄사를 보내면 이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제호, 이원우, 이주용 등 14명의 세밀화 작가들의 작업을 전시하고 있는 <보리 세밀화 기획전>은 대중이 이미 다양한 이미지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전시는 세밀화 작품을 단순히 전시장의 흰 벽에 거는 방법을 택하기보다는, 각기 다른 두 장소에서 ‘세밀화 작업실’(인사동 얼스프로젝트)과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세밀화 책마을’(서대문 자연사 박물관, 4월28일~5월28일)로 관람객에게 접근한다.
이중 ‘세밀화 작업실’은 말 그대로 작업실의 컨셉을 전시장에 옮겨놓은 전시다. 일단 전시 공간에는 그림을 위해 직접 키우고
그림 속에서 숨쉬는 생명체, <보리 세밀화 기획전-세밀화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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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와 <삼색 삼부작>의 감독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1991년작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폴란드와 프랑스에 베로니카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젊은 여인의 교차하는 삶을 반추해 바라보면서 유럽의 구질서 붕괴와 근대 철학의 몰락, 그리고 그 카오스의 소용돌이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휴머니티의 새로운 씨앗을 모색하고 있는 작품이다. 폴란드 출신이라는 변방에서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90년대 유럽 문명의 대변혁과 가톨릭의 기운이 존재하는 폴란드의 사회주의 체제 내에서 성경을 재해석한 <십계>를 만들면서 현대의 존재론을 사유했던 그의 영상 세계가, 사회주의 블록의 붕괴와 유럽의 대통합이라는 새로운 정치사회적 명제 앞에서 휴머니즘의 방향과 인간 연대의 희망은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가에 대해 깊이 사유한 결과가 바로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이다. 근대주의의 결정론적 세계관에서 탈피하여 인간과 인간의 연대의 끈이 과연 어디에 존재하며 동시
[해외 타이틀]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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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테이머 감독과 샐마 헤이엑이 함께 꼽은 <프리다>의 ‘결정적 순간’은 극중 프리다가 자신이 유산했다는 것을 깨달은 뒤 절규하는 장면이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감독은 감정에 몰입하여 눈물만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헤이엑을 조용히 안아주는 것으로 연기 지도를 대신했단다. 또한 어려운 장면을 해낸 헤이엑 역시 자기가 한 일은 감독과 함께 울었을 뿐이라고 회고한다. 감독 음성해설의 묘미는 시간과 공간, 예산의 제약으로부터 어떻게 좋은 이야기를 엮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말하는 대목이다. 트로츠키의 비중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하나의 장면을 통해 등장인물의 내면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드러낼 것인가, 실제로 뉴욕과 파리 촬영을 할 수 없으니 해당 장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등등. 프리다가 석고에 둘둘 말린 채 침대에 누워 있는 장면이나 트로츠키와 프리다의 정사장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완성도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결정들을 간략하면서도 분명한 표현으로 해설하는 감독
[코멘터리] 감독과 배우, 두 여성의 꼿꼿한 열정, <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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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남쪽> 촬영장엔 감독이 ‘둘’ 있었다. 의상, 소품, 미술을 담당한 스탭들은 안판석 감독의 허락을 맡기 전에 연출부 막내 김철용(32)씨의 ‘오케이’부터 받아야 했다. 북쪽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제대로 묘사해야 한다는 안판석 감독의 고집 때문에 촬영 내내 김철용씨의 힘은 커져만 갔다. “코미디영화였거나 북쪽 사람들을 조롱하는 영화였으면 아예 응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김철용씨는 2001년 탈북한 새터민. 안판석 감독은 취재 차원에서 그를 만났다가 당시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다니고 있던 그를 아예 스탭으로 불러들였다. “처음에는 실수도 많았어요. 이해를 서로 잘 못해서 일을 다시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이를테면 북쪽에서는 모두 견장이라고 부르는데, 남쪽에서는 견장하고 계급장하고 따로 불러서 오해가 있었거든요.” <국경의 남쪽>에서 그는 선호 가족의 남행을 돕는 가이드로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영상은 한계가 있지요. 두만강을 실제 건너본 사람은
<국경의 남쪽>의 연출부 스탭 맡은 새터민 김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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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혈은 매혹이다. 정교하게 블렌딩한 커피나 위스키처럼 혼혈은 ‘제4의 인종’이 가진 다양한 매력을 한껏 발산한다. 한국에 대니얼 헤니, 일본에 사와지리 에리카가 있다면, 홍콩에는 매기 큐가 있다. 1979년 5월22일, 하와이에서 태어난 매기 큐는 아일랜드계 미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마거릿 데니스 퀴글리라는 이름을 지은 그녀의 아버지는 폴란드와 프랑스인의 피도 물려받았다. 매기 큐는 10대 후반 패션모델로 엔터테인먼트의 세계에 입문한다. 일본계 미국인 데본 아오키나 독일계 중국인 앤키 라우를 발굴했던 패션계는 유라시아 혼혈아들의 가치를 재빨리 발견했다. 170cm의 키에 시원하게 뻗은 다리가 돋보이는 도발적인 몸매와 소녀의 얼굴을 가진 매기 큐는 “범아시아적 모델, 타고난 커버걸”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여성지 <페미나>의 편집자는 “그녀는 모든 사람에게 어필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녀가 커버로 실린 <페미나&
세계를 얼굴에 담은 여자, <미션 임파서블3>의 매기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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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착은 막내 정유미였다. 화사하게 틀어올린 앞머리에 금색 핀을 꽂은 그가 미간을 약간 찡그리며 종달새처럼 조잘거린다. 어두웠던 스튜디오가 오월의 정원처럼 밝아진다. 순서대로 오기로 약속한 걸까. 두 번째로 늘씬한 공효진이 성큼성큼 들어선다. 얼굴이 CD만한 그는 소주잔을 호쾌하게 털어넣듯 툭툭 말을 건넨다. 드디어 문소리가 왔다. “컨셉이 이게 뭐야? 우리가 안 예쁘다는 거야”라고 볼멘소리로 농담하는 큰언니 앞에 사람들이 움찔한다. 그는 불만을 표시할 때도 솔직하지만, 진행도 시원시원하다. “소풍이니까 앉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문소리의 제안에 <가족의 탄생> 버전 ‘풀밭 위의 점심’이 탄생한다.
“영화 찍기 전에는 언니가 진짜 무서운 줄 알았다.” 공효진의 한마디. “야, 그거 봉태규가 퍼트린 헛소문이야.” 문소리의 대답. 소품으로 쓰인 와인을 열면서 세 여자의 입담도 열렸다. “아, 맛있는 안주 가져올게.” 휑하고 사라진 문소리가 도시락통을 들고 돌아왔다. 깨가
<가족의 탄생>의 문소리, 공효진, 정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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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어 맨해튼뿐만 아니라 뉴욕 전체의 행사로 자리잡고 있는 제5회 트라이베카필름페스티벌(TFF)에서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의 추모전부터 한국 자본이 투입되고 한인 프로듀서가 제작한 공포영화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소개됐다.
4월25일에서 5월7일까지 열린 올해 TFF에서 한국 출품작은 아니지만, 한인이나 한국이 일부 참여한 작품으로는 지난 1월29일 타계한 백남준의 <추모전>(A Tribute to Nam June Paik)과 한인 코미디언 마거릿 조와 한국계 배우 랜델 덕 김이 출연한 <이스트 브로드웨이>, 배우 겸 코미디언 데이비드 정이 출연한 다큐멘터리 <에어 기타 네이션>, 캐시 유와 줄리언 장 졸킨, 밀튼 김이 제작을 맡고 한국의 미로비젼과 미국의 매버릭필름이 공동 투자한 호러 <샘의 호수>(Sam’s Lake) 등이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백남준에 대한 헌사’ 상영
영화제 관계자에 따르면 백남준 추모전은 그의 갑작스러운 타
[현지보고] 제5회 트라이베카필름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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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주요 스탭과 배우를 지난 5월6일 일본 오사카 스위소호텔 난카이에서 만났다. <주온> <그루지> 등의 공포영화 감독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시미즈 다카시, 현재 일본 호러영화 붐을 주도하고 있는 프로듀서 이치세 다카시게를 차례로 인터뷰할 수 있었다. 뒤에 열린 공동 기자회견장에는 여주인공 유카도 참석했다.
시미즈 다카시는 이토 준지의 공포만화 <토미에>를 바탕으로 한 <토미에 리버스>로 장편 데뷔하여 주목받은 뒤, <주온>과 <주온>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작 <그루지>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감독이다. 프로듀서인 이치세 다카시게는 <링> 시리즈와 <주온> 등을 제작해온 프로듀서다. 2004년에 ‘제이 호러 시어터’라는 프로젝트를 발표, 시미즈 다카시를 비롯하여 나카다 히데오, 쓰루다 노리오, 마사유키 오키아이, 다카야시 히로시, 구로사와 기요시 등 6명의 감독과 함께 작
[현지보고] 시미즈 다카시 감독의 <환생> 오사카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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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후반작업도 편집도 끝나지 않은 지난 2월, LA의 소니 스튜디오에서 30분짜리 클립 묶음과 조연을 맡은 두명의 배우를 만났다. 톰 행크스와 오드리 토투, 두 주연배우가 홍보를 위해 모습을 드러내기에는 아직 때가 이른 시점이기는 했다. 어떤 점에서, 마뉴엘 아링가고사 주교 역을 맡은 앨프리드 몰리나나 사일러스 역을 맡은 폴 베타니가 전해주는 현장 소식이 맛보기의 재미와 감질남을 부채질하기에는 딱 알맞았다. 30분짜리 클립은 할리우드의 장기인,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한 ‘가장 실감나는 허구’ 만들기가 빛을 발한다. 루브르 박물관 같은 까다로운 장소에서 촬영이 쉽지 않아 그랜드 갤러리 대부분을 세트로 지었다지만, 그림 표면의 텍스처까지 신경 써 모사하는 지경이니 흠잡기가 쉽지 않다. 폴 베타니가 “인간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다”는 사일러스를 보면서 무의식으로 원작과 스크린 이미지를 비교하던 것을 그만둔다. 사일러스의 무시무시한 흰 몸이 주는 생생한 즉물감, 이미지의 힘은 구체적이다.
[현지보고] LA에서 만난 <다빈치 코드> 앨프리드 몰리나, 폴 베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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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주주들이 월트 디즈니의 픽사 인수를 승인했다. <뉴욕타임스> 등 각종 외신은 지난 5월5일 픽사가 특별 주주총회를 열고 디즈니의 인수를 승인했다고 7일자를 통해 보도했다. 이에 따라 픽사 스튜디오의 최고경영책임자(CEO)이자 픽사 지분 7%를 보유한 스티브 잡스는 디즈니 주식 보유에서 개인 최대주주로 올랐다.
합병 이후 스티브 잡스는 디즈니 이사회의 구성원으로 경영에 참여하게 되며, 픽사 주주들은 픽사 주식 1주당 디즈니 주식 2.3주를 받는다. 픽사의 주요 직원들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및 테마파크 사업부에서 기존의 업무를 유지하게 될 예정이다. 디즈니는 픽사 스튜디오의 기존 애니메이션들의 속편에 대한 권리를 모두 갖게 됐다.
양사의 인수·합병 계약은 지난 1월26일 74억달러 규모로 이미 합의되었다. 이번 인수·합병의 완전한 성사로 디즈니는 지난 10년간 부진했던 애니메이션 사업부 회생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월가의 전문가들은 픽사 인수
픽사, 디즈니에 인수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