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레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김강우는 생계형 배우다. 먹고살고자 연기를 했다는 뜻이 아니다. 그가 연기한 남자들은 대부분 끈질기게 사는 법을 고민하곤 했다. 이름이라도 남겨 영원히 살기를 바라거나(<실미도>의 민호), 좌절이 두려워 숨이 차도록 뜀박질을 하거나(<나는 달린다>의 무철), 몸의 흉터를 훈장처럼 떠벌리면서도 다치지 않으려 야심을 버리거나(<태풍태양>의 모기). 그런가 하면 밤마다 악몽을 꾸면서도 다른 이의 삶을 위해 1분을 아꼈고(<경의선>의 만수), 최고보다는 영원한 장인으로 남으려 칼을 들었다(<식객>의 성찬). 아마 배우로서 김강우가 보낸 지난 7년도 그들 못지않은 생존투쟁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매일 아침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지로” 현장에 나갔고 어떤 감독이든 간에 “살아남기 위해서 그저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는 그도 한때는 <경의선>의 만수처럼 잠을 설치며 살았다. “그래도 가끔은 좋은 꿈을 꾸면서 잤
[김강우] 어느 성실한 청춘의 생존투쟁
-
2004년 겨울 다이앤 크루거가 <내셔널 트레져> 1편으로 제작자, 감독, 주연배우 니콜라스 케이지 등과 함께 한국을 찾았을 때 그와 인터뷰한 기자들은 내심 당황했다. 똑떨어지는 간결함과 무뚝뚝한 태도 때문이었다. 금발에 지적인 인상을 풍기는 다이앤 크루거에겐 쇼 비즈니스에서 요구되는 상냥한 제스처가 거의 없었다. 그는 질문을 듣고 바로 대답했고, 본론만 대답했다. 인터뷰에 응하는 다이앤 크루거의 답변 어조와 내용은 기자로 하여금 그 질문이 과거 수십 차례 반복되었을 것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받아적고 나면 차후 정리해서 쳐낼 것이 별로 없었다.
사실 그해는 신인 다이앤 크루거에게 최고의 해였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의 주연작이 개봉했다. 5월에 <트로이>, 9월에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Wicker Park), 12월에 <내셔널 트레져>. 배우 데뷔 3년차, 당시 28살이었던 크루거는 “미하일
[다이앤 크루거] 과다복용해도 좋은 약
-
직접 보니 184cm라는 키가 더 크게 느껴졌다. 입을 꾹 다물고 사진 촬영을 하는 모습에선 <말죽거리 잔혹사>(2004)에서 발산했던 카리스마가 얼핏 전해지는 것도 같았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약육강식의 피라미드, 그 꼭대기를 장악한 선도부장 역으로 주목받은 이종혁에게도 의외의 면은 있었다.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것을 약간 쑥스러워한다든지, 농담을 건네면서 가끔 소리 죽여 키득키득 웃는다든지. 그러니까 한예슬 주연의 로맨틱코미디 <용의주도 미스신>에서 맡은 이른바 “실장 캐릭터” 역시 그의 성정에서 그리 먼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일단은 뭐, 제가 로맨틱코미디 이런 건 별로 안 해봐서요. 약간 도전의 느낌도 있고요. 좀 편안한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무던하게 말을 이어가다가 영화를 이미 봤다는 이야기를 흘리자 갑자기 귀를 쫑긋 세우는 눈치다. “재미있어요? 전 아직 못 봤거든요. 별로 안 까칠하죠? 너무 딱 떨어지게는 안
[이종혁] 은근과 끈기의 카리스마
-
‘아역’배우들은 이름이 없다. 그저 ‘누구 누구의 어린 시절’이라 불린다. 중학교 1학년인 심은경(14) 또한 마찬가지였다. 2004년부터 10여편의 드라마에 출연했으나 ‘리틀’ 명세빈(<결혼하고 싶은 여자>), ‘리틀’ 최강희(<단팥빵>), ‘리틀’ 하지원(<황진이>), ‘리틀’ 이지아(<태왕사신기>)로만 기억됐다. 그런 점에서 영화 <헨젤과 그레텔>은 심은경에게 특별한 데뷔작이다. 이번엔 누군가의 몇년을 잠깐 대신하는 게 아니다. 극중 영희는 은수(천정명)를 불길한 집으로 끌어들이고, 어떻게든 악몽의 덤불을 벗어나려는 은수의 발목을 붙잡는 인물. “뭔가 비밀을 품고 있는” 신비로운 아이라고 <헨젤과 그레텔>을 소개하는 아역‘배우’ 심은경을 만났다.
-치마 입는 거 어렸을 때부터 싫어한다고, 유치원 때는 인형놀이보다 칼싸움하는 거 좋아했다고 엄마가 그러던데요.
=흐흐… 그냥 치마 입는 거보다 바지 입는 게 좋아요.
[심은경] 신비로운 소녀의 야망
-
-
<택시 블루스>를 보고 나면 드는 생각. 이 감독 참 독하구나. 비좁은 택시 안에 카메라며 조명이며 녹음장치까지 달아놓고, 한손으로는 운전하고 한손으로는 카메라 스위치 조작하며, 머리와 입으로는 인터뷰하고, 눈으로는 관찰하고, 그 와중에 생계까지 챙겨야 했을 버거움이라니. 혹은 그 모든 걸 되새기며 뻔뻔하게 연기까지 해내다니. <택시 블루스>는 그런 집요함이 아니었더라면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택시기사로 일하던 최하동하 감독은 그가 만났던 승객을 찍은 실제 화면과 그들과 마주치며 겪은 경험에 살을 붙인 픽션을 뒤섞어 <택시 블루스>를 만들었다. 정작 본인은 “기록의 습관이 항상 피곤하다”고 말해도, 이 영화는 그 피곤한 습관의 집적물인 셈이다. 그는 요즘 뉴욕에 산다. 누군가는 이제 그럼 뉴욕의 택시운전사를 하러 갔느냐고 진부한 농을 걸지 모르겠지만, 그의 말에 의하면 특별히 목적을 두고 하는 일은 없는 것 같다. 다만 버리지 못하는 일은 있다. 요
[최하동하] “내 경우엔 편향되어야만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다”
-
서민과 가난한 자를 위한 정치개혁을 꿈꾸거나 말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그러나 개혁가가 말과 꿈을 실현하는 건 어렵기만 하다. 그 이유는 꿈의 실행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니라, 실현 과정에서 정치인 스스로 개혁의 대상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성취의 달콤한 향기에 취한 자는 권력에 집착하게 되고, 그는 대개 타락과 부패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정치소설의 고전을 영화로 만든 <올 더 킹즈 맨>은 한 정치인의 성공과 파멸에 대한 이야기다. <올 더 킹즈 맨>의 내용은 프랭크 카프라의 ‘디즈, 스미스, 도우 3부작’을 잇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음산하고 어두운 기운은 영화를 카프라식 스크루볼코미디보다 당대의 누아르에 더 가깝게 만든다. 또한 주인공 윌리 스탁의 캐릭터를 실제 인물인 휴이 롱에서 따온 덕분에 <올 더 킹즈 맨>의 현실 풍자적이고 정치적인 면모는 보통의 정치드라마를 쉬이 넘어선다. 롱은 대공황 시기에 주지사와 상원의원을 맡아 서민과 빈민층을 위한 정책을
유권자의 필독 영화, <올 더 킹즈 맨>
-
“내리는 비를 만끽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설)경구 형이 옷을 적시고 있는 장면이다. 어떤 영화에서나 비맞는 장면을 찍을 때 배우들이 겪어야 하는 일이다. 타조농장에서 싸우는 장면을 3일 동안 찍었는데, 촬영 전에 항상 저렇게 옷을 적시곤 했다. 이 장면은 스탭들이며, 배우들이며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장비들이 감전될 위험도 있지만, 일단 비를 뿌리면 계절이 겨울이건 여름이건 춥게 마련이니까. 의상팀들도 배우들을 차마 말려줄 수는 없어서 뜨거운 물이나 수건만 덮어주곤 한다. 농장에 냄새도 심했는데, 배우들은 정말 즐겁게 연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태희씨는 의외로 액션을 잘하더라. 빗자루를 휘두르는 액션이 있는데, <중천> 때 해봐서 그런지 정말 칼을 휘두르는 생생한 느낌이 있었다. 경구 형이랑 진흙탕에서 뒹구는 것도 거리낌없이 막 엉겨붙었다. 경구 형이야, 뭐… 원래 액션을 좋아하니까. 자기는 항상 다시는 액션영화 안 하겠다고 하지만, 틈나면 운동하고 촬영할 때는 정말
[숨은 스틸 찾기] <싸움> 독한 싸움꾼들
-
EBS 12월22일(토) 밤 11시
남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페트로니우스의 <사티리콘>은 1세기 중엽의 작품으로 불완전한 단편들로 남아 있다. 페데리코 펠리니는 이 작품을 로마 부르주아 사회의 타락을 풍자한 <달콤한 인생>의 1세기 버전처럼 구성하는 한편, 그 1세기 로마를 18세기 유럽에 대한 날카로운 비유로 형상화했다. 이 영화는 펠리니의 역사물이라고 칭해지지만, 사실, 영화 속 로마는 꿈과 판타지의 세계에 가깝게 그려진다. 물론 그 환상은 히로니뮈스 보시의 <쾌락의 정원>을 연상시킬 정도로 살냄새 가득한 욕망의 혼돈으로 채워져 있다. 아름다운 청년들의 탐욕적인 사랑이 폭력과 살육으로, 부유층의 교양이 천박한 속물스러움으로 뒤섞이는 과정을 파편적인 서사의 조각들로 여기저기 흩뜨린다. 인간의 육체는 고깃덩어리의 부분처럼 다루어지며 절단된 신체는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펄떡인다. 종교는 추문이 되고 사랑은 변태적인 욕망이 된다. 가장 끔찍한 방
쾌락과 혼돈의 로마, <펠리니의 사티리콘>
-
나는 ‘보는 모든 것’을 좋아한다. 당연히 영화도 좋아한다. 정말로 좋아한다. 흔히들 드라마를 하게 되면서 영화를 보는 것조차 일로 전락하여 슬프다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영화 보는 일은 여전히 나의 가장 훌륭한 취미이자 안식처다. 난 영화를 볼 때 분석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 영화가 얘기해주는 감정을 느낄 뿐. 그럼 영화가 친구가 되는 것 같아 좋다. 그런 내 친구 ‘영화’ 중에서 내 인생의 영화를 하나만 뽑으라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는 이 영화가 나를 위로해줬고, 이 영화는 이때 나를 지탱해줬고, 이건 나를 웃게 해서 좋고, 저건 나를 울려서 좋고, 요건 나랑 지적인 대화를 좀 나눠주는 놈이고, 조놈은 내 앞에서 까불어대서 좋은데….
그럼에도 내가 <허공에의 질주>를 꼽은 이유는 내 인생의 전환기마다 이 영화가 내 손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버지 표현에 의하면 ‘멀쩡히 대학 나온 년’이 2년간 백수로 지내다
[내 인생의 영화] <허공에의 질주> -김영현
-
KBS2 <해피 선데이>의 ‘1박2일’ 코너는 최근 MBC <무한도전>과 더불어 주말 예능프로그램의 ‘황금 라인업’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다. <무한도전>에 유재석이 있다면 ‘1박2일’에는 강호동이 있다. 또, <무한도전>의 돌아이(노홍철)나 꼬마(하하)처럼 ‘1박2일’에는 초딩(은지원) 등의 별칭이 있다. 공룡 MC를 리더 삼아 스타라 불리는 멤버들의 ‘찌질한’ 이면과 모래알 같은 캐릭터를 ‘리얼하고 까끌까끌하게’ 맛본다는 공통점에서 신작에 속하는 ‘1박2일’은 궤도에 오르는 동안 ‘누구보다 못하네’, ‘아류작이네’와 같은 숙명적인 입방아도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피곤한 순서 매기기를 제쳐두면 ‘1박2일’은 ‘산만한 호동이의 천재적인 통솔력’에 의한 남성동지애의 다른 지점을 머금고 있다.
<무한도전>은 제목대로 댄스스포츠대회에 출전했다가 해외미녀스타와 만났다가 하며 무한대로 주제를 번식할 수 있다. 반면, ‘1박2일’은 장소가
<무한도전> 아성에 무한도전한다
-
<전격 Z작전>(Knight Rider) 리메이크
제작 중
지난 11월 말 인터넷의 각종 미드 혹은 영화 사이트들의 게시판에는 몇장의 자동차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 ‘이게 정녕 새로운 키트라는 말인가?’라는 제목을 단 게시물에 첨부되어 있던 자동차 사진들은 <전격 Z작전>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Knight Rider>의 리메이크에 등장할 것으로 알려진 전설의 인공지능 전투 자동차 키트(KITT-Knight Industries Three Thousand)의 새로운 버전이었다. 화제가 된 이유는 검정색 Pontiac Trans Am에 기반해 날렵한 차체를 자랑하던 과거의 키트는 온데간데없고, 같은 검정색이나 다소 퉁퉁하고 둔해 보이기까지 하는 550 HP Ford Shelby GT500KR(사진 참조)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드의 제1 전성기 시절, 키트는 에어울프와 함께 당시 소년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전설의 주인공이었다.
[이철민의 미드나잇] 키트, 다시 출동이다
-
2054년 워싱턴은 고대의 그리스로 돌아간다. 거기서 시민의 안전을 책임진 것은 미래를 내다보는 세명의 예지자. 이들은 도시국가의 존속을 위해 신탁을 내려주던 델피의 무녀들을 닮았다. 미래를 예언하던 원형의 신전은 범죄를 예견하는 원형의 수조로 돌아온다. 델피의 무녀들에게 신성한 힘을 준 것이 땅속에서 솟아나는 가스. 미래의 무녀들에게 신통력을 준 것은 ‘뉴로인’이라는 마약의 후유증이다. 과거는 미래로 회귀하고, 미래는 과거로 반복된다. 과학적 합리성은 신화적 비합리성과 공존한다.
미래현실
영화의 매력 중 하나는 감독이 ‘미래현실’(future reality)이라 부른 요소에서 나온다. 실제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미래는 기술적 측면에서 대단히 개연적이다. 즉 2054년의 워싱턴은 터무니없는 공상의 산물이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도, 아니면 아주 가까운 미래에 시연이 가능한 기술들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어 범죄자와 피해자의 이름을 새긴 구슬을 깎는 장면. CAD로 디자인한 형태
[진중권의 이매진] 자유의지의 할리우드적 패배
-
<위치우위의 중국문화기행>은 중국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다. 중국인의 관점에서 본 중국의 다양한 문화유산을 돌아보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두권의 책이다. 외국인들이 중국을 겉으로 훑어보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다양한 계층의, 광범위한 시대의 중국인들의 삶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제법 맛깔나게 풀어낸다는 점에서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기 위한 입문서로도, 깊이 이해하기 위한 담론의 시작으로도 부족함이 없다.
이야기의 시작은 뜻밖에도 ‘영욕의 발해 유적지’다. 과거 아시아 최대의 도시였던 발해국의 성대했던 절정기와 야만적이었던 최후를 짐작할 수 있는 여러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척에 있는 경박호의 고즈넉한 웅장함(모순적인 설명이지만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과 대조되는 화려함을 갖추었을 도시가 돌덩이가 갈라지도록 불타버렸다는 이야기는, 한국사의 관점에서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글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진 자료가 이해를 돕
중국인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위치우위의 중국문화기행> 1, 2권
-
장진 감독의 <서툰 사람들>이 <연극열전2>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2004년 15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 <연극열전>에 이어 2007년 새롭게 기획된 <연극열전2>는 2007년 12월7일부터 2009년 1월4일까지 10여편의 작품을 선보이는 연극 프로젝트. 장진 감독, <화려한 휴가>의 김지훈 감독, 추상미, 이순재, 나문희, 유지태, 황정민 등 충무로에서 지명도있는 감독과 배우들이 참여하는가 하면, 조재현이 직접 프로그래밍해 화제를 일으켰다. 그중 첫 공연인 <서툰 사람들>은 장진 감독이 10년 전에 극본을 완성한 작품. 부산에서 장기공연된 바 있지만 장진 감독이 직접 연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분홍 잠옷과 검은 점퍼. 고장난 롤렉스 시계와 뚜껑 달린 키티 시계. 혹은 중학교 영어 교사와 도둑. 장덕배와 유화이는 닮은 구석이라곤 없는 이들이다. 하긴 어떤 사람이 자기 집을 털러 들어온 도둑과 친구가 될 수
장진이 그리는 따뜻한 도시 우화, <서툰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