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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맛은 달콤했다. 캔디를 입에 넣은 댄(히스 레저)은 그 맛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캔디’는 헤로인을 뜻하는 속어이자, 그의 연인(애비 코니시) 이름이다. 댄과 캔디가 서로에게 가진 사랑의 열정은 곧 헤로인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다. 해사한 얼굴의 미술학도였던 캔디는 댄을 향한 사랑으로 그가 놓아주는 헤로인 주사를 기꺼이 맞는다. 영화의 첫 장면, 원심력을 이용해 사람들을 공중에 띄워놓는 놀이기구를 탄 두 남녀는 미친 듯이 웃으며 키스한다. 아마도 헤로인을 흡입한 그들은 그렇게 천상의 맛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입 안의 달콤함이 가시기도 전에 지옥을 경험한다. 캔디는 임신을 하지만 뱃속의 아기는 약에 중독된 엄마의 몸 안에서 사산되고, 물건을 팔아 약값을 벌려던 캔디는 급기야 매춘을 하기에 이른다. 새로운 삶과 천상의 맛을 동시에 꿈꾸는 그들은 점점 더 깊은 절망의 세계로 치닫는다.
<캔디>는 소설가 루크 데이비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천
마약중독=사랑 <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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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밥을 먹을 때 남자는 순댓국을 즐기지만 여자는 커피와 샌드위치를 좋아한다. TV를 틀면 남자는 이종격투기를 뚫어져라 보지만 여자는 <가족의 탄생> 같은 영화를 보고 싶어한다. 이토록 지극히 다른 취향과 지향을 가졌지만 돌발적인 하룻밤 이후 엮이게 된 남과 여는 섹스 하나에서만큼은 통하는 면을 갖고 있다. <전투의 매너>의 주인공인 시각디자이너 지우(서유정)와 가전제품 대리점 직원 재호(강경준)는, 최소한 90년대 초반 이후 한국 로맨틱코미디에선 낯선 존재들이 아니다.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남녀가 때로는 질펀한 관계를 즐기고, 때로는 티격태격하면서 벌이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전투의 매너>는 그리 신선하지 않다. 게다가 지우가 재호에게 끌리는 이유는 도무지 종잡기 어렵다. 예술적 감수성을 품고 있는 그녀가 사타구니 가운데를 가리키며 “이 다리는 다리 아닌가?”라고 허접하게 말하는 그에게 애정을 갖게 되는 데는 어떤 설명이 필요할 법한데, 영화는 이런
90년대식 로맨틱코미디 <전투의 매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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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편의 단편애니메이션을 모은 <별별이야기2: 여섯빗깔 무지개>는 다섯 번째 인권영화 프로젝트다. 인권과 영화의 특별한 만남을 주선해온 국가인권위원회는 2003년 <여섯개의 시선>을 시작으로 <별별이야기> <다섯개의 시선> <세번째 시선> 등 차별을 주제로 한 옴니버스영화들을 줄줄이 내놓았다. 여섯 번째 프로젝트인 <시선 1318>은 이미 완성되어 올해 전주영화제 폐막작으로 정해졌다. 과거와 달리 <별별이야기2>의 보도자료에 “계몽적이지 않고 재밌게” 만들었다는 강조가 없는 걸 보면, ‘인권영화’라는 표식만으로 뒷골부터 부여잡는 관객은 이제 없나 보다. ‘당신이 나라면’(If you were me)이라는 의미심장한 가정이 슬슬 약발을 발휘하는 건 아닐까.
‘여섯개의 무지개’라는 부제를 단 <별별이야기2>의 문을 여는 작품은 안동희, 류정우 감독의 2D애니메이션 <세번째 소원>. 28살
우리 별 이야기 <별별이야기2: 여섯빛깔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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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 좀 닦아라. 침을 질질 흘리면서 썼네.” 가끔 배우에 관한 개인적 호감이 넘쳐 연애편지를 방불케하는 기사를 쓰는 경우 농담삼아 하는 말이다. 그래서 고쳐 쓰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틀린 근거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면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번호 특집기사인 ‘<씨네21> 기자들의 추천 배우’는 말하자면 지면 곳곳에 침 흘린 자국이 가득한 기사다. 기자라는 작자들이 이렇게 개인적인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도 되나, 반감이 들 수도 있지만 이왕 하는 커밍아웃이라면 과감해지자고 판단했다. 물론 얼마간 망설임도 있었다. 배우로서 성취도나 연기력만 놓고 보면 이렇게 쓰는 게 지나친 과장이 될 수 있겠다는 싶어서다. 하지만 배우라는 존재가 혹은 연기라는 예술이 객관적 수치로 우열을 가릴 문제는 아니다. 서열을 매기기 전에 그동안 몰랐던 배우들의 특별한 매력을 소개하는 데 주력했다.
영화잡지를 만들면서 자주 부딪히는 문제는 객관성과 주관성의 조화를 어디서 구하느냐는 점이다
[편집장이 독자에게] 봄맞이 흥건한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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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지구를 위한 영화 선언! 5월22일부터 28일까지 CGV상암에서 진행되는 제5회 서울환경영화제가 4월15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상영작을 발표했다. 올해 영화제는 총12개 섹션에서 37개국 160편의 작품이 관객을 찾아간다. 개막작은 알래스테어 포더길·마크 린필드 감독의 <어스>(Earth). BBC에서 제작해 전세계적인 화제를 불러모았던 TV 시리즈 <플래닛 어스>(Planet Earth)의 제작진이 5년에 걸쳐 새롭게 만든 장편 다큐멘터리로, 북극에서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기후와 환경의 변화, 그 속에 살아가는 다양한 생명체들의 숨결을 생생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세계 각국 환경영화들의 최근 흐름을 한눈에 살펴보는 ‘국제환경영화경선’은 721편의 출품작 가운데 예심을 통과한 17개국 21편의 작품을 선보인다. 400년 된 떡갈나무가 잘려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나무 위에서 71일간 시위를 펼친 한 남자를 조명한 &l
제5회 서울환경영화제, 출항을 선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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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결혼이 연애 이상으로 달콤할지도 모른다. <고스트 앤 크라임>의 조 드부아, 제이크 웨버를 보고 있노라면 그런 시시하고도 위험한 망상에 빠져들게 된다. 식탁이 뒤집히도록 악을 쓰고 발을 구르는 세딸들의 난장판 속에서 아침을 챙기고, 머리를 빗겨주며, 하찮은 질문 하나 무시하지 않고 응답해주는 남자. 아내와 함께 있는 것이 자신에겐 “파티”라고 말하는 그에겐 늘어난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조차 눈부시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속 터지는 우직함이나 비현실적인 선량함이 아닌, 딱 정확히 알맞은 온도의 사려 깊음. 1989년에 데뷔했으니 벌써 20년차의 배우인데, 제이크 웨버는 필모그래피의 길이에 비례하는 중량을 갖추지는 못했다. <7월4일생>이나 <펠리칸 브리프>처럼 출연장면을 애써 색출해봐야 하는 조·단역이 대다수.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넘기고 유창한 독일어를 구사하던 <U-571>의 중령은 실전에서는 뒷걸음질을 치는 남자
[제이크 웨버] 딱 알맞은 온도의 사려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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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마르케스의 소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독후감을 놓고 동료들과 잡담을 벌였다. 공교롭게도 남자 하나 여자 셋이었다. 나는 궁지에 몰렸다. 90살 넘은 늙은이의 로망에 물든 아직은 늙지 않은 남자의 예찬이라니. 내 점잖은 여동료들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대놓고 혀를 찼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때 내가 부른 이름은 마르케스가 아니라 주앙 세자르 몬테이로였다. 포르투갈 출신의 그는 위대한 감독이지만 불세출의 희극배우다. 마뇰 드 올리베이라 감독의 영화 등에도 출연했지만 늘 자기의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깡마른 체구로 비틀대다가도 어디선가 여인의 음성을 들으면 폴짝폴짝 뛰어가던 그의 모습을 단 한번이라도 봤다면 그가 위대한 희극인의 몸과 제스처를 가졌다는 내 말을 이해하리라. 점잖은 말투, 맑은 정치관, 깊이있는 철학을 자랑했지만 무엇보다 그는 음탕하기 짝이 없는 손길을 가졌다. 그는 영화에서 평생 처녀들의 몸을 흠모했고(그러나 그는 탐하지 않았다) 그들의
[주앙 세자르 몬테이로] 위대한 변태 늙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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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달화가 꽃중년 배우로 거듭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국내에 본격적으로 그를 알렸던 <첩혈가두>(1990)의 느끼한 킬러 역할 이후 늘 그저 그런 배우로 여겨져왔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첩혈가두>는 홍콩 누아르의 쓸쓸한 황혼기에 자리한 영화였고, 이후 그는 ‘홍콩의 미키 루크’라는 어색한 별명처럼 3급전영(에로영화)에도 종종 얼굴을 비추던 비호감 배우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훤칠한 배우가 드물던 홍콩영화계에서 주윤발과 더불어 ‘기럭지’만큼은 준수하게 빠진 배우였다. 마치 매일 선탠을 해서 관리하고 있는 것 같은 건강한 구릿빛 피부도 그만의 매력이다. 그런 그가 <고혹자1: 인재강호>(1995)의 냉철한 보스 역할을 시작으로 유위강의 <고혹자> 시리즈로 이미지를 쇄신하기 시작하더니, 유달지의 <비상돌연>(1998)과 두기봉의 <미션>(2000) 등을 거치며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역시 그
[임달화] 홍콩영화계 최고의 꽃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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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오디션이 데뷔로 이어졌다면, 다음 세 가지 중 하나다. 뒤가 든든하거나, 연기를 타고났거나, 엄청나게 매력적이거나. 그리고 맨해튼 상류사회의 10대를 훔쳐보는 TV시리즈 <가십 걸> 속 ‘세레나 반 더 우드슨’ 블레이크 라이블리는 그 세 켤레 유리구두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아빠와 오빠 둘, 언니 둘에 형부까지 모두 연기자고, 엄마는 가족의 스케줄을 관리한다나. 그럼 어쩌다 핏줄을 타고 흐르는 끼를 17살이 돼서야 발견했을까? 가족 덕분에 꼬마 라이블리는 촬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손 닿는 것을 욕망하는 건 아이들이 가장 못하는 일 중 하나다. 15살 때 만들어본 장래희망 목록에서도 연기자는 논외였다. 스탠퍼드대 입학을 목표로 했던 모범생이 오디션에 응한 것은 오빠가 애써 준 기회를 망치기 미안했을 뿐이란다. 12살 때 출연한 <샌드맨>이 필모그래피의 전부였던 소녀는 오디션 대기자 중 유일하게 그럴듯한 포트폴리오 없이 빈손이었고 앰버 탬블린, 아메
[블레이크 라이블리] 사람 잡는 그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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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영예의 주인공은 ‘윌슨’이었다. 오언 윌슨 말고 <캐스트 어웨이>의 배구공 말이다. 값싼 PPL이라는 비난에 맞서 위대한 침묵 연기로 전세계 외로니스트들의 ‘애완볼’이 된 윌슨. 그러나 윌슨은 생전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스튜디오 컷은 아니더라도 변변한 스틸조차 남아 있지 않다니. 아쉬워할 여유도 없었다. 마감은 코앞. 윌슨에 필적할 만한 누군가를 찾아야 했다. 배우들의 면면에는 까막눈인 터라 싱싱한 리스트를 내뱉을 능력이 없음을 한탄하던 중 며칠 전 구입해 침만 묻혀둔 <카불의 사진사>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아프가니스탄이라, 마리나 골바하리는 그렇게 뜬금없이 떠올랐다. 마리나 골바하리는 2년 전 국내 개봉한 <천상의 소녀>(2003)에서 오사마 역을 맡은 배우다. 캐스팅을 위해 카불 시내를 헤매다 세디그 바르막 감독의 눈에 띄었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 가끔 학교에 가는 거 말고는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던 소녀였다. 세디그 바
[마리나 골바하리] 떨리는 소녀의 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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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박함, 섹스중독자, 얼간이, 대마초, (여성의)누드…. IMDb가 집계한 조나 힐의 키워드다. 그가 연기한 <슈퍼배드>의 세스는 어린 시절 “어린이의 8%가량이 겪을지 모른다”는 성기 그리기에 몰두했고 친구 엄마의 풍만한 가슴에 매력을 느끼며, 여자들에게 술을 사주면 섹스를 할 수 있을 거라 믿는 얼간이다. 그런가 하면 <사고친 후에>의 조나는 친구들과 대마초를 즐겨 피우면서 영화 속 여배우의 누드장면을 기록하며 시간을 때우는 백수다. 말하자면 그들은 모든 엄마들이 “우리 애는 착한데, 나쁜 친구를 만나서”라고 변명할 때 이용되는 그 ‘나쁜 친구’이다. 하지만 엄마가 사귀지 말라는 친구가 때로는 제일 좋은 친구다. 나에게 술과 담배를 가르쳐주고 남녀상열지사의 비밀을 일깨워주며, 가출로 인도해 진짜 세상을 경험하게 해주는 친구. 그는 내가 애인과 헤어지면 아마 그녀를 욕해줄 테고, 회삿일로 스트레스를 겪을 때는 퇴사를 종용할 것이다. 그렇게 내가 백수가 되면 매
[조나 힐] 만사태평 나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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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영국 악센트에 대한 취향 때문이었다. 월요일 아침 일찍 담당영화사에서 <골2: 꿈을 향해 뛰어라>를 보는 동안, 단지 그가 데이비드 베컴을 연상시키는 금발의 꽃미남 실력파 미드필더라거나 여자와 파티를 좋아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해 코치와 감독을 애먹이면서도 천진난만한 미소로 상대방의 환심을 사는 철부지 청년이라서 좋아했던 건 아니었단 말이다. 뻔한 금발에, 전형적인 귀염둥이(라고 쓰고 바람둥이라고 읽어도 좋다) 캐릭터인데 말씨까지 뉴욕 토박이라면 왠지 심심하다. 대한민국 경상도·전라도 말씨, 미국 남서부 깡촌의 억양, 영국의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 악센트. 좋은 표현으로는 쿨한, 좀더 솔직한 묘사로는 퉁명스러운 이런 억양들이 도회적인 느끼함과 부조화를 이뤘을 때 생기는 스파크를 본 것이다. 후배를 옆에 세워두고 “이래야 몸값 안 떨어져. 나이들어 보이면 끝장이야”라며 눈가 주름 위에 백색 컨실러를 슥슥 바르고 휙 사라지던 뒷모습. 스스로 제 인생을 망치고 있음
[알레산드로 니볼라] 미워할 수 없는 거짓말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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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에게 캐릭터가 옷이라고 한다면, 오직 한벌의 옷으로 기억되는 배우가 있다. TV시리즈 <웨스트 윙>에서 대통령 보좌관 조쉬 라이먼을 연기한 브래들리 휘트퍼드도 그 경우일 것. 훤한 이마, 곱슬머리, 각진 턱 등 별 특징없는 얼굴을 가진 그가 대중의 주목을 끌 수 있었던 건 시속 60km의 말을 순식간에 쏟아내면서 비서 다나와 티격태격하는 조쉬라는 캐릭터 덕이었다. 그가 이후 TV시리즈 <선셋 스트립의 스튜디오 60>에서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프로듀서 대니 트립 역을 맡은 것도 <웨스트 윙>의 조쉬 없이는 불가능했다. 사실 <웨스트 윙> 이전의 휘트퍼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휘트퍼드는 그동안 삼촌을 막 대하는 제당회사 부사장(<여인의 향기>)이나 뺀질거리는 에이전트(<뮤즈>), 양심불량 변호사(<필라델피아>)나 악덕 비즈니스맨(<빌리 매드슨>) 등 매우 적은 비중의 “여피 쓰레기
[브래들리 휘트퍼드] 영원히 기억될 단 한번의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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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의 놀림을 견디다 못해 뛰쳐나간 ‘40살까지 못해본 남자’(스티브 카렐)를 따라잡기 위한 데이비드(폴 러드)의 웃지 못할 추격전이 시작되는 순간, 폴 러드에게 반했다. 집요하게 지분대다가도 미적지근하게 편을 들어주고, 그러다 어느새 놀림의 행렬에 동참하는, 한껏 사악하지도 힘껏 선하지도 않은 평범함. 13년 전, 그에게 청춘스타로서는 거의 유일한 스타덤을 안겨줬던 <클루리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폴 러드가 연기한 이복오빠를 향해 새삼스런 감정을 깨달은 주인공이 독백한다. “옷도 촌스럽게 입고, 귀엽지도 않고, 하루 종일 집안에서 빈둥대는 느림보잖아.” <앵커맨>부터 <포게팅 사라 마셜>까지 다섯편의 제작·연출작에 조연으로 러드를 캐스팅한 이 시대 최고의 익살꾼 주드 애파토우의 노림수가 눈에 선하다. 외모가 캐릭터인 ‘천생 루저’의 곁에는 ‘생긴 건 멀쩡한데 하는 짓은 싱거운 못난 친구’ 한명쯤 있어줘야 하는데, 그게 바로 러드다. 최고 별종 피
[폴 러드] 그냥 시시하게 늙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