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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일산에 ‘한류우드 부지’라는 푯말이 붙었을 때 나는 저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했다. 나중에 그것이 인도의 발리우드(Bombay+Hollywood의 합성어)처럼 한류와 할리우드의 합성어인 것을 알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때는 천박한 조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한류’라는 말은 이제 꽤나 익숙한 말이 되고 말았다. 실제로 중국이나 몽골을 여행했을 때 우리 연예인들의 브로마이드를 음식점이나 거리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유행에 민감한 아시아의 젊은이들이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나도 모르는 가요를 흥얼대기도 했다. 아시아의 대중문화를 한국이 이끈다는 한류에 대한 흥분이 있는가 하면 한류를 좀더 지속가능한 기획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리고 2007년 8월15일 군부에 저항하는 미얀마 시민과 승려들이 반정부 시위를 펼쳤다. 그 뒤 한달이 지난 9월29일 미얀마 군부는 최소한의 무력으로 시위를 진압했다고 발표했다. 사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아시아를 생각하는 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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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도, 부천도 아닌 부산이라니. 부산영화제 데일리팀에 낙점됐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무엇보다 걱정이 앞섰다. 지난해 부산을 다녀온 동기 기자는 재미있었다고 위로 비슷한 말을 건넸지만 알 수 없는 두려움은 가시지 않았다. 처음 이틀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데일리 일이 차츰 손에 익던 셋쨋날, 마침내 첫 인터뷰가 잡혔다. <톤도 사람들>의 짐 리비란 감독을 만나라는 지령이었다. 이제야 리포트 기사에서 멀어지는구나, 산뜻한 정신으로 인터뷰를 준비했건만 시작부터 신통치 않았다. 인터뷰 룸을 잘못 전달받아 사진기자가 다른 층에서 헤매는가 하면 인터뷰는 룸에서 하되 사진은 호텔 정원에서 찍겠다는 말에 영화제 스탭들이 반대하고 나섰던 것. 하지만 더욱 당황스러웠던 건 인터뷰이의 지각이었다. 스탭들이 열심히 전화를 돌렸지만 이미 호텔을 나섰다는 전갈만이 돌아올 뿐 20분이 지나도록 그의 행방을 아는 이가 없었다. 이후 일정을 걱정하며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데 극적으로 그가 등장했다.
[오픈칼럼] 초대받지 못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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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릴 때 가장 아쉬운 건 무단결석 한번 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무단결석보다는 연애를 못해봤다는 것이 더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그 시절에는 다른 친구들도 대개 그러했으니 크게 억울한 일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십대에만 느낄 수 있는 고유의 감정을 겪어보지 못하고 그 시기를 넘어간 건 아무래도 인생에서 뭔가 손해를 본 것 같다.
무단결석은 그 다음으로 아쉬운 일이다. 학교와 집 밖에 모르고 매일이 꽉 짜여 있던 시절, 텅 비어버린 하루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 같은 것일까. 우리 이후의 세대들을 보면 이른바 범생이든 날라리든 무단결석을 대단한 일로 여기지 않는 것 같은데, 내가 학교에 다닐 때에는 무단결석이란 보통 일이 아니었다.
1983년이던가. 어느 일요일을 기억한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혜은이가 춤을 추면서 노래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갑자기 화면 밑에 공습경보를 알리는 자막이 깔렸다. 국민 여러분, 이 방송은 실제방
[내 인생의 영화] <브루스 브라더스> -박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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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배우 OOO는 이번에 차를 팔았다면서? 영화제작에 뛰어들었다가 쫄딱 망했으니 그럴 법도 하지. 고급 세단 뽑았다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야. 이제 인기도 시들하고 OOO도 호시절은 다 갔구먼.” “근데 말야. 신인배우 XXX는 출연료도 변변찮은데 이번에 외제차를 샀다면서. 어찌 된 일이야?” “맹추. 그걸 몰라. 재벌 △△△가 챙겨준 거라잖아. 그러니까 세상이 요 모양이지. 이번에 ◇◇영화사에서 신인배우 오디션을 열었는데 말야. 별로 신통치도 않는 나체사진까지 동봉한 처자도 있다더구먼.” “청운의 꿈인지 허영의 거품인지 모르겠구먼.” “영화사들마다 언젠가 자가용 타고 돌아오겠다며 집 뛰쳐나간 딸을 찾겠다고 헤매는 부모들 천지라잖아. 알맹이보다 껍데기가 중요한 시절이라니까, 지금은.”
‘앞공론 뒷공론’이니 ‘동서남북’이니 하는 1970년의 각종 영화잡지 뒷담화 꼭지들을 뒤적이다 보면 영화배우에 대한 동경이 여전했음을 알 수 있다. 울면 울고 웃기면 웃던
[한국영화 후면비사] 차를 보면 배우의 인기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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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갔다가 여자의 모자를 보고, 끊어진 밧줄을 보고, 이윽고 칼에 찔려 죽은 사무라이의 시신을 본다. 패닉에 빠진 나무꾼은 한달음에 경찰서로 달려가 신고를 하고, 이로써 종잡을 수 없는 해괴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살인사건에 연루된 네 사람의 진술은 모두 확보됐다. 하지만 동일한 사건을 목격한 그들의 진술은 크게 엇갈리며, 서로 모순되기까지 한다. 네 사람 중 진실을 말하는 것은 누구일까?
네개의 시각
체포된 도적 타조마루가 입을 연다. 사무라이를 기습해 묶어놓고 그의 아내를 겁탈했다. 처음에는 무섭게 저항하던 여자가 곧 자신과의 관계를 즐기는 듯했다. 자리를 떠나려는데 여자가 “자신의 수치를 두 남자가 알게 할 수는 없다”며, 한 사람이 죽기 위해 둘이 결투를 벌여야 한다고 말한다. 스물세합을 겨룬 끝에 사무라이를 살해했으나, 여자는 그 사이에 도망가고 없었다. 그도 여자 찾는 것을 포기한다. “그녀도 다른 여자와 다를 게 없었다.”
절에 숨어 있다 끌려온
[진중권의 이매진] 최종적 진리를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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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남자가 있다. 여자는 피아노 앞에, 남자는 그 옆 조그만 보조 의자에. 두 사람이 함께 만드는 최초의 음악은, 남자가 짚어주고 여자가 알아듣는 이국의 언어는 다음과 같다. 다다다다 다다다다…. 남자의 ‘다’는 다 다른데 여자는 그 ‘다’가 어떤 ‘다’인지 안다. 소리를 좇는 여자의 표정엔 꾸밈이 없다. 그녀가 건반을 짚기 전에 하는 일은 하나다. 남자의 음(音)을 집중해 듣는 것이다. 그녀는 ‘잘 치는’ 사람이지만 그전에 ‘잘 듣는’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들의 노래가 무사히 끝날 것이라 예감한다. 연주를 듣고 있던 악기점 주인이 박수를 칠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함께. 마음보다 몸이 먼저, 그런 순간에 주어지는 쾌락을 고대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환호’가 없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없어도 좋을 더 많은 것들 역시 없다. 악기점 주인은 노래하는 남자와 여자를 딱 한번 쳐다본다. 그것도 잠깐, 노인 특유의 완고한 표정으로 흘깃. 나는 악기점 주인이 고개 드는 순간 이 영
[냉정과 열정 사이] 짧지만 긴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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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허문영 평론가 사이에 마련된 정성일 평론가의 자리에 별안간 성은 같으나 이름이 다른 자가 등장한 것에 독자들이 놀라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가 숨겨놓은 필명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니 잠시 진정하시길 빈다. 소인, 잠시 지나가는 객일 뿐이다.
가끔 이견이 없지 않았으나 평소 정성일의 글에 취해 사는 독자 중 한 사람으로서 그의 자리에서 나의 소견을 쓰는 것이 과연 그의 통찰을 읽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가 돌아올 때까지 누군가가 잠시 이 자리를 맡아야만 하고 우연히 그게 나의 역할이 된 것이라면 한 가지 다짐은 하고 싶다. 김소영, 허문영 두 훌륭한 평론가가 사유의 숨을 더 깊게 쉴 수 있도록 한주의 시간을 벌어주는 징검다리로 혹은 덧붙여 가끔은 쓸모있는 보론과 이견도 제시할 줄 아는 첨언자로 노력하며 정성일 평론가를 애타게 기다리고자 한다. 갈수록 건기와 우기만 있다는 사계의 무딤 속에서 가을용 멜로 장르로 우리를 찾은 두편의 한국영화에
[전영객잔] 신파의 눈물이 낳은 이란성 쌍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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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의 중반까지는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탄력적인 이야기가 전개됐다. 의문의 죽음, 내의원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과학수사와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단서들 그리고 죽음의 주위를 둘러싸고 모여드는 궁녀들의 비밀스러운 삶이 지닌 의문의 파편들. <궁녀>가 궁중 미스터리 스릴러를 표방하며 의욕적으로 그 베일을 벗었다. 최근 유행하는 공간(궁, 병원 등)을 중심으로 한 역사추리 혹은 역사기담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그 주체로 역사에서 배제되었던 타자들을 소환시킴으로써 영화 <궁녀>는 대중의 산뜻한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또한 권력을 중심으로 한 어전이 아니라 전문성의 영역인 궁녀들의 일상적 공간에 주목함으로써 전에는 몰랐던 궁의 은밀한 공간들이 드러났다. 카메라는 궁궐의 각 모서리와 숨은 방들과 지하를 누비며 미시적인 공간들을 조명했고, 더불어 조선시대 궁녀들의 일상과 권력관계를 발견하는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사물들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
[영화읽기] 궁녀들의 억압된 핏빛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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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카핑 베토벤> 트로트 오케스트라의 거성, 악성 배토벤
[정훈이 만화] <카핑 베토벤> 트로트 오케스트라의 거성, 악성 배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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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님이거나 함께 온 가족이면 공짜로 입장할 수 있는 아트페어가 열린다. 1995년 ‘국제아트페어’라는 용어를 우리나라 처음으로 사용했던 ‘마니프서울국제아트페어’.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김 과장 전시장 가는 날”이란 타이틀로 미술애호가들을 유혹한다.
국내외 작가 130여명의 작품 2천여점이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이번 아트페어는 ‘군집개인전’ 형식이다. 각 부스에서 초대작가들이 직접 관람객을 맞이하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현장에서 작가에게 들을 수 있는 것이 매력이다. 또한 작은 소품 몇점이 아닌 최소 10여점이 넘는 다양한 크기의 작품을 볼 수 있어 작가적 역량을 가늠하는 데도 수월하다. 그리고 아트페어 관람은 곧 한국 미술시장의 분위기와 가격지수를 알게 해준다. 전시된 모든 작품은 빠짐없이 가격표가 붙어 있는 가격정찰제이기 때문이다.
최근 붐을 이루고 있는 미술시장의 큰 활기는 예전과는 매우 달라진 양상을 보인다. 그림을 단순히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
“과장님, 전시장 가실래요?”, 2007 마니프서울국제아트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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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참혹한 모습으로 살해당한다. ‘포르토벨로의 마녀’라고 불렸던 그녀, 아테나의 죽음 뒤, 한 사람이 그녀를 알았던 모든 사람들을 만나 그녀에 대한 증언을 받는다. 아테나는 셰린 칼릴이었고, 루마니아 집시의 딸이었고, 레바논 사업가의 양녀였고, 독실한 가톨릭 교도였고, 한 남자의 아내였고, 한 아이의 어머니였고… 마녀라고 불렸다. 완전하고 끝없는 쾌락을 모색하는 길에서 자기 존재의 근거를 찾는 인물, 마녀. <포르토벨로의 마녀>는 아테나의 죽음 뒤 그녀를 알았던 사람들의 증언으로 그녀의 삶을 재구성한다. 하지만 아테나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그녀의 삶은 무언가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방황하고 사랑하는 일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고아였다가, 독실한 믿음을 가졌던 성당에서 영성체를 모실 수 없는 이혼녀가 되었다가, 가난을 딛고 부유한 사업가가 되었다가, 마침내는 영적 지도자로 거듭난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대중의 사랑과 지
마녀 혹은 여신은 어디에 있는가, <포르토벨로의 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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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하우스> SBS 금·토 밤 12시5분
<하우스> 시즌3 OCN 월·화 오전 10시·오후 7시50분
주인공 엔트워스 밀러의 인기에 힘입어 지상파 방송을 탄 <프리즌 브레이크>의 후속작으로 <하우스>가 방영 중이다. 그 소식에 상당수 미드팬들의 반응은 “아니 왜 <프리즌 브레이크> 시즌2를 방영하지 않는 거지?”였다. 미국에서는 이미 시즌3가 9월17일부터 방영이 시작된 상태였기 때문에 당연히 시즌2를 방영할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특히 시즌1의 마지막 에피소드가 시청자들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상황에서 끝나기 때문에 팬들의 이런 불만 섞인 반응은 충분히 이해가 됐다.
그러나 반대로 CATV나 어둠의 경로를 통해 <하우스>를 탐닉한 이들은 그 뉴스에 환호성을 올렸다. <하우스>가 일반 시청자 사이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미드이지만, <그레이 아나토미>와 함께 의학 미드의 양
[이철민의 미드나잇] 너무나 미국적인 괴짜 영국 중년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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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치온 10월25일(목) 밤 11시
<떼시스> <오픈 유어 아이즈> <디 아더스>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가 죽음을 성찰하는 작품, <씨 인사이드>는 논쟁적이다. 안락사가 금지된 스페인에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와 자유’에 대한 감독의 시선은 확고해 보인다. 28년 전 전신마비가 된 뒤, 형과 형수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조차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라몬 삼페드로(하비에르 바르뎀). 꿈속에서만 자유로워질 수 있는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죽을 권리를 주장해왔다. 그를 변호해주기 위해 찾아온 줄리아(벨렌 루에다) 역시 퇴행성 질환에 걸려 죽음의 문턱에 서 있다. 둘은 죽음 앞에서 공감하고 그 절박함은 사랑으로 변하지만, 그럴수록 라몬의 죽음에 대한 욕망은 깊어진다.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논쟁적인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평단과 관객은 거의 일제히 감동을 표했다. 대부분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인간으로 태어나 어떻
죽음의 윤리를 묻다, <씨 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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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개념, 무형식, 무스타 등 3무(無)을 표방하며 MBC <무한도전>의 대항마로 지난 9월22일 출격한 SBS 토요버라이어티프로그램 <이경규 김용만의 라인업>은 언뜻 ‘눈에는 눈’의 맞불 전략을 구사 중인 것처럼 보이며 예능프로그램의 최신 경향을 따끈하게 대변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일본의 인기 예능프로그램에서 ‘움직이는 벽’까지 수입(?)해 준비된 아이디어와 잘 짜인 형식의 힘을 발휘하려 했지만 실패한 전례(<작렬! 정신통일>)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듯 이 프로그램은 <무한도전>식 ‘리얼리티’와 ‘빈틈 많은’ 캐릭터들의 단체 플레이를 한층 강도높게 사냥하고 있다. 이번에도 일본 TBS <링컨> 등 옆나라 예능프로그램에서 재료를 차용한 흔적이 다분하다. 그러나 더블 MC인 이경규와 김용만을 비롯해 김구라, 신정환, 윤정수, 김경민 등 출연진이 매주 어디에서 어떻게 톡톡 튀는 아이템을 소화하느냐보다 얼마나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채 ‘
<무한도전> 인기 비결에 대한 잘못된 재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