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회 칸국제영화제가 5월14일 개막했다. 데이비드 린치가 직접 찍은 포스터를 팔레(영화제 메인 상영관)의 지붕에 걸어놓은 올해 영화제의 비공식적인 모토는 ‘덜 화려하게 더 내실있게’다. 작년 60살 회갑잔치처럼 번지르르한 잔치 분위기 없이 진짜 발견의 재미를 주는 실속있는 프로그래밍을 지향한다는 이야기다. 심각한 미국의 경제 침체와 달러화의 약세로 할리우드 스타들의 방문은 어차피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거대 제작사들조차 예년처럼 파티에 돈을 갖다 부을 형편이 아니다. 하지만 기자와 비평가들로서는 손해볼 게 별로 없는 장사다. 집행위측이 일찍이 "(초청작 숫자의) 인플레이션은 거부한다"고 단언하며 "가벼운(Light) 영화제"를 표방한 덕에 경쟁부문 프로그래밍이 예년보다 훨씬 알차졌기 때문이다. 상영작 수도 크게 늘어난 편은 아니다. 올해 영화제 공식부문에는 경쟁부문 22편을 포함해 모두 57편의 장편영화가 초청됐다. 그 중 55편이 전세계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월드 프리미어’다. 칸영화제가 전통적으로 사랑해온 거장들의 이름은 올해도 여전하다. <아들>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다르덴 형제는 <로나의 침묵>(Lorna’s Silence)로 칸을 찾았고 <팔레르모 슈팅>(The Palermo Shooting)의 빔 벤더스도 익숙한 걸음으로 레드카펫을 밟을 예정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흥미로운 건 칸이 새롭게 발견한 대륙의 영화들이다. 올해 칸영화제는 그간 극진하게 대우해온 한국과 일본으로부터 고개를 돌려 동남아시아와 남미로 윙크를 보냈다. 부산영화제에서 먼저 발견된 싱가폴 감독 에릭 쿠와 필리핀 감독 브리얀테 멘도자는 각각 신작 <나의 마술>(My Magic)과 <세르비스>(Serbis)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처음으로 입성하는 개가를 이뤘다. 지난 몇년간 꾸준히 성장해 온 라틴 아메리카 영화의 강세 또한 인상적이다. 칸의 적자 월터 살레스의 신작 <Linha De Passe>, 걸작 <홀리 걸>을 통해 국내에도 소개된 아르헨티나 여성작가 루크레시아 마르텔의 신작 <머리없는 여자>(La Mujer Sin Cabez), 파인컷의 서영주 대표가 공동으로 제작을 맡은 아르헨티나 감독 파블로 트라페로의 <레오네라>(Leonera)가 황금종려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감독 주간에 출품된 리 산드로 알론소의 <리버풀>(Liverpool)까지 포함시킨다면 작년 루마니아를 잇는 올해의 주연은 역시 아르헨티나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축제의 주인 자리를 내주었을지언정 한국 영화인들이 자축연을 벌이지 못할 이유까지는 없을 듯 하다. 영화제 폐막을 하루 앞둔 24일 토요일에 월드 프리미어를 갖는 김지운 감독의 신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특히 아시아 기자들과 일본 마케터들 사이에서 화제다. 현지에서 만난 일본인 마케터들은 "제작사가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제시한 탓에 아직 구입을 결정하지는 못했으나 어떤 영화일지 궁금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비경쟁 심야상영 부문의 <추격자>는 신인 감독에게 수여하는 황금카메라상 후보작이며 봉준호 감독이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도쿄!>역시 ‘주목할 만한 시선’의 화제작 중 하나다. 제61회 칸국제영화제는 오는 25일까지 열흘간 열릴 예정이다. 취재지원 유동석
제61회 칸영화제 심사위원단 기자회견
올해 심사위원단은 어느때보다도 국가와 문화적 배경이 다양하다. 이탈리아 감독 세르지오 카스텔리토, 태국 감독 아피차퐁 위라세타쿨, 프랑스 감독 라시드 부사렙과 이란 출신의 마르잔 사트라피, 독일배우 알렉산드라 마리아 라라, 프랑스 배우 잔 발리바르, 미국 여배우 나탈리 포트만. 그러나 그들을 압도하는 존재는 역시나 심사위원장을 맡은 숀 펜이다. 지난 14일 열린 심사위원장 기자회견에서도 대부분의 질문은 숀 펜에게만 쏟아졌다. 당신이 티에르 프레모에게 직접 부탁해서 첨가한 ‘심사위원장 특별상영’은 어떤 계기로 이루어지게 된 것인가(상영작은 쓰나미가 덮친 스리랑카를 돕기 위해 떠난 네명의 자원봉사자 이야기를 다룬 호주감독 알리슨 톰슨의 <The Third Wave>다.) 숀 펜/ 대략 6개월 전에 본 영화다. 지금 세계의 문제들은 정치가들에 의해 해결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나에게 특히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용감하고 감동적이며 영감을 주는 자원봉사단들의 여행. 나는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토록이나 답변을 주는데 근접한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적어도 두다리 멀쩡하고 1달러라도 수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조지 클루니가 오바마를 지지하듯 정치적으로 경쟁부문 심사를 비유해보라. 나탈리 포트먼/ 올해의 정치적인 이슈는 아주 흥미롭다. 모든 후보들은 역동적인 선거를 치뤄야 할 거다. 배우로서의 경험이 이번 심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될까. 숀 펜/ 내가 배우였다는 사실이 심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게다. 사실 경쟁부문의 몇몇 작품들은 내가 배우를 하면서 여러가지로 관련이 있었던 사람들의 영화다. 오히려 애정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의 관계 때문에 심사가 영향을 주지 않을까(라는 기자들의 에두른 몇번의 질문에). 숀 펜/ 만약 이스트우드의 영화가 상을 받을만 하다면 그냥 썅 줘버릴거다(We're gonna fuck award it!).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게 될 감독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 매우 의식(very conscient)적이여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