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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는 언니네의 똘똘한 초등학생 딸은 책상에 “공부만 하자”라고 써붙여놓았다. “1등 안 해도 되니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얘기하면 “난 1등 안 하면 더 스트레스받으니까 그런 말 말라”고 신경질을 낸다. 또 다른 언니네의 더 똘똘한 중학생 딸은 부모에게 학원비며 과외비며 차라리 돈으로 모아 달라는 협상을 하고 있다. 자기 세대는 ‘십장생’(십대도 장차 백수가 될 것을 생각한다)이니 밑빠진 독에 물 붓지 말라는 이유있는 주장이다.
아이 1명을 고등학교 마친 뒤 바로 4년제 대학에 진학시켜 휴학없이 졸업시키려면 2억3200만원이 든다는 조사 결과를 얼마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았다. 고등학교만 마쳐도 1억7300여만원. 으헥. 교육비, 식품비, 의료비, 의복비, 용돈, 기타 등등이 망라된 돈인데, 그냥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고 옷도 대충 얻어 입히고 최소한의 공교육 경비만 지불한 뒤(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나머지를 앞서 ‘십장생’의 제안처럼 꼬박꼬박 모으면, 애가 성인이 됐을 때
[김소희의 오마이이슈] 부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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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간에 개봉되는 영화를 엄선하여 관객들에게 질문하는 [개봉작 출구조사]
이번 주에는 10월 18일에 개봉한 <궁녀>와 <바르게 살자>를 보신 관객분들에게 솔직담백한 영화평을 들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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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조사] <궁녀>, <바르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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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83살이었고, 남자는 84살이었다. 그들은 지난 9월24일 북동 프랑스 오브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남자는 여자 곁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30년 가까이 여자의 몸을 갉아먹고 있던 진행성 질환이 아니더라도 두 사람 앞의 생이 길지는 않았겠으나, 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들은 60년 동안 서로 사랑했고, 58년간 부부였다. 여자의 이름은 도린이었고 남자의 이름은 앙드레였다.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도린이었으나, 남자는 태어날 때부터 앙드레가 아니었다. 남자가 192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을 때 부모가 지어준 이름은 게르하르트였다. 여자는 60년 동안 남자를 그 이름으로, 정확히는 그 독일어 이름을 프랑스어 식으로 다듬어 제라르라 불렀다. 남자의 아버지는 호르스트라는 성을 지닌 유대인 목재상이었고 어머니는 가톨릭이었다. 1938년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나치 정권이 두 나라의 합방을 선언하자, 남자의 부모는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게 되었다. 이듬해 스위스로 여행간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도린과 제라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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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해도, 특정한 장면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 영화들이 있다. 벤 애플렉, 리브 타일러가 주연한 <저지 걸>이 바로 그 애매한 카테고리에 속하는 영화였다. 이제는 기본적인 줄거리조차 희미해져버렸지만, 아직까지 생생한 것은 애플렉의 극중 딸의 학예회 장면이다. 아마도 뮤지컬을 발표하는 자리였을 거다. 99%의 아이들이 한결같이 <캣츠>의 <메모리>를 곱게 뽑아낼 때, 소녀가 들고 나온 것은 한마디로 색달랐다. 애플렉이 이발사로 등장해 손님의 목을 면도날로 쓱싹 그으면, 아래서 기다리고 있던 딸이 즐거이 그 시체를 받는다. “God, That’s Good!” 부녀의 용맹한 합창이 울려퍼지면, 객석을 채우고 있던 학부모들의 표정은 순수한 경악으로 얼어붙는다.
마냥 낄낄대며 보았던 그 장면의 문제적 뮤지컬이 바로 <스위니 토드>라는, 브로드웨이에서 굉장한 화제를 뿌린 작품이라는 것은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됐
[오픈칼럼] 스위니 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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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생의 훼이보릿이 명확한 편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그룹은 ‘펫샵보이스’이며 18년째 거의 매일 듣고 있는 인생의 음악은 그들의 <being boring>이고 살면서 가장 그리운 사람은 안토니오 이노키처럼 멋지고 웃긴 턱을 가졌던 내 친구 ‘이상문’이다.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여배우는 <사관과 신사>에 나오는 ‘데브라 윙거’이고 되찾고 싶은 공간은 홍대 주차골목에 있었던 카페 ‘루카’이며 두말할 필요없는 내 인생 최고의 영화는 실베스터 스탤론 각본·주연의 <록키>이다.
난 남의 취향에 관대한 편이 아니어서 언젠가 음악하는 어떤 동생이 ‘서드 아이 블라인드’가 가장 좋아하는 그룹이라기에 막 뭐라고 한 적이 있다. “네가 서드 아이 블라인드를 좋아할 수는 있어. 그런데 어떻게 ‘가장’ 좋아할 수가 있지? 어떻게 그런 애들이 너의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그룹이 될 수 있냔 말이야.” 존중할 수는 있어도 이해할 수는 없는 취향이었
[내 인생의 영화] <록키> -가수 이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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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우 북’은 고대 일본의 서책인 <마쿠라노소시>(枕草子)이다. 책의 저자는 헤이안 시대의 궁녀였던 세이 쇼나곤(淸少納言: 965-1010?). 그가 궁정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적어놓은 메모를 모아 만든 책이다. 같은 이름을 가진 자신의 영화(1996)에서 그리너웨이는 곳곳에 이 책의 구절을 깔아놓는데, 그 인용구들은 쇼나곤의 섬세한 감성을 보여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오리알. 은그릇에 담긴 얼음 조각. 등나무 꽃. 눈 덮인 자두 꽃. 딸기를 먹는 아이들.”
쇼냐곤의 일기
영화는 주인공 어린 나기코의 생일의식으로 시작한다. 아빠가 나기코의 얼굴에 붓으로 이름을 써주며 고대의 전설을 들려준다. “신이 처음을 만들 때, 먼저 눈을 그리고, 입술을 그린 다음, 남녀를 구별하셨다. 그리고 각각의 이름을 쓰셨다. 당신이 만든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얼굴에 이름이 적힌 나기코가 뒤를 돌아보며 말한다. “아빠 이름은?” 아빠는 소녀의 목덜미에 제 이름을 적어
[진중권의 이매진] 누군가 내 몸에 이름을 써준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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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할리우드라는 단어가 극장보다 일상에 더 밀착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극적인 반전과 해피엔딩이라는 할리우드의 보통명사적 특징을 걸러서 본다면 말이다. 지금은 찌질하지만 언젠간 보란 듯이 성공하겠어라는 순수한(순진한?) 개인적 열망에서부터 최근 부동산 투자, 주식 투자의 광풍에 이르기까지 사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할리우드 엔딩’을 향한 치열한, 또는 안쓰러운 몸부림 아니겠는가.
하지만 나처럼 지적이면서 냉철한 사람들은 할리우드적 욕망이 가진 무모함과 위험성을 익히 알기 때문에 후배나 동료들의 할리우드적 꿈과 희망을 깨는 데 최선을 다한다. “네 여자친구가 진짜 널 좋아한다고 생각해? 월급 통장 보여주면 당장 도망갈걸”이라거나 “어차피 좀 있으면 회사 잘리고 공공근로사업에 나가게 될 텐데 뭘 그렇게 열심히 일해”라는 등 지혜로운 조언을 해주면서 말이다.
그래서 인생의 정답이 할리우드 엔딩에 대한 냉소에 있는가 하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고, 열심
[냉정과 열정 사이] 할리우드 엔딩이 아니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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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떤 자리에서 한 선배가 “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도 공감했다. 내 자신의 내부를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사람에 대한 믿음을 버릴 수밖에 없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배신과 훼절과 변태의 충동들! 다른 사람들의 처지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정말 사람은 믿을 것이 못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또 다음 순간, 그 욕망의 도발을 잠재우고 정리하는 힘이 어김없이 작동하곤 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라는 게 또 믿을 만한 구석이 있는 거로구나, 하고 생각을 고쳐먹게 된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영화관 객석에 앉아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원스> 같은 영화를 볼 때, 욕망과 충동의 지뢰밭 위에서 날밤 새우는 우리의 슈퍼에고가 마치 적진에서 구원병을 만난 것처럼 반가워한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사랑이라는 것, 마르고 닳도록 써먹은 그 진부한 재료를 가지고 여전히 전혀 손을 타지 않은, 그처럼 새뜻한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다니
[영화읽기] <원스> 일상의 조각들로 짠 기적의 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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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빛을 보며 아침을 맞는 것은 축복이다. 그리고 이후 밤까지 이어지는 영화의 빛들. 10월4일에서 12일까지 부산국제영화제는 이 두 가지 빛의 스펙트럼 속에서 열린다. 올해도 여느 해처럼 하루 4편가량의 영화를 보고, 미드나잇 스페셜을 들르기도 한다.
최근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감독 중 한 사람이 한국계 중국 감독 장률이라 <경계>를 보러 갔다. 그의 영화는 ‘한국영화의 오늘’에서 상영되었다. 한국 영화계가 장률이나 <수>의 최양일과 같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계 감독들을 수용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경계>는 한국, 몽골, 프랑스 3개국이 공동 참여한 영화이며 언어도 한국어(북한어)와 몽골어가 공존하는 작품이니 그 자체가 기존의 ‘한국영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이다.
그 <경계>의 경계에 외몽골 사막의 풍경이 서 있다. 건조한 아름다움이다. 사막화되어가는 황폐한 스텝, 초원에 한 남자 항가이(바트을지
[전영객잔] 부산이 선물한 두편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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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서 가장 유명한 키스 장면의 주인공, <지상에서 영원으로>의 데보라 카가 향년 86살로 세상을 떠났다. 데보라 카는 파킨슨병으로 앓다가 10월16일 동부 잉글랜드 서포크에서 첫 남편 앤서니 찰스 바틀리 사이에서 태어난 두 딸과 손자들, 극작가인 두번째 남편 피터 비에텔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 <AP> <가디언> 등 해외 외신들이 그녀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안타까움을 표했으며, <BBC>는 “성공적인 영국의 수출품” 데보라 카의 사망을 전하며 “영국의 장미”가 졌다고 애도했다.
데보라 카가 영화에서 보여준 이미지는 전형적인 영국의 귀부인이지만, 그녀는 1921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다. 5살에 가족을 따라 잉글랜드 동부 지방으로 이주한 그녀는 브리스톨에서 발레를 시작했고 17세에 첫 무대에 올랐으나, 곧 연기로 진로를 변경했다. 극작에도 재능을 드러냈으며, 2차대전 발발로 극장이 문을 닫
<왕과 나> <지상에서 영원으로>의 데보라 카, 86세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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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 <은하해방전선>의 윤성호 감독은 좋은 대사 감각을 보유한 연출자에요.
이동진 : <투야의 결혼>은 이국적인 공간의 비극을 한국의 편안한 극장에서 즐긴다는 사실이 미안해져요.
해운대 엔딩님(vermeer@cine21.com)이 입장하셨습니다.
매드 베케이션님(lifeisntcool@naver.com)이 입장하셨습니다.
매드 베케이션님의 말(이하 매드): 흠, 뭐 객지에서 메신저 접속하는 거, 별거 아니네요.
해운대 엔딩님의 말(이하 엔딩): 헉, 하다하다 실패해서 결국 <씨네21> 부산 데일리 사무실에서 접속하고 계시면서 무슨 말씀을? ^0^ 전 숙소에서, 선배는 <씨네21> 사무실에서 대화에 임하는 참신한(?) 상황이네요.
매드: 장소가 장소인지라, 센 척해봤습니다. - -;
엔딩: 저는 방금 세상에서 제일 사치스러운 극장에서 영화보고 왔어요.
매드: 수영만 야외상영관? ^^
엔딩: 넵! 호그와트 마법
[메신저토크] “영화제는 무엇보다 영화 보는데 최고의 장소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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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출신의 젊은 감독, '로이스톤 탄(Royston Tan)'이
영화<881>과 함께,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미국 타임지가 뽑은 아시아의 젊은 영웅 20인에 선정되기도 했던
이 순수하고 젊은 청년은, 싱가포르를 비롯해
이미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실력파 신예 감독이다
이번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사이에 가졌던
영화평론가 '김영진'과의 '아주담담'한 대화는,
작품만큼이나 특유의 밝고 순수한 모습,
영화와 음악에 대한 애착, 그리고 수준급 노래 실력까지!
'로이스톤 탄' 감독의 숨은 매력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값진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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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FF2007] 영화 <881> 로이스톤 탄 감독의 ‘아주담담’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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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영화제에서 관객평론가상을 받은 독립영화라거나 왕따와 은둔형외톨이, 인터넷동호회를 통한 폭력 등을 소재로 한 영화라는 귀뜸을 듣고 상상한 것에 비하면, 한마디로'기대이하'의 영화이다. 시작에서 산속 장면까지는 그런대로 갈등이 쌓여가는 느낌이 있지만, 산속 장면 이후는 도통 수습이 되지 않는다. 차리리 그곳에서 파국을 맞었더라면 임팩트는 강렬했을 텐데...왜 김 다 빠진 어정쩡한 상태로 그들을 돌려보냈는지 감독의 의도를 도무지 알수 없다. 청부업자에게 이쯤에서 그만두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주인공에게 청부업자가 했던 대사, "이게 중간에 그만 둘 수 있는 일인가?"를 감독에게 되돌려주고 싶다. 감독 역시 주인공 만큼이나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닐까? 혹시라도 감독을 만나면 묻고싶다. 뭐가 두려워서 이야기를 하다 마는지, 불필요한 판타지 장면(옷장으로 사라지기)은 왜 집어넣었으며, 그녀는 어떻게 알고 그 장소를 가본다는 것인지, 저수지 장면에서 표의 전화로 그가 저수지의 공포를 극복했
[전문가 100자평]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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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의"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함께하는 다시보기(Replay)" 현장입니다.
"<가족의 탄생> 다시보기" 현장에는 공식 패널로 김태용 감독, 정유미 배우, 이동진 영화평론가, 조선희 한국영사자료원장이 초청되었으며,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사회로 진행되었습니다.
"다시보기(Replay)"는 한국영화 개봉작 중 배급 과정에서 관객들이 충분히 감상할 기외가 적었거나, 작품성을 인정받아 종영 후에도 재상영에 대한 수요가 높은 작품을 엄선하여 다시 상영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이 10월 19일(금)과 20일(토) 양일 간 상암동 시네마테크 KOFA에서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함께하는 다시보기(Replay)"프로그램의 두 번째 주자로 <소름>(윤종찬,2001)을 재상영합니다.
20일(토)에는 <소름>의 윤종찬 감독과, 장진영, 심재명과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도 있습니다.
cine club 은 씨네21이 만난 저명인사, 또는 영
[cine club] <가족의 탄생> 김태용 감독과 배우 정유미와의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