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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거장이었다. 새 영화 <야경>을 갖고 부산영화제를 찾은 영국 감독 피터 그리너웨이는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강의에 가까운 열변으로 한국의 기자들을 맞았다. 통역과 진행이 원활하지 못했지만, “최선의 방법은 의미의 협상”이라며 인터뷰를 주도했고, 질문을 질문으로 답하며 한국과 아시아 지역에 대한 호기심도 드러냈다. 8일 한국에 들어온지 2시간도 채 안돼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를 여기 옮긴다.
-<야경>에서 네덜란드의 화가 램브란트를 소재로 택했다. 이유는 뭔가.
=나는 영화 감독이 되기 전 미술 교육을 받았다. 서양화에서 램브란트는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는 존재다. 그는 2007년 지금 우리에게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는 인도주의자고, 공화주의자며,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포스트 프로이드적이며 동시에 페미니스트다.
-그렇다면 왜 램브란트의 작품 중 가장 논쟁적인 <야경>을 골랐나.
=램브란트는 다작의 화가다. 아
텍스트에 기반한 영화는 끝났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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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驛)의 로망> Crossed Tracks
클로드 를르슈 | 2006년 | 103분 | 35mm, 컬러 | 프랑스 | 월드 시네마
이제는 ‘고전’이라 불릴 만한 <남과 여>(1966)의 감독 클로드 를르슈의 신작이다. 사실 <사랑하기 위한 용기>(2005) 정도를 제외하자면 그의 최근 영화들은 하나같이 혹평에 시달렸다. 실제로 <역의 로망>은 계속되는 작품 실패로 인해 그가 가명으로 칸영화제에 출품했던 작품으로, 삶의 부조리에 관한 독특한 미스터리극이다. 성공한 여성 작가인 주디스 라리처에게 사실은 숨겨진 유령 작가가 있다는 흑백화면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윽고 컬러 화면으로 바뀌면, ‘마법사’라 불리는 연쇄살인범이 탈출하고 그는 우연히 만나게 된 미용사 위게트의 남자친구를 연기하면서, 그녀의 고향집까지 가서 가족들 앞에 진짜 남자친구인 것처럼 행세한다. 밤이 되자, 가짜 신음소리를 내서 마치 섹스를 하는 것처럼 위장하는 것도
삶의 부조리에 관한 독특한 미스터리극 <역(驛)의 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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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세계> It’s A Free World…
켄 로치 | 2007년 | 96분 | 35mm, 컬러 | 영국,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폴란드 | 월드 시네마
켄 로치 영화에 다시 축구장면이 등장했다. 언제나 함께 해온 시나리오작가 폴 라버티의 존재감도 여전하다.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먼저 공개된 <자유로운 세계>는 <보리밭에 부는 바람>(2006)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직후 켄 로치가 다시 영국의 현재로 돌아온 영화다. 성희롱을 하는 손님에게 술을 끼얹고 해고를 당한 앤지는 자신의 친구 로즈와 함께 직업 중개소를 차려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이민자들을 모집해 사업을 확장하던 앤지는 곧 심각한 위험에 봉착한다. 여권도 없이 무작정 일만 시켜달라고 아우성이던 사람들을 승합차가 터지도록 태우고 다녔지만 그 결과는 썩 좋지 못했던 것이다. 이민자를 착취하며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던 영업은 곧 바닥이 드러나고, 화가 난 노동자들에 의해 자
생생한 현실의 소음 <자유로운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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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태양> Black Sun
크지슈토프 자누시 | 2007년 | 104분 | 35mm, 컬러 | 이탈리아, 프랑스 | 월드 시네마
발레리아 골리노는 이제 완전히 잊혀진 이름이나 다름없다. <프리다>(2002) 정도를 제외하면 배우 활동을 하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지만, 사실 최근 자신의 고향인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오가며 꾸준히 작품 활동 중이다. <검은 태양>은 폴란드영화의 거장 크지슈토프 자누시의 신작이면서 그녀의 요즘 모습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골리노가 연기하는 아가타는 궁궐 같은 대저택의 여주인이자 연하의 미남자 만프레디를 남편으로 둔 여인이다. 집 안에서 거의 알몸으로 지내는 그들은 바깥세상의 공기는 아랑곳없이 그들만의 행복한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는 더 바랄 것이 없다. 하지만 건너편에 사는 남자가 만프레디를 총으로 쏴 죽이면서 깊은 절망으로 빠져들게 된다. 인생의 막다른 곳에 내몰려 절망하던 그는 결
거장 크지슈토프 자누시의 신작 <검은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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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콤바인> The Red Awn
차이상준 | 2007년 | 101분 | 35mm, 컬러 | 중국
아들 용타오는 가족을 버리고 도시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아버지 숭하이가 못마땅하다. 아들은 아버지를 쳐다보는 것조차 꺼려한다. 그동안 뭘 했느냐고 따져 물을 수도 있지만 그냥 아버지와는 아무런 말도 하기가 싫다. 아버지가 떠난 뒤 어머니는 자살을 했고 그때도 아버지는 모른 체했다. 아들은 그때만이라도 아버지가 돌아오길 바랐지만 아버지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들이 아버지를 증오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다 둘은 빨간 콤바인을 빌려 함께 추수 일을 하게 된다. 같이 일을 해도 아들의 태도는 변함없고, 급기야 아버지는 아들이 흠모하는 소녀에게 100위안을 주면서까지 친해보려 애쓴다. 그렇게 아버지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전달되고, 일을 하는 동안 들판에서 그냥 이불을 깔고 자면서 함께 생활하는 사이 조금씩 화해의 기운이 감돌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
아버지와 아들의 희망적인 미래 <빨간 콤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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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더스> Exodus
팡호청 | 2007년 | 94분 | 35mm, 컬러 | 홍콩 | 아시아영화의 창
팡호청은 어느덧 홍콩 영화계의 주목할 만한 대가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너는 찍고, 나는 쏘고>(2001)로 발랄함을 과시했던 그가 지난해 국내에도 소개된 <이사벨라>를 통해서는, 반환전야의 마카오를 통해 홍콩과 중국을 넘나드는 지역성을 탐구하는 폭넓은 시선을 보여주기도 했다. 1997년 반환 이전의 홍콩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엑소더스>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의 자화상 아래 펼쳐지는 폭력신으로 시작하는 첫 장면부터 야심적이다. 수경을 끼고 오리발까지 찬 일군의 남자들이 담배를 피우며 우아하게 느릿느릿 누군가를 구타하기 시작한다. 마치 이곳 홍콩에서는 늘 이랬다는 듯이 말이다. 경찰관 짐(임달화)은 여자 화장실에서 비디오카메라로 무언가를 찍다가 체포된 콴(장가휘)을 취조하는데, 그는 남성들을 제거하려는 여성 비밀결사체를 추적 중이
반환전야 홍콩의 무드 <엑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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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차이나우드’ 진출을 위한 정책적인 방안 모색이 시작됐다. 8일 오후 5시 그랜드 호텔에서 열린 2007 중국 비즈캠프 컨퍼런스에서 자오 우 메가조이픽쳐스 부사장은 지난해 31편의 합작영화가 제작됐고, 영화인들의 저작권 보호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며 WTO 가입 후 중국의 영화시장 개방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편 AFA와 행사를 공동으로 주최한 영화진흥위원회의 김혜준 사무국장은 중국저작권보호연맹 이사장인 순 지엔홍 베이징 B&D 로펌 대표변호사와 중국시장에서 한국영화의 원활한 유통을 위해 자문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중국 영화시장 꿰뚫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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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곳도, 피부색도, 쓰는 말도 달랐다. 하지만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열정만큼은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8일 오후 3시30분 부산 해운대 아르피나에서 열린 ‘아시아영화아카데미 교장선생님들과의 대화’는 아시아의 현재를 이끄는 거장 감독들과 아시아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영화인들의 ‘만남의 장’이었다.
이번 행사에는 올해의 교장 모흐센 마흐말바프를 비롯, 지난 2005년 아시아영화아카데미의 첫 교장을 지낸 허우샤오시엔 감독과 2회 교장 임권택 감독이 참석했다. 아시아 15개국에서 선발된 24명의 젊은 영화인들은 거장들의 말 한 마디를 놓칠세라 귀를 기울였다. 세 명의 거장은 이들이 아시아 영화의 ‘새로운 물결’을 이끌어나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열린 관찰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보길 바란다”는 당부를, 임권택 감독은 “개인의 재능이나 창의성을 살려내는 건 교육이 아니라 본인 자신의 노력”이란 말을,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은 “영화인을 만드는 건 경험”이란 영화관
아시아 영화의 현재와 미래가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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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한 논란은 시점의 문제다. 무엇이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역사는 서로 다른 입장에서 각기 다르게 윤색된다. 전쟁이나 대립이 첨예한 사건은 더욱 그렇다. 서로 다른 사실이 난무하고, 한쪽에 치우친 주장들이 사실과 관계없이 강요된다. 동아시아 지역의 가장 뜨거운 문제 야스쿠니 신사도 그렇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는 매번 논란이 되고, 중국과 일본, 한국과 일본의 외교는 야스쿠니 앞에서 주춤한다.
중국의 리 잉 감독이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다큐멘터리 <야스쿠니 신사>를 들고 부산을 찾았다. 1989년부터 일본에서 살고 있는 그는 중국에선 몰랐던 일본인들의 역사 의식, 야스쿠니에 대한 생각에 충격을 받아 영화를 시작했다. “난징 학살 관련 세미나에서 일본인들이 국기 의식을 하며 박수를 보내는 모습”은 일본문화에 익숙한 그에게도 낯선 광경이었다. 마침 야스쿠니에서 검을 만들던 장인의 소식을 접했고, 그는 이 노인의 삶을 야스쿠니 문제 해결의 실마리로 삼았다
아시아인들과 일본을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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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루마니아 뉴웨이브’는 수많은 장벽을 헤치고 새로운 물결이 될 수 있을까.
루마니아. 우리가 이 미지의 국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두명의 악마, 흡혈귀 드라큘라와 독재자 차우셰스쿠다. 하지만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새로운 영화들을 탐색하는 영화광들이라면 루마니아를 ‘새로운 영화의 신천지’로 부르는 데 추호의 망설임도 없을 것이다.
지난 몇년간 세계영화제를 휩쓸어 온 루마니아 영화들은 ‘이란과 한국 이후’ 새로운 영화들을 찾아 헤메고 있는 서구 비평가와 관객들의 취향을 만족시켜왔다. ‘루마니아 뉴웨이브’라 일컬어지는 루마니아 영화의 새로운 붐을 이끄는 것은 30대의 젊은 감독들로, <라자레스쿠씨의 죽음>의 크리스티 푸이우, <부쿠레슈티의 동쪽>의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 요절한 천재 크리스티안 네메스쿠, 그리고 올해 뉴 커런츠 심사위원으로 부산을 방문한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의 크리스티안 문주, 이들은 루마니아 뉴웨이브의 선두에 서 있
미지의 영화의 성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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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인>을 연출한 마쓰모토 히토시는 일본의 유명한 개그맨이다. 그의 이름이 걸린 TV방송 DVD가 출시되면 <해리 포터> 시리즈와 1, 2위를 다투는 판매율을 보이고, 마쓰모토 히토시가 돈을 쓰지 않아 일본 경제가 안 돌아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그가 쓴 에세이집 <유서>와 그 속편에 해당하는 <마쓰모토>는 도합 500만부 가량의 판매고를 올려, 일본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상·하권 판매부수와 필적한다. 그는 개그 콤비 ‘다운타운’의 멤버로, 콤비인 하마다 마사토시와 매주 진행하는 프로그램들만 해도 음악프로 <헤이헤이헤이>, 토크프로 <다운타운DX>, 코미디프로 <링컨> <가키노쓰카이>의 4개와 라디오 프로그램 <마쓰모토 히토시의 방송실>이 있다. 여기에 <마쓰모토 히토시의 스베라나이하나시>와 같은 비정규 방송까지 셈에 넣으면 거의 매일같
<대일본인>으로 감독 데뷔한 일본 코미디언 마쓰모토 히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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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유일한 경쟁 부문인 뉴 커런츠 섹션에 상영작을 내놓은 감독들이 소개됐다. 10월8일 오전 11시 해운대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11명의 뉴 커런츠 감독들과 김동호 집행위원장,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가 참석한 가운데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감독 프레젠테이션’이 열렸다. <신 인간 개>의 첸 싱잉 대만 감독은 태풍의 여파로 비행기 스케줄이 바뀌어 예정보다 늦게 부산에 도착했지만 다행히 행사장에는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감독들이 부산에 온 소감을 밝히는 순서에서 <톤도 사람들>의 필리핀 짐 리비란 감독은 “여기서 소주를 즐기고 있다. 아주 좋은 술이더라”라고 말해 취재진과 관계자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뉴커런츠 감독 프리젠테이션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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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영과 대화를 트는 일은 별로 쉽지 않다. 그는 깐깐하고 딱딱한 주제를 건드리는 대화에 얼른 호기심을 느끼는 타입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재영은 단순한 얘기를 좋아하고, 허허실실한 농담의 리듬을 한번 타기 시작하면 넘실넘실 그 리듬을 계속 이어간다. 바깥에 쏟아지는 소낙비 소리에 묻힐 만큼 나지막한 목소리로, 느린 말투로, 꾸준히. <웰컴 투 동막골>(2005), <나의 결혼원정기>(2005), <마이 캡틴 김대출>(2006), <거룩한 계보>(2006) 그리고 장진 감독의 조감독 출신, 결국은 장진 패밀리의 일원인 라희찬 감독의 데뷔작 <바르게 살자>(10월18일 개봉예정)에 이르기까지 그의 최근 커리어를 보면 가장 먼저 읽히는 건 안정된 직업배우로서의 성실함이다. 김유진 감독의 사극 <신기전>을 찍으면서 “지금까지 했던 걸 다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액션”을 하느라 살이 많이 내린 그는, 얇은 이목구비가 도드라진 얼
[정재영] 유쾌한 그 남자의 리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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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만달러 예산의 허우샤오시엔의 차기작 <섭은랑>에 서기, 장첸, 아사노 타다노부가 출연한다. 8일 오전 11시30분 그랜드 호텔에서 열린 ‘코프로덕션 프로'(Co-Production PRO)를 통해 허우샤오시엔은 3년 전부터 준비해 온, 당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자객 섭은랑(서기)과 그를 둘러싼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무협대작 <섭은랑>의 추후 계획을 들려줬다. 그는 “아직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간결한 동작과 근접 무술 장면들이 많을 것”이라며 기존 무협영화 스타일과 다를 것임을 암시했다. 또한 “원화평, 정소동, 원규같은 기존의 유명 무술감독들을 기용하지는 않을 것”이라 덧붙였다.
허우샤오시엔의 차기작, 서기·장첸·아사노 타다노부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