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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마이클 강의 <웨스트 32번가>를 통해 코리안 아메리칸 영화의 간을 슬그머니 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마이클 강의 <웨스트 32번가>는 한국 자본으로 동포감독을 이용해 미국을 공략해보겠다는 충무로적인 전략의 일환이었고, 서사와 미학적 경향에서도 (<올드보이>의 리메이크판을 연출할!) 저스틴 린의 <베터 럭 투모로우>처럼 전형적인 ‘아시안 아메리칸 영화’에 머무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미국에서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코리안 아메리칸 감독들은 더이상 뉴욕과 LA의 뒷골목에서 총을 들고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아시아계 아이들의 고통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들은 줄리아 로버츠, 케빈 베이컨, 브렌단 프레이저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을 데리고 중저예산의 데뷔작을 할리우드 자본으로 만들거나 혹은 뉴욕 인디영화계의 지원을 받으며 노마드적인 예술적 자화상을 그려나간다.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베를린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출품된 &l
코리안 아메리칸 시네마가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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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당당한 표절은 처음이었다.
6년쯤 전이었다. 사무실로 두툼한 우편물이 하나 날아왔다. 남쪽 지방의 한 도시에서 자칭 ‘소설가’라는 50대 아저씨가 자신의 신작 소설이라며 보내온 것이었다. 베트남전 당시 사이공에서 사랑을 나누다가 헤어진 한국군 사병과 베트남 여인이 1990년대에 다시 만나 피치 않게 악연을 맺는다는 내용이었다. 책을 펼쳐 잠깐 훑어보다가 깜짝 놀랐다. 소설의 상당 부분은 당시 내가 일하던 잡지의 기사에서 발췌한 것이었다. 나를 포함해 동료들이 쓴 르포기사의 문장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기가 막혔다. 짜깁기와 베끼기로 소설을 바느질해놓고서, 원문을 쓴 기자에게 책을 보내주는 것은 무슨 심리란 말인가. 우편물 겉봉엔 자신의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당당히 적혀 있었다. 제 기사를 활용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라고 전화라도 해달라는 말인가. 항의를 할까 한참 고민하다가 관두었다. 첫째, 귀찮았다. 둘째, 표절을 했지만 그가 명성이나 영달을 누릴 것 같지는 않았다. 그가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표절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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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밤과 낮>을 보자고 했다. 아니, 도대체 왜? 나름 데이트라면 데이트인데, 홍상수의 영화가 웬말인가. 영화를 보는 동안 그녀는 영화 속의 남자에 빗대어 옆자리에 앉은 나를 간볼 게 분명했다. 너도 똑같잖아. 너가 아무리 입에 침바른 소리를 해봤자 저 남자랑 다를 바 없는 거 아냐?(알면서 왜 그러시는지). 그렇다고 내가 그녀를 홍상수의 영화에 등장하는 여자들에 빗대어 ‘자기는 뭐 다른가?’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상황은 더이상 연애에 기대를 걸지 않는 나이가 돼버린 남녀의 냉소 가득한 데이트처럼 보였다. 더이상 순진한 척을 할 수 없는, 했다간 나잇값 못한다는 소리나 들을 게 뻔한 데이트. 아마 <밤과 낮>을 미리 봤다면 내 스스로에게 말했을 것이다. “당신 조심해.”
그래놓고선 정작 <밤과 낮>을 볼 때는 내내 키득거렸다. 그녀는 그만 좀 웃으라며 내 팔을 찔렀지만, 웃지 않고서는 도리가 없었다.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김성
[오픈칼럼] <밤과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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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때였다. 나는 창문도 없고 전압이 낮아서 냉장고만 돌아가도 형광등이 깜박거리고 헤어드라이를 켜면 전기가 나가버리는 그런 곳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공동화장실에는 지붕이 없어 비가 오는 날에는 화장실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정취가 있는 곳이었다. 자취방은 재래시장 건물 안에 있었는데 내부에는 낮에도 빛이 안 들어오는(방에 창문이 없으니까) 한칸짜리 작은 방들이 수십개 모여 있었다. 건물 기둥은 시멘트가 떨어져나가 철근이 들여다보였다. “시멘트와 철근을 기준량의 절반도 안 쓴 것 같아. 학교에서 배운 건물 붕괴 조짐 사진하고 똑같은데…. 곧 무너지겠다.” 건축을 전공하는 친구가 말했다.
친구여, 무너지겠는 건 내 청춘이라네. 나는 그때 첫사랑과 막 이별을 한 참이었다. 삼각형의 세 내각의 합이 180도인 것처럼 알 듯 모를 듯한 자연스러운 이유로 헤어졌기 때문에 나는 우리의 엇갈리는 마음에 이상함과 서글픔을 더 느꼈었다. 게다가 무너질 것 같은 자취방에 새벽이면 술을 사
[내 인생의 영화] <중경삼림> -장형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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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골목, 서울의 주름 사이를 가쁘게 미끄러져가고 있는 한 사내를 떠올린다. 미진(서영희)이 선 우연의 문(門) 앞에서, ‘들어오세요’라고 말하는 남자의 적당히 이완된 말씨를 그려본다. 그의 이름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 그의 이름을 자꾸 생각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말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으면,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보라.’
어떤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이 아프고, 어느 작품은 머리가 아픈데, 이 영화를 보고나선 며칠간 몸이 아렸다. 영화가 끔찍한 장면을 다뤄서만은 아니었다. 영상 속 폭력에 무던해진 지 오래고, 어느 면에선 그것만큼 지루한 것도 없다고 생각해오던 터였다. 그런데도 필름이 피를 타고 도는 느낌이 났다. 가까스로 화염 속에 들어간 소방관이 결국 시신을 안고 나왔을 때처럼, 몸에서 지워지지 않는 탄내가 났다. 나는 내가 왜 힘든지, 또 무엇이 나를 두렵게 하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궁리해도, ‘이름을 알 수 없는 이름’이란
[냉정과 열정 사이] 우리가 알 수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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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취적이고, 폭력적이고, 활발하고, 젊으며 대담하고 사악해.” 그저 재미로 혼자 사는 여인을 잔혹하게 살해한 난폭한 젊은이가 내무부 장관에게는 이상적인 실험의 모델이 된다. “그는 완벽해.” 살인죄로 14년형을 선고받은 알렉스. 2년간의 지루한 교도소 생활 끝에 테크놀로지의 힘으로 악인을 선인으로 바꿔준다는 ‘루도비코법’의 대상자로 선정된다. 치료소에서 몇주간의 치료만 받으면, 그는 완전히 새 사람이 되어 사회로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처벌의 이론들
1971년에 제작된 <시계태엽 오렌지>는 1995년의 영국, 당시로서는 24년 뒤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영화에는 철학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몇 가지 문제들을 제기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물론 형벌에 관한 법철학적 논의들이다. 영화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보복론과 치유론(혹은 재사회화론)의 대립이다. 교도소장은 형벌에 대한 견해 중에서 가장 고대적인 관념을 대변한다. 형벌이란 모름지기 보복을 통한
[진중권의 이매진] 범죄자, 진정으로 도덕적인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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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집을 나가고 아버지는 죽는다. 아이들은 버려져 삶의 지옥을 목격한다. 그리고 말하기를 멈춘다. 말하기를 멈추었으므로 그들에게 선택은 두 가지다. 세상을 폭파하거나 자신을 폭파하거나. 이건 장르영화가 사랑하는 길이다. 현실을 사는 우리 대부분은 그럴 용기가 없다. 아오야마 신지는 <헬프리스>(1996)와 <유레카>(2000)에서, 어느 쪽도 할 수 없어 세상의 변방 혹은 황야를 떠도는 아이들의 침묵을 찍었다. 특히 <유레카>에서, 말해질 수 없는 상실과 상처를 흐느끼듯 사무치게 찍었다.
그들이 떠도는 황무지는 불친절하지만 세상과 달리 그들의 침묵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게 그들이 떠나온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서부극의 낭만적인 황무지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신화는 소멸한 지 오래이고, 황무지는 문명의 피안에서 우리를 유혹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문명에 갇혀 있다. 문명의 포위망은 더욱 확장될 것이고 황무지는 점점 왜소해질 것이
[전영객잔] 수평적이며 비혈연적인 유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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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하하. 이걸로 비앙카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면 재미있겠당. 라스가 사는 마을 사람들 같은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지는 영화가 또 한편 개봉되죠. <댄 인 러브> 말입니다.
어스: 맞아요.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에 동화책에서 집단 탈출한 듯한 이웃들이 등장한다면 <댄 인 러브>에는 그런 가족이 나오죠.
헬프: 어떻게 보면 퇴행적이라는 느낌마저 없지 않았어요. -_-
어스: 아내를 여의고 세딸을 키우는 상담 칼럼니스트 댄(스티브 카렐)이 추수 감사절 가족 모임을 위해 부모 집에 왔다가 하필 동생의 여친(줄리엣 비노쉬)과 사랑에 빠지는 난감한 로맨스입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칼럼니스트 댄이 아침에 기상하는 장면인데요.
헬프: 옆에 아내가 있는 줄 알고 더듬거리다가 없음을 확인하고 쓸쓸하게 일어나는 장면이죠.
어스: 더블베드인데도 한쪽에 몰려서 자고, 그의 옆에는 연인이나 배우자가 아니라 밤새 보던 자료들이 누워 있더군요. 보는
[메신저토크] <댄 인 러브>, <천일의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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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리스(lifeisntcool@naver.com)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어웨이 프롬 어스(vermeer@cine21.com)님이 입장하셨습니다.
헬프리스님(이하 헬프)의 말: 아! 오늘 제 대화명도 <어웨이 프롬 허>에서 따왔어요. 오래 하다보니 닮아가는 듯. 그래서 메신저토크를 끝낼 때가 됐나봐요. ^^ <어웨이 프롬 허>의 엔딩 크레딧이 오를 때 흐르는 K. D. 랭의 노래 제목이 <헬프리스>거든요. 살면서 무력감에 얼마나 잘 적응하냐가 무척 중요하다는 생각을 저 자신이 종종 하고 살아서리….-_- 그리고 ‘Help Lee’s’라고 새기면 “이군이 하는 짓거리 좀 도와주구려”의 뜻도 되고. ^^
어웨이 프롬 어스님(이하 어스)의 말: 쯧쯧. 선배는 꼭 딱 좋을 때 한발 더 나아가신다니까요. 제가 선배를 멈췄어야 했는데…. -..-
헬프: 마지막이잖아요. 좀만 참아주구려. -_-#
김혜리: 20대 후반 감독의 데뷔작으로선 의외
[메신저토크] <어웨이 프롬 허>,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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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흥행영화
장년층에게 추억으로 환심
“수익을 본 것은 아니지만 과거 흥행작에 대한 관객의 지지는 확인했다.” 지난해 11월 드림시네마에서 재개봉한 <더티댄싱>은 현재까지 약 1만2천명 관객을 동원했다. 재개봉을 추진한 즐거운시네마의 김은주 대표는 드림시네마에 이어 옛 허리우드극장을 인수해 ‘추억의 흥행작 전용관’을 설립했고, 이곳에서는 지난 4월1일부터 <벤허>를 상영하고 있다. <더티댄싱>이 화제가 되면서 심지어 몇몇 멀티플렉스도 이 추세에 동참하려는 조짐을 보일 정도다. 하지만 <더티댄싱>을 관람한 관객이 “왜 멀티플렉스까지 고전영화를 상영하려 하냐”며 “오래된 영화를 오래된 극장에서 보는 게 더 좋다”는 내용의 글을 극장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다. 김은주 대표가 바라보는 틈새는 30, 40대 관객이다. 50대 이상의 관객은 영화정보에 대한 접근도가 낮기 때문이지만 자신이 함께 추억을 공유한 세대가 30, 40대이기 때문이기도 하
[틈새 속의 틈새시장 생존전략] 숨겨진 1%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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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가관이다. <에로틱 고스트: 사이렌> <나쁜여자 길들이기> <못말리는 섹스아카데미> <나는 섹스중독자> <재패니스 愛열전>. 한때는 비디오숍 진열장 한구석에서나 볼 수 있었을 야릇한 제목들이지만 엄연히 공식적으로 수입돼 영화전문지와 온라인 뉴스에서도 리뷰를 쓰는 작품이 됐다. 아오이 소라, 호노카, 고토노 등 직접 연기하거나 포스터에만 등장한 일본 AV배우들의 모습이 반갑기도 하고 가끔씩은 해외영화제 수상작, 혹은 미지의 거장감독이 만든 영화라는 타이틀이 놀랍기도 하다. 그들의 출신이 어디인지, 어떤 성장과정을 거쳤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한국땅에 모인 그들은 나름대로 공급과 수요의 원칙을 형성해가는 중이다. “정말?”이란 반문은 당연할 것이다. 불법 다운로드로 도킹하는 순간, 외국산 포르노들이 저렴한 패킷 가격으로 유혹하는 이 시대에 그들을 찾는 건 누구란 말인가. 설마 누군가가 이들을 찾아 극장
[수입 에로영화시장 생존전략] 1:1 윈도로 유혹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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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짧고, 드라마는 길다.” 영화와 드라마의 차이를 드러내는 매우 간략한 정의다. 어떤 이들은 이 정의에 많은 설명을 덧붙이고 싶겠지만, 지금 일반관객은 ‘길이’의 차이로 영화와 드라마를 구분한다. 지난해 OCN에서 방영된 TV영화 <이브의 유혹>을 제작한 화인웍스의 윤창업 PD는 “이제 관객은 영화와 드라마를 구분할 때, 퀄리티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추세”라고 말한다. 영화와 드라마 사이의 경계는 무너지고 있다. 한때는 방송종사자들이 영화로 흘러왔지만, 이제는 영화종사자들이 방송을 찾는다. 봉만대 감독의 <동상이몽>부터 공수창 감독의 <코마>, 정초신 감독의 <색시몽>, 박종원 감독의 <8일>로 이어지는 케이블용 TV영화의 계보가 있는가 하면, 한지승 감독의 <연애시대>에서 오는 5월 방영예정인 박흥식 감독의 <달콤한 나의 도시> 같은 공중파용 드라마도 있다. 영화제작사들의 TV진출 선언도 잦아지고
[TV영화시장 생존전략] 컨버전스 시대를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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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족한 성찬이었다. 2006년을 기점으로 극장판 일본 애니메이션이 전면 개방되고 ‘국제영화제 수상작만 개봉이 가능하다’는 진입 장벽이 사라지면서, 2007년과 2008년 상반기 한국의 극장가는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일본 애니메이션을 맞이했다.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귀환> <귀를 기울이면> <마녀 배달부 키키> 등 익히 알려진 고전부터 <초속 5센티미터> <시간을 달리는 소녀> <벡실> <파프리카> <에반게리온: 서(序)> <브레이브 스토리> 같은 화제의 신작 혹은 근작까지, 과거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에만 치중되어 있던 개봉작의 범위는 한결 확장됐고 그 편수도 증가했다. 하지만 더욱 눈에 띄는 것은 개봉 전략의 변화다. 가늘고 길게 혹은 작고 효율적으로. 처음부터 프린트를 5벌만 제작한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5개관 개봉으로 시작해 순회상영으로 5만8천명을, 단 2개관
[재패니메이션시장 생존전략] 소규모 장기 상영으로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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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우리 눈에 띄면 이 영화 마케팅은 망한 거다.” <꿀벌 대소동> 개봉 당시 CJ엔터테인먼트 해외마케팅팀 내에 농담처럼 돌아다녔던 말이다. 올 초 1월3일 개봉작인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꿀벌 대소동>은 국내 개봉작으로는 드물게 가족 타깃에 마케팅을 올인한 사례. 우선 개봉시기를 조정해 가족 타깃이 극장가에 붐비는 겨울방학으로 옮겼고(미국 개봉일은 11월2일), 꿀벌이 인간들과 소송을 벌이는 줄거리에서 키를 잡아 ‘먹었으면 꿀값 내놔’라는 쉬운 포스터 카피를 내걸었다. 김종원 CJ엔터테인먼트 해외마케팅팀장은 “20대를 메인 타깃으로 생각했으면 카피의 말맛 등을 좀더 고려했겠지만 아이들이 좋아하고 부모가 호기심을 가져서 애들에게 보여줄 맘이 들 정도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한다. “크리에이티브도 전체적으로 귀엽게 갔고, 20대에게 어필하는 볼거리 풍부한 애니메이션이라는 측면보다 철저히 주인공 꿀벌의 귀여운 캐릭터를 부모와 아이들에게 어필하고자 했다.”
[가족영화시장 생존전략] 1500만 잠재시장을 깨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