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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영화의 파라다이스를 만끽하라
2008-05-06

‘영화보다 낯선’에 초청받은 작가들과 그들의 영화세계

전주영화제는 일반 극장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실험적인 영화들을 소개함으로써 대안적인 영화미학의 최전선이 어디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왔다. 그동안 피터 쿠벨카, 피터 체르카스키, 하룬 파로키, 아르타바즈드 펠레시안 등 유명 실험영화감독들의 작품과 강연이 있었다. 올해의 하이라이트는 미국실험영화의 거장 제임스 베닝의 작품과 그의 강연을 접할 수 있는 기회일 것. 2006년 전주영화제를 통해 <원웨이 부기우기>와 <27년 후>가 한국에 소개된 바 있다. 그는 위스컨신대에서 영화를 공부했으며, 위 두 작품에서 제임스 베닝은 산업화되고 있는 위스컨신주의 풍경을 배경으로 한다. 정확하고 계산적인 쇼트의 배열로 우리 사회적 인간에 관한 잔상을 던지고 있다. 이번 방문에서 그가 새롭게 선보일 작품은 레일로드의 약자로 알려진 <RR>과 70년대 로버트 스미드슨의 기념비적인 대지미술작품인 ‘나선형 방파제’를 담은 <시선을 던지다>이다. 기차의 도착과 영화의 도착이 함께 했듯 열차와 영화의 연관을 다시 언급하는 <RR>은 철로를 가로지르는 열차를 보여주는 43개의 쇼트들과 아이젠하워의 퇴임연설 등 사회적 색채가 짙은 사운드들을 결합한다.

<시선을 던지다>에는 16일간 촬영한 날짜에 해당하는 16개의 시퀀스와 1분짜리 78개의 고정숏이라는 계산된 규칙성이 있다. 그의 작품에서 구체적인 숫자의 언급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전 작품에 걸쳐 그 규칙성이 영화의 컨셉과 긴밀하게 결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딱딱한 공식과도 같은 숫자를 다시 생각하게 할 만큼 베닝의 영화적 구조는 힘이 있다. 베닝은 지리적이고 산업적인 미국의 풍경을 그만의 측량적인 방법론으로 구조화하여 마침내 일종의 문화적 지도를 만들어낸다. 자연/카메라, 인간/감독, 사회/영화구조의 이성적인 대위들이 있는데, 다소 긴 상영시간만 참아낸다면 궁극적으로 당신은 감성의 바닥까지 닿아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올해의 하이라이트는 제임스 베닝의 작품과 강연

베닝의 작품들과 함께 ‘미국 아방가르드’ 섹션에서 같이 상영되는 켄 제이콥스의 <래즐 대즐>, 존 조스트의 <이곳으로>도 올해 볼 수 있는 실험 영화 거장들의 최근작이다. 켄 제이콥스의 작품들은 전주영화제에서 꾸준히 소개되어왔는데, 그는 초기 영화에 대한 재해석, 시각적 잔상을 이용하는 프레임 단위의 실험을 즐겨하고 있다. 최근의 작품들에서 특유의 깜빡거리는 플릭커를 계속 선보이는 그는 장편 <래즐 대즐>에서 초기 영화나 사진들을 푸티지로 이용하던 실험 뿐 아니라 더욱 적극적으로 디지털의 가상적 이미지를 극단화시킨다. 장편작품 외에도 ‘영화보다 낯선’의 단편 섹션에서는 깜박거림이 계속되는 그의 단편작품들, <자본주의: 노예제>, <자본주의: 아동노동>, <님프> 등을 만날 수 있다.

단편작품 중에도 실험적인 작업을 해왔던 감독들의 작품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이윤동기와 속삭이는 바람>의 존 지안비토는 정치적인 실험 다큐멘터리를 꾸준히 발표해왔다. 역시 이 작품에서도 미국 민중의 저항을 암시하는 비문과 기념비, 안내판 등을 따라가는 공간적인 구성으로 그 죽은 묘지들에서 조용히 부는 바람처럼 우리의 현재의 시선과 의식들을 깨우고 있다. 더불어 한국의 주재형과 중국의 쑨쉰의 <4.3의 새벽>, <레퀴엠>, <시대의 충격>도 실험적 애니메이션의 형식 아래 사회적 시선을 담았다. 초현실적 그로테스크함과 몽상적인 유머를 특징으로 하는 가이 매딘의 최근작 <오딘의 수호처녀>와 절제된 호흡 속에서 시간과 인간의 유령을 쫓는 시적인 감성으로 최근 각종 실험영화제들에서 활발히 소개되고 있는 벤 리버스의 <아, 자유>와 <하우스>도 주목을 요한다.

김연정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