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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환경의 섞임에 관한 영화 <하늘, 땅 그리고 비>
김혜리 2008-05-05

El Cielo, La Tierra Y La Lluvia│2008│호세 루이스 토레스 레이바│110분│칠레, 프랑스, 독일│오후 2시│전주시네마타운 8 영화가 눈을 뜨면 카메라가 늙은 나무 둥치를 훑어 올라간다. 카메라의 몰입은 치열하다. 나무가 나무 아닌 추상으로 보였다가 이윽고 다시 나무로 보일 때까지 응시는 지속된다. <하늘, 땅 그리고 비>에서 세계와 그 안에서 인간을 보는 토레스 레이바 감독의 눈길이 대략 이러하다. <하늘, 땅 그리고 비>는 다큐멘터리 <노 웨어 노 플레이스>가 전주영화제에 초청된 바 있는 칠레의 토레스 레이바 감독의 첫 장편 극영화다. 이따금 사냥꾼의 총성이 귀를 찢는 컴컴한 숲과 변화무쌍한 하늘, 휑뎅그렝한 해변을 가진 칠레 남부 섬마을. 차가운 돌멩이처럼 응어리진 외로움과 무력감을 안은 채 살아가는 남녀가 있다. 그들은 혼자 비를 바라보고 혼자 사과를 베어물고 혼자 라디오를 듣는다. 간혹 서로 속삭이는 위로의 말은 관객에게 들리지 않는다. 상점 판매원으로 일하며 병상의 어머니를 부양하는 안나는 친구인 베로니카 자매와 어울릴 때를 제외하면 좀처럼 웃지 않는다. 주인에게 도둑으로 의심받자 안나는 일을 그만두고 베로니카의 주선으로 독신남 토로의 가정부가 된다. 안나는 토로와 편안히 침묵을 공유할 만큼 가까워지지만 손을 쉽게 내밀지 못한다.

인간을 자연이나 정물처럼, 자연과 사물을 인간처럼 바라보는 토레스 레이바 감독의 화면은 많은 과거 거장들을 연상시키면서도 끝내 모종의 독창성을 견지한다. 모든 프레임은 감정과 스토리, 조형미를 고려해 숨막히도록 치밀한 구도를 보여주며, 카메라 움직임은 드문 만큼 의도로 충만하다. 특히 전작 <노 웨어 노 플레이스>에서도 그랬듯 걷거나 탈 것을 타고 움직이는 인간의 모습에 무한한 예술적 호기심을 기울인다. 감독은 이 영화를 가리켜 “인간과 환경의 섞임에 관한 영화”이며 “발로 자동차로 배로 마음으로 하는 산책에 관한 영화”라고 요약한다. <하늘, 땅 그리고 비>는 라틴 아메리카의 지역적 삶의 양상을 드러내는 동시에 보편적 구원의 문제를 묻는 21세기 젊은 남미 영화의 고요한 힘을 보여주는 영화다. 2008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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