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tor│1998│ 유수프 라지코프│83분│우즈베키스탄│오후 5시│ 전주 시네마 8 짙은 베일로 얼굴을 가린 여인의 옆에서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이 사내는 주인공 이스칸더다. 영화 내내 개입하는 내레이터는 그를 자신의 할아버지로 소개한다. 고아 소녀와 결혼하여 집으로 돌아온 이스칸더는 갑작스레 세상을 뜬 형의 두 아내도 부인으로 받아들여야 할 처지가 된다. 20세기 초, 러시아혁명의 열기에 뒤늦게 휘말린 변방의 이슬람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내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일부다처제로 이뤄진 화목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혁명에 투신하는 이스칸더의 아이러니는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의 굴곡많은 현대사를 우화적으로 대변한다. 우연한 기회에 볼셰비키의 연단에 올라 연설가로서의 재능을 발견한 주인공이 혁명의 이면을 발견하는 과정은 <포레스트 검프>를 떠올리게 하고, 이스칸더의 쓸쓸한 말년은 <대부2>와 정확히 연결된다. 이스칸더의 세 부인과 혁명전사 미리암 중에서 정작 내레이터의 할머니는 누구인지에 대한 호기심 역시 영화를 관통하는 주된 갈등 중 하나인데, 이는 최근 개봉한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익숙한 화법으로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역사를 풀어낸 그 솜씨는, 어쩔 수 없이 거칠고 불안한 영화의 기술적 한계를 넘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