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작가 마스터 클래스에 참가하기 위해 전주를 찾은 작가 아청은 4일 새벽 2시에 한국에 들어왔다. 다음날 공식행사만 두 개를 연거푸 하면서 식사도 건너뛰었다. 통역이 걱정하자 그가 한 말. “괜찮아. 정 배고프면 쓰러져 버리지 뭐”. 1949년생으로 시에진의 <부용진>, 첸카이거의 <해자왕>, 티엔주앙주앙의 <작은 마을의 봄> 등에서 원작자 혹은 각본가로 활동해온 그의 작업은 하나 같이 재치보다는 근심과 정중함을 안고 있지만, 아청 본인은 재치만발이며 반문의 달인이다. 좋은 시나리오에서 나쁜 영화가 나올 수 없지만, 나쁜 시나리오에서는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없다는 말이 있다고 했더니 “동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쁜 소설에서 좋은 영화가 나오는 걸 너무 많이 봤으니까”라고 답한다. 하지만 시종일관 시시껄렁하게 농담이나 반문만 하는 건 아닌 것이 “시나리오에서 제일 중요한 건 인물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는 것”이라고 단언할 때, “만약 영화를 보러가서 관념을 보고 올 것이라면 학자가 쓴 책을 보지 무엇하러 영화를 보러 가겠냐”며 구체성을 잃어버린 영화들을 질타할 때 그는 단호하다. “좋은 영화는 극장에서 나올 때 이거 참 좋은 영화다 하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왜 좋으냐고 물으면 그 대답을 못해야 한다. 그게 좋은 영화다.” 아청이 지금 쓰고 있는 시나리오는 허우샤오시엔이 연출을 준비해온 무협영화다. “쓰고는 있지만 어차피 시나리오대로 찍을 것도 아니니까 내가 지금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겠냐 (웃음)”며 껄껄 웃다가도 다시 정색하고 “허우샤오시엔은 이미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그림이 항상 있다. 그 점을 이해할 줄 알기 때문에 나는 그와 작업한다”고 못 박는다. 아청과 허우샤오시엔의 좋은 영화가 얼른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