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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기능 가운데 교육과 계몽의 힘을 일찍 깨달은 것은 구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였다. 레닌이 가장 중요한 예술로 영화를 꼽은 건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데 영화만큼 효과적인 매체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히틀러의 독일도 이 점에선 레닌의 소련과 다르지 않았다. 미학적 완성도를 자랑하는 레니 리펜슈탈의 영화가 지금껏 비난받는 이유는 나치의 선전도구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내용 면에서 레니 리펜슈탈의 반대편에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마이클 무어에게도 영화는 교육과 계몽의 수단이다. <식코>에서 구소련의 선전영화가 인용되는 모습을 보노라면 마이클 무어는 그 점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다. <피아니스트>의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당신 영화의 메시지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메시지 같은 건 우체국에 가서 찾아라. 내 영화에 메시지 같은 건 없다”고 말하는 것과 상반된 태도다. 마이클 무어에겐 메시지가 중요하고 그의 영화는 메시지를 가장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
[편집장이 독자에게] <식코>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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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를 보았다. 일정 수준 이상이라는 세간의 평에 동의할 만했고, 무엇보다 외국의 영화광들이 보더라도 Made in South Korea임을 단박에 알아차릴 것 같은 작품이란 사실이 너무 신기했다. 하지만 죽지 않아도 될 것 같았던 캐릭터가 죽어버린 뒤엔 약간 심경이 복잡해졌다.
<괴물>이 미국에서 개봉했을 때 미국 관객의 반응을 본 적이 있다. 어떤 이들은 매우 좋다고 했지만, 다른 어떤 이들은 불쾌감을 표시했는데, 그 이유가 흥미로웠다. 그토록 똑똑하게 처신한 어린 소녀를 기어이 죽여버리다니 대중영화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말이었다. 똑똑하게 처신했는데도 죽은 사람- 이 말에는 <추격자>의 그녀도 포함될 듯싶다. 세상엔 한국영화보다 사람을 잘 죽이는 영화도 많지만 확실히 할리우드의 대중영화들은 상황에 잘 대처한 주요 등장인물들을 굳이 죽이지는 않는 것 같다.
섣부른 얘기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현대사가 남긴 어떤 종류의 잔상이 아닐까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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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론 디아즈 인터뷰해봤어? ‘그건 부적절한 질문이군요’로 일관하지. 최악의 인터뷰이야.” “러셀 크로는 생각보다 무섭지 않더군. 술집에서 싸움박질하지 말라고 스튜디오가 세트 안에 바를 만들어준 배우치고는 말이야.” “누가 뭐래도 톰 크루즈가 최고야. 어쨌건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미소를 잃지 않는단 말이지.” 나와 같은 직업을 지니고 다른 땅에서 일하는 이들을 만날 일이 간혹 있다. 할리우드의 특정 영화를 보고 감독, 배우를 단체로 인터뷰해야 하는 자리가 대표적이다. 항상 느끼는 바, 영화기자라고 모두 같은 건 절대 아니라는 사실. 말 많고 탈 많은 스타와 직접 대면하기를 밥 먹듯 하는 그들의 대화는 경청의 대상일 뿐이다. 외국 배우에 대한 기사를 쓸 때마다 그들이 작성한 인터뷰 자료를 뒤적이며 코멘트를 찾아야 하는 나는, 변방의 영화기자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전문지 출신이 아닌 탓에 나와 꼭 비슷한 표정으로 대화를 겉돌아야 했던 프랑스의 한 기자를 발견한 것은 그때였다. 심
[오픈칼럼] 대통령 배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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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논하고 인생을 논하기엔 인생이 짧고 영화작업이 짧아 많이 쑥스럽다. ‘내 인생의 영화’라는 주제를 놓고 너무 많은 생각이 떠올라 그 말에 대한 분석이 먼저 필요했고, 단 한편만 꼽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우선 ‘내 인생의 첫 영화’. 아는 분들은 알겠지만, 나는 영화가 좋아서 영화를 공부한 사람이 아니다. 사실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어린 시절 단 두번 극장에 가봤고 그 영화는 <건담>과 <E.T.>였다. 물론 신나서 넋빠지게 보긴 했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영화보다 깜깜한 극장을 나선 뒤의 강렬한 햇빛이었다. 그 햇빛은 순간 내 눈앞을 멀게 했고 앞이 안 보이는 순간의 공포가 영화보다 더 강렬했다.
그런 내가 물 흐르듯 바람에 구름 흘러가듯 철저히 현재에 충실히 지내다보니 어느 순간 계원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를 입학해 있었다…. 그곳은 신세계였다!!! 전혀 알지 못하던 시청각문화가 날 사로잡았다. 아마도 입학식 하고 얼마 되지 않을 때였을
[내 인생의 영화] <페임> <스파이 게임> <디파티드> -신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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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캐서린 헤이글은 나이 들수록 어딘가 애슐리 저드를 닮아가는 것 같다, 뭐 이런 단순한 생각으로 본 영화였지만 <27번의 결혼 리허설>은 좋은 로맨틱코미디였다. 사랑에 빠진, 능력 있고 착하지만 외모가 조금 수수하고 주눅 든 30대 여성을 그릴 때 흔히 가장 간편한 방법으로 써먹는 과장과 희화화를 비교적 적게 사용하고도 공감을 이끌어낸 것만으로도 작은 수확이다. 이 사단은 전작인 <40살까지 못해 본 남자>에서 귀엽고도 쓸쓸한 남자 버진을 그릴 때 해낸 솜씨를 이번에도 잘 발휘하였다. 전작의 주인공보다 <27번의…>의 여주인공은 나이도 젊고 직업도 훨씬 좋고 능력도 있고 외모도 뛰어났지만 그 남자나 이 여자나 참 착한 것만은 동일하다. 바로 그거였다.
보는 내내 내 속을 뒤집어지게 한 것, 그 착함, 너무너무 착함, 아 제발 제인 제인 제인, 그렇게 살지 마, 하고 애걸복걸하고 싶을 정도로
[냉정과 열정 사이] 그래, 그녀보다 내가 더 겁쟁이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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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극악한 사건들이 출몰하는 이즈음이고 보니 뉴스만 보아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경험을 한다. 특히 어린 소녀 이혜진과 우예슬 사건에 대한 상심은 사실 글쓰기조차 힘들게 한다. 깊은 애도를 표한다. 나는 이 소녀들의 죽음에 뒤얽혀 있는 성폭력의 면모에 몸서리친다.
초봄의 대기층이 황사와 애탄과 비애로 덮여가는 중 다큐멘터리의 힘이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영화가 20세기의 경이적 마술 장난감으로 축포를 터트리던 시기, 크라카우어는 물리적 현실을 구원하는 장치로 영화를 생각한다. 영화와 현실의 재현, 구원의 문제는 잘 알려진 것처럼 이후 앙드레 바쟁 등을 거쳐 영화 사유의 주요 거점으로 자리잡는다. 신에서 깨어난 ‘구원없는 세상’에서 기독교를 탈색한 영화적 구원이란 무엇인가? 철학이 정언적 마지막을 선언하도록 놓아두는 대신 크라카우어는 역사가 마지막 사물들을 들여다보고 돌보도록 한다. 역사적 맥락을 지운 채 기억의 자리를 대신한 카메라가 역사에 대한 그의 화두를 열었다.
[전영객잔] 꾸준히 지속되어야 할 과거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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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사랑에 빠진 기남씨
[정훈이 만화]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사랑에 빠진 기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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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잠수종과 나비>로 칸영화제 감독상까지 거머쥔 줄리앙 슈나벨이지만, 데뷔작 <바스키아>를 내놓을 때만 해도 그는 동료 화가의 이야기를 연출한 ‘화가 출신’ 감독으로 소개되곤 했다. 그렇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줄리앙 슈나벨의 이력을 확인할 기회가 생겼다. 그의 미술작품 30여점이 아시아순회전의 일환으로 베이징, 홍콩, 상하이를 거쳐 서울에 오게 된 것이다. 이제는 오히려 영화감독이라는 수식어에 더 무게가 실리는 듯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작품들을 ‘영화감독’의 미술작업으로만 감상한다면 놓치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줄리앙 슈나벨은 1970년대 말 미국 화단에 등장하여 신표현주의의 범주에 포함되는 1980년대 미국 뉴 페인팅의 기수로 알려져 있다. 그가 등장하기 전, 당시 일부 비평가들은 예술에 냉소적인 시선을 보냈던 팝아트와 지극히 절제된 표현방식을 사용했던 미니멀리즘 작품에 대해 ‘회화는 죽었다’고 선언했었는데, 이미지와 표현력이 강조된 줄리앙
회화에서도 빛나는 줄리앙 슈나벨의 재능, <줄리앙 슈나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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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느끼는 아버지란 존재 너머에는 그의 자식들이 만나지 못한 또 다른 ‘아버지’가 있다. 가장으로서 짊어지는 책임감은 가족이란 소규모 사회를 끌고 갈 권위를 필요로 하고, 그 권위는 아버지를 베일에 싸인 존재로 포장한다. ‘보편적’이라 여겨지는 가정에서 2세들은 아버지에 대해 깊이 알려 하지 않으며 성인이 되면서 아버지는 감정의 교류가 끊긴 상징적인 존재가 되곤 한다. 물론 최근 가장의 역할과 위상이 바뀐 게 사실이지만 아버지는 깨트릴 수 없는, 깨져서도 안 되는 신화와도 같다.
<재미난 집>의 작가 앨리슨 벡델의 아버지 역시 그런 ‘보편적’인 아버지상을 유지하고자 부단히 노력한 사람이다. 그녀는 그런 아버지가 답답하고 부담스러워 일찌감치 마음의 문을 닫는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아버지가 알면 대경실색할 비밀이 있었으니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달은 뒤 몇번의 망설임 끝에 아버지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그녀. 그러나 끔찍하게 무거운 침묵이나 모
아버지와 나의 커밍아웃, <재미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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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주는 전혀 새로운 것, 화끈한 것 좀 가져와보라고 성화인데 그때마다 생각나는 글귀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뿐. 머리를 쥐어뜯고 담배를 뻐끔뻐끔 피워봐도 나오는 아이디어라고는 모두 퇴짜맞을 것이 예상되니 이 아니 난감할까. 뭐, 이와 같은 풍경은 광고회사에서 매일같이 반복되는 것이라 역시나 새로울 것도 없다.
이렇게 일이 안 풀리거나 머리가 복잡할 때는 아예 기본의 기본부터 뒤집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때도 있는데 최근 열심히 방송을 타고 있는 스카이 블레이드 CF도 그런 자포자기(?)의 초심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광고란 모름지기 물건을 잘 팔기 위한 것이고, 그러려면 이 물건 어디가 어떻게 좋은지 알려주는 것이 기본이다. 한데 이 CF, 저게 물건을 팔자는 건지 뭐하자는 건지 한번 보면 잘 모르겠다. 그 짧은 15초 광고에 뚱딴지 같은 얘기만 늘어놓고 제품 설명도 뭐도 없는데다가 제품이 보여지는 컷도 딱 한컷. 게다가 팔고자 하는 물건은 아예 대놓고 ‘자
[도마 위의 CF] 기본에 기본을 뒤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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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4월5일(토) 밤 11시20분
민주당 상원의원으로 공적인 명예를 누리지만, 사적으로는 더없이 불행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불워스(워런 비티). 때마침 의료보험업계의 로비스트가 찾아오고 그는 범국민 의료보험안의 부결을 약속하는 대가로 자신의 딸에게 남길 어마어마한 생명보험에 가입한다. 그리고 적절한 때에 자신을 살해할 청부업자를 고용한다. 선거 캠페인 마지막 주, 이제 승패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진 불워스는 거침없이 진실을 밝히기 시작한다. 흑인 교회에 가서는 민주당이 당신들을 버렸다고 말하고 마이크만 주어지면 민간 보험업계와 정치인들간의 은밀한 거래를 폭로한다. 그 과정에서 자유분방한 흑인 문화를 접하게 되고 사회에 대한 그들의 불만을 들으면서 그 역시 흑인들의 리듬, 몸짓으로 선거 캠페인에 임한다. 가식적인 정치인의 얼굴을 버리고 사회 밑바닥을 대변하는 불워스의 돌출적이고 솔직한 태도는 오히려 그의 인기를 상승시키는데, 상황이 그렇게 변하자 생에 대한 그의 의지도 커져간다.
진정한 정치인의 탄생, <불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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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안방에 ‘야하고 무서운’ 케이블 드라마가 쏟아진다. 영화채널 OCN은 지난 3월28일 드라마 <유혹의 기술>(금요일 밤 11시)을 선보인 데 이어 인기 시리즈 <메디컬 기방 영화관>의 두 번째 시즌 <경성기방 영화관>을 준비 중이다. 슈퍼액션은 4월3일 <도시괴담 데자뷰3>(목요일 밤 12시)를 첫 방영하고, 4월8일에는 이채널에서 제작한 공포드라마 시리즈 <기담전설>(화요일 밤 12시)이 시작된다. tvN에서 방영 중인 <막돼먹은 영애씨3>를 포함해, 케이블은 유례없는 ‘자체 제작 드라마 풍년’을 맞았다. 지난해 <직장연애사> <막돼먹은 영애씨> <별순검> 등이 대중적 인지도나 만듦새 면에서 성공적이라는 평을 받으면서 방송사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제작에 나선 결과다.
방송을 앞둔 드라마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지상파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소재를 다루고 표현도 과감하다
야하고 무서운 케이블 드라마의 침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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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동산이라는 이름의 사유지에 GP외관 세트를 지었다. 일종의 놀이동산 같은 곳이라서 브라키오사우루스뿐 아니라 티라노사우루스, 코뿔소, 원숭이상도 있었다. 전혀 모르고 세트에 갔는데 처음에 보고는 정말 놀랐다. (웃음) 그것들 때문에 세트를 거기에 지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결국 나중에 CG로 지우기로 하고 촬영을 진행했다. GP외관 세트도 어마어마하지만, 이 밖에도 GP내부용으로 만들어진 세트가 꽤 많았기 때문에 사진 찍을 게 많아서 지루하진 않았다. (웃음) 항상 밤신에 실외에서는 내내 비가 오는 설정이라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어떻게 스틸을 찍나 고민이 많았는데, 조명기사와 친하게 지낸 덕을 많이 봤다. 덕분에 오히려 멋진 그림도 많아서 만족스럽다.”
[숨은 스틸 찾기] 촬영장에 공룡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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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4분기를 마무리하는 3월 마지막주 북미 박스오피스는, 라스베가스를 무대로 펼처지는 도박 영화 <21>이 정상을 차지했다. 개봉성적은 2370만달러, <영광의 날: 블레이즈 오브 글로리>와 <로빈슨 가족>이 개봉한 전년도 동기간과 비교하면 낮은 성적이지만, 3500만달러라는 제작비로 만들어진 <21>로서는 기대 이상의 성과라는 반응이다. <21>은 <금발이 너무해> <퍼펙트 웨딩> <내 생애 최고의 데이트>의 감독 로버트 루케틱 감독의 신작으로, 블랙잭 테이블에 앉은 MIT 학생 6명이 카드를 세는 방법을 이용해 카지노를 터는 이야기. 케빈 스페이시가 MIT 교수,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짐 스터지스와 케이트 보스워스가 학생으로 출연하고, <매트릭스> 시리즈의 로렌스 피시번이 카지노의 어깨로 등장한다. 배급사 소니 픽처스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남녀노소 모두에게
겜블러 영화 <21>, 박스오피스 잭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