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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있어서 일상이란 단어는, 거대 담론에서 사적인 이야기로 예술의 내용이 확장 또는 이행하게 되는 지점을 상징한다. 예술 소재로서 일상이 갖는 매력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예술과의 거리감 역시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감도 부여한다. 이유진, 최원정, 허정은 작가가 회화, 영상, 설치 등의 매체로 이야기하는 일상은 좀더 내밀한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상의 이면에 대한 포착이다. 이는 일상과 연결이 되어 있으면서도 무의식과 의식이 교차하는 극단적으로 사적인 영역이다. 작가와 작품간의 거리감은 더 가까워졌으되, 감상자와 작품간의 거리감은 더 멀어진 꼴이다. 하지만, 작가들의 무의식적인 상상력이 작품이라는 틀 속에 완성되어 표현될 때 발견되는 아이러니는 초현실적인 영역을 미술언어로 표현할 때만 느낄 수 있는 재미다.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즉흥적인 감정으로 그리고 지우고 또 그리기를 반복해서 완성한 이유진의 회화, 붓이나 연필로 그린 이미지와
일상의 이면을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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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이 나열할 수 있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재즈피아니스트들. 빌 에반스의 창조적 계승자 키스 자렛, 마일즈 데이비스의 ≪Bitches Brew≫(1969)가 예견한 현대 퓨전재즈의 거장 칙 코리아, 재즈레이블 GRP의 예술적 지주 데이브 그루신, 팝과 록, 솔과 스탠더드의 실험적인 퓨전 아티스트 허비 행콕…. 그렇다면 1932년 영국 출신 에디 히긴스는 어떤가. 에디 히긴스는 재즈계에서 창조적 아티스트로 분류되진 않는다. 역사에 남을 오리지널 송을 써내는 것도 아니고 재즈 장르의 지평을 넓히는 실험을 도모하지도 않는다. 그는 <Autumn Leaves> <Cheek To Cheek> <My Romance>와 같이 모두가 아는 곡들을 박박 긁어모아 스탠더드 연주 앨범만 낸다. 심지어 다작이라 희귀성도 없다. 그러나 그렇듯 수십년간 고집해온 그의 스탠더드 연주는 들을 때마다 곧고 품격있다. 그가 만드는 애드리브는 쉽지만 가볍지 않고, 원곡을 살아 있
곧고 품격있는 연주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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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부터 시작된 거다. 유대인계 영국인 백인소녀 와인하우스는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앨범 중 하나로 기록될 ≪Back to Black≫으로 진정한 ‘솔(과 타블로이드 가십거리)’을 토해내며 보수적인 그래미까지 휩쓸었다. 그녀의 업적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면 영국 내에서 복고적인 사운드와 솔풀한 목소리로 승부하는 솔로 여가수의 붐을 일으켰다는 거다. 얼마 전 앨범이 발매된 더피가 음(陰- 에이미 와인하우스)에 대구를 이루는 양(陽)이라면 아델은 그 사이를 비집고 올라선 젊은 영재다. 19살에 만들어 제목도 ≪19≫인 데뷔앨범에서 아델은 서정적인 브릿팝 사운드에 음영이 짙은 목소리를 덧입힌다. 정돈된 와인하우스 같다가 걸쭉한 코린 베일리 래 같고, 브릿팝 그룹 ‘카타토니아’의 세리스 매튜스 이복동생 같기도 하다. 와인하우스나 라이벌 더피에 비하면 앨범의 전체적인 풍광은 조금 덜 여물었다. 물론 그게 무슨 대수겠나. 영국 차트 2위에 올랐던 <Chasing P
음영 짙은 목소리, 열아홉의 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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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상 6개 부문을 휩쓴 뮤지컬. <뉴욕타임스>가 “미국 뮤지컬 사상 가장 위대하고, 아마도 가장 유명한 예술가”라고 찬사를 보낸 스티븐 손드하임이 작사와 작곡을 맡았다. 지난해 무대에 오른 그의 또 다른 뮤지컬 <스위니 토드>가 피범벅에 다분히 냉소적이었던 데 비하면 결혼이냐, 아니냐를 저울질하는 다소 말랑말랑한 작품이지만, 손드하임 특유의 날카로운 입담은 생생하게 살아 있으니, 달짝지근한 사랑 이야기라면 지긋지긋한 이들이여, 염려놓으시길. 뉴욕 맨해튼에 살고 있는 로버트. 그의 서른다섯 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먼저 결혼 생활의 전형이라 할 만한 다섯 커플, 싸움이 그칠 날이 없는 사라와 해리, 완벽해 보이나 실은 이혼한 수잔과 피터, 권태의 단계로 접어든 제니와 데이빗, 식을 앞두고 신경이 곤두선 에이미와 폴, 남자를 수없이 갈아치운 조앤과 그녀의 현재 남편 래리. 그리고 달라도 너무 다른 로버트의 여자친구들, 섹시하지만 아둔한
결혼이냐, 독신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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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만화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가운데 순정만화만이 고유의 정체성을 고수하고 있는 유일한 장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장르 속에서는 끊임없는 세포분열이 진행되고 있어 마치 3세계 영화를 보는 듯한 즐거움을 주는 순정만화가 등장하곤 한다. 일본 순정만화계의 신성, 오노 나쓰메의 <리스토란테 파라디조>가 바로 그런 작품. 오노 나쓰메는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한 만화계에선 독특한 이력의 작가로 주로 유럽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그리고 있다. <리스토란테 파라디조> 역시 이탈리아의 한 레스토랑을 배경으로 50줄에 접어든 중년 남성과 그들을 사랑하는 중년 여성들과 한 풋내기 아가씨의 로맨스를 담고 있는 만화다. 중년들이지만 레스토랑 ‘카제타 델로루소’에서 일하는 이들은 사장부터 종업원까지 하나같이 늘씬하고 탄탄하다. 게다가 어찌나 사려깊은지 막 사랑을 시작한 여주인공 니콜레타의 연모의 대상이요, 성장통을 풀어주는 훌륭한 상담사 역할까지 한다. 여느 순정만화에서라면
순정만화에 담아낸 중년 로맨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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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숏을 단어에, 편집을 통사론에 비유하는 시도는 다분히 과장의 위험을 내포한다. 그러나 몽타주를 통해 영화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원하는 문체로 비로소 전달한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몽타주의 개념과 역사를 논한 이 책의 1부에서 몽타주는 세 가지 개념의 종합이다. 자르고 붙이는 물리적 행위인 커팅, 시청각 요소를 배치해 영화의 꼴을 완성하는 에디팅, 그리고 숏 사이 관계를 결정하는 좁은 개념의 몽타주가 그것이다. 편집기사 출신 영화학자인 저자 뱅상 피넬은 몽타주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줄 세우는 글을 최소화하고 몽타주 개념의 진화를 실제 영화의 예를 통해 살핀다. 고전기까지 모든 영화감독들은 발명가이며 이론가이기도 했기에 이는 무리한 방식이 아니다. 몽타주의 실제를 다룬 2부는 180도 가상선과 장비의 진화를 소개하는 한편 히치콕의 시퀀스를 분석하고, 앙드레 바쟁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쓴 글에서 몽타주의 핵심을 지적한 한 대목을 발췌했다. “몽타주는 촬영이 감추었던 불
실용적이며 핵심적인 몽타주 입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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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김중혁은 수집가다. <펭귄뉴스>를 통해 라디오, 타자기, 자전거 등 시대의 조류에 반걸음 뒤처진 사물들을 불러모았던 그가 이번에는 다양한 소리들을 채집했다. “음악을 몸으로 소멸시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는 영화음악가,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열정으로 수백 가지의 악기 소리를 녹음하기 시작하는 남자, 엇박자를 성대에 새기고 태어난 듯 늘 합창을 망가뜨리고 마는 소년 등 <악기들의 도서관>은 피아노와 오르골, 턴테이블과 전자기타, 인간의 음성이 맞물리며 유려하게 이야기를 연주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금세라도 음악이 들려올 것처럼. 이른바 “0.5cm SF”인 김중혁 특유의 화법은 여전하면서도 좀더 풍성해졌다. 나이와 국적이 다른 두 피아니스트는 수화기를 통해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며 묘한 우정을 쌓고, 지하철에서 엉킨 실을 풀던 백수 청년들은 대중의 호기심을 얻고 졸지에 예술가의 자리에 등극한다. 경쾌하면서도 알싸한, 가벼우면서도 뻐근한 8편의 이
0.5cm SF식 화법이 들려주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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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에 대한 혐오가 <장미의 이름>의 사건을 낳았다면, <세상을 삼킨 책>은 제목 그대로 세상을 삼킬지도 모르는, 새로운 사상에 대한 두려움이 낳은 이야기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한입에 삼키기엔 다소 묵직해 보이는 소재로 보이지만, 볼프람 플라이쉬하우어는 비밀단체, 스파이, 예술, 문학을 철학에 버무려낸다. 1780년, 많은 제후국으로 분열되어 있던 어수선한 독일에서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사건을 수사하던 의사 니콜라이는 장미십자회, 프리메이슨의 이름이 사건과 연관되었음을 알게 되지만 조사 중단을 명령받는다. 그즈음 니콜라이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된다. 장미십자회와 프리메이슨에 대한 이야기는 딱히 새로울 것도 없다. 이 책에서 정말 재미있는 것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 태어나던 당시의 사회상을 들여다보는 작가의 눈이다. <순수이성비판>이 가졌던 파급력의 실체를 좀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
꿀꺽, <순수이성비판>이 삼켰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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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말, <연의 황후>의 배우 여명과 진혜림이 오랜만에 한국팬들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내한하여 인터뷰자리를 마련했다. 그들의 대표작으로 어떤 영화를 손꼽아야 할지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홍콩의 대중스타이다. <연의 황후>는 춘추전국시대 연나라를 배경으로 연나라 황제의 딸 '연비아'(진례림)와 그녀의 목숨을 구하게 되는 무사인 '난천'(여명)의 운명같은 사랑이야기이다. <연의 황후>의 촬영 뒷이야기와 배우들의 진솔한 인터뷰 영상을 보시려면 '동영상보기'버튼을 클릭해주세요.
[여명, 진혜림] <연의 황후> 내한 인터뷰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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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갑남자도, 새끈한 레이서도 전설의 왕자에게 무릎을 꿇었다. <아이언맨>이 개봉 2주만에 전국 300만명을 돌파하며 돌풍을 일으킨 가운데, <나니아 연대기 : 캐스피언의 왕자>가 약 50%의 예매율로 1위를 차지했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을 비롯해 티켓링크를 제외한 전 사이트에서 1위다. 특이한 것은 다음 주 개봉인 <인디아나 존스 4 :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이 통합전산망 집계에서 2위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개봉 전 미리 예매를 연 몇몇 극장의 예매율이 이 정도란 이야기다. 지난 주 <스피드 레이서>의 공세에도 1위를 재탈환했던 <아이언 맨>은 2위로 내려왔다. 하지만 개봉 3주차에도 <아이언 맨>의 기세를 주목할 만하다. 예매사이트마다 20%에서 30% 사이를 오르내리는 <아이언맨>의 예매율은 한 자릿수로 내려간 <스피드 레이서>의 예매율을 크게 웃돈다. <스피드 레이서>와 각축을 벌
<나니아 연대기 : 캐스피언 왕자>, 예매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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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을 맞아 눈물 쏙 빼는 ‘굵고 짧은’ 드라마가 찾아온다. 지난 2월 설 연휴에 방송된 특집 4부작 <쑥부쟁이>가 <아현동 마님>의 후속으로 12일부터 16일까지 일주일 동안 다시 전파를 탄다. <쑥부쟁이>는 인생의 마지막 길을 준비하는 노부모와 네 자녀의 갈등과 화해를 다룬 작품으로, 방영 당시 재방영 요구가 많았던 드라마다. 이야기는 평생을 농부로 지낸 아버지가 위암이 재발된 사실을 알고 서울에 살고 있는 자식들을 불러모으면서 시작된다. 자식들은 부모에 대한 걱정보다 개발로 값이 오른 땅에만 관심을 갖는다. 드라마는 들판에 많아 지나쳐버리기 쉬운 들꽃인 ‘쑥부쟁이’처럼 뒤늦게 깨닫고 알게 되는 부모님의 사랑을 그린다. <전원일기>를 만든 김정수 작가와 권이상 PD가 호흡을 맞춘 드라마는 역시 <전원일기>에 출연했던 고두심, 이계인 등 중견 배우들이 출연해 반가움을 더한다.
[이주의 추천프로] 부모님 사랑 어느 자식이 알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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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클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MBC <명랑히어로>가 제대로 ‘태클’을 걸었다. 지난 5월3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광우병 논란을 짚은 방송을 본 시청자는 “속이 후련했다”는 반응이다. 출연자들이 뉴스를 주제로 토론을 벌인 뒤 한마디로 정리하는 ‘지난주 한반도는 □다’에 대한 발언을 담은 캡처 영상은 블로그를 타고 확산 중이다. “지난주 한반도는 밑지는 장사를 했다”(김구라)나 “이명박 대통령이 ‘얼리버드’(Early Bird)라고 하는데 잠이 안 깨 쇠고기 수입도 비몽사몽간에 한 것 아니냐”(이하늘)고 한 발언들이 화제에 올랐다. 프로그램에 대한 누리꾼의 관심은 홈페이지 ‘광클’로 이어졌다. “‘다시보기’로 뒤늦게 봤다”는 이들의 흔적이 담긴 게시판은 올라온 글도, 조회수도 부쩍 늘었다. 박준기(EASY300)씨는 “‘미친소’ 수입에 관한 일반인의 걱정을 조리있게 설명해주고 문제점들을 지적한 것 같아요. 정말 필요한 때에 잘 보았습니다”라고 했고, 노재형(KIMB
짝짝짝! 우리들의 명랑히어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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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는 ‘자본주의의 첨병’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때 대학에서 열렬히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이야기하던 한 선배는 지금 잘나가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광고계에는 의외로 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다. 변절? 그 선배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세상을 바꾸고 싶었고, 광고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광고를 한다”고.
대한민국 광고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을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움직였던 광고는 무엇이었을까? 지금 바로 전화를 걸어달라는 AIG보험 광고? 16대 선거 전날밤 노무현 후보의 “오늘밤이 지나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납니다” 광고?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길거리 응원을 독려한 SK텔레콤의 2002년 월드컵 광고였을 것이다.
100만 가까운 인파가 시청과 광화문에 모이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던 광고다. 물론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도 있었고 언론의 도움도 분명 있었지만, 붉은악마를 후원한 SK텔레콤의 월드컵 캠페인은 기존의 광고 활동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아름
[CF 스토리] 커머셜 오블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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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끝난 매장과 지금도 진행 중인 우울증
그러나 <너를 보내는 숲>이 <수자쿠>와 똑같이 시작하면서도 이제까지의 가와세의 영화와 다른 점은 이야기 사이에 시간적인 점핑의 방식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수자쿠>도, <호타루>도, <사라소주>도 영화가 시작되면 누군가와의 이별이나 누군가의 실종이 있고, 그런 다음 갑자기 시간을 건너뛴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다. 때로 그 시간은 너무 길어서 영화 전체가 종종 짧은 프롤로그의 후일담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가와세는 그 시간의 간격을 일종의 미스터리처럼 다루었다. 그러나 <너를 보내는 숲>에는 간격이 만들어내는 어떤 미스터리도 없다. 숲이 흔들리고 나면 누군가의 장례식이 보여진다. 저 멀리 이어지는 행렬. 영화를 다 본 다음 종종 이 장면이 롱테이크로 찍힌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착시이다. 이 장면은 아주 짧게 찍혔다. 이 행렬은 두개의 숏으로 나눠서 찍
하소연의 숏은 어떻게 출현하는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