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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향한 갈망과 탐험, 선점과 소유욕이 국가경쟁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던 1960년대, 나사는 아폴로 11호 발사를 코앞에 두고 마케팅 전문가를 고용한다. 연속되는 달 착륙 실패로 흩어진 대중의 관심을 다시 모으기 위해서다. 현혹적인 말과 이미지로 달로의 여정을 홍보하는 마케터 켈리 존스(스칼릿 조핸슨)와 달리 발사 책임자 콜 데이비스(채닝 테이텀)는 그가 하는 모든 것을 거짓말로 치부하며 극명한 대립을 이룬다. 공동의 목표 앞에 평행선을 이루던 둘도 조금씩 가까워지지만 실패가 없어야 한다는 정부의 압박으로 켈리 존스는 아무도 모르는 플랜B를 꾸미기 시작한다. 바로 인간이 최초로 달에 오른 가짜 영상을 제작하기로 한 것. <플라이 미 투 더 문>은 인류 최대 업적인 달 착륙을 둘러싼 날조와 선동, 루머 등을 직면하여 오랫동안 쌓여온, 그러나 누구도 시원하게 해소할 수 없었던 음모론적 상상을 흥미롭게 풀어간다. 문제가 조급하게 해결되는 동안 이야기가 다소 느슨해지기
[리뷰] 다들 한번쯤 가져본 음모론적 상상력의 질주, <플라이 미 투 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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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하코다테 지역에 있는 오노에 일가 창고에 괴도 키드의 예고장이 날아온다. 그가 훔치려 하는 것은 바로 에도시대 신선조(준군사조직 중 하나) 히지카타 토시조 부장에 얽힌 전설적인 검. 이때 검술대회를 위해 하코다테를 방문한 핫토리 헤이지와 그를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코난 일행은 괴도 키드를 막기 위해 손을 뻗는다. 한편 창고 거리에서 독특한 상처로 죽음을 맞이한 시체 한구가 발견되고, 죽음의 상인이라 불리는 일본계 미국인 무기 상인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그 또한 괴도 키드와 같은 검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검의 실체와 위력, 이를 둘러싼 오랜 진실도 함께 드러난다. <명탐정 코난> 극장판 시리즈 최초 누적 관객수 천만명을 달성한 <명탐정 코난: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은 여느 범죄영화를 연상시키는 묵직한 스토리라인에 몰입을 고양시키는 적재적소의 음악, 각 인물의 특징을 생생하게 살려낸 괴도 키드 VS 핫토리 헤이지 대결 구도 등 섬세하게
[리뷰] 핫토리 헤이지, 네가 내 별이다, <명탐정 코난: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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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붕괴할 위기에 처한 공항대교 위에서 청와대 국가안보실 행정관 정원(이선균)이 재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공항대교 일대엔 극심한 안개를 부른 기상 악화와 대규모 교통사고, 군 헬리콥터 추락과 유독가스 폭발까지 온갖 악재가 겹친 상황이다. 가장 커다란 어려움은 이송 중 탈출한 군사용 실험견들의 공격이다. 모종의 실험으로 특수 개조된 실험견들은 리더 군견의 지휘에 따라 계획적으로 인간을 습격한다. 정원은 실험견들의 배후에 있는 미지의 연구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존재, 그리고 프로젝트 사일런스에 본인이 간접적으로 연루돼 있음을 깨닫고 딜레마에 빠진다. 최우선으로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책무와 본인의 사회적 입지를 지키는 일 사이에서 고민한다. 정부 책임자들은 프로젝트 사일런스에 얽힌 비밀 탓에 인명구조를 망설인다. 결국 정원을 비롯한 민간인들이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힘을 합친다. 정원의 곁에서 딸 경민(김수안)은 아버지가 옳은 선택을 하도록 돕는다.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리뷰] 안개보단 인간이 훨씬 무서운 한국형 재난물,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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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공지능 관련 학회에 갈 일이 있었다. 학회장 한쪽에 생성형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을 전시한 공간이 있길래 둘러보았다. 일일이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동물이나 아이, 여성 등을 대상으로 한 그림이 눈에 많이 띄었다. 예상대로다. 인공지능 스피커부터 돌봄 로봇 그리고 디지털 가상 비서까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는 주로 친근한 외형이나 음성을 갖기 때문이다. 아마도 인간은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작가가 처음부터 위협적이거나 지나치게 낯선 그림을 그리기를 원하지 않는 것 같다. “소비자들이… 급격한 변화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스칼릿 조핸슨의 목소리를 원했던 오픈AI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이 했던 말이다. 물론 작품 중에는 당연히(!) 성인 남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그림도 있었다. 서른개가 넘는 작품 중 두점이었는데 한점은 유명 예술가의 얼굴을 담고 있고 다른 한점은 인기 드라마 속 두 남성 인물의 모습을 표현했다. 전자는 과거에 실재했던 인물이고 후자는 이야기 속 주인공이라는 점에
[임소연의 클로징] 인공인간에도 성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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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의 색은 지각 가능하다. 하지만 강력한 서사와 캐릭터 앞에서 우리의 감각은 색에 대해 인식 불가능 상태로 놓일 때가 많다. 색에 대한 지각이 곧장 반응으로 이어지진 않더라도 영화 속 색은 분명히 있다. 다만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미처 인식하지 못한 영화 속 색들이 쌓여 긴장과 감정을 잘 만드는 영화 중 한편이 바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다.
영화의 룩과 관련된 색감을 구현하는 빛의 색은 옐로와 블루가 주를 이룬다. 가시광선의 스펙트럼 안에서 조명기의 광원이 만드는 색온도(빛의 색을 파장으로 표현하는)가 옐로에서 블루까지기에 카메라와 조명기에서 만들어내는 빛의 색도 옐로에서 블루 사이다. 이 두 가지 색으로 이 세상 모든 영상의 색감이 표현된다는 것은 무한의 옐로와 무한의 블루가 존재한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영상의 색감을 카메라나 조명, 후반작업인 색보정에서 조정하는 색만으로 모두 구현할 수는 없다. 미술과 의상이 함께 작용하여 표현될 때 영상의 색감이 제대
[박홍열의 촬영 미학] 서사에 가려진 채로 서사를 빛내는 색,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옐로와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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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빚어내는 단언적 인상에 비해 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즈> 속 히라야마의 일상엔 순환의 피로감과 은근한 불화가 가득하다. 당초 공중화장실 개선 작업인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출발한 영화는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히라야마의 일이 더러움에서 깨끗함이라는 일회적 전환이 아닌 그 두 상태의 지속적 순환임을 절감시킨다. 히라야마는 마치 정화를 목표로 도를 닦는 일종의 ‘수행자’처럼 정성껏 화장실을 쓸고 닦는다. 그런 히라야마의 모습을 카메라는 장인의 기예를 관찰하듯 공들여 포착한다. 말하자면 히라야마는 내일이면 더러워져 있을 공간을 오늘 깨끗이 하는 일에 온 힘을 쏟는 자다. 동료 타카시가 궁금해하는 것처럼 다분히 호기심을 자아내는 히라야마와 그의 사연에 대해 영화는 히라야마의 과묵함을 반영하듯 그저 그의 일상을 조용히 담아내며 그가 듣고 읽는 노래와 소설을 통해 그의 전사를 종종 은유할 뿐이다.
노동만큼 중요한 일상과 루틴
히라야마의 일상엔 노동만큼 중
[비평] 지극히 영화적 순간들, <퍼펙트 데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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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민족적 과업이다’라는 여론조사 문항이 있었다. 2005년 통일연구원이 한국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였다. 여기에 ‘매우 찬성한다’는 응답이 49.2%, ‘대체로 찬성한다’는 답이 34.7%였다. 합하면 83.9%다(통일연구원, 2005년도 통일문제 국민여론조사). <웰컴 투 동막골>이 800만 관객을 넘긴 그해, 한국인의 절대다수가 통일의 당위성에 동의했다. 같은 기관이 2023년 말 지난 10년간의 조사 분석을 내놨다. 해마다 1천명 이상을 대상으로 200개 넘는 문항을 대면 면접 방식으로 조사해온, 가치가 상당한 연구다. ‘남북한 통일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라는 문항에 긍정 답변을 합한 비율은 2014년 69.3%였다가 남북 정상회담이 있던 2018년 70.7%로 정점을 찍는다.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 지난해 53.9%를 나타냈다(통일연구원, <KINU통일의식조사2023>). 청년층의 인식을 들여다봤다. 2023년 18~29살 응답자의 6
[비평] 확장하는 호모 사케르, '최근 북한 소재의 영화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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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이 물리학인데 직업은 영화기자라고 하면 십중팔구 이런 반응이 돌아온다. “<인터스텔라> 같은 영화도 쉽게 이해하시겠어요!” 실제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이 개봉할 때마다 ‘영화를 보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물리학 지식’ 같은 제목을 단 유튜브 콘텐츠가 쏟아지는데, 아마도 상대성이론을 잘 알아야 영화를 이해할 수 있다는 논리로 나온 기획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는 물리학을 잘 알지 못해도 재미있게 볼 수 있고(한국 관객수 1034만명이 모두 상대성이론을 잘 아는 건 아닐 테니까), 그래서 그가 현학적인 수사만 늘어놓는 게 아닌 뛰어난 대중영화 감독이라는 말도 흘러나온다.
2023년 개봉한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리지만 수소폭탄의 반대자이기도 했던 J. 로버트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의 인생 가운데 특정 시기를 다룬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보다 먼저 핵폭탄을 개발하기 위해 극비로 진행됐던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
[임수연의 이과감성] 과학과 윤리, <오펜하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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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아로즈 크레이그 지음 신혜빈 옮김 최순규 감수 문학동네 펴냄
10대 시절부터 세계적으로 주목받아온 환경운동가로 많은 이들이 그레타 툰베리를 떠올릴 것이다. 국내에 잘 알려지진 않았으나 그에 못지않게 활발히 활동하는 젊은 환경운동가가 있다. 바로 <버드걸>의 저자 마이아로즈 크레이그다. 이 2002년생 청년이 환경에 관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건 가족을 따라 새를 관찰하는 ‘탐조’ 활동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다. “7살 때 조류 325종을 관찰했고 여전히 세계에서 빅 이어(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정해진 지역 안에서 최대한 많은 종류의 새를 보러 다니는 해)를 완수한 유일한 어린이”일 만큼 크레이그는 오랜 기간 가족과 세계를 누벼왔고 탐조 활동은 이제 그의 “삶의 패턴을 이루는 실”과 다름없게 됐다. 크레이그 가족의 열정을 알아챈 가 다큐멘터리 <트위치: 지극히 영국적인 취미>를 통해 이들을 소개하고, 크레이그가 본인이 관찰한 새들을 ‘버드걸
씨네21 추천도서 - <버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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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키냐르 지음 백선희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세상의 모든 아침> <은밀한 생>의 파스칼 키냐르 소설. 17세기 음악가들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 암흑 속에서 더듬어 사물의 위치를 파악하듯 느리고 섬세하게 읽어나가기를 권한다. 파스칼 키냐르는 이전에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던 <세상의 모든 아침>의 생트 콜롱브와 <로마의 테라스>의 조프루아 몸므를 다시 등장시킨다. 산발적인 장면들로부터 서서히, 인물들과 이야기의 윤곽이 선명해진다. 작곡가 생트 콜롱브의 제자 튈린과 조프루아 몸므의 아내 마리에 주목하라. 세상을 등진 그 두 예술가와 연결된 두 여성에게. 17세기 음악가들의 생활사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음악은 자주 자연에 비유되며 파스칼 키냐르 특유의 풍경을 그려낸다. 때로는 수수께끼처럼 암호처럼 문장이 이어져간다. 문장은 신비할 정도로 이미지를 그려내고 정서를 전달한다. “유령이란 무엇이겠나? 우리 자신 너머를 빙 돌아 다시 자신
씨네21 추천도서 - <사랑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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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호진, 단요 지음 창비 펴냄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주범’으로 지목되는 초고난도 문제를 가리키는 킬러 문항은 보통 공교육 교과과정 밖에서 복잡하게 출제된다. 사교육 시장에서는 ‘킬러 문항 하나가 1조원짜리’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2023년 6월 윤석열 대통령이 사교육 부담의 원인으로 지목한 게 바로 이 킬러 문항이다. <수능 해킹: 사교육의 기술자들>은 킬러 문항의 문제를 이렇게 풀이한다. “교과 범위는 줄이고 상위권 변별력은 유지하는 흐름 속에서, 문제풀이 요령이 과도하게 강조되며 시험의 퍼즐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현직 의사이자 의과대학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활동을 해온 문호진과 소설가 단요가 사교육 현장을 꼼꼼히 취재해 쓴 <수능 해킹: 사교육의 기술자들>은 지금의 수험생들이 상대하는 수능이 초창기 수능과 다르며, 그래서 기성세대의 짐작과는 크게 다른 무엇임을 증명해낸다. 더불어 현재의 수능 문제가 퍼즐화되면서 그 퍼즐을 푸는 공식
씨네21 추천도서 - <수능 해킹: 사교육의 기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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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까지 3킬로미터> 이요하라 신 지음 홍은주 옮김 비채 펴냄
<8월의 은빛 눈> 이요하라 신 지음 김다미 옮김 비채 펴냄
과학적 지식을 지극히 현실적인 삶의 환경에 녹여내 소설을 쓰는 이요하라 신의 단편집 두권이 나란히 출간됐다. 이 중 <8월의 은빛 눈>은 서점대상과 나오키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는데, 어느 책을 먼저 읽어도 작가의 작품 세계를 만끽할 수 있다.
<8월의 은빛 눈>에 수록된 <아르노와 레몬>의 주인공 마사키는 아파트 관리업체 직원으로, 최근 맡은 업무는 아파트 재건축을 위한 주민 퇴거 교섭이다. 문제는 한 입주인이 갑작스레 비둘기를 기르기 시작했다는 것. 주인이 따로 있는 듯한 비둘기에 대해 조사하던 마사키는 회귀본능이 뛰어난 전서 비둘기에 대해 알아갈수록 집을 떠나와 돌아가지 못하게 된 자신의 상황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8월의 은빛 눈>이라는 제목은 지구 내핵 표면에 눈처럼 떨어지는 철
씨네21 추천도서 - <달까지 3킬로미터>, <8월의 은빛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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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혁, 단요, 서이제, 이희영, 서윤빈, 장강명, 위래, 심완선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의 SF 앤솔러지 시리즈 세 번째 책은 ‘빛’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이 시리즈를 여는 글은 소설가 문지혁이, 닫는 글은 SF 평론가 심완선이 꾸준히 맡고 있는데, 이 두편의 논픽션을 포함해 앤솔러지가 완성되는 구성이다(두 사람의 글은 본문에 수록된 소설의 해설인 동시에 주제어에 대한 독립적인 글이다).
단요의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는 31세기를 배경으로 한다. “세계는 음침하고 평화로웠으며, 미래를 상상하긴 어려울지라도 절망할 이유 또한 마땅치 않았다.”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낙관 아닌 낙관으로 지탱하기는 매한가지라는 의미에서. ‘나’는 송전망을 관리하는 기술직 사무관이다. 어느 날 종교역사학 연구자인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빛이란 뭘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마지막 남극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냉동된 원시인이 발견된 일로부터 시작한다. “어쩌
씨네21 추천도서 - 'SF 보다 Vol. 3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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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보다 Vol. 3 빛> - 문지혁, 단요, 서이제, 이희영, 서윤빈, 장강명, 위래, 심완선 지음
<달까지 3킬로미터> 이요하라 신 지음
<8월의 은빛 눈> 이요하라 신 지음
<수능 해킹 : 사교육의 기술자들> 문호진, 단요 지음
<사랑 바다> 파스칼 키냐르 지음
<버드걸> 마이아로즈 크레이그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7월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