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다 모여 있다. 미쟝센단편영화제가 지난 20여년간 걸어온 현장 기록사진에는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기를 만들어내고 부흥시켰던 영화인들의 젊은 날이 담겨 있다. 이현승 명예집행위원장이 직접 기억을 더듬어가며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들려줬다.
장르 중심 영화제의 힘
“코미디영화가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는 경우를 우리는 거의 본 적이 없다. 류승완 감독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만들 때만 해도 액션영화가 마이너한 장르였는데 그 이후에 액션 단편을 만들어 출품했던 젊은 감독들이 류승완에게 고맙다며 울먹거리고 그랬다. 그런 단편 만들 돈으로 차라리 딴 거 하라는 소리를 듣던 감독들이 여기 와서 인정을 받은 거다. 집행부 막내로 합류했던 저 시절의 류승완, 봉준호 감독처럼 새로운 젊은 감독들이 영화제에 함께하면 좋겠다.”
감독이 직접 심사한다
“현역 감독들로 심사위원단을 꾸린 이유가 있다. 내가 이전에 여러 영화제의 심사를 해보니 평론가, 프로듀서, 감독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모여 회의하면 대개 90점짜리가 아니라 80점짜리가 뽑히더라. 우리는 다르게 하자고 했지. 박찬욱 감독이 멜로 섹션을 심사하던 해에는 ‘젊은 감독들이 왜 이렇게 아름다운 엔딩을 꿈꾸느냐’면서 해피 엔딩으로 끝맺는 영화는 다 떨어뜨리고 그랬다. 젊을 때는 영화가 날이 서 있어야 한다면서. (웃음)”
천재 발견
“첫회 대상 수상작이 신재인 감독의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이었다. 당시에 아주 독특한 인재가 튀어나왔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과연 영화계에 적응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차에 수상을 하니까 당시에 감독에겐 힘이 됐던 것 같다. 영화제 수상은 감독들에게 자신의 생각대로 밀고 나가도 되는지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된다.”
통념을 깨는 상영 문화
“영화는 숙명적으로 관객과 함께 가야 하는 예술이다. 영화제 초창기부터 객석을 꽉 채우겠다는 목표가 뚜렷했다. 국내 영화제를 다닐 때마다 관객이 너무 없어서 자원활동가들이 옷을 갈아입고 객석에 앉아서 GV 행사하는 광경을 너무 많이 봐왔다. 단편영화 감독들에게도 관객과 만나는 접점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배우도 심사위원으로
“다른 영화제는 배우에게 홍보대사 역할을 맡기는데 우린 처음부터 같이 심사하자고 제안했다. 이 기회에 동료 배우들의 실력을 직접 봐달라는 거였지. 처음엔 배우들이 고사했는데 갈수록 참여도 늘고 돈도 많이 냈다. (웃음) 그해 흥행 배우가 뒤풀이를 결제하는 게 전통처럼 자리 잡았던 기억이 난다. 명예 심사위원 조건으로 뒤풀이는 꼭 참석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야외 상영은 필수
“청계천과 한강에서도 야외 상영을 추진했었다. 어떤 영화를 틀더라도 야외에서 보면 관객의 반응이 좋았다. 해외 영화제를 다니면서 영화를 밖에서 즐기는 것도 또 다른 체험이라는 걸 경험했으니까. 용산 CGV 야외무대도 예전엔 자주 활용했다.”
대화합시다
“이제 막 영화를 꿈꾸기 시작한 젊은이들의 축제. 그들이 직접 관객과 만나 소통하는 영화제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열망에서 시작됐다. 기성 감독들도 그 에너지에 감화되기도 했던 행사다. 이제 막 첫 단편영화를 만든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대화할 수 있는 곳, 신인감독 장재현이 배우 강동원을 캐스팅할 수 있었던 행사다.”
감독이 감독에게 Q&A
“보통 테이블이 놓인 식당에서 모이면 테이블당 의자 수가 한정돼 있는데 어린 감독들이 선배들 옆자리에 끼어들려면 좌식이 좋다. (웃음) 뒤풀이 장소로 자주 애용하던 감자탕집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호프집에서 해야 할 때는 2인당 4자리씩 계산해서 빌리고 그랬다. 사이사이에 누가 언제 들어와 앉을지 모르니까.”
밝은 미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패션 브랜드 초청 행사로 한국에 왔는데 마침 개막식이 열리던 날과 일정이 겹쳤다. 이냐리투 감독측에서 한국 감독들을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기에 한국영화계의 중요한 행사가 있어서 못 간다고 했다. (웃음) 그랬더니 본인이 우리쪽으로 오고 싶다기에 남영동 호프집으로 안내했다. 우리 영화제 취지도 소개하고 연락처도 주고받고 DVD도 만들어서 보내주곤 했다. 한국영화계는 이렇게 젊은 감독들이 모여서 단편영화도 만드는 걸 보니 미래가 밝다고 덕담도 주고받고 했던 그날 현장의 기록이다.”
대상은 만장일치로만
“심사위원 만장일치일 때만 대상을 뽑는다는 기준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처음부터 계획한 게 아니고 심사를 해보니까 감독들이 양보를 안 하는 거다. 뒤풀이 식당 예약도 했는데 회의가 안 끝났다. (웃음) 그다음 해부터는 아예 밤샐 각오로 늦게까지 토론이 이어졌다. 집행위원장인 나는 투표권은 없지만 심사에 참관하면서 영화제를 생각하면 2, 3년에 한번씩은 대상이 나와야지 않느냐고 말해도 아예 듣지를 않았다.”
팬데믹이라는 위기
“후반에는 영화제 운영에 관해 고민이 많았다. 우선 플랫폼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유튜브가 주목받고 꼭 영화제가 아니어도 영화를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이 다양해졌는데 왜 영화제여야 하는가, 우리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 시작됐다. 영화제의 규모를 더 키우면서 시스템을 만들 것인지를 고민하면서도 길이 막혔다. 스태프도 많아지고 점점 중소 규모의 영화제도 많아지던 시기였다. 우리가 영화계에 기여하는 바가 무엇인지, 새로운 관객이 영화제를 찾는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이제 새로운 집행위원 감독들이 고민을 이어받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