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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우리가 보는 뉴스 한 꼭지 뒤에는 누군가의 지독한 고집과 처절한 사투가 숨어 있다. 탐사보도국이라는 공간은 그래서 특별하다. 이제는 도무지 유용해 보이지 않는 단어들- 진실 혹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태워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거기에 있다. <트리거>는 각자의 마음속 트리거를 품은 채 세상의 이야기를 전하는 데 몰두하는 탐사보도 프로그램팀 ‘트리거’ PD들의 활약상을 보여준다. 후줄근한 차림새로 나타나 짐짓 온갖 일에 신물난 듯 굴어도 적시에 원칙과 책임의 본분을 다하는 팀장 오소룡(김혜수)이 이 소란스러운 오피스물의 구심점이다. 그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요주의 인물은 낙하산 꼬리표를 달고 나타나 오직 외길만을 고집하는 PD 한도(정성일)다. 한편 막내 기호(주종혁)는 팀의 활력소이자 야심가로 학벌주의의 벽을 뚫고 성장해나간다. 애와 증, 공과 사를 넘나들며 때로 묵직하고 때로 우스운 화학작용을 주고받는 <트리거>의 세 주역, 배우 김혜수, 정성일, 주
[커버] 뉴스 뒤의 사람들, <트리거> 배우 김혜수, 정성일, 주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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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소설가(<나주에 대하여> <동경>)
<러브레터>를 다시 봤다. 처음 이 영화를 본 것은 몇년 전 연말이었는데, 다시 보는 지금 역시 연말. 어떤 영화를 보는 일이 그 영화의 작동 방식과 비슷하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 지나간 시간이 자꾸만 지금의 내게로 돌아오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이 영화가 마침 그런 방식으로 흘러가서일 테니까. 그때도 지금도 나는 ‘나, <러브레터> 별로 안 좋아하는데…’라고 생각하며 보기 시작해서, 후반부를 지날 때 즈음이면 여지없이 운다.
영화는 산에서 조난당해 죽은 애인의 추모식 장면으로 시작한다. 죽은 이는 후지이 이츠키, 남은 이는 와타나베 히로코. 히로코는 죽은 애인의 집에서 그의 부모님이 보여주는 그의 중학교 졸업 앨범을 보고, 당시 그가 살던 오타루의 주소를 손에 적어 간다. 이후에 히로코는 그 주소로 짧은 편지를 쓴다. 답장은 기대하지 않으며. 그런데 그 편지에 답장이 온다. 후지이 이
‘누가 더, 라고 말할 수 없는 세계’, 김화진 소설가의 <러브레터>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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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잠자리가 발밑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상복을 입은 소녀는 그제야 인정한다. “아빠가 돌아가셨구나.” 잠자리가 죽은 것은 그저 과거형, 얼어붙은 호수의 표면 아래 박제된 형상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야말로 현재형이다. 자각이란 그런 식이다. 뒤늦게, 엉뚱하게, 잔인하게도 생생히 나타난다. 시간의 지속 속에서 우리는 그럴 때에야 이따금 ‘지금’을 산다. 감정은 아버지의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을 받아들이는 처리의 과정 속에서 언제 어떻게 서 있었는가에 따라 다른 표정을 짓는다. 그렇다면 이렇게도 말해볼 수 있을까? 발아래를, 딛고 선 곳을 지그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편지가 향하기 위해선 언제나 수신의 장소들, 기억을 되찾고 되돌려줄 공간이 요구된다고.
마르셀 프루스트가 베르그송의 강의를 들으면서 쓴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가장 유명한 대목은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입에 넣는 순간, 온몸의 신경세포가 미각으로부터 깨어나 기억의 시냅스에 불을 켜는 순간
[비평] ‘남아 있는 장소를 위한 멜로드라마’,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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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레터>의 대중문화사적 의미
1990년대 일본 멜로드라마, 추억 속의 사랑 이야기, 이와이 슌지 스타일, 오타루를 꿈꾸게 하는 영화. 어떤 의미로든 <러브레터>는 하나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상징적으로 통용되는 <러브레터>에 관해 구전되는 전설은 이러하다. 극장에 개봉하거나 정식 비디오로 출시도 안된 영화를 모두가 알고, 봤다는 것. 그리고 지금은 <러브레터>를 모르는 이들에게조차 명대사 “오겡키데스카?”만큼은 남게 되었다는 것.
<러브레터>의 감수성이 전파되는 과정은 일반적인 외화의 흥행 양상과 다른 지점이 많다. 1995년 제작된 <러브레터>는 1999년 11월 한국에 정식 개봉했다. 1998년 CGV강변, 2000년 코엑스 메가박스가 막 문을 열면서 국내에 멀티플렉스 극장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기 시작한 무렵이다. 2003년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도입 이전에
우리 모두의 기억이 되어, <러브레터>에 부치는 4가지 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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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1일,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1995)가 새해와 함께 다시 극장가에서 관객을 맞이했다. 작품의 상징성만큼 숱한 재개봉으로 익숙한 영화지만 이번엔 탄생 30주년이라는 남다른 의미와 함께다. 1999년 국내에 정식으로 첫 개봉했을 때와 같은 세로 자막 형태로 보다 정확하게 다듬은 번역도 제공된다. 눈 쌓인 오타루의 설원과 재회하는 반가움이, 뜻하지 않게 더욱 애틋한 그림자를 입게 된 것은 그러나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러브레터>의 표정이자 상징. 배우 나카야마 미호의 급작스러운 부고와 함께 다시 마주하는 <러브레터>는 시절과 만남의 유한함을 절감케 한다. 당대에 비디오테이프로 먼저 영화를 접했던 세대와 이제야 비로소 “오겡키데스카?”의 실체를 극장에서 마주하는 세대의 경험을 나누어보며, 새롭게 만나는 전설적 멜로드라마를 복기해보았다. 작품 비평과 김화진 소설가의 에세이, 배급사 워터홀컴퍼니의 재개봉 비하인드를 함께 전한
[커버] 여전히, 잘 지내나요?, 30년 만에 다시 만나는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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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가 <파친코>의 정직하고 신실한 목사 이삭으로 배우 노상현의 존재를 강하게 인식했을 것이다. 차분한 호흡을 지닌 연기자라는 인상을 남겼던 노상현은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 <사운드트랙#2>를 거치며 리드미컬한 로맨스코미디 장르에도 매끄럽게 녹아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2024년, <대도시의 사랑법>의 흥수는 그에게 새로운 분기점이 됐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던 흥수는 대학 동기 재희(김고은)와 가까워지면서 숨통이 트이는 인물이다. 오롯이 자신을 내보이는 경험 이후로 흥수의 삶도 조금씩 변화한다. “분석보다는 직관을 따”르고, “촬영할 때는 맡은 캐릭터로서 살아 있으려 하는” 노력 덕에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노상현 배우는 청룡영화상,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에서 연이어 신인배우상을 수상했고 <씨네21>의 ‘2024 올해의 영화’ 설문에서도 ‘올해의 신인 남자배우’로 호명됐다.
[커버] 감당할 수 있는 성공을 향하여, <대도시의 사랑법> <파친코> 시즌2 노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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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시대>의 양철홍,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의 최영민, <정숙한 세일즈>의 엄대근까지. 배우 김정진은 올해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대중을 만났다. 그는 <씨네21>에서 진행한 ‘2024 올해의 영화 결산’ 신인 남자배우 2위를 차지했다. “김정진은 신인임에도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었고(박현주), “올해 출연한 세 작품 모두 장르와 분위기가 달랐지만 자신이 맡은 배역에 무거운 추를 달 줄 아는”(복길) 힘을 지녔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오디션장에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1시간 남짓한 동안 4화의 대본을 읽었다. 15분에 한권씩. 영민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는 날렵한 상상력으로 영민을 깊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송연화 감독으로부터 작품을 함께하자는 이야기를 들었다. “영민이를 직관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두 가지 포인트가 보였다. 먼저 어머니에게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랑을 좋아하는 사
[WHO ARE YOU]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김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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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스 드 발의 <침팬지 폴리틱스>
침팬지 집단의 정치 행위를 관찰하고 연구하며 그것이 얼마나 인간과 닮았는지 보여준다.
콜슨 화이트헤드의 <니클의 소년들>
흑인 인종차별에 관한 책이다. 메시지가 확실한데 전혀 지루하지 않다. 무척 상업적이라 페이지가 잘 넘어간다. 콜슨 화이트헤드는 퓰리처상 소설 부문에서 두번 수상한 최초의 흑인 작가라고 한다.
성해나의 <두고 온 여름>
책을 다 읽은 후 30~40분 동안 가만히 생각했다. 내가 겪어본 적 없는, 나와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나까지 그 감정을 느끼게 하는 천재적인 재능이 있었다.
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A. 로빈슨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지리적 요인이 인류 문명에 끼친 영향을 분석했던 <총, 균, 쇠> 같은 책을 반박한다. 평소 팬이었던 김지윤 정치학 박사가 유튜브에서 이 책을 극찬해서 읽었는데 무척 재밌었다.
이기호의 단편 소설집
소설부터 인류학까지 박정민이 <씨네21> 독자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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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주>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찾은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니 감회가 새롭다. 오랜만에 <동주>에 대한 기억을 꺼내보니 어떤가.
내겐 너무 소중한 작품이라 항상 마음에 두고 있다. 특별한 행사나 인터뷰가 있어서 <동주>를 얘기해야 할 때도 엄청 옛날 일 같지는 않다. 9년 전에 찍었으니 사실 오래된 작품이 맞는데도 제작 과정 전반의 기억이 생생하다. 나도 모르게 떠올리게 되는 작품이다. 그런데 다시 보지는 못한다. 개봉 때 이후로 안 본 것 같다.
- 왜인가. 훌륭한 작품이고 훌륭한 연기를 했는데.
원래 내가 나온 영화를 잘 안 본다. 좀더 잘할 수 있었던 장면이 계속 눈에 보여서 괴롭고 부끄럽다. 다른 영화를 볼 때처럼 재미를 느낄 수 없다. 마음 편하게 다시 보는 작품은 <파수꾼> 정도인데 그땐 어렸으니까 괜찮다는 방어의 여지가 있어서다.
- 스스로를 <파수꾼>으로 5년, <동주>로 5년의
[인터뷰] 본능과 유머로 연기하는, 배우 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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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은 충무로에서 가장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배우다. 독립영화 <파수꾼>으로 이름을 알리고 이준익 감독이 제작비 5억원으로 만든 <동주>로 신인남우상을 휩쓸며 ‘영화배우’, 그것도 ‘예술로서의 영화’ 배우로서 정체성을 잡아가더니 <그것만이 내 세상> <사바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로 대중에게 좀더 친숙한 배우가 됐다. 한때 책방을 운영했고 지금은 출판사 무제의 대표로서 김금희 작가의 신작을 준비 중이다. 유튜버 침착맨의 팬임을 공공연하게 밝히더니 아예 스트리머 크루 ‘배도라지’의 일원이 되어 종종 유튜브 플랫폼에서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이는 영화인, 배우, 작가, 출판업자, 유튜버, 자연인 박정민의 분리된 정체성이라기보다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박정민이란 한 사람의 총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11월21일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열린 <동주> 관객과의 대화 참석차 대구에 들른 배우 박정민과 행사 시작 전 시간
[커버] ‘나’로 공존하기, 배우, 감독, 작가, 출판업자, 유튜버 그리고 사람 박정민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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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가게>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은 저마다 슬픔을 안고 있다. 한명 한명 압축된 감정을 지니고 있어서 시적이다.” 정체를 도통 알 수 없는, 그러나 어쩐지 마음이 쓰이는 지영(김설현)에 흔들리는 현민을 그리기 위해 배우 엄태구는 그가 감각한 상황에 초점을 맞췄다. 에피소드별로 나뉜 모든 감정을 납득하기보다 현민이 당장 직면한 현실, 그리고 그가 오랫동안 움켜쥐어온 애수에 집중하길 선택한 것이다. 춥고 어두운 겨울밤, 스산한 버스 정류장 시퀀스는 호러물로서 <조명가게>를 정체화하는 장면이지만 추위와 외로움에 떨고 있는 여자를 외면하지 않는 현민의 따스함이 전달되는 통로이기도 하다.
- 아무리 날이 바뀌어도 현민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지영을 계속 마주친다. 1화 첫 장면부터 음산하고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극 중에서 나흘의 시간이 흐른다. 며칠 동안 퇴근길에서 지영을 만난 현민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보이도록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인터뷰] 슬픔을 외면하지 않는 눈, <조명가게> 배우 엄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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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모르게 골목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여자. 흰 원피스에 검고 긴 머리. 외형부터 섬뜩한 이 여자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나한테 시간이 없어요. 지금 좀 추운데. 집이 가깝다고 했죠?” 상대방의 물음에 답하기보다 일방적인 질문을 더 많이 건네고, 자신에 관한 정보는 쉽게 내어주지 않는 지영은 배우 김설현을 만나 완전한 구체성을 갖는다. 호러적 장르성, 인간성을 소생시키는 역동적인 이야기,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밀과 진실의 조우. <조명가게>를 구성하는 주요 키워드는 모두 김설현을 교집합으로 두고 있다. 어둡고 서글픈 세계관을 가로지르는 김설현은 그만큼의 용기를 손에 쥐고 있었다.
- 지영과 현민(엄태구)이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는 1화 첫 장면은 <조명가게>의 공포감을 처음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 장면에서 어떤 점을 드러내고 싶었나.
=처음엔 지영이라는 캐릭터가 조금 어려웠다. 극 안에서 지영이 지닌 목표점이 있는데 정서를 담는 동
[인터뷰] 같은 길을 하염없이 맴돌면서, <조명가게> 배우 김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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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 삶과 죽음. 상반된 개념에서 시작되는 <조명가게>에서 영지는 언제나 빛을 잃지 않는다. 중환자병동의 24시간 환한 형광등 아래서 환자들을 돌보고, 어두운 병실이 무섭다는 목소리에 빠르게 작은 조명을 켜준다. 모두가 캄캄한 암흑에 혼란해할 때 길을 잃지 않는 유일한 사람, 나 홀로 어둠을 통과해가는 사람을 결코 지나치지 않는 사람. 영지의 차분하고 단단한 모습을 그린 박보영은 자신의 모난 것 없는 둥근 얼굴로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영지를 완성했다. 우리가 박보영의 작품에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는 건 그가 성실히 마련해준 도움닫기가 있기 때문이다.
-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디즈니 콘텐츠 쇼케이스 APAC 2024’ 행사에서 디즈니 공주 같은 모습으로 연일 화제에 올랐다.
=(박수 치며) 예상치 못하게 사진에 대해 많이 이야기해주셔서 놀랐다. ‘와,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웃음) 아무래도 그때 미니와 미키를 함께 만난 게 행운이었던 것 같다.
[인터뷰] 해가 잠긴 새벽에도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조명가게> 배우 박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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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아주 자세히 들여다봐야 해.” 주지훈이 분한 <조명가게> 속 원영은 현주(신은수)에게 낯선 존재를 분간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하지만 이 대사는 자연히 원영에게 메아리처럼 돌아온다.
원영은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지만 쉽게 그 속내를 들여다보기 어려운 캐릭터다. 조명가게의 매출을 예스럽게 수기 출납부에 기록하고, 한밤중에도 선글라스로 눈을 가린 채 가게를 찾는 모든 손님을 ‘다나까체’로 맞이하는 등 모든 순간이 미스터리하다. 오직 원영만이 조명가게를 찾는 손님의 심연을 응시할 뿐이다. 그리고 주지훈은 원영의 시선이 곧 관객의 시선이라 상정하며 활자 속 원영을 바라보았다.
- 김희원 감독이 직접 전화를 걸어 <조명가게>의 출연을 제의했다고.
김희원 배우가 강풀 작가님의 만화를 원작으로 시리즈를 연출한다고 해서 1회 대본을 받아봤다. 대본이 술술 읽히고 재밌었다. 여느 때처럼 희원 형을 커피숍에서 만났다. 대본을 읽고 가졌던 이런저런 궁금증을 묻고
[인터뷰] 리액션의 액션, <조명가게> 배우 주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