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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음과 어둠의 온유한 공존. 배우 하윤경에게 내적으로 성숙한 배역이 곧잘 주어지는 건, 그가 가진 특유의 분위기가 자신다움을 직시하고 성찰하는 사람의 것이기 때문일 터다. “캐릭터의 주축은 지키되 그 반대편의 면모를 불쑥 내보일 때 인물이 비로소 재미있어진다”고 말하는 이 배우도 스스로의 장점을 이미 잘 알고 있는 듯 보인다.
<딸에 대하여>에서 동성 연인 그린(임세미)과의 사랑을 7년간 지켜온 여성 레인은 퀴어 커플에게 쏟아지는 사회적 차별과 압력을, 그와 무관하지 않은 주거난의 불안을 온전히 마주하는 인물이다. 타인에게 밝은 빛을 나누어줄 때는 물론 숨겨지지 않는 그림자를 끌어안고 있을 때도 하윤경의 에너지는 맑게 뻗어나간다. 배우의 시선에 힘입어 <딸에 대하여>는 한결 더 진실한 촉감을 입는다.
-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후 <딸에 대하여>를 촬영했다. 커리어의 전환점이라 할 만한 시기에 작품 선택을 할 때 고민한
[인터뷰] ‘온전히 바라보는 시선의 힘’, <딸에 대하여> 하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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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미 배우가 연기한 그린은 불의를 쉽게 지나치지 않는 올곧은 에너지를 지녔다. 그는 소수자라는 이유로 대학에서 해임된 동료 교수를 위해 가장 앞장서 목소리를 낸다. 전세보증금 문제로 그린은 엄마(오민애)의 집으로 들어온다. 엄마와 그린 사이에 마찰이 생긴 건, 그린의 동성 애인 레인(하윤경)이 함께 살게 되면서부터다. <딸에 대하여>를 통해 독립영화의 세계에 발을 들인 임세미는 인터뷰의 첫 대답부터 작품에 대한 강한 애정을 보였다. “삶에 대해 지금 우리 나이대가 지닌 고민과 나이든 미래에 맞닥뜨릴 고민을 함께 바라볼 수 있어 좋았다”라며 “소수자에 대한 타인의 시선을 느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라고 힘주어 말하는 그의 눈빛에선 그린만큼이나 단단한 심지가 비쳤다.
- 부산국제영화제에 배우로 참석한 것은 <딸에 대하여>가 처음이라고.
새로운 곳에 놀러가는 어린아이처럼 설레고 떨렸다. 레드카펫을 밟는 배우 선배님들, 동료들을 보면서 나도 저길 갈
[인터뷰] ‘우직하게, 굳건하게, 뒤돌아 후회하는 일 없이’, <딸에 대하여> 임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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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영화제를 빼곡히 채운 단편영화들로 진즉 존재감을 각인했고, 독립영화 <윤시내가 사라졌다> <초록밤> <첫번째 아이> 등으로 부지런히 활동해온 오민애를 만났다. <딸에 대하여>에 이어 <파일럿> <한국이 싫어서>, 넷플릭스 시리즈 <돌풍> 등으로 요즘 우리를 분주하게 노크하고 있는 그다. 오민애가 연기한 <딸에 대하여> 속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는 존엄을 지키기 어려운 노인들의 삶에 자기 미래를 겹쳐둘 때 불안한 한편, 주거와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딸 그린(임세미)을 통해 청년세대의 고충도 피부로 느낀다. 게다가 당장 그의 삶에서 더 시급한 해결책을 요구하는 이슈는 따로 있는데 바로 동성 연인인 딸 커플과의 동거다. 배우 이전에 인간으로서, 생활에 밀착한 다양한 경험을 내재한 배우 오민애가 연기한 엄마의 행로는 어떻게 비추어질까. “한 사람의 호흡과 무표정 안에 그의 역사가 담겨 있다”고 믿는
[인터뷰] 사랑이 가장 귀해서, <딸에 대하여> 오민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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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서사를 탐구하는 작가들이 채택하는 주요 관계가 바로 모녀다. 엄마와 딸 이야기를 익숙한 것으로 치부하기 쉬운 이유다. 그러나 이 영화, <딸에 대하여>는 서로를 낯선 소우주로 여기는 엄마와 딸 사이에 그들만큼 복잡한 새로운 항성들을 데려다놓는다. 집을 잃고 엄마의 집에 잠시 머무르게 된 딸 곁에는 레즈비언 연인이,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 곁에는 혼자 된 노인들이 자리하고 있다. 김혜진 작가가 쓴 원작 소설의 1인칭 시점을 확장해 여러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을 바라본 <딸에 대하여>는 ‘생활동반자’가 된 혈연·비혈연 공동체의 유대를 찬찬히 가늠해가는 영화다. 동성 반려자가 있는 삶, 청년 주거와 노인복지 문제 등이 조밀하게 얽힌 이 세계의 여자들은 어떻게 서로를 위해 생존할 수 있을까? 이해하기 전에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영화 속 관계처럼, 엄마(오민애)와 딸 그린(임세미), 그린의 연인 레인(하윤경)은 촬영이 끝난 뒤에도 점점 애틋한 사이가 되어
[커버] 한 지붕, 세 여자, <딸에 대하여> 배우 오민애, 임세미, 하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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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돌에는 저마다의 뜻이 있다고 스스로 지은 이름. 김뜻돌로 그는 노래하고, 이제 연기도 한다. 지난해 <한국이 싫어서>가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레드카펫을 처음 밟았을 때 “무대에서 늘 보던 관중들이 아닌 영화배우들이 시야에 잡혀서 너무 신기하고 긴장했던” 경험을 천진하게 회고하는 이 뮤지션에게 아직 배우라는 직업은 미지의 세계다. 음악인으로서 김뜻돌의 시작이 2018년 망원동에서의 공연이었다면, 배우로서는 <한국이 싫어서>가 첫 주춧돌이다(<메기> 단역이 있기는 하지만 김뜻돌은 이에 대해 “구교환 배우를 구경하고 싶어서 현장에 놀러갔을 뿐!”이라고 손사래쳤다). “그저 김뜻돌답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달라는 장건재 감독의 요청대로 카메라 앞에서 최대한 편안한 상태로 존재하려 했다. 캐스팅 후 동네 연기학원도 두달 다녀봤지만 정답을 찾아가는 방식이 잘 맞지 않았다. 짧은 시간에 노래, 외모, 에너지 모든 면을 최상치로 끌
[who are you] <한국이 싫어서>, 김뜻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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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은 자신만의 삶의 속도가 있다. 성실하고 특별히 모난 데 없는 그는 변함없이 우직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틀에 박힌 한국에서의 삶에 질린 계나(고아성)는 그런 지명을 답답하게 느끼곤 하지만, 그럼에도 지명은 떠나는 계나에게 “기다릴게”라고 말한다. 그리고 조용히 그 말을 지킨다. 수년이 지나 다시 계나와 재회한 순간, 지명은 계나와의 시간을 소중이 여기면서도 기자로서의 루틴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성실한 한국인의 표상이다. 배우 김우겸은 지명의 행동과 말을 살피면서 자신의 것으로 체화했다. “요즘, 연기가 즐겁다”며 차분히 촬영 현장을 회상하는 그에게선 지명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신념을 올곧이 지키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 <한국이 싫어서>를 마지막으로 본 건 언제인가.
=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때 야외상영으로 본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영화가 어떻게 나왔을까 궁금했는데 고아성 배우, 주종혁 배우도 그렇고 다들 연기를 너무 잘해서 배우로서 많이 배웠
[인터뷰]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 <한국이 싫어서> 배우 김우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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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가장 잘할 만한 작품을 만날 기회가 배우에게 몇번이나 찾아올까. 배우 주종혁에게 <한국이 싫어서>는 그런 자신감이 들게 한 영화였다. 극 중에서 그가 분한 재인은 3년 전, 학벌 중심 사회에 염증을 느끼고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20대 한국 청년이다. 정착한 뉴질랜드에서 이민 온 계나(고아성)를 만나 우정 어린 누나, 동생 사이가 된다. 한 사람을 외형으로 결론짓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인 일인지를 깨닫게 하는 의미심장한 역할이기도 하다. 중학생 때 뉴질랜드로 건너가 5~6년간 유학 생활을 한 주종혁은 머릿속으로 추억의 사진 앨범을 한장 한장 넘기며 시나리오를 읽었다. 그 시절에 보았던 풍경, 만났던 사람, 느꼈던 감정을 모두 끌어내 자기만의 재인을 만들어냈다.
- 첫 등장에서 놀랐다. 빨간 머리에 돌려쓴 스냅백, 반바지에 조리샌들 차림이 <만분의 일초>의 진중한 검도 선수 재우와는 천양지차더라. 무엇보다 재우는 눈으로 말하는 캐릭터였는데 재인은 독특한 선
[인터뷰] 이방인의 시간을 통과한 뒤에, <한국이 싫어서> 배우 주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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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 가족의 장녀이자 20대 직장인 계나(고아성)가 바라는 건 단 하나다. 춥지 않은 것. 그러나 겨우내 패딩을 입고 지내야 하는 냉골 집, 만날 때마다 주눅이 드는 애인(김우겸)의 중산층 가족, 의견 하나 받아들여지지 않는 회사는 줄곧 살을 에는 추위를 느끼게끔 한다. 이렇게 살다가는 결국 얼어서 부서질까봐 그는 홀로 뉴질랜드 이민행을 택하지만 한국을 떠난다고 해서 삶이 갑자기 순탄한 길로 들어설 리 없다. 낯선 땅에서 따뜻한 햇볕과 살랑이는 바람을 충분히 느끼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결핍과 아득한 미래가 주는 불안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여전히 몸을 옹송그린다. 배우 고아성은 종착점을 지정하지 않고 과정에 표류하기를 자처한 영화에서 중심을 잡되 의도에 맞는 연기로 작품과 관객을 연결해냈다. 인터뷰로 만난 그는 계나처럼 양팔로 몸을 감싼 채 말하는 모습이 언뜻 추워 보였지만 대화가 깊어질수록 그가 지금 얼마나 열의에 차 있는 상태인지를 알 수 있었다.
- 영화계
[인터뷰] 오직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한국이 싫어서> 배우 고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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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국인의 싫어하는 것들의 목록에 한국이 있다면 궁금해질 것이다. 그가 한국이 싫어진 이유와 어지럽고 복잡할 지금의 마음이 말이다. 장건재 감독의 신작 <한국이 싫어서>는 계속 여기서 살면 말 그대로 죽을 것 같아서 고국을 뜬 29살 싱글 여성의 이야기다. 헬조선 담론이 대두되던 2010년대 중반의 한국의 사회상을 담은 장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한국의 가난한 집 첫째 딸이자 성취감을 못 느끼는 직장인으로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극심한 한기를 느끼던 계나(고아성)는 오래된 애인(김우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온화한 기후의 뉴질랜드로 이민 간다. 타지살이의 초입에서 워킹홀리데이 중인 20대 한국 남성 재인(주종혁)과 친구를 맺고 부지런히 일하고 연애하며 계나의 살갗은 서서히 건강한 태양빛을 띤다. 그렇지만 <한국이 싫어서>는 외국살이의 낭만화엔 추호도 관심이 없다. 나아갈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보통 한국 청년의 불안하고 혼란한 마
[커버] 그래도 우리는 서로가 좋아서, <한국이 싫어서> 배우 고아성, 주종혁, 김우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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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수는 세 차례에 걸친 오디션을 통해 <폭군>의 채자경이 되었다. 그는 무용을 전공한 자신의 경력을 믿고 “몸 잘 쓰니?”라는 박훈정 감독의 오디션 첫 질문에 “자신 있다”고 답했지만, 정작 대본을 받아 읽은 후에야 자경을 연기하기 위해 지금껏 몸을 활용했던 방식과 전혀 다른 길을 걸어야 함을 자각했다. “작품 합류가 확정되기 전부터 킥복싱을 배우고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했다. <폭군>의 일원이 되고자 간절한 마음으로 자경에게 필요한 역량을 개발해갔다. 다시 돌아가도 그렇게 준비할 것이다.” 지금껏 조윤수는 배역에 접근할 때 ‘공감’을 최우선 순위에 두었다. 하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킬러이자 금고 기술자인 자경은 스스로 “여리고 쾌활하다”고 고백하는 조윤수의 성정과는 여러모로 대척점에 놓여 있었다. 그는 기존 방식 대신 “자신에게 없는 매력을 가진 자경을 동경”해보길 시도했고, 어느새 “내가 갖지 못한 지점을 지닌 자경을 사랑하게” 되면서 앞으로 배우 인생에 유
[who are you] ‘폭군’, 조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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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인간의 다른 활동과 달리 이기적이지 않아.”(<잠입자>) 정말 그럴까. 적어도 <희생>의 바로 전작인 <노스텔지아>까지의 안드레이 타르콥스키는 꽤 그렇게 생각한 듯하다. 15세기 몽골제국의 침략 등 러시아의 온갖 수난을 거치며 <삼위일체>를 그려 인간들의 구원을 도모하고자 했던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수도사도, <노스텔지아>의 고르차코프도 촛불 하나를 세상의 온 믿음인 양 소중히 감싸며 무한히 이타적인 예술가의 숭고를 지켜냈다.
타르콥스키가 꾸준히 도스토옙스키류의 ‘약한 인간’을 그려왔다고는 하나, 사실 그 면면을 자세히 살피면 그 인간들은 약한 만큼 동시에 드센 자기만의 숭고를 지켜낸 위인들에 가까웠다. 전세계 관객들이 타르콥스키의 인물에 절절히 감동한 이유도 그들의 약한 듯하면서 위대한 숭고에 있었다. 여기서 숭고란 인간이 도저히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아득한 세계의 압도감을 언어화한, 형용할 수 없
부끄러운 아버지의 초상, 숭고하기보단 아득한 회한으로서의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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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누워 <희생>을 보며 잠들지 않을 수 있을까. ASMR처럼 쉼 없이 흘러나오는 형이상학적 대사와 신의 변화를 뚜렷하게 감지하기도 어려운 장면간의 유동성, 장장 몇분간 지속되는 상승과 하강 이미지의 교차, 그리고 한정된 무대에서 펼쳐지는 꿈같은 이야기, 아니 사실은 이야기라고 하기도 마땅찮은 어떠한 순간들의 연속을 보며 맨정신을 부여잡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니까 단출하게 말하자면 <희생>은 아주 지루해서 졸음을 참기가 어렵다.
김영진 평론가(당시 기자)도 1995년 5월 <씨네21>에 “필자는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감독의 팬이다. 그의 유작 <희생>을 다섯번이나 봤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다섯번 모두 특정 부분에서는 항상 졸았다”라며 극장에서조차 그 수마를 이기지 못했단 기록을 남겼다. <희생>을 보다 잠드는 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모두에게 평등한 불가항력의 과정인 듯하니 딱히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
시네필은 왜 잠 오는 영화만 좋아하나요, <희생> 이후 30년, 한국 예술영화 담론의 나쁜 기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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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는 한국의 영화 문화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던 시기였다. 코아아트홀과 동숭아트센터 같은 예술영화관들이 호황을 누렸고, <씨네21>과 <키노> 등 영화 전문 잡지들이 잇달아 창간되기도 했다. 또한 대학가에서는 극장에서 볼 수 없는 고전영화나 미개봉 영화들을 비디오테이프로 상영하는 행사들이 연일 열리곤 했다. 레오스 카락스, 뤼크 베송,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테오 앙겔로풀로스, 에미르 쿠스투리차, 왕가위, 기타노 다케시, 이와이 슌지 등은 1990년대 한국의 시네필이 각별히 아끼는 감독들이었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역시 이들 중 한명이었다.
타르콥스키 감독의 영화 <희생>(1986)은 1995년 2월에 개봉했다. 제작된 지 약 10년이 넘은 오래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반응은 뜨거웠다. 누군가는 당시 <희생>의 관객이 3만명이 넘었다고 하고, 다른 누군가는 5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심지어 10만명이 넘었다고 말하는 사
두 그루의 나무 사이에 서 있는 사람,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와 1990년대 한국의 영화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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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의 성인, 순교자 혹은 유례없는 영화 시인. 1960년대 무렵부터 20세기 러시아를 넘어 전세계 영화예술의 부흥을 이끌었던 영화 작가 중 한명,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희생>(1985)이 8월21일 한국 극장가에 4K 리마스터링으로 돌아온다. <희생>이라 하면 1995년 한국에서 늦깎이 개봉하여 3만~10만 관객이라는 기록적 흥행을 이끈 영화 바깥의 신화와 함께,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필모그래피와 인생사를 총집약한 걸작으로도 공인되고 있다. 영화의 구조는 무척이나 간결하다. 은퇴한 저널리스트 알렉산더는 말하지 못하는 아들 고센과 어느 한 외딴집에서 지내고 있으며, 바깥세상은 세계 멸망을 눈앞에 둔 전쟁 소식으로 시끄럽다. 이 와중에 알렉산더의 집을 찾은 몇몇 친구들은 세계, 예술, 믿음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그 끝에서 알렉산더는 장대한 희생을 감행하며 아들 고센에게 자신과 세계의 의지를 잇는다. 간단하고 일견 허무해 보이는 이야기는 영화의 프레임을 길고 넓
[커버] 영화의 순교자, 극장에 돌아온 <희생>과 안드레이 타르콥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