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람만큼 트랜스크로스 지면에 어울리는 인터뷰이가 있을까. 이자람은 소리꾼으로서 과거와 현재를 횡단(trans- )한다. <심청가>를 시작으로 전통 판소리 다섯마당을 모두 완창했고 이중 동초제 <춘향가>를 스무살 나이에 8시간 완창해 기네스북에 올랐다. 그의 아성은 창작 판소리를 통해 견고해졌다.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과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을 각각 판소리 <사천가>와 <억척가>로 각색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라틴아메리카의 마르케스와 앵글로 아메리카의 헤밍웨이도 이자람의 눈에 들면 판소리 <이방인의 노래>와 <노인과 바다>로 환생했다. 이자람은 판소리 이외의 분야를 가로지르는(cross)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소리꾼이기 이전에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로 유명한 노래 <내 이름(예솔아)>의 ‘예솔이’로 데뷔했던 가수다. 2004년엔 록밴드 아마도이자람밴드를 결성해 크고 작은 무대에서 20년간 밴드 보컬로 활동했다. 뮤지컬과 연극, 영화와 시리즈를 가리지 않고 출연한 배우인 동시에 에세이집 <오늘도 잘함>을 낸 에세이스트다. 전천후 아티스트 이자람이 다시 소리꾼로 돌아왔다. 그의 판소리 신작 <눈, 눈, 눈>은 톨스토이의 소설 <주인과 하인>을 재창작한 작품이다. <눈, 눈, 눈>의 세계 초연 내내 언론과 관객은 어김없이 “역시 이자람”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또 하나의 걸작을 써낸 이자람이 <눈, 눈, 눈>의 세계 초연을 마치고 <씨네21>을 찾았다. 이때 씨네리가 장단을 치고, 이자람이 소리를 허는디!
- 6년 만의 판소리 신작이다. 이번엔 톨스토이의 소설 <주인과 하인>을 각색했는데.
= 대학원에 다닐 때 메레디스 몽크가 운영하는 사운드 워크숍에 참여한 적 있다. 워크숍을 위해 파리의 한 에어비앤비에 머물렀는데 그 후파리에 갈 때마다 가족을 찾듯 이 집에 머문다. 호스트인 데니스는 혜안을 가진 사람이다. “네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어?”와 같이 내가 어떻게, 얼마나 성장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질문을 유도한다. 2024년 1월에 파리의 태양 극단(Théâtre du Soleil)에 작업하러 갔을 때도 유사한 질문을 받았다. 으레 그랬듯 차기작으로 어떤 작품을 각색하고 싶은데 쉽지 않다는 답을 건네자 데니스가 <주인과 하인>을 추천했 다. 한국에 돌아와 원서와 번역서를 둘 다 읽고 충격을 받았다. 바로 창작에 돌입했다.
- 번역본이 시중에 있어도 우선 원서를 독파하나.
= 번역본은 역자의 시선이 한겹 덧씌워질 수밖에 없지 않나. 번역가가 자란 문화권을 비롯한 개인의 견해가 묻어나니 읽고 나면 내 안의 의심이 자라난다. 못하는 영어지만 우선 더듬더듬 번역기를 돌려가며 원어로 쓰인 문장을 이해하는 시간을 반드시 거친다. 그래야 이야기가 온전히 내 안에 들어온다.
- 처음 텍스트에서 발견한 미덕이나 가능성을 창작 과정에서 끝까지 관철하는 편인가.
= <주인과 하인>을 읽자마자 한대 맞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감상 즉시 느낀 이 통각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첫 목표였다. 이 결심을 향해가는 과정이 참 지난했다. 우선 내가 바실리를 좋아하게 되기까지 오래 걸렸다. 그를 좋아해보고자 바실리를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도 존대하는 사람으로 그려보기도 했다. 이러 구러 작창까지 마치고 3개월 전 즈음 실연해보니 고수가 “재미가 없다. 하나도 모르겠다”고 하더라. 캐릭터의 이름이 어렵고, 캐릭터들의 생김새가 눈에 잡히지 않고, 이야기의 초점이 모호하다는 피드백이었다. 원작의 무게에 짓눌려 판소리 특유의 친절함을 잊은 것이다. 그때 부터 ‘Be Kind’의 마인드셋으로 대본을 전면 수정했다. 이준형 고수 덕분에 무겁고 깊은 이야기 전면에 가볍고 경쾌한 터치를 배치할 수있었다.
- <노인과 바다>부터 바탕소리 구현에 중점을 둔판소리를 만들어왔다. 소리꾼은 오직 재담, 소리, 너름새로, 고수는 북장단으로 관객과 만나야 한다는 일념이 이번 작품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 북 이외의 다른 악기를 쓸 수도 있다. 내 안의 다른 욕심들이 “이 정도 퀄리티 구현을 위해서 라면 다양한 음악이 들어가야지”라며 고개를 들거든. 그 욕심이 창작에 훼방을 놓는다. <노인과 바다>를 기점으로 여러 상념을 밀어둔 채맨주먹으로 승부하는 중이다. 아직까진 이 감각으로 작품을 만드는 편이 재미있다.
- 주요 캐릭터 중 특히 종마 제티 연기가 일품이었다. 레퍼런스가 있었나.
= 제티의 외양과 몸짓은 승마를 통해 배웠다. 말을 직접 보고 어루만질 때마다 느껴지는 이들 특유의 섬세함과 신비로움이 있다. 다른 작품 에서도 주변 사람들을 참고해 인물형을 구축했 다. 가령 <이방인의 노래> 속 대통령은 나의 스승인 송순섭 선생님과 손석희 앵커를 배합한 결과다. 송순섭 선생님이 자주 짓는 자세와 표정에 손석희 앵커의 카랑카랑함을 더했다.
내게 음성상징어란 습관처럼 마시는 물에 가깝다
- 판소리가 촉발하는 몰입의 원초성이 있다. 소리 꾼의 사설과 고수의 장단에 “얼씨구!” “잘 한다 ~”와 같이 반응하다 보면 세트도 특수효과도 전무한 무대에서 펼쳐지는 스토리텔링에 절로 이입 하게 된다.
= 관객의 추임새가 소리꾼에게도 좋은 자극을 선사한다. <억척가>를 한창 선보일 때는 관객과 호흡하는 이 순간이 어쩌면 내 인생의 황금기일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노인과 바다>를 올렸을 땐 운 좋게 황금기가 갱신됐는데 관객이 직접 무대와 객석 사이의 장벽을 허물 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눈, 눈, 눈> 에 이르니 장식 없이 오직 판소리로 소통을 이룬 것 같아 어안이 벙벙하다. 원초성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관객이 판소리 현장에서 오롯이 본인답게, 본능에 따라 즉물 적으로 존재한 뒤 공연장을 떠날 수 있다면 소리꾼에게는 그만한 영예가 또 없을 것이다.
- 판소리 언어의 주요한 특징이 음성상징어의 빈번한 활용이다. 이자람의 판소리도 의성어와 의태어의 활용이 두드러진다. 그런데 정작 대본을 쓸 때음성상징어를 계산해 넣기보다 새로 만드는 쪽에 가깝다고.
= 내게 음성상징어란 삶에서 습관처럼 계속 마시는 물에 가깝다. 일상에서 의성어, 의태어를 정말 많이 흉내낸다. 이를테면 어떤 바람이 불면그 바람이 어떤 소리로 들리는지 입으로 내보는 편이다. 일상의 습관이 그대로 작품에 반영 되는 건 장점 아닐까. 직접 만드는 의성어, 의태어도 많아서 정작 대본에 쓰인 음성상징어 중엔 국어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것도 많다. 이번 <눈, 눈, 눈>의 경우 <주인과 하인>을 읽으며 느낀 장대한 눈의 소용돌이가 언어를 통해 서라운드 사운드로 만들어지길 바랐다. 또 눈송이가 관객 피부에 닿을 듯한 감촉을 구현하고 싶었다. 자이언티가 <눈>에서 소복이 쌓이는 눈을 한음으로 지속해 부르지 않나. 눈송이를 음률로 언어화하려면 그런 가사를 나올 수밖에 없다는걸 이제야 알았다. 그래서 <눈, 눈, 눈>에 <눈> 오마주가 살짝 들어갔다. 판소리 창작의 소박한 재미 중 하나가 한국 가요의 인용이다.
- 어떻게 각색할 소설을 고르냐는 질문에 “지금 한국에서 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답한 바 있다. 한국에서 한국의 예술을 한국어로 부른다는 사실 이외에도 한국에서 지금 이 소리가 연행된다는 국적성이 창작의 주요한 동력인 걸까.
= 철이 없었네. 내가 뭐라고 한국에 필요한 이야 기를 찾나. (웃음)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른 답을 내놓을 것 같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 필요성이 한국에 사는 현재의 나, 혹은 나와 같은 처지의 누군가에게 필요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이는 부차적 문제다. 내가 씹어먹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찾는다. <눈, 눈, 눈>도 <노인과 바다>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 만든 작품이다.
- 전통 판소리를 부를 땐 어떤가. 근래엔 지금의 감수 성에 비추어 <춘향가>의 이몽룡이나 변학도, <흥보 가>의 흥보가 보이는 여성혐오적인 부분을 새로 보완해 무대를 꾸려왔다. 서사자로서 불가해한 내러티브와 캐릭터를 만나면 어떻게 타협하나.
= 가끔은 변학도가 지금 정치인들에 비하면 낫다는 생각도 한다. 그래도 과거의 인물들은 아무리 철면피라 해도 통치자로서 지키는 최후의 선이 있고, 말다운 말을 하며 백성의 간청을 듣기라도 하는 등 소통을 시도하거든. 전통 판소리 <춘향가>의 변학도든 창작 판소리 <눈, 눈, 눈>의 바실리든 마뜩잖은 캐릭터를 조형할 때의 원칙은 같다. 이야기 밖 현실이 작품에 경을 치지 않도록 유의한다. 세상을 살다 보면 분노를 부르는 대상이 명확하지 않나. 나도 <주인과 하인>을 처음 읽었을 당시 바실리에 내가 싫어 하는 존재들을 투사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미움이 작품 내부로 들어오는 순간 스토리텔링은 이루어질 수 없다. <눈, 눈, 눈>의 첫 공연에 온한 관객이 바실리를 보며 자신을 괴롭히는 상사가 떠올랐는데 자신이 그 상사를 용서해야 하냐며 혼란스러워했다. 악은 악이다. 나쁜 자는 벌을 받고, 불의에는 저항해야 한다. 하지만 처벌과 항거는 극장 밖에 이루어져야 한다. 관객이 작품을 보는 동안 현실을 반추하며 괴롭지 않길 원한다.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만큼은 자기 안의 인류애를 내버리지 않은 채 그 선의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가늠하길 바란다.
- 그 바람이 판소리의 현대화가 아닌 현재화를 추구한다는 창작 동기와도 통하나.
= 물론. 나는 판소리를 현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대적인 감각이 내 안에 지속적으로 수혈되는지도 의심스럽다. 다만 소리꾼으로서의 최선은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나의 이야기를 판소리를 통해 전하는 것이다.
- 판소리에서 소리꾼이 점하는 서사자라는 위치가 흥미롭다. 서사자는 관객이 서사에 몰입하도록 돕기도, 금세 관객을 서사 밖으로 격리하기도 한다. 이 양가성을 즐기는 일이 연행자와 관객 모두가 판소리를 즐기는 방도일까.
= 판소리 서사의 가장 큰 특징이 신축성이다. 판소리는 이야기와 시공간을 늘리고 줄인다. 관객의 시선을 등장인물 한명의 표정에 밀착해 두다가도 어느새 드넓은 설원으로 옮기고, 이야기와 관객 사이의 거리, 인물간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 모두를 신축해낸다. 이 신축성이 판소리의 마법이다.
- 2005년 <이갈리아의 딸들>을 각색한 <구지 이야기>부터 톨스토이의 <주인과 하인>을 각색한 <눈, 눈, 눈>까지. 지난 20년간 기존 문학을 각색해 판소리를 만들었다. 직접 이야기를 창작하고 싶은 욕구는 없나.
= 그 욕심은 일찍이 버렸다. 이미 세상엔 좋은 이야기꾼이 많다. 나의 재능은 그들이 흩뿌린 이야기 중 나와 접점이 생기는 작품을 골라 내 식대로 개작하는 데에 있다. 이야기를 직조하는 규칙을 훈련한 경험도 없고, 적당한 재주가 있다 해도 이를 단일한 서사로 꿸 일습을 갖추지도 못했다. 그럴 바에야 내가 오랫동안 훈련해온 도구를 사용하는 게 편하다.
이자람의 모드 변환, 혹은 클론들
- 늘 자기소개를 할 때 “이.자.람입니다”라며 음절을 모두 쪼개 말한다. 종종 이름을 ‘이잘함’으로 오인받아 생긴 버릇인가.
= 아직도 내 이름을 말하는 일이 어색하다. 오래전 MBC FM4U에서 <뮤직스트리트>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그때 나를 “뮤직스 트리트 이.자.람입니다”라고 소개하던 버릇이 여태 굳어졌다.
- 연극, 뮤지컬 무대뿐만 아니라 시리즈 <헤일로> 시즌1, <정년이> <조명가게>, 영화 <히치하이크> 에도 배우로 출연했다. 관객의 즉각적인 리액션이 터져 나오는 무대와 달리 매체 연기는 감독의 디렉션 외엔 관객 반응을 알기 어렵다. 평소 연기 하던 습관과 다른 메커니즘을 요했을 듯한데.
= 무대에 설 땐 혼자 시뮬레이팅하는 시간이 굉장히 길다. 나는 연습벌레라 연습을 많이 해야 무대에 올라 여러 가지를 수행할 수 있다. 그런데 <조명가게> 현장에 갔더니 감독님이 연습을 안 하는 편이 낫지 않겠냐고 하시더라. 덕분에 현장에서 감독님이 짜주신 동선에 바로 맞춰 연기했다. 배역 해석은 미리 마치고 현장에선 센스 있게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알았다. 아예 다른 세계였다. <조명가게>는 강풀 작가와의 인연으로 출연했다. 작가님이 나를 염두에 두고 원작에 없는 전대 조명가게 사장을 만들었다고 하기에 꿈만 같았다.
- 어떤 분야에 도전하든 기자나 평론가들이 소리꾼 으로서의 정체성을 기준 삼아 재단하지는 않나. 이를테면 아마도이자람밴드의 <우아하게>를 두고 “국악 전공자답게 <아리랑>의 정서를 차용했 다”라는 식으로 연관 짓거나, 이자람이 만든 록이나 블루스를 두고 창법의 근원을 국악에서 찾는 다든가.
= 요 근래엔 없지만 판소리 이외의 장르에 나서던 초창기엔 그런 평가를 몇 차례 받은 적 있다. 그래서 지금은 해체한 아마도이자람밴드가 억울한 것도 미안한 것도 많다. 다 지나간 일이 다. (웃음) <조명가게>에 출연했을 때 시청자들이 “저 사람 누구냐”며 나를 모르는 게 좋았다. 아예 나를 모르는 곳에서 무언가를 도모하는게 차라리 편하고 행복하다. 소리를 할 때, 연기를 할 때, 밴드 보컬을 할 때 모드 변환이 큰무리 없이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이자람의 클론들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 에세이집 <오늘도 자람>으로 작가 데뷔도 마쳤 다. 직접 대본을 쓴 창작 판소리를 가지고 대본집을 출판할 계획은 없나.
= 고려 중이다. 특히 <노인과 바다>나 <주인과 하인>의 경우 저작재산권이 이미 소멸한 작품이라 좀더 책을 내는 게 쉬울 듯하다. 무엇보다 창본(唱本)이 어떤 구조로 이루어지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 대본집은 남길 계획이다.
- 올해는 계속 <눈, 눈, 눈>과 함께하나.= 새 작품이 탄생했으니 이 아이가 세상과 만나 어떻게 성장하는지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한다. <눈, 눈, 눈>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이 성공이 내 삶을 다른 곳으론 데려가지 않는다. 작품의 성공 속에서 내 삶을 어떻게 채비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보내려 한다.
'이자람 박사님'
이자람의 또 다른 칭호는 ‘박사’다. 그는 2023년 2월 음악박사학위논문 “이자람 창작 판소리 <노인과 바다> 연구”를 통해 ‘이자람 박사님’이 되었다. 이자람이 연구한 제재는 자신의 창작 판소리 <노인과 바다>이다. 이자람은 창작자 자신을 객관화해 판소리 <노인과 바다>의 창작 과정을 분석하고 판소리의 창작 기법을 정리했다. 이자람은 논문 작성 기간 동안 자신이 똑똑해질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본능에 가깝게 수행해온 판소리 창작이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지는지, 내가 가진 도구가 무엇인지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논문 작성의 시간이 <눈, 눈, 눈>의 창작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소설이 어떻게 판소리로 탈바꿈하는지, 판소리의 작창과 연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지 이자람표 판소리 창작의 비급이 이 논문 안에 모두 들어 있다.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를 포함한 논문데이터베이스 웹사이트에서 열람이 가능하다.